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걷기왕>의 포스터.

영화 <걷기왕>의 포스터. ⓒ CGV아트하우스


심은경이 주연을 맡은 영화 <걷기왕>(백승화 감독)이 19일 전야 개봉했다. 독립영화 전문 제작·배급사 인디스토리에서 제작을 맡은 <걷기왕>은 CGV 아트하우스에서 극장 배급을 맡았지만, 엄연히 독립영화다.

보통 부산국제영화제 직후 개봉하는 영화(특히 독립영화)들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공개 이후 개봉 전략을 택하는데, 이 영화는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대신, 자체 시사회를 열어 관객 반응을 점검하였다. 영화제를 가지 않아도 극장 개봉 그것도 CGV 아트하우스라는 대기업 자본의 힘을 빌러 상영관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20대 여배우 중 유일하게 원톱 주연 및 관객몰이를 할 수 있다는 배우 심은경의 힘이다.

톱배우가 가진 영향력 때문에 극장 개봉까지 비교적 순탄하게 갈 수 있었던 <걷기왕>은 요즘 독립영화계에서는 참 드물게 운이 정말 좋은 사례다. 독립영화가 부산, 전주와 같은 메이저 영화제에 가지 않아도 전국 주요 멀티플렉스 상영관 동시 개봉이 가능하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하지만 심은경 같은 톱스타가 시나리오만 보고 저예산 독립영화에 출연하는 것은 극히 드문 케이스이고, 대부분의 독립영화는 부산 혹은 전주.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서울독립영화제(서독제)에 자신이 만든 영화를 출품하여, 더욱 많은 관객들과 만날 기회를 노려야 한다.

관객과의 접점을 찾아 나서다

 영화 <흔들리는 물결>의 포스터.

영화 <흔들리는 물결>의 포스터. ⓒ 무브먼트MOVement


그런데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부산, 전주와 같은 메이저 국제영화제에서 상영작으로 선정되는 것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보다 더 어렵다. 서울독립영화제, 인디포럼에서 상영 기회를 얻는 것도 매한가지다. 이 중에서 영화제 이후 극장 개봉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 <걷기왕> 이후 10월, 11월에는 유독 독립영화 상영이 잦다. 27일 개봉하는 <흔들리는 물결>(김진도 감독)에 이어 11월 3일 개봉하는 <두 번째 스물>(박흥식 감독), <연애담>(이현주 감독, 11월 17일 개봉), <혼자>(박홍민 감독, 11월 24일 개봉)이 뒤를 잇는다. 모두 지난해 열린 부산국제영화제, 올해 열린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이며,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던 화제작이었다. <흔들리는 물결>, <혼자>는 작년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이후 극장 개봉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이 제법 있었으나, 1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개봉을 공식 확정 지었다.

독립영화들이 10월, 11월에 몰아서 개봉하는 이유는 이 시기가 주목할 만한 대작이 크게 없는 극장 비수기이기 때문이다. 오는 26일 마블에서 제작하고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주연을 맡은 <닥터 스트레인지>와 11월에는 강동원 주연작 <가려진 시간>이 개봉하지만, 그 외 수많은 스크린을 장악할 영화는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덕분에 평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대기업 투자배급사 영화들에 밀려 상영관을 잡지 못했던, 독립영화들이 이제야 극장 개봉을 준비할 수 있다.

그런데 말입니다. 극장 개봉으로 가는 것도, 수많은 독립 영화 중에서 선택받은 작품만 가능한 대단한 일이지만, 이들 영화가 충분한 상영관을 확보한 채 관객들에게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냐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최근 개봉한 최승호 감독의 <자백>처럼 비교적 높은 예매율에도 불구, 대기업 멀티플렉스가 유독 <자백>에게 상영관을 내주길 꺼리는 케이스는 드문 사례이지만, 대체로 멀티플렉스는 유독 독립영화에 스크린을 내주는 것에 인색하다. 극장에서 상영해도 관객들이 독립영화를 잘 안 보러 온다는 것이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스크린이 현저히 적은 주요 이유 중 하나이지만, 꼭 그 때문에 독립영화를 가뭄에 콩 나듯이 상영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참 보기 힘든 영화들

 영화 <혼자>의 포스터.

영화 <혼자>의 포스터. ⓒ (주)인디스토리


오랜 세월 극장에서 개봉하는 독립영화를 보기 위해 서울 전역의 극장을 순회하다시피 했던 기자는 독립영화 한 편 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너무나도 잘 안다. 그나마 서울에는 독립영화전용관이 종로의 인디스페이스 강남의 인디플러스 두 군데가 있다. 하지만 하루에 몇 편의 독립영화를 연달아 틀기 때문에, 해당 영화관에 간다고 해도 시간이 맞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영화를 볼 수 없다. 거기에 상영관이 적은 독립영화, 저예산영화 같은 경우에는 최대한 상영관을 많이 잡았던 개봉 첫 주가 지나면 더더욱 볼 기회가 없으므로, 어떠한 일이 있어도, 개봉 첫 주를 사수해야 한다.

개봉으로 가는 과정도 쉽지 않지만, 개봉 이후도 문제인 대부분 독립영화가 처한 악순환을 수도 없이 보았던 기자는 심은경, 그리고 CJ와 손을 잡은 <걷기왕>이 비교적 안정적인 상영관 수를 확보한 것, <흔들리는 물결>과 <혼자>, <연애담>의 개봉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한편으로는 개봉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더 많은 영화, 개봉을 한다 해도 수천도 채 되지 않는 관객들과 만나는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독립영화들의 씁쓸한 현실이 눈에 아른거린다. 점점 더 독립영화들이 설 자리가 없어지다 보니, 부산, 전주, 서울독립영화제와 같은 영화제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13편의 신인감독들의 영화가 소개되었고, 12월에 개막하는 서울독립영화제를 통해 총 19편의 장편영화(부산국제영화제,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 포함)가 소개된다. 이 중에서, 과연 영화제 이후 극장 정식 개봉을 통해 관객들과 만날 수 있는 영화는 얼마나 될까. 일단, 10·11월 개봉하는 독립영화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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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 여기에서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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