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방송된 <뉴스룸>의 한 장면. 박근혜 대통령이 '길라임'이란 가명을 사용했다는 정황을 보도하고 있다.

15일 방송된 <뉴스룸>의 한 장면. 박근혜 대통령이 '길라임'이란 가명을 사용했다는 정황을 보도하고 있다. ⓒ JTBC


"우리 길라임씨는 언제부터 혼이 비정상이었나?"

어젯밤부터 이 대사가 머릿속을 계속 맴돌고 있다. 이게 배우 현빈의 목소리인지, 드라마 <시크릿 가든> 속 김주원의 대사인지, 그 조차도 분간이 가지 않을 지경이다. 더욱이, "길라임씨는 언제부터 대통령이었나? 태어났을 때부터?"라는 대사까지 겹쳐 들리는 통에 16일 아침까지도 환청이 들릴 판국이다.

이게 다 JTBC <뉴스룸>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가명 혹은 닉네임이 '길라임'으로 밝혀지는 순간, 온 나라가 발칵 뒤집혔다. 실시간 검색어 1, 2위는 물론 SNS를 온통 '길라임', '시크릿 가든' 등으로 물들였다.

왜 아니겠는가. 박근혜 대통령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공한 드라마 '덕후'(오타쿠, 마니아를 일컫는 누리꾼 용어)로 밝혀지는 순간, 그리하여 박 대통령이 시쳇말로 '정덕 유착'을 이뤘다는 사실이 온 천하에 까발려지면서 국민들은 과연 외신에서 이 '길라임' 사태를 어떻게 설명하게 될지 걱정해줘야 하는 신세로 전락해 버린 것을. 자, 전말은 이러하다.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얼마나 얼마나" 길라임이 되고 싶었는지 말이다.

웃음 참은 안나경 앵커, "'길라임'은 <시크릿 가든> 여주인공 이름"

지난 15일 오후, 지상파와 종편 메인뉴스들은 모두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특종에 몰두해 있었다. KBS1 <뉴스9>은 "상위권 2명 낙제점 줘 정유라 합격"을, 채널A는 "'제3의 미르' 2000억 건설재단"을, SBS <8뉴스>는 "청와대 밖 병원서 대통령 피 검사까지"를 단독으로 보도했다. 그래도, 그럼에도 JTBS <뉴스룸>은 이길 수 없었다. 단연코, '길라임'의 힘은 너무 셌다.

"차움은 병원과 헬스클럽 등을 이용할 수 있는 회원권의 가격이 1억5000만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그런데 박 대통령의 경우 차움을 이용하면서 '길라임'이라는 가명을 썼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기억하시겠습니다만 '길라임'은 드라마 <시크릿 가든>의 여주인공 이름입니다."

길라임이란 이름을 발성하면서도 웃음을 참은 <뉴스룸> 안나경 앵커의 결기에 격려가 쏟아졌다. 그도 그럴 것이, 이름도 이름이지만 뉴스 내용 자체가 웬만한 코미디 저리 가라 할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뉴스룸>은 차움 전 의사 '요금 때문에 주사제 대리처방'…부작용까지"라는 리포트를 내보내며 박 대통령의 외부 의료 시설 이용이 국가 안위에 위협을 줄 수 있는 행위임을 명확히 했다. 이어서 <뉴스룸>은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의 차움 병원 이용 형태를 상세히 밝혔다. 국민들은 물론 개그맨들도 감히 상상하지 못할 개그 수준이었다.

 15일 방송된 <뉴스룸> '길라임' 보도의 한 장면.

15일 방송된 <뉴스룸> '길라임' 보도의 한 장면. ⓒ JTBC


"운동을 하면 언제 와서 몇 시간하고, 어떤 운동 어떻게 했는지 기록을 하잖아요. 본명으로 쓰지 말아 달라고 했나 봐요. 뭐로 할까 그러다가 '길라임'으로 했던 것 같아요. (중략) (평균적으로) 30만~40만 원씩 들었던 것 같아요. 수납이 아예, 전혀 안 이뤄졌어요. 그게 가명으로 했거든요. 그 유명한 드라마. 오히려 (차 병원의) 차 회장이 레스토랑에서 식사 대접…. 너무 상반되잖아요.

'길라임'이라고 기록에 있길래 물어봤더니 박근혜 대통령 왔다 갔다고…. 대통령 되기 이전에 왔다 갔는지 모르겠고 되고 나서 왔다 간 건 확실해요. (중략) 안봉근 그분이 항상 같이 오셨고 최순실이 항상 반 이상은 와서 매일 만났어요. 최순실씨하고 되게 진짜 정말 친한 정도…."

전 차움 관계자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이러하다. 박 대통령은 2011년 초부터 차움을 이용했고, 헬스클럽과 건강 치료를 주로 이용했다. 그런데, 길라임이란 가명을 썼다. 차움의 VIP 회원권은 1억5000만 원이 넘는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차순실씨는 "가명으로 각종 VIP 시설을 이용하면서 수납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반면 차움은 박 대통령이 2011년 1월부터 7월까지 가명을 이용한 건 맞지만 그 이후에는 가명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복지부가 밝힌 최순실씨 자매 진료기록부에는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청'이나 '안가', '길라임'이란 이름이 기재돼 있었다. 박 대통령 취임 이후 차움을 계열사로 둔 차병원은 정부로부터 특혜를 받았다는 정황도 있다. 뇌물에 해당될 수 있다. 어찌됐건, "길라임은 박근혜"다.

그게 최선입니까? 꼭 길라임이어야 했어요?

박 대통령과 하지원 박근혜 대통령과 배우 하지원이 지난 2015년 10월 21일 청와대 사랑채에서 열린 한복패션쇼에서 대화하고 있다.

▲ 박 대통령과 하지원 박근혜 대통령과 배우 하지원이 지난 2015년 10월 21일 청와대 사랑채에서 열린 한복패션쇼에서 대화하고 있다. ⓒ 연합뉴스


그리하여, 전 국민은 '길라임'이란 이름으로 국민대통합을 이뤘다. 최순실씨와 문고리 3인방이 썼다는 이메일 아이디 'greatpark1918'에 이어 이번엔 길라임이 등장했다. 샤먼에 이어 이번엔 드라마냐는 비아냥이 쏟아진다. 더욱이 'greatpark1918'이 박근혜 대통령이 18대, 19대 대통령을 모두 하겠다는 뜻이 아닌가 하는 의혹마저 제기되면서 비난이 더욱 거셌던 터다.

SNS를 포함해 온라인상에서는 즉각 패러디가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이 또한 '역대급'이다. 포복절도할 만 한 몇 가지만 꼽아 봐도 이러하다. 문제는, 박 대통령이 '길라임'이란 닉네임을 사용한 실제 정황과 그 패러디를 확인하며 폭소를 터트려도 그 끝엔 씁쓸함과 분노가 가시질 않는다는 점이리라.

 "그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라는 유행어로 유명한 <시크릿 가든>의 속 배우 현빈.

"그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라는 유행어로 유명한 <시크릿 가든>의 속 배우 현빈. ⓒ SBS


"그게 최순입니까?? 확siri해요???" (@ps*********) 

"진짜 길라임 역대급이다. 근현대사에 남겨야 한다
~2046년~
학생1: 야 낼 시험 뭐냐?
학생2: 수학이랑 체육, 아 근현대사도 있다
학생1: 아 근현대사 셤범위 어디까지더라
학생3: 그 뭐야 그거 시크릿가든까지
학생1: 길라임? ㄱㅅㄱㅅ" (@fo*****)

"그레이트팍에 이어 길라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최애 가요가 거북이 노래라며 힐링캠프에 나와서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 빙고를 부르던 것까지 어떤 이 모든 것들을 관통하는 취향의 일관성이 보임 ㅋㅋㅋ" (@J0*****)

"또 하나의 퍼즐이 맞춰졌다…. 왜 굳이 현충일 추념식 추모 헌시를 예비역 현빈에게 읽게 시켰는지…." (@wo******)

박근혜와 길라임 사이에서 갈 길 잃는 국민들

 한 정부 행사장에서 만난 <태양의 후예>의 송중기와 박근혜 대통령.

한 정부 행사장에서 만난 <태양의 후예>의 송중기와 박근혜 대통령. ⓒ 청와대


대통령이 드라마 '덕후'라는 사실은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도 넷플릭스의 '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의 광팬임을 자처하고, NBC의 <SNL>에 직접 출연하는 시대 아닌가.

박 대통령이 배우 현빈씨를 좋아하는 것도 딱히 문제가 될 건 없다. 하지만 지난 2011년 12월, 개국특집으로 MBN이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전 대표를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느낌이 다르다. 공군 출신 조인성과 해병대 출신 현빈, 육군 출신 비 중 누가 제일 좋으냐는 질문에 박근혜 당시 전 대표는 "그 세 사람 다 좋아하면 안 돼요? 글쎄, 뭐 다 좋지만 해병대에 가 있는 현빈씨라고 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 '소오름'이 돋는 건 어쩔 수 없다.

딱히 <시크릿 가든> 속 길라임과 박근혜 대통령과의 연관관계 때문만은 아니다. 길라임은 아버지가 사고로 죽었고, 와이어 연기를 주로 하는 대역 배우이며, 다른 사람과 영혼이 바뀌는 유체이탈을 경험하지 않았는가. 2012년 당시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문화예술인 블랙리스트에 오른 하지원씨를 걱정할지언정, 길라임과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를 진지하게 묻는 일은 무의미(?)하다.

대신, 배우 현빈과 송중기를 비롯한 박근혜 대통령의 지독한 남배우 그리고 김은숙 작가 사랑을 눈여겨볼 필요는 있어 보인다. 트위터 수사대에 의해 지난해 제60회 현충일 추념식에 현빈이 참석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다시금 화제를 모으고 있다.

더욱이 한류 관련 행사에 <상속자들> 이민호, <태양의 후예> 송중기 등 김은숙 작가의 작품에 출연한 남배우들이 연이어 참가했다. 그래서인지, <태양의 후예> 방송 직후인 올해 5월 이란 국빈 방문시 히잡을 쓴 박근혜 대통령이 드라마 속 송혜교의 의상을 따라한 것 아니냐는 때 아닌 의혹까지 나돌고 있다. 이게 다 '드라마 덕후'로 알려진 박근혜 대통령 본인 탓이다.

퇴근 후 일체 참모들이나 외부 인사들과 접촉을 끊고 관저에서만 생활하는 걸로 알려진 '히키코모리'형 대통령. 히트한 드라마는 자주 챙겨본다고 고백하는 대통령. 그리하여 국정농단의 주요 문화 사업으로 밝혀진 '문화융성'과 '창조경제'에 한류와 한류 드라마를 꼬박꼬박 언급하던 그 박 대통령. 그는 사실, 대한민국에서 누구도 이길 수 없는 드라마 '덕후'였던 걸까.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반응을 넘어, "도저히 이길 재간이 없다"는 반응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외부 병원에 나가서 무신경하게도 길라임이란 가명을 쓴 박 대통령이나 최순실 자매의 행동거지도 그러하거니와, 그러한 (개인적인) 관심이 국정 운영이나 국정 행사에 영향을 줬을지도 모른다는 흔적들 때문에.

도저히 이길 수가 없다. 변호인이 "여성으로서의 사생활"을 운운하더니, 박 대통령은 또 한 번 '길라임'으로 자신을 넘어섰다. 국민들은 회한과 한탄 섞인 자조와 조롱을 보내고 있다. '길라임'과 '박근혜' 사이, 대한민국의 상상력이 그렇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그 와중에, 누군가는 또 광장행을 결심 중이라고 한다. 2016년 11월이 어떻게 끝이 날지, 짐작도 가지 않는다.

 15일 밤 네이버 실검 순위. 길라임과 박근혜 길라임이 1, 2위를 다투고 있다.

15일 밤 네이버 실검 순위. 길라임과 박근혜 길라임이 1, 2위를 다투고 있다. ⓒ 네이버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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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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