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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별은(왼) 강민휘(오)
 길별은(왼) 강민휘(오)
ⓒ 남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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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창작뮤지컬 <배우수업>이 대전을 시작으로 5개 도시 투어에 나섰다. <배우수업>은 무명 배우 생활을 하며 장애를 가진 아들을 홀로 키워오던 아버지가 시한부 암 판정을 받게 되면서 혼자 살아가야 하는 아들을 위해 '배우수업'을 시작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이 뮤지컬이 다른 뮤지컬과 다른 이유는 극에서 장애를 연기하는 사람이 비장애인이 아닌 실제 장애인 배우이기 때문이다.

다운증후군 배우 강민휘(36)씨는 극에서 아들로, 뇌병변 장애인 배우 길별은(48)씨는 아버지의 친구로 분해 열연한다. 그들은 '어떻게 장애인이 무대에 오를 수 있어?'란 세간의 편견을 날마다 깨며 무대에 오르고 있다.

아직은 장애인 연극배우가 낯설지만, 이래봬도 길별은씨는 연기인생 25년차, 강민휘씨는 14년차다. 베테랑 연기자란 기자의 말에 길별은씨는 "중고예요. 중고"라며 웃음 짓는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과 무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인터뷰는 지난 11월 23일 마포구 서교동에 있는 피플G컴퍼니에서 진행했다.

[강민휘] 꿈을 심어준 동생 설희

강민휘씨는 언제나 아이들에게 놀림감이었다.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하는 어눌한 발음, 굼뜬 행동, 항상 벌리고 있는 입…. 하지만 완벽한 바보는 아니었다. 친구들이 놀리면 "나 바보 아니야!"라고 소리치며 싸울 정도의 용기는 있었다. 그럴 때면 언제나 교실 뒷문을 박차고 들어오는 그의 여동생 강설희.

동생은 "우리 오빠 왜 때려!"라고 소리치며 상급생들을 발로 차고, 깨물며 오빠를 친구들에게서 떼어냈다. 동생은 언제나 그의 동생이기 전에 보호자였다. 학교가 파하면 다른 아이들이 따라올까 봐 오빠의 손을 꼭 붙잡고 집까지 함께 갔다. 노래하고 춤추기를 좋아하는 오빠를 향해 "우리 오빠 최고"라며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그가 스무 살 되던 해에 세 살 터울이었던 우애 좋은 남매에게 불행이 찾아온다. 동생이 난소암에 걸린 것이다. 통통하고 귀여웠던 동생은 하루가 다르게 말라갔다. 그는 아픈 동생의 손을 꼭 잡았다. 어느 날 동생은 "내가 곁에서 지켜주지 못해 미안해"라고 말하며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 뒤로 그는 학교도 가지 않고, 밥도 먹지 않으며 온종일 집안에서 동생을 그리워했다. 몇 달의 시간이 흐르고 동생이 꿈에 나타나 "오빠! 나는 잘 있어. 난 오빠가 훌륭한 가수가 되는 걸 꼭 보고 싶어. 그러니까 울지 말고 행복하게 지내"라고 말을 했다. 그 사건을 계기로 그는 동생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무대에 서게 됐다.

[길별은] 어린 시절의 원더우먼

창작뮤지컬 <배우수업>
 창작뮤지컬 <배우수업>
ⓒ 피플G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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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별은씨의 어머니는 뇌병변 장애인이었던 그를 늘 업고 다녔다. 그가 점점 성장하면서 휠체어를 사긴 했으나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갈 때면 늘 바퀴가 빠지는 휠체어 때문에 그의 엄마는 한 손에는 그를 둘러업고 다른 한 손에는 휠체어를 들었다. 주위 사람들은 그의 엄마를 안쓰럽게 봤다. 그는 '나도 한 번쯤은 엄마를 기쁘게 해드리면 좋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목발을 짚기 시작했고, 발이 땅에 제대로 닿지 않아 한 걸음을 걷기 위해 수없이 넘어졌다. 신발은 일주일이 안 되어 망가졌고, 바지는 여기저기 너덜너덜해졌다. 당연히 무릎에 피가 마를 날이 없었다.

6살 때 즈음 그의 어머니가 그를 극장에 데려갔다. 커다란 화면 속에 원더공주가 악당들을 통쾌하게 물리치며 하늘을 멋지게 날았다. 그는 원더공주가 진짜 사람인 줄 알았다. 스크린 속에 들어가면 자신도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영화를 볼 때만큼은 그는 장애인이 아니었고, 서서히 배우란 꿈이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늘 배우의 꿈을 가슴 깊이 간직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취직도 할 수 없어 늘 의미 없이 숨만 쉬며 하루하루를 소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장의 신문이 그의 발밑에 툭 떨어졌다. '장애인 배우 선발'이라는 문구가 그의 시야 속으로 들어왔다. 그는 평생을 기다려온 그 시간을 위해 힘껏 준비를 했고,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리고 그해 12월, 그는 배우로서 첫 무대에 서게 됐다.

배우라는 이름으로

긴 세월 동안 남들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온 그들이지만, 그들에게선 어떠한 그늘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길별은씨는 자신의 이름이 '길길이 황혼같이 빛을 내다'란 뜻이라며 자신을 소개했고, 강민휘씨는 간단하게 자신을 '국민배우'라고 소개했다. 둘의 우정은 10년이 넘었으며, 마찰을 빚던 처음과 달리 지금은 '쿵 하면 짝!' 하고 환상의 호흡을 자랑한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자신의 아픔에 대해 원망하고, 세상과 사람과 신을 향해 저주하고 욕을 했을 텐데 길별은씨는 자신의 모습에 만족한다고 말한다.

"제가 이미 장애인으로 태어난 걸 어쩌겠어요. 하나님을, 부모님을 원망한다 한들 저한테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되거든요. 오히려 제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배우가 됐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아무래도 제가 건강했더라면 아마 다른 길로 가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제가 맨날 엎어지고 언어장애가 있어서 사람들하고 제대로 대화를 못하지만 그래도 행복해요."

그의 무대를 기다리는 마니아도 있다. 장애인 아기를 안고 공연을 보러 와서 끝날 때까지 눈시울을 적시다 돌아가는 가족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무대는 관객과 연기자를 서로 치유하며 위로하는 곳이 된다.

"연기를 하다 보면 제가 장애인이란 걸 잊어요. '내가 장애인이구나'가 아니라 '나도 배우구나'라고 말이에요. 다른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두 가지의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연기는 길별은의 인생이죠."

연기자로서의 강점

배우수업 연극배우들과 함께
 배우수업 연극배우들과 함께
ⓒ 피플G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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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별은씨는 불편한 몸 때문에 무대에서 넘어지는 일도 잦다. 넘어지면 곧장 애드립으로 상황을 여유 있게 넘긴다. 하지만 비장애인에 비해 그만이 가진 연기 강점도 있다. 

"저는 뇌성마비거든요. 얼굴표정이나 근육이 자기 마음대로 움직여요. 연기를 할 때 비장애인 배우들이 결코 흉내 내지 못하는 그런 감정을 연기할 수 있어요."

풍부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선 강민휘씨도 못지않다. 그는 상황에 대한 몰입도가 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장면을 연기해야 한다면 오로지 그 상황만을 생각한다. 우는 장면에서는 눈이 새뻘개질 정도로 눈물을 흘린다. 비장애인들은 장면에 대한 계산을 하지만, 강민휘씨는 하지 않는다. 자연히 상황에 대한 몰입도가 클 수밖에 없다. 연기에 대한 욕심도 커서 누군가 "둘 중에서 누가 연기를 더 잘해요?" 물어오면 그는 주저 없이 "내가 더 잘합니다!"라고 말한다.

길별은씨는 자신의 장애를 탓하지 않는 이유 중 한 가지가 자신의 모습을 보고 어디선가 희망을 찾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실제로 언론에 나온 그의 기사를 보고 자살을 기도했던 한 사람이 자살에 대한 마음을 접었다. 자신 때문에 삶에 용기를 얻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늘 감사함을 느낀다.

"저 같은 경우는 배우가 되고 싶어서 기획사, 드라마 제작사, 영화 제작사에 매일 게시판에 글을 올렸어요. 장애인인데 배우가 하고 싶다고…. 장애인이라서 매일 집안에만 있는 게 아니라 자기를 밖으로 보여줘야 다른 사람들도 '이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구나'를 알게 될 것 같아요."

연기에 대한 큰 열정을 가지고 있는 그들에게 다음에는 무슨 역할을 맡고 싶냐고 질문했다. 길별은씨는 "저는 아직 애인이 없기 때문에 배역이나마 코믹멜로를 맡고 싶습니다"라고 대답한다. 강민휘씨는 "한 가지 제가 하고 싶은 게 있는데요, 그건 바로 액션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밝아오는 2017년에도 더 많은 관객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전해주길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세상사는 아름다운 이야기(http://m.post.naver.com/my.nhn?memberNo=4832522)> 1월호에 게재됐습니다.



태그:#배우수업, #길별은, #강민휘, #다운증후군, #뇌병변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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