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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9일 오후 서울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리는 전국여성대회에 박근혜 대통령이 축사를 위해 방문하는 가운데,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쉬운해고 등 노동개악에 반대하는 이대생들이 방문반대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이 대통령에게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하겠다며 대강당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저지하는 사복경찰들과 학내 곳곳에서 충돌이 벌어져 일부 학생들이 넘어져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 이대생들 "박 대통령 방문 반대한다" 2015년 10월 29일 오후 서울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열리는 전국여성대회에 박근혜 대통령이 축사를 위해 방문하는 가운데,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쉬운해고 등 노동개악에 반대하는 이대생들이 방문반대 시위를 벌였다. 학생들이 대통령에게 자신들의 의사를 전달하겠다며 대강당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저지하는 사복경찰들과 학내 곳곳에서 충돌이 벌어져 일부 학생들이 넘어져 부상을 당하기도 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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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이화여대와 박근혜 대통령의 악연은 2015년 10월 29일 열린 제50회 전국여성대회에서 시작됐다. 수업에 들어갔다가 내 자리로 돌아온 오후 5시 즈음 포털 실시간 이슈에 뜬금없이 '이화여대'가 떠 있는 것이 보였다. 졸업한 지는 꽤 시간이 흘렀지만 그래도 우리 학교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싶어서 클릭해보았더니 학생들이 대통령의 방문을 환영하지 않는다며 시위를 벌였다는 기사가 있었다.

학생들이 대통령의 방문을 거부하는 이유인 국정교과서 도입에 나도 반대하는 입장이라 기특한 후배들이라고 생각했고, 어쨌든 최초의 여성 대통령인데 여자 대학교에서 환영받지 못하니 씁쓸하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도 모교 이야기라 웹서핑을 하며 이런저런 내용을 계속 읽어보았는데, 행사가 끝난 후 쓰레기만 가득하니 미화원 어머님들 고생하시지 않도록 우리가 청소하자며 대강당 앞으로 와 달라는 학생들의 글도 있었고, 쓰레기가 가득한 대강당 앞의 모습을 찍은 사진도 있었다. 기독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채플에 참석하느라 열심히 드나들었던 우리 학교 대강당인데, 행사 후에는 그 지경으로 만들었다니 살짝 화가 나기도 했다.

그 사건 이후 꽤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이번에는 이화여대에 경찰 1600여 명이 투입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것도 총장이 직접 요청해서 불렀다는 것이었다. 사회적 이슈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평가를 받아왔던 우리 학교였는데 무슨 일인가 싶었다. 이 사건의 원인이 된 미래라이프대학이 무엇인지 기사를 읽어보았다.

내가 이해한 미래라이프대학은 고졸 직장인을 대상으로 하는 평생교육 단과대학이다. 대학 측은 비정규직 여성들과 사회적 소수자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는데, 학생들은 학교 이름을 팔아서 하는 학위 장사, 정부가 준다는 30억 원을 노린 돈벌이 수단일 뿐이라고 반박했다고 한다.

각종 미디어나 블로그에는 이화여대 학생들을 옹호하는 글도 있었고, '대단하지도 않은 학교 이름값을 유지하려고 하는 이기주의'라는 주장도 있었다. 졸업생인 나도 뭐가 옳은지, 어느 쪽 주장이 더 이치에 맞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학생들이 총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본부를 점거하고 시위를 이어간다는데, 그게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이대 학생이라는 이유로 말도 안 되는 욕을 먹고 자신의 사진이 이상하게 이용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시위를 해야 하는 후배들이 안쓰럽다는 생각은 했다.

그런데, 고구마 줄기가 딸려 나오기 시작했다. 학생들이 2000여 건에 달하는 민원을 넣고 시위를 하고 대자보를 붙인 결과 박근혜 정부 비선 실세 최순실의 딸이 이화여대에 석연치 않게 입학하고, 납득할 수 없는 과정을 거쳐 학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미르 재단, K-스포츠 재단과 관련된 비리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몇몇 사람들의 관심만 받았던 것 같은데, 대학교 입학과 학사 관리에 권력의 부당한 압력이 가해졌다고 하니 관심을 가진 이들이 더 많아진 것 같았다. 결국 불가능해 보였던 총장 퇴진이 현실이 되었고, 이화여대 학생들의 농성은 박근혜 정권 비선 실세 문제를 전 국민이 알게 한 역사적 사건이 되고 말았다.

유신 몰락의 신호탄, YH 무역 사건

사건이 이렇게 전개될 즈음 내 머릿속에는 YH 무역 사건이 떠올랐다. YH 무역 사건은 1979년 8월 9일부터 11일 사이에 가발 수출업체인 YH 무역 여성 노동자들이 회사의 폐업조치에 항의하여 당시 야당인 신민당 당사에서 농성 시위를 벌인 사건이다.

나와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은 이 사건을 국사 교과서에서 배우지 않았기에 모르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나 역시 내 직업 때문에 찾아보고 공부하지 않았다면 모를 사건이었다. 근현대사를 처음 가르칠 때 이 사건이 유신 몰락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평가를 보고 의아하게 생각했었다. 가슴 아플 정도로 긴 시간 동안 농성이나 파업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제대로 주목받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사건은 어째서 교과서에도 중요한 사건으로 실리고 정권을 몰락시키는 원인 중 하나가 된 것일까?

아버지에게 여쭤보고 나니 의문이 풀렸다. 아버지는 전태일 분신사건과 YH 무역 사건을 비슷한 시기로 기억하고 계셨다. 전태일 사건은 1970년, YH 사건은 1979년으로 9년의 차이가 나니 같은 시기는 아니라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그렇게 기억하시게 된 이유가 있었다. 당시에는 노조가 거의 없어서 노동 운동이 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전태일 사건은 노동 문제와 관련하여 거의 처음 일어난 충격적인 사건이기에 기억하셨고, YH 무역 사건도 거의 처음 접하다시피 한 노동자들의 농성 사건이기에 기억하고 계셨던 것이다. 아버지는 이 두 사건이 그 당시에 아주 큰 사건들이었다고 하셨다.

YH 무역 사건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노동자 한 명이 죽었고, 신민당 의원들과 취재 기자들도 폭행을 당하여 백여 명이 부상당하였다. 이후 YH 무역 사건은 외견상 해결되었지만 국민들은 분노하였고, 신민당의 무기한 농성, 김영삼 신민당 총재의 제명, 부마항쟁으로 이어졌다. 거의 처음 보는 충격적인 사건이라 언론에 크게 보도되었고, 국민들의 분노도 컸다. YH 무역 사건은 당장 유신 정권을 붕괴시키지는 못했다. 하지만 연쇄적으로 유신정권에 저항하는 다른 사건들을 촉발시켰고, 최종적으로는 10.26 사건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박근혜 정권 몰락의 도화선

미래라이프대 설립과 '비선실세' 최순실 딸 부정입학 및 학사특혜 관련 논란으로 사퇴요구를 받아온 이화여대 최경희 총장이 19일 오후 교수들의 대규모 사퇴 촉구 기자회견 직전 전격 사퇴를 발표했다.
▲ "해방이화! 비리척결!" 교수,학생 한목소리 미래라이프대 설립과 '비선실세' 최순실 딸 부정입학 및 학사특혜 관련 논란으로 사퇴요구를 받아온 이화여대 최경희 총장이 19일 오후 교수들의 대규모 사퇴 촉구 기자회견 직전 전격 사퇴를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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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 보면 사소(?)한 학교 내 갈등이 시작이었다. <한겨레>에선 어떤 학생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이런 글을 소개하기도 했다.

"총장 나갔으면 하고 땅 팠는데 고구마도 나오고 금동대향로도 나오고 막 무령왕릉도 나온다. 나중엔 경주 왕궁터도 나올 것 같다."

이화여대 학생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총장의 전횡에 항의하며 총장 퇴진 운동을 한 것뿐이었는데, 정권의 비선 실세를 온 국민에게 각인시켰다.

이대 총장이 130년 역사상 처음 임기 중에 퇴진하고 박근혜 대통령 비선 실세의 민낯이 낱낱이 드러났지만, 그래서 YH 무역 사건을 떠올리기는 했지만, 이화여대 사건이 설마 정권의 몰락으로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저 "박근혜 정권의 도덕성에 치명적 타격을 주었다" 정도로 미래의 한국사 교과서에 기록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 어떤 막장 드라마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 드라마틱했다. 모두가 알게 되었듯이 최순실은 박근혜 대통령을 호가호위한 측근 정도가 아니라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세워 놓고 실질적으로 국정을 운영한 섭정이었던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에 출마하기 훨씬 전부터 '유신 공주'이기에 안 된다고 생각했었고,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똑똑하지 않다며 안주삼아 비난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아버지의 잘못에 딸까지 연좌제로 엮는 것이 아닌가? 그래도 대학까지 졸업한 사람인데 어리석다는 말은 인신공격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평생 기호 1번만 찍어 오신 우리 부모님도 기막혀하며 동의하신다. 오랜만에 부모님 집에 가면서 부모님의 반응이 궁금했었지만, 이렇게 확실하게 등을 돌리실 줄은 몰랐다. 자기 고집으로 국정을 운영했다면 두둔하실 수도 있었겠지만, 허수아비였다는 사실은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정권 출범 때부터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었지만, 그래도 나 역시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요즘은 하루하루를 낱낱이 기억해 두려고 한다. 어릴 때 목격한 1987년 민주화 과정을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생생하게 들려주는 것에 더하여 2016년에 목격한 이 사건도 들려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YH 무역 사건이 사진자료, 설명자료와 함께 유신 정권의 몰락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교과서에 실리듯이, 이화여대 총장 사퇴 시위도 박근혜 정권 몰락의 단초를 제공하였다는 평가와 함께 사진자료, 설명자료가 실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족을 하나 달자면... 졸업생인 나는 학교를 이렇게 만든 교수들에 분노하며 비리로 얼룩진 우리 대학교의 모습에 부끄러워해야 할까? 아니면 86일 동안 시위의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가며 굳세게 투쟁한 후배들 덕분에 우리 학교가 교과서에 중요하게 등장하게 되었다고 자랑스러워해야 할까?

그러면 마지막으로 미래의 수능 예상 문제를 한 번 풀어보자. 다음 문제의 정답은 무엇일까?

20년 후에는 이런 수능 문제가 출제되지 않을까?
 20년 후에는 이런 수능 문제가 출제되지 않을까?
ⓒ 김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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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화여대 총장 사퇴 시위, #YH 무역 사건, #최순실, #박근혜, #이화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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