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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가게'라면 미국 작가 폴 빌라드(Paul Villard)의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를 빼놓을 수 없다. 작가의 유년 시절 기억이 투영된 아름다운 수필 '이해의 선물'에 나오는 이 가게는 한 어린이가 만나는 세상의 일부이면서 어른의 이해와 관용이 무엇보다 소중한 선물이라는 걸 깨우쳐 준다(관련 기사 : 이해의 선물). 

'교환'의 개념을 이해했으되 그걸 매개하는 '돈'에 대한 이해가 모자랐던 한 어린이에게 베푸는 위그든씨의 넉넉한 마음이 선사해 준 사탕가게의 추억은 작가에게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았다. 그가 물려준 유산은 작가의 삶의 방식으로 이어졌다.

사탕가게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유년시절의 구멍가게를 기억한다. 그곳은 처음으로 우리가 세상과 '거래'하던 공간이며 몇 푼의 동전으로 교환된 감미로움의 원천이었다. 알록달록한 포장지 안에, 혹은 유리 상자 속에 든 사탕과 빵 따위가 제공하는 즉각적 쾌락의 마법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했다.

구멍가게, 그 유년의 추억 속으로

그 구멍가게의 모습은 한결같았다. 갈색이나 녹색의 페인트를 칠한, 윗부분만 유리를 단 나무 미닫이문은 뻑뻑해서 열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유리창엔 담배가게 표지가, 하얗게 회칠한 외벽에는 먼지가 쌓인 빨간 우체통이 걸려 있었다.

내 유년 시절의 구멍가게 앞에는 커다란 석유드럼통이 놓여 있었다. 나는 가끔씩 빈 됫병을 들고 석유를 '받으러'(술이나 석유를 사오는 걸 경상도에선 '받으러 간다'고 한다) 가곤 했다. 가게 주인은 익숙한 솜씨로 드럼통을 기울여 석유를 따라 주었는데 그 강렬한 기름 냄새는 마치 미지의 문명 세계, 그 낯선 조짐 같았다.

가게 앞에는 여럿이 앉는 길쭉한 일자형의 나무의자나, 평상이 놓여 있기 마련이었다. 비가 오면 꼼짝없이 젖어야 했던 평상은 언제부턴가 비닐 장판을 두르게 되었다. 가게 앞에는 빨강과 파랑, 진녹색이나 노란색 음료와 주류 상자가 쟁여 있었는데 그것은 그 집의 매출을 가늠하는 지표이기도 했다.
남해슈퍼(2013). 앞의 드럼통에 석유가 담겨 있지는 않을 것 같다. 에어컨 실외기와 석유드럼통은 어울리지 않으니까 말이다. ⓒ 이미경
서산에서(2015). 구멍가게의 슬레이트 지붕에서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과 유신시대를 만날 수 있다. ⓒ 이미경
정선 남면가게(2012). 가을의 산골 마을이라면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 이미경
구멍가게 앞에 당도한 세월은 가게의 모습을 조금씩 바꾸어 냈다. 대부분 상호가 없던 가게가 '○○상회' 같은 간판을 달다가 '○○수퍼'가 되는 세월 말이다. 나무 의자가 등받이가 널따란 플라스틱 의자로 바뀌거나 헌 소파가 덩그렇게 가게 앞을 장식하게 된 것도 그 무렵이다.

뻑뻑한 나무문이 알루미늄 새시 문으로 바뀌고 얼음과자를 넣는 길쭉한 냉장고가 가게 앞으로 나오고, 커피 자판기를 들이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이후의 풍경이었을 것이다. 가게 앞에 음료수 회사의 상표를 단 얼룩덜룩한 파라솔이 세워지면서 그 주변에 둘러앉아 '푼돈으로 한잔' 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기억 속 구멍가게로 가는 길'

소주와 콜라를 탄 이른바 '소콜'이나 '백주'라는 이름의 값싼 고량주를 마시면서 젊은이들은 젊음의 객기를 풀곤 했다. 아, 그 무렵에는 주머니가 가벼운 청년들이나 주민들은 '외상'으로 물건을 살 수도 있었다. 가게의 돈통 위에 얹힌 금전출납부에는 그런 외상 목록이 빽빽했다.

이제 그런 구멍가게는 아주 궁벽한 시골마을이 아니면 보기 힘들어졌다. 엔간하면 편의점이 문을 여는 세월이니 성장의 길목을 스쳐갔던 구멍가게의 추억은 점점 바래져갈 수밖에 없다. 요즘 시골에는 구멍가게조차 없는 마을도 적지 않은 것이다.

일간지 화보를 읽다가 그 시절의 구멍가게 그림에 나는 넋을 잃었다.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탄성을 지르다가 나는 단박에 꽂혀서 그 '그림책'을 샀다. 이미경의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이다. 이 책은 작가가 사라져가는 소중한 것들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으로 전국 구석구석의 작고 낡은 구멍가게를 찾아 화폭에 재현한 펜화집이다.

작가는 둘째 아이를 갖고 퇴촌으로 이사해 산책을 다니다가 퇴촌 관음리의 구멍가게에 마음을 빼앗겼다. 이후 20여 년 동안 그는 전국 곳곳을 찾아다니며 수백 점의 구멍가게를 화폭에 담아 사람들에게 '위로와 공감'을 전했다.

그의 구멍가게도 시간의 세례를 피하지 못했다. 8년 전에 다녔던 길을 되밟았는데 '오래 전 길에서 만난 가게도, 어르신도, 고목도 넓게 확장된 도로와 새로 지어진 건물들 사이에서 자취를 감추었'던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이제는 전설이 된 가게들을 소개하는 것은 더 늦기 전에 우리와 한 시대를 살았던 소소하고 소박한 존재들과 눈빛을 나눌 기회'로 '기억 속 구멍가게로 가는 길'을 독자들 앞에 펼쳐놓은 것이다.

그의 구멍가게 그림 속에 담긴 '시간의 흔적'과 '따스함'은 의례적 수사가 아니다. 그것은 이른바 싱크로율 100%의 공감과 그리움으로 독자들에게 추억의 시간과 공간을 복기해 주기 때문이다. 그림과 그림 사이에 짤막하게 붙인 글과 함께 아크릴 잉크와 펜으로 작업한 그림은 순식간에 우리를 수십 년 전의 시간여행으로 초대한다.
덕평리에서(2014). 산수유 꽃그늘이나 목련이 흐드러지고, 살구꽃, 벚꽃이 밝히는 잃어버린 시대의 풍경 앞에서 가끔씩 말을 잃을 수밖에 없다. ⓒ 이미경
양촌리에서(2014). 산슈유 꽃그늘이 화사한 이 구멍가게는 전형적인 1970년대 슬레이트 지붕을 하고 있다. ⓒ 이미경
청송수퍼(2008). 작가는 “비 오는 겨울 밤 마주한 청송수퍼는 서슬 푸른 1980년대 시대상을 한눈에 가늠케 하는 슬픈 역사의 한 장면 같았다”고 했다. ⓒ 이미경
구멍가게의 지붕도 다채롭다. 슬레이트와 함석, 그리고 시멘트기와를 얹은 지붕의 모양도 맞배지붕, 팔작지붕, 우진각지붕 등으로 갈리는데 이들 소재와 모양은 시대와 긴밀히 이어져 있다. 슬레이트 지붕에서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과 유신시대를 만날 수 있다. 뒤에 그 지붕은 녹색이나 주황색 페인트가 입혀지기도 했다.

유난히 눈에 띄는 것은 구멍가게 주변에 서 있는 꽃나무다. 산수유 꽃그늘이나 목련이 흐드러지고, 화사한 살구꽃, 은은한 벚꽃이 밝히는 잃어버린 시대의 풍경 앞에서 나는 가끔씩 말을 잃곤 했다. 내 기억 속의 구멍가게에도 버드나무가 한 그루 서 있었다.  

작가는 숱한 구멍가게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찾아내 거기 담긴 단란한 가족의 삶과 세상을 불러낸다. 그가 도란도란 뇌어주는 '달고나'의 추억과 고향, 아이를 낳고 그림을 그리는 성년의 삶, 구멍가게와의 만남은 작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동시대를 살아왔던 모든 사람들의 추억, 그리고 삶과 겹치기 때문이다.

여러 번 들여다봐도 구멍가게 그림은 질리지 않는다. 볼 때마다 그림 속 풍경이 환기해 주는 기억의 갈피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작가의 상상을 통해 이루어진 그림이 아니라, 존재했거나 지금도 남아 있는 실제의 가게이기 때문이다. 상상은 현실 이상의 리얼리티를 보일 수는 있어도 현실의 진정성을 따를 수는 없는 것이다.

작가는 전국에서 만난 구멍가게 그림을 통해서 잃어버린 풍경만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그림책이 단순히 추억과 연민에 머물지 않고 있는 것은 그 맥락 속에 담긴 삶을 소환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작가가 위로 솟구치는 '수직'이 아닌 '평온하고 따뜻한, 수평을 지향하는 마음'을 그림에 담는 까닭과도 이어진다.

"어떤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왜 작고 오래된 쇠락하는 가게 풍경을 그리느냐고, 인류의 가치관을 대변할 좀 더 근사하고 웅장한 상징물을 그리라고 한다. 기억의 향수에 머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더 높이 수직을 보라 한다. 그렇지만 왕조의 유물, 역사에 기록된 위대한 상징물보다 나를 더 강렬히 잡아끄는 것은 보통의 삶에 깃든 소소한 이야기다. 사람 냄새나고 매력 있게 다가온다.

수직에서 느껴지는 경쟁과 성공 지향의 이미지와 엄숙함, 숭고함이 나는 낯설다. 그저 동시대의 소박한 일상이나 사람과 희망에 의지하여 오늘도 작업에 임할 뿐이다. 정겨운 구멍가게, 엄마의 품, 반짇고리 같이 잊고 있던 소중한 마음을 되돌아보게 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 본문 138쪽, '수평과 수직' 중에서
곡성교통죽정정유소(2008). 순천시 목사동면 죽정리 원정마을에 있는 이 가게는 70년 세월을 훌쩍 넘긴 아주 오래된 점방이다. ⓒ 이미경
봉평상회(2016). 출판사가 있는 통영 봉평동의 구멍가게. 벚꽃이 흐드러지고 ‘따스한 햇살까지 더해졌다’. ⓒ 이미경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을 펴낸 곳은 '남해의봄날'이다. 책 도매상 송인서적의 부도로 피해를 입은 업체 가운데 하나인 이 출판사는 놀랍게도 경남 통영에 있다. 몇 해 전 찾았던 아름다운 도시 통영의 짙푸른 바다를 떠올리며 '작지만 소중한 가치를 좇아' '책으로 소통'한다는 출판사의 생각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존재에게 배운 것들'(에필로그)에서 작가는 '지난 20여 년의 시간 동안 구멍가게 작업을 지속할 수 있도록 영감과 교훈을 주신 구멍가게 주인 어르신들께 감사'로 책을 마무리한다. 어찌 그 어르신들뿐이랴. 거기 말없이 서 있었던 구멍가게의 존재가 오늘을, 사람들을 있게 하였으니.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이미경 지음, 남해의봄날(2017)


태그:#이미경, #펜화,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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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이 넘어 입문한 <오마이뉴스> 뉴스 게릴라로 16년, 그 자취로 이미 절판된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이 남았다. 몸과 마음의 부조화로 이어지는 노화의 길목에서 젖어 오는 투명한 슬픔으로 자신의 남루한 생애, 그 심연을 물끄러미 들여다보고 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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