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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계적 풍화와 화학적 풍화가 계속해서 일어나는 가운데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뼝대들은 그 풍화작용에서 살아남은 결과물인 것이다.
2016년 12월 31일부터 2017년 1월 4일까지 다녀온 정선 여행의 넷째날부터 마지막날인 다섯째날까지의 이야기입니다. - 기자 말

절벽과 계곡 사이로 구불구불 나있는 소금강로.(Portra400)
▲ 지방도421번 '소금강로' 절벽과 계곡 사이로 구불구불 나있는 소금강로.(Portra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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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정선 여행의 마지막 코스인 화암면으로 향했다. 원래 계획은 전날 이곳에 미리 도착해 텐트를 치고 하룻밤을 먼저 잔 뒤, 소금강로를 걸어서 화암8경 중 몇 곳을 거친 후 다시 야영을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애초에 야영지로 삼고자 했던 '화암약수야영장'이 동절기에 폐쇄한다는 소식을 불과 이틀 전에 확인하게 되었다. 다행히 조금 떨어진 곳에 노지 야영을 허락하는 곳이 있었으나 개수대가 없어서 숙식과 세면을 이틀 연속 해결할 수는 없을 것 같아, 모텔에서 하루를 더 연박하고 아침에 출발하게 되었다.

배낭이 크니 버스를 오르내릴 때가 참 고역이었다. 뒷문으로 타면 볼썽사납게 몸을 배배 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얄궂게도 그 시점이 여행 마지막날이어서 적용은 단 한 번밖에 해보지 못했다. 다행히 매번 탑승객이 얼마 되지 않아 민폐를 끼치지는 않았다.

초등학생 몸집만한 배낭이 버스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서 아침햇살을 한 몸에 받고있다.(Premium400)
▲ 한 자리 차지한 배낭 초등학생 몸집만한 배낭이 버스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서 아침햇살을 한 몸에 받고있다.(Premium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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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걷기로 한 코스에 들어서지도 않았는데 화암면으로 가는 버스 길 자체가 여러 폭의 그림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조망을 좋게 하려고 몇 십센티 더 높은 맨 뒷자리로 자리를 옮겼다. 자가용으로 움직이면 절대 볼 수 없는 각도의 풍경들이 눈에 들어왔다.

농가, 축사, 포장도로 등 사람이 사는 곳을 흐르는 계곡임에도 불구하고 깊은 산중에서나 볼 수 있는 물빛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사람과 자연이 공존할 수 있는 인구의 최대치를 아직 벗어나지 않은 곳이기 때문일 것이다.

야영장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알 수 있었듯이 편의시설이라고는 재래식 화장실이 딸랑 하나. 그마저도 물이 나오지 않는 세면대는 무용지물이었다. 어차피 수도를 개통시킨다 해도 강원도의 날씨 때문에 얼어 터질 것이 뻔하기에 수긍이 갔다.

하천 옆에 있는 작은 공원이었는데 관광객이 거의 없는 계절임에도 불구하고 을씨년스럽지 않고 깔끔하게 정리가 잘 되어있는 모습이었다. 정식 명칭은 '용마소 둔치 휴양지'.

걷기 전에 텐트를 미리치고 짐을 안에 넣어두었다. 카메라와 돈은 수중에 챙겼지만 어차피 지나는 객들이 없어 도둑맞을 염려는 없었다.(Premium400)
▲ 미리 쳐놓은 텐트 걷기 전에 텐트를 미리치고 짐을 안에 넣어두었다. 카메라와 돈은 수중에 챙겼지만 어차피 지나는 객들이 없어 도둑맞을 염려는 없었다.(Premium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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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하천법이 개정되어 이제 지정된 곳이 아니면 하천구역에서는 야영 및 취사가 불법이다. 사실 진정한 캠핑의 묘미는 곱게 단장된 캠핑장보다 걸으며 발견한 적당한 자리를 스스로 구축하는 백패킹인데, 아쉬운 마음은 있지만 그래도 환경을 위한 결정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이곳은 허가가 된 곳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계절에는 적당한 야생을 맛볼 수 있어서 참 좋은 곳이었다.

텐트를 다 치고 주위를 둘러보니 프렌차이즈 편의점이 있다. 뭔가 마음이 놓이면서도 못내 마음이 살짝 싱거워졌다. 6시에 문을 닫는 근처 마트에서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사놓고 하룻밤을 지내면서 뭔가 힘든 것을 일부러라도 맛보고 싶었나보다. 혹시나 싶어 몇 시에 문을 닫냐고 여쭈었더니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24시간 영업이라고 대답하시는 아저씨의 말에 다시 한 번 아쉬웠다. 생수 한 병과 과자 한 봉을 사들고 도보 여행을 시작한다.

화암8경을 모두 보지는 않았지만

화암면 화암리의 빼어난 경치 8선을 뽑아 화암8경이라 하고 아래와 같다.

제1경 화암약수 : 철분이 많아 맛이 특이하고 위장병, 피부병에 특효가 있다고 한다.
제2경 거북바위 : 거북이를 닮은 바위. 멀리서 보아야 그 형상이 보인다.
제3경 용마소 : 반석 아래 고여있는 맑은 물이 일품. 아기장수 설화가 전해진다.
제4경 화암동굴 : 채굴 중 발견한 종유석 동굴.
제5경 화표주 : 지방도 두 개가 갈라지는 곳에 위치한, 커다란 절벽의 기둥
제6경 소금강 : 작은 금강산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계곡을 따라 기암절벽들이 줄지어있다.
제7경 몰운대 : 층암절벽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상부는 평평한 반석지대가 있다.
제8경 광대곡 : 하늘, 구름, 땅이 맞붙는 신비의 계곡.

나는 이 날 8경 중 3경에서 출발하여 5경, 6경을 지나 7경과 8경이 위치한 동네에서 점심을 먹고 8경을 다녀온 후 7경을 마지막으로 도보 여행을 마쳤다. 포장도로를 7km 남짓, 계곡 구간을 2.5km 남짓 걸었다. 무릎이 성치 않은 나로써는 매우 고무적인 성과였다. 화암약수관광지는 야영 후 이틑날 아침에 산책삼아 다녀왔다.

제3경인 용마소는 나의 숙영지였다. 텐트를 치기 전에 먼저 사진을 찍었는데 어떤 이유에선지 필름의 결과물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얼음의 반사광 때문에 노출이 지나치게 짧게 잡혀서 사진이 전체적으로 어둡게 나온것 같았다. 머릿속으로 계산해서 찍었으면 오히려 정확했을 뻔 했으나 햇빛이 워낙에 사광(해가 45도 옆쪽에 위치하는 자세)으로 강렬하게 들어와 앱으로 다운받은 노출계에 의존했더니 결과가 좋지 않았다.

오전 10시가 가까워오는 시간이었지만 아직도 햇빛이 비스듬하다. 겨울인데다가 산중이라서 더욱 그렇다.(Porta400)
▲ 햇살과 계곡 오전 10시가 가까워오는 시간이었지만 아직도 햇빛이 비스듬하다. 겨울인데다가 산중이라서 더욱 그렇다.(Porta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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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차들이 이렇게 징이 박힌 타이어를 끼웠다.(Premium400)
▲ 타이어 대부분의 차들이 이렇게 징이 박힌 타이어를 끼웠다.(Premium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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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 빈도수가 많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듯 마을 바로 옆에 제설차가 주차중이다.(Premium400)
▲ 마을 옆의 제설차 사용 빈도수가 많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는듯 마을 바로 옆에 제설차가 주차중이다.(Premium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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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추운 지방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차량이 지나갈 때 요란한 소리가 났다. 얼은 땅에서의 그립력을 키우기 위해 타이어에 징이 박혀있었기 때문이다. 위 사진은 특히나 제설차량이었는데 수시로 눈이 내리고, 내렸다 하면 쌓이는 지방이어서인지 제설차가 동네 옆에 주차되어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용마소에서 출발하여 3분 정도만 걸으면 왼편으로 50미터가 넘어보이는 절벽이 커다란 면으로 다가온다. 이를 그림바위라고 하는데 절벽의 전체에 나있는 바위 절단면의 선들, 절벽 단면의 다양한 색깔들이 마치 그림을 그려놓은듯 하여 붙은 별명이다. 이 마을의 이름도 그림바위마을이라고 하였고 집마다 담벼락에 이를 묘사, 혹은 상징하는 모양의 장식을 해놓았다. 아래 보이는 담벼락은 화암면 읍내의 전경을 그림으로 표현한 타일 벽화이다.

집집마다 이렇게 장식이 되어있는데 특별히 이 집은 '어천'이 돌아나가는 화암면 읍내의 모습을 그려놓았다.(E100G)
▲ 그림마을 어느 담벼락 집집마다 이렇게 장식이 되어있는데 특별히 이 집은 '어천'이 돌아나가는 화암면 읍내의 모습을 그려놓았다.(E10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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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바위를 왼편으로 두고 오른쪽을 바라보면 100터 남짓 떨어져있는 곳에 나무들 사이로 커다란 절벽기둥이 우뚝 솟아있다. 바로 제5경인 '화표주'이다. 이곳은 역광이 너무 심해서 사진으로 담을 수 없었다.

요즘 디지털 카메라는 자동으로 사진을 세 장 찍어서 잘 나온 부분들만 합성하여 역광의 상황이나 노출차가 극명한 상황에서도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다. HDR이라는 기능이다. 카메라에 그 기능이 없다면 사용자가 사진 세 장을 찍되 적정노출 사진 한 장, 노출부족(-1stop) 사진 한 장, 노출과다(+1stop) 사진 한 장을 찍어서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HDR 기능을 주어 후보정을 하면 된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구식 중의 구식인 필름으로 사진을 찍기 때문에 이와 같은 기능을 사용할 수 없다. 물리적 특성에 충실하여 노출차가 심한 상황에서는 그 차이가 고스란히 사진으로 담길 수밖에 없다. HDR보정에 대해 신식 기술의 장난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카메라 렌즈가 흉내낼 수 없는, 사람의 눈으로 보는 정경과 더 비슷하게 다가가는 것이 HDR 기법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은 구름과 달을 한꺼번에 볼 수 있지만 카메라 렌즈는 그럴 수 없는데, HDR기법을 통해서는 그것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선 읍내에서 화암면소재지를 거쳐 몰운대 방향으로 흘러가는 어천의 모습. 순광을 받아 파란 하늘과 함께 절벽이 밝게 찍혔다.(Portra160)
▲ 어천과 뼝대 정선 읍내에서 화암면소재지를 거쳐 몰운대 방향으로 흘러가는 어천의 모습. 순광을 받아 파란 하늘과 함께 절벽이 밝게 찍혔다.(Portra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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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으로 수량이 적은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절벽 밑으로 진녹색의 물줄기가 풍성하게 흐른다.(Portra400)
▲ 소금강의 풍경 상대적으로 수량이 적은 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절벽 밑으로 진녹색의 물줄기가 풍성하게 흐른다.(Portra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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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표주가 있는 갈림길에서 오른편(남쪽) 길을 택하면 강원도 말로 뼝대(바위로 이루어진 높고 큰 낭떠러지)와 계곡이 왕복 2차선의 도로를 사이로 하여 구불구불 뻗어있는 모습이 눈에 확 들어온다. 탄성이 터져나오는 절경이었다. 길의 이름이 '소금강로'인데 소금강이라는 명칭은 작은 금강산이라는 비유적인 표현으로 이곳을 비롯해 우리나라에 몇 군데 있다.

이곳의 소금강 구역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인지는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지는 않다. 다만 소금강이라는 명칭이 큰 바위에 새겨져있는 구간부터는 경치의 수려함이나 규모가 눈에 띄게 달라진다.

비교할 만한 대상이 없어서 광각으로 담은 풍경의 규모가 사진만으로는 짐작하기가 힘들것 같다. 절벽 사이사이에 있는 나무들의 크기로 미루어보면 어느 정도인지 대충은 알 수 있을 것이다.

겨울인지라 시간이 정오에 가까워져도 햇빛의 방향이 사선으로 들어오는데다가 양쪽으로 높은 절벽들이 좁은 간격으로 솟아있는 길을 터벅터벅 걷고 있노라니, 부서지는 햇빛과 거인같은 뼝대의 그림자들이 마치 나를 전혀 겪어보지 않은 미지의 공간으로 이끄는 것 같았다.

추운 겨울에도 바위 위에 이끼가 녹색의 생명력을 활기차게 내뿜고 있다. 동강을 비롯하여 정선의 물줄기들은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다고 한다. 풍부한 수량과 빠른 유속을 계속 유지하기 때문일 것이다.(Portra400)
▲ 맑디 맑은 어천 추운 겨울에도 바위 위에 이끼가 녹색의 생명력을 활기차게 내뿜고 있다. 동강을 비롯하여 정선의 물줄기들은 한겨울에도 얼지 않는다고 한다. 풍부한 수량과 빠른 유속을 계속 유지하기 때문일 것이다.(Portra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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뼝대 사이사이로 부서져 들어오는 햇살이 눈부시다. 이곳은 관광객들이 잠시 차를 멈추고 사진을 찍어갈 수 있을만한 공간이 있는 곳이다. 팻말을 통해 이러한 지형이 만들어진 원리에 대해 설명되어있기도 하다.(Portra400)
▲ 햇빛과 뼝대 뼝대 사이사이로 부서져 들어오는 햇살이 눈부시다. 이곳은 관광객들이 잠시 차를 멈추고 사진을 찍어갈 수 있을만한 공간이 있는 곳이다. 팻말을 통해 이러한 지형이 만들어진 원리에 대해 설명되어있기도 하다.(Portra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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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 보이는 곳은 소금강 경치의 절정이라고도 할 수 있으며 지질학적인 의미 또한 있는 곳이다. 왼편의 너덜바위들은 풍화침식을 받은 부분이고 오른편의 뼝대는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단단히 견디고 있는 부분이다. 우리는 두 부분을 동시에 바라보고 있지만 이러한 모양이 만들어지기까지 왼편과 오른편의 바위들이 겪었던 과정은 무구한 시간을 거쳤을 것이다. 이곳에서 뒤를 돌아보면 너덜바위가 더욱 더 넓게 모여있는 지형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아래의 사진이다.

소금강에서 만난 너덜겅의 모습. 왼편으로 들어오는 사광이 강하여 바위의 모습이 그림자와 함께 뚜렷하게 표현되었다.(Portra400)
▲ 소금강 너덜바위들 소금강에서 만난 너덜겅의 모습. 왼편으로 들어오는 사광이 강하여 바위의 모습이 그림자와 함께 뚜렷하게 표현되었다.(Portra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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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풍경이 꼭 이곳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동네 뒷산에도 잘 찾아보면 너덜겅이 넓게 분포하는 곳이 있다. 암석들이 이렇게 큼직하게 부서져나와 쌓인 이유는 바로 기계적 풍화 때문이다.

특히 추우면서도 일교차가 심한 곳에서 많이 나타나는데, 절벽의 층리 사이로 스며든 물이 얼면서 부피가 늘어나 그 힘으로 암석이 떨어져나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박리된 큰 바위들이 흙으로 부서지는 과정은 또 다른데, 이는 화학적 풍화작용의 결과인 것이 대부분이다.

화암리의 절경이 만들어진 원인 또한 이 풍화작용과 관련이 깊다. 기계적 풍화와 화학적 풍화가 계속해서 일어나는 가운데 위풍당당하게 서있는 뼝대들은 그 풍화작용에서 살아남은 결과물인 것이다. 그렇다면 그렇게 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냐가 중요한데, 그것은 바로 뼝대를 구성하고 있는 성분과 관련이 있다.

이곳의 암석은 퇴적암인 사암이 열과 압력을 통해 변성되어 만들어진 규암이 많다. 규암은 매우 단단한 석영이라는 광물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데 화학적 풍화에 매우 강하다. 흙으로 부서지지 않고 커다란 절벽으로, 혹은 그것에서부터 떨어져나온 너덜 등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인간이 관여하지 않는다면 이곳은 몇 백만년 후 어떤 모습이 될 것인지 잠시 상상해보았다.

사진을 찍어가며 쉬엄쉬엄 걷다보니 어느덧 한치마을이라는 정거장을 만났다. 길의 오른편(남쪽)에 아담한 마을이 조성되어 있었고 작은 축사나 밭을 정비하시는 분들의 모습이 간간이 보였다. 광대곡 입구 근처에 있는, 이 근처에서 찾아보기 힘든 식당에 전화를 걸어 식사를 주문하고 그곳을 향해 또 걷기 시작했다. 20분 후면 오늘의 첫 끼니를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에 가득 찬 상태로.

광대곡 입구에 들어서기 한 정거장 전에 있는 마을이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민가가 드문 곳이어서 사람의 흔적이 정겨웠다.(Portra400)
▲ 한치마을 광대곡 입구에 들어서기 한 정거장 전에 있는 마을이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민가가 드문 곳이어서 사람의 흔적이 정겨웠다.(Portra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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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한 햇살 아래 놓인 마을의 모습. 마을을 휘돌아 나가는 어천의 물이 참으로 맑다.(Premium400)
▲ 한치마을 따스한 햇살 아래 놓인 마을의 모습. 마을을 휘돌아 나가는 어천의 물이 참으로 맑다.(Premium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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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지인이 신기한 모양인지 한치마을의 개들이 짖지도 않고 다닥다닥 붙어서 나를 구경하고 있다.(Premium400)
▲ 개들의 시선 외지인이 신기한 모양인지 한치마을의 개들이 짖지도 않고 다닥다닥 붙어서 나를 구경하고 있다.(Premium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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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대곡과 몰운대

광대곡 입구에 있는 식당은 맛도 맛이지만 그 분위기와 주인 내외분의 친절한 모습까지 정말 인상적인 곳이었다. 집 대부분을 통나무로 직접 지으셨다고 한다. 인테리어에서 내외분의 마음과 솜씨가 느껴졌다.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광대곡 탐방에 대한 간단한 안내를 받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해가 지기 전에 다시 야영지에 도착해야 했기 때문이다.

사장님이 곧 주방장. 음식솜씨를 포함하여 손재주가 참 좋으신 분이었다. 식당 내부 곳곳에 손길이 느껴졌다.(Premium400)
▲ 광대곡의 한 식당 사장님이 곧 주방장. 음식솜씨를 포함하여 손재주가 참 좋으신 분이었다. 식당 내부 곳곳에 손길이 느껴졌다.(Premium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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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분께서 겨울이라 계곡이 다 얼었기 때문에 굳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탐방로를 이용하지 말고 계곡물을 밟고 오르라고 안내하셨다. 오히려 탐방로가 얼어 있어서 위험하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식당에서 15분 가량 걸으니 광대곡의 입구가 나왔고 이내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은 계곡의 모습이 눈앞에 펼쳐졌다.

이곳 광대곡은 하늘과 구름과 땅이 맞닿은, 예로부터 신성한 장소로 여김을 받은 곳이라고 하여 속세의 때가 묻은 사람은 접근하지 못한다는 전설이 있다. 부정한 음식을 먹거나 좋지 않은 마음음으로 오르면 나뭇가지가 뱀으로 보이거나 큰 부상을 당한다는 내용 등이 바로 그것이다. 겨울 광대곡의 초입에 들어서며 나 자신을 잠시 되돌아보았다.

내 마음이 깨끗해서 그곳을 오른 것은 아니다. 부정한 방법으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삶을 살지는 않았지만 아무도 모르는 나의 속은 언제나 청결하지 못한 것들이 비온 뒤 가을 낙엽처럼 군데군데 묻어있다. 오히려 그러한 것들을 이곳을 오르며 조금이나 가볍게 하고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올랐던 것이다.

얼어붙은 광대곡을 오르며.(Pro400H)
▲ 광대곡 얼어붙은 광대곡을 오르며.(Pro400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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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채 녹지 않은 광대곡의 설경.(Pro400H)
▲ 광대곡(2) 눈이 채 녹지 않은 광대곡의 설경.(Pro400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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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유명한 관광지는 아니다. 화암8경 중 마지막 비경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지만 압도당할 만큼의 수려한 경관이 아닐뿐더러 주변 관광지와도 접근성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일 것이다.

그러나 계곡이 풍기고있는 기운과 군데군데 있는 소의 모습, 푸른 이끼가 끼어있는 기이한 모양의 암석 등으로 보았을 때, 수량이 풍부한 상태라면 꽤나 괜찮은 계곡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여름을 지나 가을이 한창일 때 가을비가 적잖이 내리고난 뒤라면 색색이 물든 나뭇잎들과 어우러진 계곡의 모습이 참 아름다울 것 같았다.

계곡물과 돌이 함께 얼어있는 모양새가 마치 돌고래같아서 한 컷 담아보았다. 바다에 사는 돌고래가 산 속 계곡엔 어인 일일까 하는 다소 유치한 생각을 해보았다.(Premium400)
▲ 언 계곡물 계곡물과 돌이 함께 얼어있는 모양새가 마치 돌고래같아서 한 컷 담아보았다. 바다에 사는 돌고래가 산 속 계곡엔 어인 일일까 하는 다소 유치한 생각을 해보았다.(Premium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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꽁꽁 얼은 계곡이지만 군데군데 푸른 이끼가 여전히 생명력을 드러내고 있다.(Pro400H)
▲ 광대곡(3) 꽁꽁 얼은 계곡이지만 군데군데 푸른 이끼가 여전히 생명력을 드러내고 있다.(Pro400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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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목적지는 '골뱅이소'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는 작은 폭포와 소였다. 아래 사진과 같이 아기자기한 모양새가 신비스럽기까지 한 곳이었다. 참 이상하게도 오히려 계곡의 아래쪽은 꽁꽁 얼어있었는데 올라올수록 얼음이 점점 얇아지더니 이곳은 찰랑거리는 소의 수면이 얼지 않은 채로 깊은 수심을 검푸른 색깔로 표현하고 있었다. 아마도 아래쪽은 골짜기가 깊어 햇빛이 닿지 않은 곳이 많아서 그럴 것이라고 추측해보았다.

광대곡을 1km 조금 넘게 올라가다보면 만나게 되는 비경. 소의 모습이 마치 골뱅이와 같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Pro400H)
▲ 골뱅이소 광대곡을 1km 조금 넘게 올라가다보면 만나게 되는 비경. 소의 모습이 마치 골뱅이와 같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Pro400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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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가 삼각대를 놓은 곳 오른편과 뒤편으로 암반이 부드럽게 깎여 상당히 넓은 곡면이 이루어져 있었는데 이 또한 장관이었으나 이 공간감을 담을 수 있는 화각의 렌즈가 없어서 촬영하지 못했다.

소가 보여주고 있는 침식된 형태나 소 아래쪽의 넓게 분포한 곡면 암반 등으로 미루어 보았을 때 이 계곡의 수량은 지금보다 훨씬 많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또한, 그렇다면 어떠한 지질변화 때문에(이를테면 융기, 혹은 석회암층으로의 투습 등) 수량이 적어진 것인지, 아니면 계절마다 수량이 심하게 달라지는 것인지에 대해 궁금해졌다.

이 곳은 첫 번째 목적지였고 이 뒤에도 3개의 포인트가 더 있었으나 계단이 얼어붙어 도저히 올라가지 못하고 아쉬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계단 옆의 로프를 잡고 몇 번을 시도하였지만 한 걸음만 더 내딛으면 위 사진에서 가장 검게 보이는 소의 한 가운데로 미끄러질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진상으로는 그리 위험해보이지 않지만 보기보다 경사가 급하다. 난간의 세로기둥 중 하나가 빠진 곳이 있었는데 하필 그곳의 얼음이 경사지게 얼어있어서 올라갈 수 없었다.(폰카메라)
▲ 얼음계단 사진상으로는 그리 위험해보이지 않지만 보기보다 경사가 급하다. 난간의 세로기둥 중 하나가 빠진 곳이 있었는데 하필 그곳의 얼음이 경사지게 얼어있어서 올라갈 수 없었다.(폰카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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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모습 그대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을 바가지소와 영천폭포를 불과 100미터 앞에 놓고 올라왔던 길을 다시 돌아갔다. 항상 그렇듯이 돌아가는 길은 왔던 길보다 빠르게 느껴진다. 그 심리적 거리감의 차이가 무엇 때문인지 항상 궁금하다. 난 이렇게 아직도 궁금한 것 투성이다.

광대곡을 빠져나와 지방도를 만나면 몰운대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것이다. 몰운대는 화암면의 계곡이 그렇듯이 기암절벽과 그 밑을 흐르는 맑은 계곡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이 몰운대가 여타 뼝대와 크게 다른 면이 있다.

그것은 바로 절벽 위에 있는 평평한 공간이다. 성인 100명이 함께 앉을 수 있을만한 규모의 넓은 반석인데, 절벽 끝의 고사목이 그 운치를 더해준다고 한다. 수많은 미술가들과 사진가들이 이 고사목과 몰운대의 모습을 자신만의 풍으로 담아왔을 것이다.

몰운대의 전면 모습이다. 절벽 위에 평평한 반석과 정자가 있다. 구름도 쉬어가는 곳이라는 부연 설명이 붙는 곳이다.(E100G)
▲ 몰운대 몰운대의 전면 모습이다. 절벽 위에 평평한 반석과 정자가 있다. 구름도 쉬어가는 곳이라는 부연 설명이 붙는 곳이다.(E10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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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석으로 올라서는 방향과 절벽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의 방향이 달라서 시간관계상 위쪽으로 가지는 못하고 전체적인 모습만 담고 화암면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야영, 그리고 집으로

백패킹 장비가 빵빵하지 않아서 취사가 영 어설펐다. 평소 즐기던 캠핑 요리는 언감생심 꿈도 못꿀 일이었다. 즉석밥과 즉석요리를 끓는 물에 데워서 먹었는데 그마저도 버너가 고장나는 바람에 주변에서 긁어모은 나무들을 챙겨온 작은 화로에 넣고 그 불로 코펠을 데웠다.

바로 앞에 24시간 편의점을 두고 사서 고생을 하는 모습을 스스로 지켜보며 묘한 즐거움이 살며시 느껴졌다. 아침에 사놓은 맥주 한 캔으로 추위를 달래며 마지막 밤의 막을 내렸다.

다음 날 일찍 일어나 텐트를 개고 내가 있었던 자리의 흔적을 모두 지운 후 정선 읍내로 돌아갔다. 시장에서 점심을 먹은 후 이틀 전 사장님께 다시 들르겠노라 말했던 그 카페를 찾았다. 화장실이 가정집처럼 되어있었는데 양치만 하겠다던 나의 행색이 세면도 필요해보였는지 주인 아주머니께서 화장실을 마음껏 쓰라고 하셨다. 양치와 세수를 하고 한껏 개운해진 상태로 이틀 전 읽던 '내사랑 사북'을 완독하고 카페를 나섰다.

나에게 여행은 언젠가는 '만남'이었고 언젠가는 '처음'이었고 언젠가는 '경험'이었다. 또한, 이번 여행의 의미는 '도전'이었다는 것을 첫번째 여행기사에서 밝힌 바 있다. 여행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돌아보면 이번 여행의 의미에 '고마움'이라는 단어를 더해야할 것 같다.

야영장 폐쇄로 잘 곳이 없어진 나에게 테라스를 흔쾌히 내어준 민박집 사장님을 비롯하여 동강으로 내려가는 버스를 운전하셨던 기사님과 가수리 마을회관에 나의 쉴 공간을 허락해주신 할머니들, 그리고 영업장임에도 불구하고 여행자에게 거리낌없이 화장실에서의 세면을 적극적으로 허락해주신 카페의 주인 아주머니까지.

커다란 배낭을 메고 대중교통에 의지하여 돌아다니는 연약한 여행자에게 이러한 도움의 손길이 없었다면 이번 여행은 다소 팍팍한 여행이 되었을 것이다.

도전을 이루었고 고마움을 입었다. 이만한 여행이 또 있을까.



태그:#정선, #화암8경, #필름사진, #뼝대, #소금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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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립 대안교육 특성화 고등학교인 '고산고등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필름카메라를 주력기로 사용하며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공연소식, 문화계 동향, 서평, 영화 이야기 등 문화 위주 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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