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 알지만... 불의 앞에 중립은 없어."

"우려 알지만... 불의 앞에 중립은 없어." ⓒ JTBC


지천명을 무색하게 만든 마지막 '어린왕자' 이승환의 노래는 언제나 가슴을 적신다. 20여년이 지나도 여전하다. 그 중 1989년 1집 노래는 특히 우리 세대의 사랑과 슬픔을 노래했기에 더욱 그러했다. 눈 내리는 겨울에 그의 음악은 듣는 즉시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텅 빈 마음' '크리스마스에는' '가을 흔적' '비추어주오' '사랑의 세상으로' '기다린 날도 지워질 날도' '좋은 날' '눈물로 시를 써도' '그냥 그런 이야기' '친구에게' 등등. 개인 소견이지만 이승환의 1집은 모두 주옥같은 노래였다.

우여곡절 끝에 가수가 된 이승환

이승환은 참으로 우여곡절이 많은 가수였다. 한 블로거가 쓴  '뜨거운 뮤지션, 이승환의 음악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1986년 들국화의 음악을 듣고 음악을 결심했다고 한다. 1989년 발라드 전성시대에 이문세, 변진섭, 김광석, 조하문 등 내로라하는 가요계의 별들이 포진했음에도 그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이승환은 이런 별들의 전쟁 속에서도 의연하게 그의 음악인생을 펼쳐갔다. 오디션을 수없이 떨어지고 돈이 없어 홀로 음반을 제작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그는 의연했다. 그렇게 지난한 과정을 거쳐 드디어 탄생한 노래가 '텅 빈 마음'이다. 내 기억에 이 노래는 길을 가다 한 번쯤 들은 사람에게 가슴을 때릴 정도의 충격을 줬다. 그렇게 그의 노래는 길보드 차트에 입성해 순항하게 된다.

"신인 때 첫 앨범을 냈을 때는 제가 직접 음반을 가지고 레코드점을 돌아다녔다. 레코드점에 들어가서 '아저씨, 이승환 음반 있어요?'라고 하면 대부분이 '누구? 이수만?'이라고 되물었다. 그렇게 2~3개월을 돌아다녔다" - Mnet <봄여름가을겨울의 숲>(2013년 7월 24일) 중에서

성공 확률 1%에서 99%의 열정으로 만든 그의 음악세계는 서서히 대중들에게 호응을 얻게 됐다. 방송 출연도, 별도의 홍보 앨범도 없이 오직 길거리 음악으로 그의 음반은 밀리언 셀러에 등록됐다.

"당시 17군데서 퇴짜를 맞았다. 마지막으로 들어간 회사에서 녹음을 하게 됐다. 근데 계약 조건이 말 그대로 전형적인 노예계약이었다. 홍보비도 1년에 2천만 원씩 자비 부담하라고 하더라." - tvN <히든싱어>(2014년 10월 25일) 중에서

이후 '한 사람을 위한 마음' '세상에 뿌려진 사랑만큼' '나는 나일 뿐' '플란다스의 개' '내게' '덩크슛' '천일동안' '화려하지 않은 고백'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사랑하나요' 등 수없이 많은 히트곡을 유행시킨다.

라이브 황제에서 소셜테이너로

 이승환 페이스북 계정에 걸려 있는 사진.

이승환 페이스북 계정에 걸려 있는 사진.


 오후 6시경 가수 이승환이 소속된 서울 강동구 성내동 소재 '드림팩토리' 건물에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현수막이 붙었다. 시사인 주진우 기자는 사진을 개인 페이스북에 게시하며 '드림팩토리 건물주 '정의가수' 이승환의 위엄!'이라고 덧붙였다.

오후 6시경 가수 이승환이 소속된 서울 강동구 성내동 소재 '드림팩토리' 건물에 "박근혜는 하야하라"는 현수막이 붙었다. 시사인 주진우 기자는 사진을 개인 페이스북에 게시하며 '드림팩토리 건물주 '정의가수' 이승환의 위엄!'이라고 덧붙였다. ⓒ 주진우 페이스북


이승환은 최근 '박근혜는 하야하라'라는 플래카드를 자신의 회사 빌딩에 걸었다가 논란이 됐다. 연예인으로서 감히 대적할 수 없는 역대급 소신행위였다.

이승환은 시대의 아픔을 다룬 영화 <26년>이 자금 어려움을 겪자 10억을 투자해 화제가 됐다. 이후 그는 소신발언 등으로 연예계의 이단아를 자처했다. 그의 소신의 동기는 바로 상식과 원칙이었다. 하지만 때 아닌 종북 논란으로 상처를 입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어린왕자 특유의 순수함으로 무장해 결코 무릎을 꿇지 않았다. 다음은 대표적인 그의 발언이다.

"다른 생각을 가진 분들이 '26년' 이 영화를 종북 세력이 만들었다거나 저를 빨갱이로 묘사하는데요. 그건 틀린 생각이네요. 그것이야말로 선동이라 할 수 있겠네요." - 이승환 공식 홈페이지 게시판(2012년 11월 27일) 중에서

"연예인 이야기는 시시콜콜 그렇게 하시면서 왜 정작 먹고 사는 아니 죽고 사는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금기시하는 겁니까. 누군가가 그러길 바라고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는 생각은 안 드십니까" - 이승환 페이스북(2015년 9월 16일) 중에서

"친일파 청산해서 재산 환수하고 사자방(MB정권의 4대강 정비 사업-자원외교-방위산업 비리)에 엄한 돈 쓰지 않았으면 소득 5만 불 됐을 것." - 이승환 페이스북(2015년 9월 2일) 중에서 

"저도 오늘부터 세월호 동조 단식 시작합니다. (자갈치 시장 방문한 대통령을 두둔하는 장면을 언급하면서) 참 불쌍한 국민입니다. 우린..." - 이승환 페이스북(2014년 8월 26일) 중에서

이밖에도 이승환은 "0.1%의 억지 때문에 역사교과서를 바꿔야 하는 건가", "니들이 죽였다. 백남기 선생은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 이행을 촉구하기 위해 서울행 버스를 탔다", "나도 넣어라, 이놈들아!"등의 소신 발언을 이어 왔다.

오직 음악에 대한 열정만으로 황제 반열에 오른 그의 소신 발언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바로 가수 이승환의 인생 전반에 걸쳐 있는 '상식과 정의'의 스펙트럼이리라.

그가 있어, 이승환의 음악이 존재하기에 암울한 대한민국에서도 소박한 행복을 꿈꾸게 된다.   

 이승환이 현재 하고 싶었던 말이 그대로 표현된 페이스북 화면.

이승환이 현재 하고 싶었던 말이 그대로 표현된 페이스북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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