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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에 나선 학생들
 집회에 나선 학생들
ⓒ 강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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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까지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지난 2일 오후 6시 전라북도 김제에서는 김제지역 중학생들과 고등학생들이 함께 박근혜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자그마한 농촌 도시, 인구 9만의 김제는 저녁 7시쯤이면 거리가 텅 비다 시피 한다.  몇몇 큰 음식점과 술집 정도를 제외하곤 그야말로 한산한 곳. 그러나 이날만큼은 60명의 학생들이 외치는 '박근혜 하야하라'는 외침이 시내를 들썩이게 했다.

저녁 5시 50분. 김제 홈플러스 사거리에 피켓을 손에 든 학생들이 하나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전날 등장했던, 하얀 종이에 손으로 쓴 서너 개의 피켓이 하루 사이에 획기적으로 진화했다. 피켓의 숫자도, 모양새도 썩 그럴 듯하다.

"어떻게 오게 됐어요?"
"친구가 (집회 소식을) 페북에서 보고 저한테 같이 하자고 해서 왔어요."
"그냥 따라온 거예요?"
"그건 아니고, 우리나라를 위한 거니까 용기를 내서 왔어요."(김제여중 3학년 강예은)

학생들은 저마다의 이유를 가지고 집회에 참석했다.
"뉴스를 보면서 말보다는 행동으로 하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이것도 경험이고, 친구가 집회를 한다고 하니까 나오게 됐습니다."(김제중학교 3학년 박건재)

"친구들이 같이 하자고 해서 왔어요."
"친구가 가자고 해도 안 올 수 도 있잖아요."
"그래도 국민으로서 와야 된다고 생각했어요."(김제 금성여중 2학년 순지영)

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중학생
 피켓을 들고 행진하는 중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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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
 중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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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집회가 있던 전날과 당일 학생들은 친구들끼리 소식을 전하고 의논하면서 집회 참석의 마음을 모은 셈이다. SNS를 보고 고민하다 나온 중학생들도 여럿이었다.

"SNS에 오늘 이런 집회가 있다는 글 올라온 걸 보고 함께 하고 싶어서 나오게 됐어요." (금성여중 2학년 조하늘)

한 학생은 집회에 오게 된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또박또박 정리된 말투다.

"SNS를 통해 알게 됐고, 오늘 도덕시간에 도덕 선생님이 설명을 해주셔서 참여하게 됐습니다. 김제중학교 3학년 회장분이 시국집회를 하는데 정말 좋은 일인 것 같다고 얘기해주셨어요. 그래서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참여하게 됐습니다."(김제여중 1학년 김소연)

집회는 김제중학교 3학년 학생이 주도했다.
"국민 전체의 목소리를 듣고 국가를 운영해야 할 대통령께서 한 국민의 목소리만 듣고 움직인 걸 보면서 이걸 하게 됐습니다. 이 집회는 조그마한 움직임이지만 박근혜 대통령, 최순실 게이트 관련된 모든 분들이 듣고 반성하셨으면 좋겠습니다. 진실된 사과를 하고, 엄중한 처벌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집회에 나온 학생들의 마음은 '어른'들과 다를 바 없었다. 현 상황에 대한 판단도 마찬가지였다. 집회 시작 직전 만난 학생 서넛은 첫째 날 집회 기사에 중학생들이 무슨 시위냐고 욕하는 댓글들이 꽤 있었다면서 속상해 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학생들은 이렇게 답했다.

"중학생들이 한다고 욕하시는 분들 계세요. 기사 보면 댓글에 진짜 많아요. 어리다고 무시 말았으면 좋겠고, 우리도 국민이란 거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자기들은 (집회참여) 안 하면서 그렇게 이야기 안 했으면 좋겠어요."
"학생이 국민이 아닌 것도 아닌데, 이런데 참여함으로서 국민의 권리를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멋진 말에 친구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우와~개멋있다."

전국 최초 중학생 집회, 집회 신고한 중학교 3학년 조윤성균
 전국 최초 중학생 집회, 집회 신고한 중학교 3학년 조윤성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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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집회에는 고등학생들도 간간이 섞여 있었는데, 10분가량의 집회 발언에서 수능을 20일 앞둔 고3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학생도 '어리다는 이유로 정치적 의사표현을 조롱하는 반응'들에 대해 이렇게 자기 의견을 밝혔다.

"우리는 지난 4년 동안 국가를 잃은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건 정말 국가와 국민을 우롱한 것이라고 밖에 생각이 안 듭니다. 일부 어른들 중에는 학생이 무슨 시위냐 하는 분이 계신데, 나라가 잘못돼서 국민이 그걸 바로 잡겠다는 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오히려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나서지 않는 다른 사람이 문제가 아닙니까. 현 사태에 관심을 가지고 좀 더 적극적으로 분노하고 동참해주십시오."

또 다른 학생은 참가한 다른 학생들을 향해 이렇게 발언했다.

"학생여러분도 대한민국 국민입니다. 이 나라 대한민국 사회를 구성하는 한 사람의 주권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권자로서 지금의 한국의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참 안타깝습니다. 국민이 주인인 국가 대한민국이 한 사람에게 무참히 더럽혀진 느낌. 적지 않은 국민들이 분노하고 실망했습니다. 헌법에서는 국가의 주권과 권력이 국민에게 있음을 국민들에게 집회와 결사의 자유를 명시하며 그 권리를 보장하고 있습니다. 일어납시다! 행동합시다!"

일어나야 할 때 일어나고, 행동해야 할 때 행동하는 것은 민주공화국의 국민이 주권자로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이 점을 학생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학생이 주권자로서 자각하는 일은 권장해야 하고, 칭송받아야 할 일이지 그 반대는 아니다. 중학생들이 집회를 시작했다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가 멀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며, 비난을 받아야 할 하등의 이유 같은 건 당연히 없다.

학생들의 시위를 지켜보는 어른들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동네 주민 한 분이 어둠 속에서 시위대를 향해 불쑥 나타났다. 붕어빵 두 봉지를 학생들에게 건네주었다. 

"애들이 집회한다고 하기에 응원하려고요."

인근 익산에서 오신 어른은 "애들한테 미안해서 왔어요. 어쩌다 이런 나라를 물려주게 됐는지"라며 행진 대열의 뒤를 터벅터벅 따른다.

행진중인 중학생
 행진중인 중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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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들고 행진하는 학생
 촛불을 들고 행진하는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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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행진 참여 인원이 60명에 달했다. 학생들은 여전히 열심히 구호를 외친다. 대열의 맨 끝에 선 두 여학생은 휘파람을 불며 행진했다. "그럼 정유라씨 헌정곡은 '어머님이 누구니'인가?"하면서 키득 거리는 학생들, 사뭇 긴장된 얼굴로 대열에 섞여 있는 학생들, 멋진 인터뷰 모습을 보며 "평소에 우리한테도 그렇게 말 좀 해봐. 욕만 하지 말고" 하는 학생들, 또 그 옆에서 "정유라씨 헌정곡은 어머님이 누구니인가?" 하면서 키득거리는 학생들로 행진 대열은 즐겁고 진지하다.

행진이 끝나갈 무렵, 복권 가게 사장님이 가게 문을 열고 나오더니 불쑥 만 원 짜리 몇 장을 학생들에게 내밀었다. 안 받으려는 학생들과 주려는 어른의 몇 초쯤의 실랑이가 이어졌다.

"기특하잖아요. 어른이 해야 하는데, 아이들이 하고 있으니까."

아마도 난생 처음이었을 집회와 행진이었다.

"오늘 나와 보니까 어때요?"
멋진 대답을 기대했다.

"손시려워요~~"
"기사로 볼 때는 심각하다는 걸 못 느꼈는데, 직접 와서 해보니까 심각하다는 게 더 느껴져요."
"약간 춥기는 한데, 그래도 바꾸려고 직접 나왔으니까 끝까지 하고 가야죠."

대한민국에서 중고등학생들이 관심 가져서는 안 되는 분야 중 하나가 정치다. 아이들은 자기 생각이 정립되지 않은 미성숙한 존재라는 편견과 정치는 순수하지 못한 것이라는 편견이 합해지면 결론은 "애들은 가라"이다. 덕분에 청소년들은 당원 가입 자격이 없으며, 선거권을 갖는 연령은 외국에 비해 이유 없이 높다.

학생들은 말과 행동으로 이런 편견이 잘못됐음을 보여줬다. 학생들에게 대한민국이 어떤 나라가 되기를 바라는지 물었다.

"국민들의 말에 귀기울여주는 그런 나라가 됐으면 좋겠어요."(김제여중 1학년 정 숲)
"국민의 권리가 더 우대 받고, 대통령과 소통하는 그런 나라가 됐으면 좋겠어요."(김제 금성여중 2학년1반. 순지영)
"모두 다 살기 좋은 나라요. 평등한 나라요."(김제여중 1학년 최은비)
"차별이 없는 평등한 나라가 됐으면 좋겠습니다."(김제여중 1학년 김소연)
"혈연이나 학연 그런 거 말고 자기 장점을 살려서 노력한 만큼 대우를 받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어요. 이화여대 나빴어요."(김제여중 1학년 이주은)

'평등한 나라' '소통하는 정치'가 학생들이 꼽는 대한민국 변화의 키워드였다. 대통령이 물러나는 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태그:#김제, #중학교, #하야, #청소년, #중고등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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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전 대변인, 팟캐스트 노유진의 정치까페2 진행자 정의당 교육연수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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