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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에서 줄리언 반스가 따져보고자 하는 건 이거다. 만약 "이제껏 하나인 적이 없었던 두 가지를 하나로 합쳐"본다면, 우리 삶은, 또는 이 세상은 어떻게 변할까?

반스가 보기에 결과는 네 가지다. ① 합쳐지지 않기도 한다. ② 합쳐지는 즉시 폭발하기도 한다. ③ 합쳐지는 순간 둘은 진정 하나가 되고 세상은 변한다. ④ 바로 이 네 번째가 반스가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인데, 네 번째 결과는 ③의 과정을 겪다가 어느 순간 필연적으로 찾아온다. 이렇게.

"머지않아 이런저런 이유로 그들 중 하나가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사라진 빈자리는 애초에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의 총합보다 크다. 이는 수학적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정적으로는 가능하다." - 본문 중에서

'하나'에 해당하는 건 이 세상 모든 것이다. 하나로 존재했던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다른 하나와 합쳐질 수 있고, 물론 여기에 사람도 포함된다. 각각 하나였던 두 사람을 합친 결과 역시 네 가지 결과를 불러온다. ① 합쳐지는 데 실패할 수 있고 ② 합쳐졌다가 서로의 인생을 망쳐버릴 수도 있으며 ③ 드물게도 "각각의 개체였을 때보다 더 위대"해질 수 있고 ④ 그러다가 누구 '하나'가 다른 '하나'를 두고 먼저 '죽을 수 있다'.

총 세 편의 글을 싣고 있는 이 책은 세 번째 글에서 ④를 다룬다. 첫 번째 글과 두 번째 글은 ①②③을 다루는 데 여기서 '하나'에 해당하는 건 '기구(balloon)'이거나 '사진'이고 '남자'이거나 '여자'이다. 세 번째 글에서 '하나'에 해당하는 건 '남자'와 '여자'이고 여기서 '남자'는 저자인 줄리언 반스 본인을 말한다. 그리고 '여자'는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은 줄리언 반스의 아내이다.

책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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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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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아내와 사별한 줄리언 반스의 고통 기록서이다. 영국의 문학 에이전트였던 그의 아내 팻 캐바나는 2008년 뇌종양으로 숨을 거둔다. 영국 문학계의 큰 상실이었던 듯싶다.

여러 매체에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 실렸다. 그런데, 막상 남편인 줄리언 반스는 침묵을 지켰다고 한다. 침묵을 지키며 반스는 묵묵히 소설을 쓴다. 그 시기에 나온 소설로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와 <그림자를 통해>가 있다.

그러다 5년 뒤 반스는 아내의 죽음이 본인에게 일으킨 내밀한 변화를 글로 쏟아낸다. 다른 여느 책에서와 같이 이 책에서 또한 그의 글은 지적이고 매력적이었지만, 다른 점은 이 글 속엔 슬픔과 분노, 무기력감과 고통이 눈물처럼 배어있다는 거였다. 그는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아파한다.

책에서 나오듯 E. M. 포스터는 말했다. "하나의 죽음은 그 자체를 설명할 수 있을지 몰라도, 다른 죽음에는 한줄기 빛조차 비추지 못한다." 반스는 사별 후 찾아오는 비탄의 감정 또한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누군가의 비탄이 다른 이의 비탄을 설명해주지 못하므로, 모든 남겨진 이들은 매 순간 상상 밖의 감정을 맞닥뜨리고 감내해야 한다고.

반스는 터무니없을 정도로 큰 고통에 절망해 어쩌면 영영 이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예감한다. 그래서 유예기간을 둔다. 만약 2년이 지나도 "아내 없이 살아갈 수 없"을 것 같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기로. 방법 또한 생각해 둔다. 그 방법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에서 에이드리언이 자살한 방법과 같다.

다행히 반스는 2년을 지나 5년을 버텨냈고 이 글을 써냈다(지금도 살아 있다). 고통이 사그라져서는 아니었다. 분명 이제는 가끔 예전처럼 즐거움도 느끼고, "단 하루도 거르는 법 없이 주체할 수 없게 흐르던 눈물"도 뜸해지고, 조금은 명랑해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반스는 말한다. 고통은 자유 의지로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고통이 '재발'하면 우리는 다시 아파할 수밖에 없는 거라고. 이제 그에게 고통은 이런 의미가 되었다고 한다. 아내를 잊지 않았다는 증표.

"고통은 당신이 아직 잊지 않았음을 알려준다. 고통은 기억에 풍미를 더해준다. 고통은 사랑의 증거이다." - 본문 중에서

책을 다 읽고 먹먹한 마음에 집에 있는 줄리언 반스 책을 몇 권 꺼내보았다. 예전에는 몰랐던 사실을 하나 알았다. 모든 책이 '팻에게'로 시작하고 있다는 걸.

덧붙이는 글 |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줄리언 반스/ 다산책방/2014년 05월 20일/1만2천8백원)
개인 블로그에 중복게재합니다



사랑은 그렇게 끝나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팻 캐바나 지음, 최세희 옮김, 다산책방(2014)


태그:#줄리언 반스 , #상실, #고통, #팻 캐바나,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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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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