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에 흘러나오는 광고가 내 귀를 때렸다.

"우리 가족에 아빠는 없어"
"똑같이 돈 버는데 왜 엄마만 해야 돼?"
"아빠는 부모 아니야?"

가족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밖으로만 돌고 있는 아빠들의 모습이 적나라했다. 사실, 크게 특별한 내용은 아니었다. 우리 사회의 아빠들이 잦은 야근과 수많은 회식을 어쩔 수 없다고 말하며 가정에 소홀한 것은 흔한 일이었으니까.

허나 <SBS 스페셜 - 아빠의 전쟁 2부 디너테이블>이 내놓은 실험은 흥미로웠다. 정말 별것 아닌 저녁밥, 그것을 가족과 매일 함께 먹는 것. 당연해 보이는 그것이 실험의 조건이라고 한다. 과연 결과는 어땠을까.

밥 한 번 같이 먹기 어려운 아빠들

 가족을 위해, 행복을 위해. 아빠들은 열심히 달리고 또 달렸다. 험난한 세상에서 가족에게 한 가지라도 더 주기 위해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가족과 아빠 사이에는 큰 골이 생겨나고 있었다. 물질은 풍족해졌을지 몰라도 가족 간의 정신적 교감은 피폐해졌다.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저녁조차 먹기 힘들어졌으니 말이다.

가족을 위해, 행복을 위해. 아빠들은 열심히 달리고 또 달렸다. 험난한 세상에서 가족에게 한 가지라도 더 주기 위해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가족과 아빠 사이에는 큰 골이 생겨나고 있었다. 물질은 풍족해졌을지 몰라도 가족 간의 정신적 교감은 피폐해졌다.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저녁조차 먹기 힘들어졌으니 말이다. ⓒ SBS


길거리에 저녁을 먹지 못하고 늦게 퇴근하는 아빠들을 위한 밥상이 차려졌다. 누군가는 가족이 제시간에 밥을 챙겨 먹길 바라는 마음에, 누군가는 가족의 행복을 위해 저녁도 먹지 못하고 집에 들어가고 있었다. 대한민국에서는 흔한 일이다.

조선업계에서 일하시는 필자의 아빠도 10시 이전에 집에 들어오는 일이 거의 없었다. 저녁 밥상에는 항상 엄마, 동생, 그리고 내 수저만 놓여있었고 아빠와는 10시에 짧은 인사를 나눈 후에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것마저도 동생과 내가 고등학교에서 야간자율학습을 하게 되면서 힘들어지게 되었다. 저녁 밥상에는 어느새 엄마의 수저만이 놓인 채로 적막하게 식사가 진행됐다.

방송에 나온 세 가족의 모습도 다르지 않았다.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이대선씨는 퇴근 후에도 집으로 바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는 구내식당에서 식사하고 2시간 이상의 운동을 한 이후에 집에 들어갔다. 그는 딸이 자신을 불편해하는 것을 느낀 이후로 계속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대선씨는 기억도 하지 못하는 일로 인해 딸은 아빠에게 큰 상처를 입었고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

재활용 센터의 사장으로 일하고 있는 박창휘씨의 가족도 비슷하다. 그는 집에서든 밖에서든 너무나 바빴고 핸드폰을 손에서 놓는 법이 없다. 그러다보니 집에서 밥을 먹는 날도 거의 없다. 그런 아빠가 큰딸은 성에 차지 않았나 보다. 두 부녀간의 대화는 항상 아슬아슬하고 불꽃이 튀긴다.

마지막 세 번째 아빠는 반도체 회사에 근무 중인 김태민씨다. 그는 다양한 사회활동을 하느라 바쁘다. 맞벌이 부부지만 육아나 가사는 거의 부인의 몫이다. 태민씨는 모임도 회사생활의 일부라고 여기며 열심히 활동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족을 위해, 행복을 위해. 아빠들은 열심히 달리고 또 달렸다. 험난한 세상에서 가족에게 한 가지라도 더 주기 위해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가족과 아빠 사이에는 큰 골이 생겨나고 있었다. 물질은 풍족해졌을지 몰라도 가족 간의 정신적 교감은 피폐해졌다.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 저녁조차 먹기 힘들어졌으니 말이다.

저녁밥이 과연 효과가 있었을까?

 일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아빠는 가족을 위해 한 달에 한 번 핸드폰을 꺼 놓은 채로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약속을 하기도 했다. 기적이라고 부르기에는 매우 작은 변화이고 시작이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소소한 변화들이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일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아빠는 가족을 위해 한 달에 한 번 핸드폰을 꺼 놓은 채로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약속을 하기도 했다. 기적이라고 부르기에는 매우 작은 변화이고 시작이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소소한 변화들이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 SBS


디너테이블이라는 이름으로 매일 저녁 7시에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기로 한 세 아빠. 과연 그들의 가족에게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큰 변화는 없었다. 이대선씨는 매일 저녁을 먹겠다고 약속했지만 제대로 지키지 못했다. 출장, 야근 등으로 가족들과 제대로 저녁을 먹지도 못했으며 힘들게 마련된 저녁 식사자리에서도 오히려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딸은 아빠에게 단단히 마음의 문을 닫은 것처럼 느껴졌다.

박창휘씨는 제법 잘 지켰다. 한 달의 기간 29번이나 디너테이블에 참가했다. 하지만. 일에서는 온전히 벗어나지 못했고 식탁에서도 전화기를 붙들고 통화를 하기 일쑤였다. 그의 딸들은 아빠가 이상하다는 소감을 남기기도 하고, 더욱 날카롭게 몰아붙이기도 했다.

집안일은 여자가 해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던 태민씨는 부인이 박람회 준비로 저녁을 함께하지 못하게 되면서 어린 세 남매의 식사를 책임지게 되었다. 아내의 빈자리를 느낀 그는 가볍게 여겼던 가사가 절대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가끔 청소도 하고 아이들 밥 먹이는 것을 돕기도 한다.

문제 있는 아이들의 행동을 교정하는 특정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확실한 변화가 있지는 않았다. 마법처럼 짠하고 좋아진 가족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어떤 가족은 곪았던 상처가 터져 더욱 아파지기도 했으며 매일 펼쳐지는 밥상에서 작은 다툼들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정말 작은 일. 가족들과 함께 저녁을 먹는 것에서는 의미 있는 변화들이 생겨나고 있었다. 묵묵히 숨겨만 왔던 상처들은 곪아 터져 이제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고 일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아빠는 가족을 위해 한 달에 한 번 핸드폰을 꺼 놓은 채로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약속을 하기도 했다. 기적이라고 부르기에는 매우 작은 변화이고 시작이지만, 분명한 것은 이런 소소한 변화들이 큰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제시된 것은 아니다. <SBS 스페셜 - 아빠의 전쟁 2부 디너테이블>은 우리에게 소소한 저녁 식사가 가족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보여주었다. 또한, 아빠의 역할이 결코 물질적인 것만 채우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당장 모든 가족에게 저녁 식사를 보장해 줄도 없고, 기적적으로 가족 간의 갈등의 골을 없앨 수도 없지만, 가족 간의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타지에서 학교에 다녀 가족과 저녁 식사를 전혀 먹지 못하고 있는 나의 경우에는 더욱 와 닿았다. 얼마 전, 가족과 다툰 일이 있었다. 부모님과 나는 서로에게 힘들다고 쏟아내기 시작했다. 모진 말들이 오갔고 서로에게 화를 내며 탓하기 바빴다. 만남과 대화의 부재가 만들어낸 오해가 많았다. 적어도 서로에 관해 관심을 조금이라도 더 가졌다면. 소소한 저녁 식사를 놓치지 않고 함께 했더라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며 쏟아내지 않지 않았을까. 저녁 식사는 가족들이 서로의 삶을 공유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리는 아니었을까.

방송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아직도 수많은 가족은 함께 저녁 식사를 하는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잘못된 업무 문화, 회식 문화 등은 여전하고 아빠들은 제시간에 가족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가족들과 함께 하는 소소한 식사. 짧은 소통의 기회. 그것마저도 아직 우리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다. 언제쯤 우리는 이런 삭막한 현실을 벗어날 수 있을까. 앞으로 방영될 3부가 그 해답을 제시해 줄 수 있을지 기대가 된다.

저녁식사 디너테이블 SBS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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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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