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운동 1세대 고 홍기선 감독

한국 영화운동 1세대 고 홍기선 감독 ⓒ 리틀빅픽쳐스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이태원 살인사건> 등을 연출한 홍기선 감독이 15일 급작스럽게 별세했다. 영화계의 한 관계자는 "홍 감독님이 이날 새벽까지도 최근 완성한 영화와 관련해 프로듀서와 메신저로 대화를 나눴다는데, 오후에 집에서 숨져 있는 것이 가족에 의해 발견됐다"고 말했다. 사인은 심장마비에 따른 돌연사로 추정되고 있다. 향년 58세.

홍기선 감독은 한국독립영화와 영화 운동 1세대로 꼽히는 감독이다. 서울대학교 영화동아리 얄라셩에서 박광수, 김홍준, 송능한 감독 등과 함께 문화 운동으로서 영화 운동을 시작했다. 1982년에는 한국 최초의 독립영화단체인 '서울영화집단'을 만들어 영화 운동을 이어 나갔다. '서울영화집단'은 라틴 아메리카의 영화이론에서 한국영화 운동의 이론을 찾았고, 다큐멘터리적 창작방향을 옹호하고 민중 지향적인 관점을 제시했던 영화 운동단체였다.

1986년 농촌의 현실을 담은 40분 분량의 8mm 영화 <파랑새>를 완성해 순회 상영했는데, 사전 심의 없이 영화를 상영했다는 이유로 홍 감독을 비롯한 영화인들이 구속되기도 했다. 일명 파랑새 사건이었다. 서울영화집단은 이후 소규모 영화집단들과 뭉쳐 '서울영상집단'으로 확대됐다.

홍 감독은 1988년에는 1980년 5월 광주항쟁을 본격적으로 다룬 장편 영화인 <오! 꿈의 나라> 시나리오를 썼고, 이 과정에서 결성된 영화운동단체 '장산곶매'의 초대 대표를 지내는 등 1980~1990년대 영화운동의 중심에서 활동했다. <오! 꿈의 나라>는 상영과정에서 탄압을 받았으나 이후 '표현의 자유' 투쟁의 선례가 됐다.

홍 감독은 이후 1992년 충무로로 진출해 배우 조재현이 주연한 독립영화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를 통해 정식 데뷔했다. 이 영화로 1993년 백상예술대상 시나리오 상을 수상했다.  2003년에는 당시 세계 최장기 수감생활을 하는 비전향 장기수 김선명 선생이 실화를 다룬 <선택>을 만들어 8회 부산국제영화제 관객상을 받았다.

2006년에는 인권영화 프로젝트로 만든 옴니버스 영화 <세 번째 시선>에서 비정규직을 소재로 한 <나, 어떡해>를 만들었고, 2009년에는 <이태원 살인사건>을 제작해 1997년 이태원에서 미국인들이 저지른 살인사건을 재조명했다. 최근까지는 군 내부 비리를 다룬 영화 <일급기밀>을 제작하고 있었는데, 지난 9일 촬영을 마무리 짓고 내년 개봉을 준비하는 중이었다. <일급기밀>이 홍 감독의 유작이 된 셈이다.

서슬 퍼런 1980년대 군사독재시대 영화운동 시작

 홍기선 감독이 각본을 80년대 독립영화 <오! 꿈의 나라>와 데뷔작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홍기선 감독이 각본을 80년대 독립영화 <오! 꿈의 나라>와 데뷔작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 ⓒ 홍기선


홍 감독의 작품은 5.18과 양심수,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들을 그리고 있고, 정치 사회적인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영화 운동 1세대로서 초심을 끝까지 지켜나간 사회파 감독이었다.

장산곶매에서 함께 활동했던 명필름 이은 대표는 "홍 감독님은 충무로에 가서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영화들을 만들겠다며 장산곶매에서 충무로로 진출한 후, 일관되고 꾸준하게 약속한 그 길을 지켜가셨다"고 회고했다.

영화계는 갑작스럽게 날아든 홍 감독의 별세 소식에 크게 슬퍼하고 있다. 이용관 전 부산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나보다도 몇 살 적은데 너무 일찍 떠나 마음이 아프다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한 영화감독은 "80년대 군사독재의 서슬이 퍼런 시대에 영화 운동을 시작했던 것만으로도 상당히 큰일을 하신 분이고, 투옥당하면서도 꾸준히 영화 운동을 해 오신 분"이라고 평가했다.

홍 감독의 <선택> 연출부로 참여해 인연을 맺었다는 <미스진은 예쁘다> 장희철 감독은 "고민에 머리 싸매고 있을 때도, 술 한 잔 사주시면서 좋은 말씀 해주신, 수줍은 미소가 참 따뜻한 감독님"이었다고 회상했다.

<무현, 두 도시 이야기>를 제작한 조은성 피디는 "<일급기밀> 고사 때 밝게 웃으시는 모습으로 뵈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랍니까"라며 애통의 마음을 드러냈다. 김중기 배우도 "감독님이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었다"며 "월요일 망원동 <일급기밀> 쫑파티에서 뵀는데, 제발 사실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한편, 홍 감독의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1호실에 마련됐으며, 18일 일요일 발인한다. 슬하에 1남 1녀가 있다.

홍기선 영화운동 일급기밀 이태원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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