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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릴라칼럼'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들이 쓰는 칼럼입니다. [편집자말]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앞에서 일부 육해공군 등 예비역들로 구성된 ‘구국동지회’ 회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 등을 들고나와 탄원서 제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과 관련해 ‘졸속적으로 탄핵인용될 경우 우국충정의 결심을 해 행동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 태극기-성조기 들고 헌재 찾아간 예비역들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앞에서 일부 육해공군 등 예비역들로 구성된 ‘구국동지회’ 회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 등을 들고나와 탄원서 제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과 관련해 ‘졸속적으로 탄핵인용될 경우 우국충정의 결심을 해 행동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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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당하는 수난이 날로 거세어지고 있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 지지자들이 대놓고 재판관들을 협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박근혜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박사모)' 누리집에는 헌재 소장 권한대행을 '죽여버린다'는 협박문까지 올라왔다.

이런 흉악한 말이 오가는 곳이 이름과 얼굴이 감춰진 인터넷 공간만은 아니다. '대통령 탄핵기각을 위한 국민총궐기 운동본부(탄기국)'라는 긴 이름을 가진 단체의 정광용 회장을 보라. 그는 헌재에 '3명의 악마 재판관'이 있다'고 주장한다.

도대체 지난 10년간 어떤 정부가 집권했기에, 그 중요한 자리에 '악마'들을 앉힌 것일까? 친박 단체는 집회에서 '우리 대통령님은 하늘의 천사이십니다'라는 피켓을 드는 사람들이니, '천사'에게 불리한 상황을 만드는 모든 이들이 '악마'로 보일 수 있다는 점은 이해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앞의 '탄기국' 회장은 "이('악마재판관')들 때문에 탄핵이 인용되면 '아스팔트에 피가 뿌려질 것"이라는 험악한 말에, "어마어마한 참극을 보게 될 것"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대다수의 시민들로서는 이런 기막힌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 충분히 '참극'인데, 그것으로 충분치 않은 모양이다.

더 한심한 것은, 이런 발언의 '주원산지'가 박 대통령의 대리인들이라는 사실이다. 김평우 변호사는 지난 22일 "탄핵 인용시 시가전이 벌어지고 아스팔트 길이 피와 눈물로 덮일 것"이라고 위협조로 말했었다. 그것도 시위 현장이 아닌 탄핵심판 변론 자리에서 말이다.

서석구 변호사는 아예 시위에 나와 '종교적 기적' 이야기를 꺼냈다. "성경에선 믿는대로 이뤄진다는 말이 있다"며, "탄핵 기각을 믿으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자신의 의뢰인이 즐겨 쓰는 ('정말 간절하게 원하면 전 우주가 나서서 다같이 도와준다'는) 신비론적 화법과 맥을 같이 하는데, 결국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탄핵 인용은 기정 사실임을 자신도 알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기막힌 이야기가 오가는 시위 현장을 한층 더 빛내준 것은 여당 실세와 대선후보들이었다. 자유한국당의 윤상현, 조원진, 김진태 의원을 비롯해, 대선주자로 꼽히는 김문수와 이인제도 그 자리에 있었다. '피'까지는 모르겠으나, '눈물'만큼은 확실히 뿌려지는 상황인 셈이다.

허망하게 끝난 협박극... 엄정 수사하고 처벌해야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로 불린다. 이런 헌재 재판관들이 욕설과 협박은 물론, 테러 위협과 살해와 위협까지 받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을까?

이 사회에서는 '친정부' 딱지가 붙기만 하면 불법행위가 널리 용인되어 왔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에 들어서는 '용인' 정도가 아니라 금전적으로 보상해주었고, 청와대가 나서서 시위 내용을 지시하기까지 했다. 촛불시위 현장에서는 친박 시위대의 폭력행위에 경찰들이 뒷짐을 지는 경우가 목격되기도 했다.

공권력의 이런 안일한 자세는 이번에도 나타났다. '헌재 소장 대행을 살해하겠다'는 글이 나도는 데도, 경찰은 "적용 가능한 범죄 혐의가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는 식의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 보수언론도 마찬가지였다. <조선일보> 인터넷판은 살해 협박을 "객기"로 부르며 사소한 해프닝 취급을 했고, 실제로 이 기사를 "연예"란에 실었다.

헌재재판관의 살해협박을 '객기 면모'로 표현한 <조선일보>의 '연예 일반' 기사.
 헌재재판관의 살해협박을 '객기 면모'로 표현한 <조선일보>의 '연예 일반' 기사.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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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범인이 곧 자수했지만, 그렇다고 사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범인이 조사받고 있는 이 시간에도 헌재를 향한 협박은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탄핵 반대 시위자는 인화물질을 옮기다 적발되기까지 했다.

박 대통령 대리인과 친박단체들이 헌재에 가하는 협박과 위협은 명백한 범죄행위다. 형법 제283조는 "사람을 협박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50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284조는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사람을 협박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대법원 판례는 실행 의도와 상관 없이 폭넓게 협박죄를 인정한다. 중요한 것은 상대방에게 공포심을 유발했는가다. 최근 재판관들에 대한 경호가 대폭 강화된 데서 알 수 있듯, 그들의 행동은 명백히 공포를 유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형법 제285조는 상습적으로 사람을 협박하는 경우 형의 2분의 1까지 가중처벌한다는 규정이 있다.

자신들도 안 믿는 '구국의 결단'?

살해협박 글을 게시한 이가 쓰던 아이디는 "구국의결단22"였다. 그 행동이 '구국의 결단'이라면 자수는 왜 한 것일까?. 그는 경찰서에서 "수사가 시작됐다는 소식에 무섭고 두려워졌다"고 진술했다. 이 사실은 무엇을 말해줄까?

탄핵 반대 세력은 '구국의 결단'이라며 협박과 폭력을 행사하지만, 그 행동이 떳떳치 못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자신들이 잘 알고 있다. 스스로 범죄임을 알면서 스스럼없이 행동하는 배경에는 '공권력은 우리편'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믿는 든든한 '빽'은 누구보다 박근혜 대통령이다.

탄핵 가결 이후, 박근혜 대통령은 헌재를 대놓고 무시하는 언행으로 일관했다. 늦추고, 미루고, 연기하고, 뭉개면서 말 그대로 헌재를 '가지고 놀았'다. 박대통령이 누구인가? 입만 열면 '법과 질서'를 외치던 사람 아닌가. 그의 말과 말, 말과 행동 사이의 괴리가 그리 놀랍지 않은 까닭은, 그동안 수없이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탄핵은 우리에게 두 가지 면에서 매우 소중하다. 하나는 과거에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이상을 실현시켜주고 있다는 점이다. 말이 거창해 '이상의 실현'이지, 정작 내용은 이름에 걸맞지 않게 매우 소박하다. 그것은 '잘못한 사람은 처벌 받아야 한다'는 상식이다.

대통령의 '대리 통치자'가 체포되고, 위증을 한 권력의 실세에 영장이 청구되고, 뇌물을 건넨 재벌 총수가 감옥에 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 이 당연한 일들이 시민들의 눈과 마음에 왜 그토록 큰 청량감과 희망을 주는가. 한국 사회에서는 당연한 상식이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보수정치 세력이 얼마나 뻔뻔하고, 몰상식하고, 품위가 없는지를 깨닫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들이 '비정상화의 정상화'를 외치는 세상에서 지냈다는 생각을 하면 현기증이 날 만큼 끔찍하지만, 더욱 끔찍한 것은 그 시절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반민주 세력의 최후의 저항

박근혜 대통령 취임 4주년을 맞은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4년, 이제는 끝내자! 2.25 전국집중 17차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가 열렸다. 집회를 마친 시민들이 ‘탄핵인용’을 촉구하며 헌법재판소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 '탄핵인용' 촉구 헌재앞 행진 박근혜 대통령 취임 4주년을 맞은 2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박근혜 4년, 이제는 끝내자! 2.25 전국집중 17차 범국민행동의 날’ 집회가 열렸다. 집회를 마친 시민들이 ‘탄핵인용’을 촉구하며 헌법재판소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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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세기 넘게 이 나라를 지배해 온 세력이 순순히 물러나겠는가. '과거 회귀'를 위한 시도는 끈질기게 진행되고 있다.

주말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헌재 최종변론에 참석하지 않겠다고 통보했고, 최종 준비서면도 원래 마감일(23일)을 훌쩍 넘긴 27일 낮 12시께에 제출했다. 박 대통령측이 준비서면을 제출한 날 오전,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는 특별검사팀의 수사 연장을 불허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에서 헌법재판소법이 처음 제정된 것은 이승만 정권이 물러난 뒤였다. 하지만, 군부 쿠데타로 인해 헌법재판소는 없던 일이 되었고, 박정희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대법원의 위헌심판권과 탄핵심판위원회까지 폐지해 버렸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무너뜨린 헌재를 그의 딸이 탄압하는 현실은 아이러니하다.

박근혜 측근과 지지자들은 '피와 눈물'로 헌재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 뜻대로 하지 않으면 당신들이 피를 흘릴 것'이라는 협박이다. 하지만 지금의 헌재는 독재 권력에 맞선 시민들이 스스로 피와 눈물을 흘려가며 성취한 것이다. 그리고 그 희생에 참여한 사람들 절대 다수가 탄핵 가결을 원하는 70~80퍼센트 시민들 편이다.

오늘의 헌법재판소가 '한국 민주화'의 상징인 1987년 6월 항쟁의 결실이었다는  점은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갖는다.  탄핵 기각은 단순히 대통령의 복권이 아니라, 비상식이 상식 행세를 하던 암울한 과거로의 복귀를 의미한다는 사실이다. 헌재재판관들의 어깨가 무거울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말로 협박하는 자들이 아니라, 목숨으로 헌재를 지켜 온 시민들을 믿으라.


태그:#헌법재판소, #탄핵, #황교안, #특검, #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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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학 교수로, 미국 펜실베니아주립대(베런드칼리지)에서 뉴미디어 기술과 문화를 강의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몰락사>, <망가뜨린 것 모른 척한 것 바꿔야 할 것>, <나는 스타벅스에서 불온한 상상을 한다>를 썼고, <미디어기호학>과 <소셜네트워크 어떻게 바라볼까?>를 한국어로 옮겼습니다. 여행자의 낯선 눈으로 일상을 바라보려고 노력합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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