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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이 똑똑해졌다. 건강한 백세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운동에만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에 신경쓰기 시작했다. 영양의 중요성을 깨닫고 식품에 대한 공부를 시작한 것이다. 세태를 반영하듯 TV엔 식품 관련 프로그램이 줄줄이 간판을 내걸었다.

몸에 좋은 건 뭐가 그리 많고 식품으로 병을 고쳤다는 사람은 왜 이리 많은지…. 출처 없이 떠도는 영양 정보 속에서 대중은 지식을 두껍게 쌓아갈수록 혼란이 가중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였다. 한 가지 식품을 두고도 갑론을박이 벌어지니 도대체 무엇이 정답인지도 알기 힘들다.

지난해 12월,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 이학부문에선 국내 영양역학 분야 최고 권위자라 불리는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김정선 교수가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식품과 만성질환과의 관련성을 입증하는 내용의 연구로 국내 응용영양학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아서다. 그에게 물으면 건강에 이로운 식품이 무엇인지 가장 정답에 가까운 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푸드앤메드는 지난 16일 국립암센터에 있는 그의 연구실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그의 연구가 국내 역학연구의 출발점

김정선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교수
 김정선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대학교 교수
ⓒ 푸드앤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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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파워'(woman power)가 날로 커지는 세상이라 하지만 여전히 여성이 한 분야에서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선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사회에서 여성의 입지가 넓어졌다고 해서 '엄마'의 역할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김 교수도 이런 점을 여성 과학자의 최대 고충으로 꼽았다. 그도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것이 꽤나 어려운 일이었음을 고백했다.

김 교수는 그럼에도 최근 3년간 64편의 논문을 써 낼 정도로 활발한 연구 활동을 펼쳐왔다. 매년 평균 21편 이상의 논문을 낸 셈이니 보통 열의가 아니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연구 활동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그저 연구를 좋아한다"는 말로 자신의 성과를 담담하게 설명했다. 연구를 즐기니 연구 성과가 절로 따라붙었다는 것이다.

김 교수가 영양역학을 제대로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2007년이다. 이때가 국내에서 영양역학이 본격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시기라고 봐도 무관하다. 영양역학은 연구자의 의지만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큰 돈을 투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기본적으로 긴 시간 차곡차곡 모인 방대한 데이터가 있어야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있는 게 영양역학 분야다. 우리나라는 2000년 국립암센터가 설립되고 난 후에야 국가적 차원에서도 체계적인 빅데이터를 형성할 수 있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한 김 교수의 연구를 국내 영양역학 분야의 출발점으로 봐도 무관하다는 말이 나온다.

국내 영양역학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선진국의 경우 이미 수십 년 전 영양역학의 중요성을 깨닫고 관련 연구를 시작했다. 2000년대 후반에 나온 해외 논문도 모두 90년대부터 10∼20년 동안 모아온 자료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다.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는 이제 연구가 시작된 지 1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 가야할 길이 멀다. 영양과 건강의 관계는 인종ㆍ식습관 등에 따라서도 민감하게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어서 해외 자료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한국인을 대상으로 한 영양역학 연구가 활발히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김 교수는 국내에서 영양역학 연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를 꼬집으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영양역학 분야는 아주 긴 시간을 두고 충분히 연구가 이뤄져야 해요. 국내 연구 대부분이 연구 기간이 턱 없이 짧죠. 국가에서 진행하는 연구도 그래요. 정확성이 떨어지는 결과가 나올 수밖에 없죠. 참 안타까워요."   

매직 푸드(Magic Food)는 없다

김 교수가 받은 '올해의 여성과학기술자상'은 2001년부터 매년 우수한 연구 개발 성과를 낸 여성과학자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그동안은 주로 물리ㆍ화학ㆍ수학 등 기초학문 분야의 연구자가 수상자로 선정됐다. 영양역학 분야 연구자가 수상자로 이름을 올린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제껏 영양학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조금 부족했던 것 같아요. 온 국민이 영양전문가인 시대니까요. 영양학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학문이라 생각하는데 그건 오해죠."

김 교수는 요즘과 같이 정보가 난립하는 시대엔 정확한 근거를 중심으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고 말한다. 자칫 설익은 정보가 국민 건강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같은 내용의 연구라 하더라도 각기 다른 결과를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섣불리 예단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 영양과 건강을 연결시킬 때에는 다수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꼼꼼히 따져보고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해 '콩 식품을 많이 먹으면 대장암의 위험이 30% 이상 감소한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다른 콩 식품과 달리 된장은 과다 섭취하면 오히려 대장암의 발생 위험을 높인다'고 밝혔다.

된장과 같이 몸에 이롭다는 상식이 우세하던 식품에서 부정적 결과가 도출됐다는 내용이 발표되면 곳곳에서 항의가 들어온다. 된장이 암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여러 연구 결과와 배치된다는 것이다.

그는 논문에서 된장 자체가 원인이라고 결론짓지 않았다. "된장에 과하게 든 소금이 대장암 발생 위험을 높일 수 있다"면서도 "소금 과다 섭취와 대장암 위험 증가 사이에 과학적 근거는 아직 부족하다"고 했다. 논문을 제대로 살펴보지 않아 생긴 오해였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조금 답답해졌다. 한 식품을 두고도 '암 예방 식품이다', '오히려 암 발생에 영향을 준다'는 등 정반대의 결과가 공존하기도 하는데 일반 국민의 입장에선 과연 이런 경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먹어야 하는 걸까, 말아야 하는 걸까. 김 교수는 더 아리송한 답변을 내놓았다.

"식품과 건강과의 관계를 흑백 논리로 판단할 수는 없어요. 좋은지 나쁜지를 묻는다면 한 가지 답을 하긴 어렵죠. 여러 연구 결과를 한꺼번에 보여주는 수밖에 없을 것 같네요. 다만 확실한 건 암을 예방ㆍ치료 하는 매직 푸드는 없다는 거예요. 암에 좋다고 특정 식품만 먹는 건 오히려 좋지 않죠. 규칙적이고 균형 잡힌 식사가 더 중요해요."

영양 전문가의 활발한 대외 활동 필요   

김 교수는 영양역학을 통한 올바른 영양 정보 확산을 위해 관련 학과 교수ㆍ학자의 활발한 대외 활동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의사의 조언도 물론 필요하지만 그보다 영양학을 더 깊이 제대로 공부한 전문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교수나 학자는 교육과 연구에만 몰두하고 방송이나 언론 매체와의 접촉은 피하는 경우가 많다. 워낙 바쁜 일정에 시달리다보니 방송이나 매체 활동을 위해 따로 시간을 낸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도 그랬다. 푸드앤메드와의 인터뷰도 몇 번을 고사한 후에야 어렵게 인터뷰를 승낙했다.

"저도 인터뷰에 잘 응하지 않는 편인데요. 저를 포함해 영양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이 대국민 교육ㆍ홍보 차원에서라도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는 앞으로 정밀의학에 대해서도 깊이 연구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정밀의학은 환자 개개인에 대한 특화된 치료를 하는 '맞춤 의학'을 말한다. 정밀의학을 대장암에 적용해 다른 암으로의 전이를 막고 항암제의 효과를 높이는 방법을 연구하고 싶다는 것이다. 이미 한 분야의 전문가로 명예를 얻었으면서도 아직 개척되지 않은 새로운 분야에 대한 도전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일을 즐기는 사람의 여유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문예 기자 moonye23@foodnmed.com (저작권 ⓒ ‘당신의 웰빙코치’ 데일리 푸드앤메드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태그:#김정선, #푸드앤메드, #암, #식품, #이문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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