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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12월 31일 오후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언덕에서 본 세월호 인양 작업 현장 풍경.
 지난 2016년 12월 31일 오후 전남 진도군 동거차도 언덕에서 본 세월호 인양 작업 현장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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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없는 두 번의 추석과 세 번의 설을 보냈다.

남의 얘기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표현을 빌리면, '이젠 잊을 법도 잊힐 법도 하지만 구멍이 난 한쪽 가슴은 도저히 메워지지 않는'다.

복을 빌고 덕담을 해야 할 차례상 앞에서 남은 세 가족의 소리 없는 피맺힌 절규가 가슴과 가슴을 통해 전해진다. 못 들은체할 수도 없고, 서로 위로의 말을 할 수도 없다. 그렇다고 아름답던 옛날을 추억하고 회상할 수도  없다. 다만 무서운 정적과 침묵만이 무거운 공간을 채우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내 인생에서 도려내고 싶은 이 아픈 기억과 경험은 2014년 4월 16일 오전 10시 8분부터 시작된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 한 회사의 일꾼으로 열심히 살고 있었다.

그런 나에게 수현이 엄마로부터 내 인생을 바꾸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자기야, 큰일 났어. 수현이가 타고 가던 배가 진도에서 침몰하고 있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일이... 하지만 그것은 냉혹한 현실이었고, 앞으로 펼쳐질 고단한 미래의 시작에 불과했다.

정신없이 집과 단원고 그리고 진도체육관을 향해 달렸다. 불행하게도 생존자 명단에 나의 아들 수현이의 이름은 없었다. 190명이 탑승한 행정선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진도체육관에서 어느 여성으로부터 전해 듣고, 제발 최악의 상황이 아니길 빌면서 무작정 팽목항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곳엔 몇 대의 헬기와 먼저 도착한 젊은 유가족 몇 명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행정선이 도착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곳 안내소에서는 이후에 팽목항으로 들어올 더 이상의 행정선이 없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맘에 가슴 졸이며 기다리던 중, 팽목항과 창유를 오가는 차도선 한 척이 도착했다. 몇 명의 할머니들이 머리에 짐을 이고 하선하는 것이 전부였다. 다리가 풀렸다. 죽고 싶었다. 옆에 있던 유가족 한 명이 이렇게 얘기했다.

"아저씨, 이제 더 이상 들어오는 배는 없데요. 그리고 지금부터는 구조가 아니라 수색이래요."

솔직히 이때까지만 해도 국가를 믿었다. 전원 구조의 오보가 있을 수도 있고, 긴급 상황에서 '구조자 숫자에 착오가 있을 수도 있다'고 자위했다. '설마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다 사망했을까?', '수영을 잘하는 수현이한테 별일이야 있겠어. 선장이 뛰어내리라고 퇴선 방송을 했다고 하는데...' 하는 애써 희망찬 의심을 해 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가슴과 머릿속에 남아있는 작은 의심의 덩어리가 아니라 냉혹한 현실이었다.

정부가 해야 했을 두 마디, '퇴선 명령'과 '사과'

진도체육관의 밤이 훤하게 밝아지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이 세상에 지옥이 있다면 바로 이곳이 지옥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고성과 욕설이 난무하고, 머리 위로 의자가 날아다니고... 실종자 가족 또는 목사임을 사칭하면서 감시하는 사람도 있었고, 분위기가 조용해지면 2층 관람석에서 싸움을 부추기는 사람도 있었다.

계속해서 끊임없이 거짓말만 하는 정부 인사들과 해경들이 있었다. 나에게 세월호 참사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이 참사는 진상규명을 하지 않으면 결코 끝날 수 없는 의문의 사건이란 것을 그 날 밤부터 인식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나가라", "나와라" 딱 두 마디면 끝나는 단순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승객의 안전을 책임졌던 선장과 선원들은 당황하고 경황이 없어서 이 한마디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심지어 이미 오전 9시 8분경에 진도VTS와 "승선원 지금 거의 움직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될까요? 바다에... 빠져야 어째야 될지 모르겠네'"라고 교신까지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퇴선하는 오전 9시 45분경까지 약 37분 동안 "나와라" 한마디를 하지 못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도 용납도 되지 않는 대목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또한 구조를 위해 투입되었던 해경은 어떠했던가? 침몰 상황을 접수하고 구조를 지시하는 과정, 그리고 출동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여러 문제점은 제쳐놓는다 하더라도. 구조와 관련하여 그 어떤 훈련과 교육도 받지 못했던 화물차 기사들의 구조행위와 비교해서도 턱없이 부족했던 그들의 구조 행위는, 그날의 특수한 상황을 아무리 많이 감안한다 해도 피해자의 입장에서 용서하고 이해할 수가 없다.

"나와"라고 소리쳤어야 했다. 창문 밖에서 소리쳤어야 했고, 조타실에 들어갔을 때 선내 방송을 통해 절규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수도 없이 많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어떤 특별한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렇게 하지 않았다.

특히 오늘과 같은 날이면 피지도 못한 꽃으로 사라진 아들의 입장에서 그리고 유가족의 입장에서 들었어야 했던 말이 있었고, 반드시 들어야 하는 말들이 있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4년 5월 1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 발표 도중 의로운 희생자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눈물 흘리는 박근혜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4년 5월 19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세월호 참사 관련 대국민담화 발표 도중 의로운 희생자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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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국가와 정부가 진정 국민을 위한 국가였고 정부였다면 최소 두 마디의 말은 했어야 했다. 그 하나는 참사가 한창 진행되던 시기에 승객들을 구조하기 위하여 내렸어야 할 '퇴선명령'이었으며, 나머지 하나는 소중한 국민의 생명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진정한 사과'의 말이다. 하지만 전자는 민간인이었던 둘라에이스호 문예식 선장에 의해서 세월호를 향하여 긴박한 요청만 있었을 뿐, 국민의 안전을 책임졌던 대통령도 구조를 위해 출동했던 해경도 하지 않았다.

◇09시24분
진도연안VTS: 방송이 안 되더라도 최대한 나가셔서 승객들에게 구명동의 및 두껍게 옷을 입을 수 있도록 조치 바랍니다.
세월호: 본선이 승객들을 탈출시키면 구조가 바로 되겠습니까?
진도연안VTS: 라이프링이라도 착용시키고 띄우십시오. 빨리!(이 교신록은 참사초기 진도 VTS에서 제출한 것으로 추정되며, 아마 책임을 모면할 목적으로 자신들이 교신한 것으로 제출한 것 같으나, 후일 재판 진행과정에서 둘라에이스호 문예식 선장이 교신한 것으로 밝혀졌다)

후자의 경우에도 대통령이 자신이 처한 정치적 위기를 모면할 방책으로 2014년 5월 19일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마치 사과를 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후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유가족 탄압과 진상규명 방해 행위가 벌어진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없었던 것으로 나는 보고 있다. 또한 나는 이 정권에서 사과의 말을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다. 

침몰하는 정부 보니 세월호 연상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4년 4월 17일 오후 전남 진도군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을 찾아 피해 가족들의 요구사항을 듣고 있다.
▲ 박근혜 "책임자들, 약속 안지키면 자리 내놔야"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2014년 4월 17일 오후 전남 진도군 세월호 침몰 사고 피해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을 찾아 피해 가족들의 요구사항을 듣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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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모진 3년의 세월이었다. 우리가 기댈 수 있었던 곳은 '의식 있는 많은 국민들'과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 뿐이었다. 국민들과 유가족들의 간절한 염원에 신이 감동했는지 다행히 박근혜에게도 시련을 안겨준 것 같다. '세월호 참사'라면 경기를 일으키는 박근혜에게 참사 당일 7시간을 온전히 해명하지 않으면 대통령직 자체를 잃을지도 모르는 위기에 빠지도록 만들어 버렸다.

어쩌면 대통령은 현재의 위기를 스스로 자초한 것이다. 2014년 5월 16일 유가족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얘기했던 자신의 약속을 멀리하지 않았다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에 인색하지 않았다면. 만약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고 시스템을 개선하여 안전한 나라를 만들었다면 대통령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것이요, 그 이름은 역사에 남았을 것이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여러 채널을 통해 잘못된 논리로 자신의 책임을 부인하고, 자신의 측근과 여러 잘못된 단체들을 이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박근혜의 '꼼수'를 보고 있노라면 '이러려고 이 나라에 세금 내며 살고 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는 대통령식 표현 방식을 차용하고 싶은 충동을 매우 많이 느끼곤 한다.

계속 침몰해 가는 이 나라 이 정부를 보고 있자니 새삼 아들이 고통을 느끼고 있었을 2014년 4월 16일이 떠오른다. 침몰하는 선박은 이미 복원이 불가능한 상태인데 대통령과 친박 인사들, 그들의 지원을 받는 단체들은 계속해서 승객들을 향해 "가만히 있으라"라고 외치고 있는 것만 같다. 어쩌면 그때와 마찬가지로 선장과 선원들은 모두 생존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것은 오직 나만의 기우일까. 상황 판단을 정확히 해서 빨리 퇴선해야만 한다. 머뭇거리다간 우리 모두 무사할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박종대님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 고 박수현군의 아버지입니다.



태그:#박근혜, #세월호, #퇴선, #퇴선명령, #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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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평범한 회사원 입니다. 생각이 뚜렷하고요. 무척 객관적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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