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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 중1 남자아이들

매주 인근중학교에 자유학기제 연극 수업을 나가고 있다. 엊그제 수업의 일이다. 교실에 들어가자마자 아이들은 큰소리로 떠들어댔다.

"선생님, 시국이 이런데 우리가 연극같은 수업이나 하고 놀아도 되겠어요?"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자 다같이 촛불을 들고 나가죠!"

이제 겨우 열 넷, 아니 벌써 열 넷의 목소리

'이제 겨우' 열 넷인 남자아이들의 이야기는 장난이 가득 묻어있었지만 '아니 벌써' 열 넷인 아이들도 알 건 다 알고 있었다.

"다른 교과 선생님들이 이런 얘기를 어떻게 하시니?"
"하면 안돼요. 학교 선생님들은 수업 시간에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말씀하시면 안돼요. 수업 시간엔 진도만 나가야 해요."

아이들의 궁금함과 답답함이 느껴졌다. 무슨 말이라도 한두 마디 해줘야하나 잠시 고민을 하다, 나조차 정리가 안 되는 '거대한 폭풍'같은 일이라 웃기지도 않는 농담을 던지고 진도를 나갔다. 활동이 많은 수업이라 책상을 밀고 교실 바닥에 아이들을 앉혔다. 며칠 사이 쌀쌀해진 날씨에 엉덩이가 차가웠다. 늘 함께 바닥에 앉다 나도 모르게 나 혼자 의자에 앉았다.

"선생님도 우리랑 같이 바닥에 앉으시죠. 선생님이 최순실이에요? 혼자만 누리게!"

말문이 막혔다. 결국 모두 의자를 갖고 와 둥글게 모여 앉아 수업을 시작했다. 연극 속 배역을 정하듯 매 시간 수업이 시작되면 아이들에게 각자 별명을 지어 붙이게 한다. 키가 작은 아이는 "190", 여친이 생긴 아이는 "여친의 이름"을, PC방 갈 돈이 필요한 아이는 "만원 (혹은 삼만원)"이라고 별명을 짓는다. "야", "너", "뭐", "그냥", "사람" 등 그야말로 그냥 지어 붙인 별명도 많고, 중1 남자아이들의 관심사를 듬뿍 담은 "바나나"류의 별명도 많다. 장난스러운 분위기이지만 아이들은 그때 그 때 자신들의 감정을 담아 별명을 짓고 서로의 별명에 호기심을 갖는다.

"말달리자~ 닭쳐!" 2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 부근에서 '비선실세'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관련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자유발언에 나선 청년들이 모형말을 타며 크라잉넛의 노래 "말 달리자"를 부르고 있다.
▲ "말달리자~ 닭쳐!" 2일 오후 서울 청계광장 부근에서 '비선실세'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관련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자유발언에 나선 청년들이 모형말을 타며 크라잉넛의 노래 "말 달리자"를 부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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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스스로 짓는 별명에 담긴 마음들

이 날도 아이들은 별명을 지어 붙이게 하며 수업을 시작했다. 평소와 다른 별명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이)야", "ㅂㄱㄴ", "순shil", "순시리", "박그네**", "갑오브갑", "정유라엄마" 등등. 아이들은 자신이 지은 별명을 공개하며 키득거렸고, '쎈' 표현이 나올수록 크게 웃었다. 평소 별명을 지을 때 친구 이름, 정치인 이름은 자제시켜왔는데 이 날은 막을 수가 없었다.

아이들은 이렇게라도 소리를 내고 싶어 했다. 그러나 두 시간 동안 명찰 대신 붙이고 재미있게 불러주긴 힘들었다. 아이들에게 자신들의 엄마, 여자친구나 여동생에게도 붙일 수 있는 별명이라면 붙이고 아니면 떼어서 쓰레기통에 버리자 했다. 툴툴대는 소리를 못들은 척 하며 수업을 이어갔다.

토끼와 자라 vs. 순Shil과 그네

"별주부전"이라고도 하고 "토끼의 간"이라고도 하는 "토끼와 자라" 이야기가 활동 주제였다. 서로가 기억하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같고 다른지 알아보고, 저마다의 상상력을 들여다보기 위해 한 문장씩 릴레이로 이어 한편의 이야기를 완성시켜 보았다.

"토끼와 자라" 이야기를 돌리면 대부분 용왕이 몇 번씩 죽었다 영웅에 의해 되살아나고, 토끼와 자라는 첫 만남에 눈이 맞아 용궁 대신 모텔로 가고 거기서 이상한 동물들이 줄지어 태어나고 그러나 갑자기 달리기 경주를 하고 이야기는 안드로메다로 간다.

어느 반이나 비슷한 패턴의 이야기가 진행되어 그렇겠거니 하며 이야기를 돌려보는데 토끼도 자라도 등장하지 않았다. 용왕은 먹고 마시고 놀기만 하다 병이 들었는데 순shil이 나타나 더 심하게 놀아 바닷물이 썩어 모두가 다 죽어버린다. 그네가 나타나 죽은 용왕을 다시 살리지만, 순shil이 토하고 싸대는 통에 또 다시 다 죽고, 보다 못한 누군가 우주의 기운을 모아 바다를 폭발시키고 새로운 지구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모두가 다 잘살았다는 이야기 마무리.

스물 한명의 아이들의 이야기를 모두 기억하진 못하지만 대강 이런 흐름으로 이야기가 마무리 되었다. "그래도 해피엔딩이냐?"는 내 물음에 아이들은 "그래도 해피엔딩이죠!"라는 답을 보낸다. 다음 시간에 아이들이 만든 이야기로 장면을 만들고 노래 가사를 지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제목을 바꿔줘야 할 것 같다.

#2. 여덟 살, 여섯 살 아이들

여덟 살 첫째가 제법 세상을 잘 안다는 얼굴로 저녁을 먹으며 종알거린다.

"엄마, 오늘 우리반 **이랑 얘기했는데, **이도 최순실을 알더라. 아빠가 늦게 오면 안 보는데 요즘 아빠가 일찍 오는 날이 많아서 다 같이 뉴스를 본대. **이 엄마도 뉴스 보면서 엄마처럼 한숨 쉬면서 그런대. 최순실 때문에 못살겠다고. 정말 최순실이 문제야."

설거지를 하고 부엌 정리를 하는데 첫째가 8시라며 뉴스를 틀어놓고 어서 오라고 부른다. 오늘도 뉴스의 주인공은 어제와 같다. 여섯 살 둘째가 뉴스를 보더니 한마디 한다.

"어른들은 참 이상해. 나도 최순실을 아는데 왜 뉴스에 나오는 어른들은 계속 최순실이 어디있는지 찾고, 누군지 모른다하고, 데려다가 뭘 자꾸 물어보고 그래? (옆에 있는 네 살 막내에게) 너도 알지? 저 뚱뚱한 할머니 누군지?"

아이들에게 설명하기 힘든 뉴스들만 쏟아지는 요즘 같아선 뉴스를 유해영상물로 지정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민주수호대전운동본부는 1일 밤 대전 서구 둔산동 갤러리아타임월드 백화점 앞에서 '내려와라 박근혜! 대전시민 촛불행동'을 개최했다. 이날 집회에는 3000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해 '박근혜 하야'와 '새누리당 해체'를 외쳤으며, 3개 차로를 이용해 거리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민주수호대전운동본부는 1일 밤 대전 서구 둔산동 갤러리아타임월드 백화점 앞에서 '내려와라 박근혜! 대전시민 촛불행동'을 개최했다. 이날 집회에는 2000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해 '박근혜 하야'와 '새누리당 해체'를 외쳤으며, 3개 차로를 이용해 거리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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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드디어 우리 엄마가 변했어!

친구들 엄마 중에 굉장히 젊은 감각으로 세련된 노후를 보내시는 분이 계시다. 친구는 친정 엄마와 정말 친구처럼 모든 면에서 허물없이 지낸다. 그런데 하나 넘지 못하는 벽이 있는데, 그건 다름 아닌 친정엄마의 수 십 년 팬덤 '그네언니사랑'이다.

결혼 전엔 친구도 정치에 별 관심이 없어 친정엄마와 부딪힐 일이 별로 없었는데 아이들을 낳아 키우다 보니 정치가 아이들 앞길이 되어 종종 친정엄마와 언쟁을 벌이기도 한단다. 친정엄마 생신을 맞아 친정에 갔던 친구가 환호의 이모티콘과 함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아직도 대통령 지지율 14%라 하길래 우리 엄마인 줄 알았는데, 우리 엄마가 '병X 박그네'래. 우리 시어머님도 돌아서셨음. 60년 만의 쾌거!"

양가의 어머님들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대통령과 최순실을 둘러싼 사교 소문에 꽤 충격을 받으신 듯했다. 국가기밀 유출, 인사개입보다 '무당', '사이비 교주', '입신'에 더 깊은 배신감을 느끼신다고 한다.

그러나 "대선에 반기문 나오면 찍으실 거예요?"라는 사위의 질문에 "그럼, 찍어야지. 그래도 UN총장인데"라는 어머님의 대답. 자식들은 반기문 총장에 대한 세간의 평가를 알려드리며 재고를 권했다. 전 같으면 자식들의 이런 이야기에 "니네가 고생을 안 해봐 뭘 모르는 소리 한다. 내 말이 맞다"를 고수하시는데 이젠 달라지셨다.

"그래? 그렇다고? 그럼 다시 생각을 해봐야겠네. 우리가 아는 게 다 맞는 건 아니더라."

#4. 이제야 애들 힘들다는 소리가 들려

가깝게 지내지만 정치적인 부분에선 견해가 달라 어느 지점에선 둘러 가던 20대 딸아이를 둔 이웃 엄마도 드디어 고백을 했다.

"우리 애들이 '졸업하기 겁난다, 취직하기 힘들다, 이러다 정말 결혼도 못하겠다' 힘든 소리 하면 부모 밑에서 고생 안 하고 커서 철없는 소리 한다 그랬거든. 그런데 이제 우리 애들 힘든 게 보여. 열심히 하면 뭐든 된다고 했는데, 열심히 해도 안 될 거 같아. 너무 미안해. 그동안 세상물정 모르는 소리한다며 애들에게 했던 잔소리를 이젠 애들이 우리한테 해. '엄마아빠한테 세상 보는 눈이 있긴 하냐고, 엄마아빠 말 다 틀렸다고!'"

참여형 대자보 내가 본 최고의 대자보!
▲ 참여형 대자보 내가 본 최고의 대자보!
ⓒ 연세대학교 디자인예술학부 SNS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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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빠가 틀렸어!

곳곳에서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이 터져 나오고 있다. 지금을 뒤엎고 뛰어넘어야만 한다. 그런데 중학생들의 게임 세상에 나오는 '세상을 구할 영웅'은 안타깝게도 우리 세대가 아닌 20대, 10대들일 것 같다. 이미 나도 기성세대가 되어 "엄마아빠가 틀렸어!"라는 잔소리를 듣고 있으니.

모두가 힘들지만 지금이 최근 10년 만에 찾아온 최고의 기회이지 않을까. 단군 이래 부모세대보다 잘 살기 힘든 세대라는 꼬리표가 붙었는데 40년 전으로 후퇴한 민주주의를 젊은 시민의 힘으로 바로 세워 역사의 바퀴를 다시 전진시킬 때가 지금이다. 고생 안 해본 젊은 것들의 복에 겨운 소리라고 치부하던 기성세대에게 보란 듯이 보여주자. 물질이 아닌 정신으로 부모들을 뛰어넘은 아름다운 세대로 역사가 기억할 것이다.

평생을 조선일보만 보시고 지난번 대선도 1번을 찍으신 아버님께서 70년 만에 한겨레를 구독하신다. 변화의 기회가 있는 한 70이 넘으신 아버님도, 애가 셋인 나도 모두 다 젊다. 아직 우린 모두 젊고 기회가 있다. 스스로를 넘어설 기회가!

*덧붙임*
별명을 지어붙인 중1 아이들에게 요즘 기분이 어떠냐고 물어보았다.

"*같아요."

 *에 들어갈 말은 저마다의 상상에 맡긴다. 다만 *은 한 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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