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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사라'로 잘 알려진 소설가이자 시인인 마광수 전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가 5일 숨졌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1월 자신의 40년 시 세계를 정리한 시선집 <마광수 시선: 솔깃하고 솔직한, 아찔하고 짜릿한>을 펴낸 마 전 교수와 전화 인터뷰를 했습니다. 이 시대 한 문인을 떠나보내며 당시 인터뷰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자말]
올해 예순여섯인 마광수 작가는 40년 시 세계를 '통념 부식(通念 腐蝕)'으로 함축했다. 누구나 갈망하지만 터부시하는 성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마광수 시다. 시작(詩作) 40년을 맞아 시선집 <마광수 시선:솔깃하고 솔직한, 아찔하고 찌릿한>(페이퍼로드)을 올해 1월 출간했다.

"제가 원래 시로 지망을 했고 시로 데뷔를 했기 때문에 시에 제일 애착이 가죠."

서시인 <나는 천당 가기 싫어>부터 1977년 등단작 <배꼽에>, 소설<즐거운 사라>(1991년) 필화 사건과 성에 대한 위선을 풍자한 시 <사라의 법정>, <내가 쓸 자서전에는>, '점잖은 척 뜸들이며 썰풀기는 더욱 싫다/ 러브 이즈 터처/ 러브 이즈 필링'을 노래한 시 <가자, 장미여관으로> 등 120편을 담았다. 어떤 메시지를 염두에 두고 시를 고른 것은 아니다.
"듬성듬성 마음에 드는 것으로 뽑았어요. 새로 쓴 게 열 몇 개가 돼요."

1월 13일 그와 전화 인터뷰를 했다.

시선집『마광수 시선:솔깃하고 솔직한, 아찔하고 찌릿한』
 시선집『마광수 시선:솔깃하고 솔직한, 아찔하고 찌릿한』
ⓒ 김광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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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쓸 자서전에는
나의 글쓰기는 이랬어야 했다고
후회하는 장면이 담겨있을 것이다

우선 손톱이 긴 여자가 좋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고
그리고 야한 여자들은
못 배우 여자들이거나 방탕 끝의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여자여야 했다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라는 즐겁지 않았어야 했다고
권선징악으로 끝을 맺는
소설 속 여자이어야 했다고

 - 시 <내가 쓸 자서전에는> 부분

지금도 변하지 않았어요

그는 윤회하고 싶지 않다고 시에 적었다. 갖은 사건과 가십으로 지친 듯했다.

"인생에 풍파가 많았어요. 학교에서는 평생 왕따를 당하고요. 에세이 <나는 야한여자가 좋다>부터 구설이 많았죠. 문단에서도 그렇고요. 지금 굉장히 우울해요."

운동과 식사도 쉽지 않다.

"소화가 잘되지 않아요. 몸이 약해요."

하지만 펜과 붓은 놓지 않고 있다. 작년에는 소설 <사랑이라는 환상>과 에세이 <섭세론>을 냈고 2015년에는 팝아티스트 변우식과 <색(色)을 밝히다> 그림 전시도 했다.

그는 1992년 대학교 강의 중 소설 <즐거운 사라>가 외설이라는 이유로 구속되었고 교수직을 박탈당했다. 1998년 사면·복권되어 연세대학교로 돌아와 2016년 8월 정년퇴임을 했지만 그 시절을 돌아보면 착잡하다. 필화 사건이 20여 년 지났어도 2017년 한국 사회는 여전히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고 있다고 본다.

"표현의 자유를 처참하게 유린하고 그것 때문에 학교에서 잘리고 고생 많이 했어요. 일본에서는 번역된 <즐거운 사라>가 잘나갔는데, 표현의 자유가 없다는 것과 구속까지 했다는 것은 우리나라가 문화적으로 민주화가 되지 않았다는 뜻이죠. 지금도 변하지 않았어요."

교수가 아닌 무명작가였어도 구속되었을까 질문에 "글쎄요. 아닐지도 몰라요. 시범 케이스 성향이 강했으니까요. 영화 쪽에서 누구를 잡아간 적은 없어요. 문학이 유독 폐쇄적이죠. 문학은 아직도 교훈이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영화는 오락이지만요"라며 씁쓸해했다.

소설 <즐거운 사라>는 알라딘, 예스24, 교보문고, 종로서적에서 구입할 수 없다. 동네 서점에서도 찾을 수 없다. 헌책방이나 온라인 중고카페에서나 만날 수 있다. 1992년 판금 서적으로 지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판금 해제를 기원하며 소설 <2013 즐거운 사라>를 발표하기도 했다.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되찾기 위해' 소설을 썼다고 서문에 밝혔다.

눈치 보지 말자(마광수)
 눈치 보지 말자(마광수)
ⓒ 마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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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은 뒤에는
내가「윤동주 연구」로 박사가 되었지만
윤동주처럼 훌륭한 시인으로 기억되긴 어렵겠고

아예 잊혀져 버리고 말든지
아니면 조롱섞인 비아냥 받으며
변태, 색마, 미친 말 등으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칭송을 받든 욕을 얻어먹든
죽어 없어진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으랴
그저 나는 윤회하지 않고 꺼저버리기를 바랄뿐

- 시 <내가 죽은 뒤에는> 전문

다 잊힐 겁니다

올해 탄생 100주년을 맞은 윤동주 시인을 연구하기도 했다. 1983년 <윤동주 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의 시가 한 번만 읽어도 와 닿는 것은 윤동주 시의 영향이다. 

"그분 참, 불쌍한 사람이죠. 뛰어난 시인이에요."

그는 윤동주가 부럽다고 했다.

"윤동주 개인에게는 굉장히 불행한 인생이었지만 신화로 남았으니까 어떻게 보면 상당히 부러운 시인이라고 볼 수도 있죠. 어폐가 있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지만요."

윤동주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를 요절, 옥살이, 외모, 좋은 시를 꼽았다.

"시가 쉽고 솔직해요. 어렵게 비비 꼬지 않아요. 제 시도 윤동주처럼 비비 꼬지 않으려고 애를 쓰면서 썼죠."

마광수 탄생 100주년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느냐는 물음에 "어휴, 다 잊힐 겁니다" 소탈하게 웃었다.

윤동주 시인의 시 <십자가>(마광수)
 윤동주 시인의 시 <십자가>(마광수)
ⓒ 마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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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아주아주 흘러…… 제가 당신의 사랑을 감동 못하리만큼 몸이 깎이어 없어져 버린다면 어떻게 할까요? 당신은 제가 당신의 사랑을 마음껏 받아들여 주지 않는다고 화를 내실 거예요. 그리고 저보다 더 크고 더 억센 바위를 찾아 새로운 사랑을 찾아 나서실 거예요. 그러나 저는 이미 몸이 부서져 흩어져 버려 당신을 붙잡을 수가 없어요. 저는 단지 힘있게 출렁거렸던 당신의 사랑을 되새기며 바다 위를 떠다니겠지요. 그러다가…… 전 아예 죽어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릴 뿐이구요……  잊혀져 버릴 뿐이구요.

- 시 <사랑이여> 부분

마광수 작품
시집
『광마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사랑의 슬픔』,『모든 것을 슬프게 간다』,『 일평생 연애주의』 등

소설
『권태』,『 즐거운 사라』,『 불안』,『 첫사랑』,『 별것도 아닌 인생이』,『 귀족』,『 인생은 즐거워』,『 나는 너야』 등

술과 담배로 우울함을 달래고 있다는 그는 자신을 찾는 사람은 없어도 많은 독자와 작품으로 만나길 기대하면서 지금 시대에 필요한 작가로 제2의 마광수를 꺼냈다.

"젊은 성문학 작가가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70년 가까운 인생을 살면서 그가 느낀 사랑에 대한 소회를 한 줄로 압축했다.

"사랑은 성으로 시작해서, 정으로 끝나는 것 같아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 2월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합니다.



마광수 시선

마광수 지음, 페이퍼로드(2017)


태그:#마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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