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앙 : 단팥 인생 이야기>

영화 <앙 : 단팥 인생 이야기>는 정말 좋은 작품이지만, 국내 관객들에게 널리 소개되지 못했다. ⓒ 그린나래미디어(주)


이제는 조금 지겨울 정도로 '먹방'이 일상의 문화를 점령해 버렸다. 텔레비전부터 라디오 프로그램, 포털 사이트의 곳곳의 귀퉁이까지 '맛있는 것'을 먹는 행위가 세상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무언가를 먹어 열량을 발산하고 그 원천으로 노동력을 생산하는 일이 중요한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일이지만 그것이 모두의 일상과 가치 시스템을 전복하는것을 바라보는 일은 좀 씁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방' 이 상대적으로 득세를 하지 못한 분야가 있다면 영화일 것이다. 음식을 주제로 한 영화들이 있긴 하지만, 음식 방송의 대세에 비하면 매우 미미하다. 예능처럼 음식 장르가 영화라는 매체에서 빛을 내기 힘든 이유는 대부분의 '먹방'이 먹는 행위 자체에 방점을 찍는, 포르노그래피적인 접근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자극적이고 많은 양의 음식을 출연자들이 집어 들고 삼키고 씹는 일련의 과정을 여과 없이 보고 느끼고 싶어한다.

<앙>, 음식이 좋은 서사를 만들다

반대로 이러한 접근은 일반적인 내러티브 영화에서는 불가능하다. 먹는 행위 보다는 '음식'과 '인물'의 관계가 중요한 맥락을 차지 한다. 즉, 인물의 특정 순간이 특정 음식과 맞물려 영화적 서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작품 편수가 많지는 않아도 음식이 좋은 서사를 만들어내는 영화들이 존재 해왔다.

그러한 영화 중, '등장 음식'의 영화적 포스가 예사롭지 않은 것이 있어 소개해볼까 한다. 바로, 단팥에 관한 가와세 나오미 감독의 9번째 장편영화, <앙 (あん) :단팥인생이야기>이다. 미리 경고를 하자면, 영화는 그것이 다루는 단팥처럼 달달하고 훈훈한 스토리도, '스위트'한 캐릭터도 등장하지 않는다. '앙'은 도라야끼를 만들어 파는 작은 가게에서 진정한 단팥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조명하고자 하는 상처 가득한 인간들의 고립과 외로움의 관한 이야기다.

작은 도라야끼 가게의 점장인 '센'은 아무런 비전도, 야망도 없이 공장에서 제조된 단팥을 공급받아 오고 가는 여고생들에게 도라야끼를 파는 것으로 생을 연명하는 중년의 남자이다. 그는 그가 가진 전과와 빚때문에 취직도 할 수 없어 지인의 가게에 점장으로 얹혀있는 신세다. 그런 그의 가게에 어느 날 76세 할머니(도쿠에)가 찾아와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하지만 센은 그녀가 너무 늙었다는 이유로 거절해 버린다. 그녀는 다음날 자신이 만들었다는 단팥을 맛보라며 놓고 떠난다. 그녀의 단팥의 맛에 놀란 센은 그녀를 고용하지만 곧 그녀가 나병 환자였다는 소문이 동네에 돌게 되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그들의 도라야끼를 사지 않고 가게는 결국 문닫게 된다.

 영화 <앙 : 단팥 인생 이야기>

단팥빵 같은 인생, 그 단팥빵과 함께한 인생. 결국 이 영화는 시간에 관한 이야기이다. ⓒ 그린나래미디어(주)


영화의 제목으로 가늠할 수 있듯, 영화의 상당 부분이 도쿠에 할머니가 단팥을 만드는 장면으로 할애되는데, 그녀는 새벽부터 팥을 끓이고 졸이는 과정 내내 팥과 대화를 하며 '팥들'과 눈을 맞춘다. 그녀는 이러한 과정이 거친 바람과 비를 이겨냈을 팥에 대한 예의라고 믿는다. 이 모든 과정을 귀찮아했던 점장도 점점 그녀의 방식에 익숙해지게 되고 그녀의 인생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이게 된다.

<앙>은 나병을 앓았던 도쿠에 할머니가 그녀의 십 대부터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살아내야만' 했던 시간에 관한 이야기다. 그녀는 세상과 단절된 채 수용소 환자들을 위한 간식들을 만들어야 했고, 세상과 시간의 흐름을 그녀는 지붕 아래에서, 부엌 안에서 자연의 매개체인 팥으로만 가늠해야 했다.

나병 환자들이 법적으로도 자유를 얻게 되면서 그녀는 50여 년 만에 세상으로 나올 수 있게 되었고, 팥뿐만 아니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자연의 산물에 대해 경이로워한다. 그녀가 밟고 지나가는 벚꽃잎들, 매일 뜨고 지는 해와 달, 바람 한 자락을 그녀는 놓치고 싶지 않아 말을 걸고, 손끝을 얹어 보고, 이제는 너무 늙어버린 그녀의 시선을 얹고 싶어 한다.

어찌 보면 그녀의 단팥이 들어간 빵이 범상치 않은 맛을 가지고 있던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일 것이다. 삼라만상이 다 들어가 있는 단팥은 과연 어떤 맛을 내겠는가.

영혼을 만져주는 그녀의 단팥빵

 영화 <앙 : 단팥 인생 이야기>

영화 <앙 : 단팥 인생 이야기>는 클로즈업 그리고 롱테이크를 잘 활용한 작품이다. ⓒ 그린나래미디어(주)


가와세 나오미의 작품들은 '부재' 와 '격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그녀의 전기적 다큐멘터리, <달팽이: 나의 할머니(1997)>에서 가와세 감독은 부모에게 버려진 자신을 입양해 키워준 할머니와의 일상을 통해 감독 본인이 부모의 부재와 그것을 극복하는 혹은 해야만 과정에서 필요했었을 더 큰 존재와의 '조우'에 대해서 말한다.

<달팽이>에서의 할머니라는 존재, <앙>에서의 자연은 가와세 나오미가 부재를 통해 발견해낸 큰 존재들이다. 그녀는 이러한 '큰 존재'들을 그들을 품어내듯 화면 가득히, 긴 숨으로 익스트림 클로즈업과 롱 테이크를 이용해 담아낸다. 가령, 도쿠에 할머니가 벚꽃잎을 따라 걷는 신, 센이 도쿠에 할머니를 만나러 시설로 가는 중에 거치는 숲길, 할머니가 앙을 만드는 과정 등이 팥을 끓이듯, 뭉근한 롱테이크로 보인다. 영화가 사용하는 막대한 양의 롱 테이크와 익스트림 클로즈업은 도쿠에 상이 격리된 세월 동안 세상에 대해 느꼈을 '부재(不在)' 라는 '존재(存在)' 그리고 그것이 드리우는 결핍과 외로움을 입체적으로 느끼게 해준다.

영어식 표현 중에 소울 푸드 (soul food)라는 말이 있다. 흔히들 남부 음식을 떠올리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그 음식을 먹으면 영혼이 만져지는 듯한 느낌이 들게 한다는 뜻이다. 이 영화에서의 단팥빵이 그런 음식이 아닌가 싶다. 시간의 부재를, 사랑하는 존재들과의 격리를 채워 줄 것만 같은 그런 음식 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문화 블로그 잡지 <이리>(http://postyri.blogspot.kr/)에 실린 글을 수정·보완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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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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