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은판 위의 연인>의 한 장면.

영화 <은판 위의 연인>의 한 장면. ⓒ 부산국제영화제


<도플갱어>(2003), <해안가로의 여행>(2015) 등으로 부산영화제와 인연이 깊은 일본의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은 기이한 정서의 마술사다. 그의 이력 때문일까. 데뷔 초기 선보인 섹슈얼 코미디 이후 여러 호러물 등은 이 감독의 넓은 작품 세계를 증명하는 좋은 자료들이다. 우리가 잘 아는 <주온>의 제작자이기도 한 그는 특정 장르에 천착하기 보단 장르와 장르 사이를 오가는 재주꾼에 가깝다.

21회 부산영화제의 초청을 받은 그의 작품은 생애 첫 프랑스 영화라 할 수 있는 <은판 위의 연인>이다. 프랑스 배우와 스태프들의 조력으로 완성한 일종의 멜로 스릴러다. 8일 오전 해운대 영화의 전당에서 시사가 열렸다.

 영화 <은판 위의 여인> 포스터.

영화 <은판 위의 여인> 포스터. ⓒ 구로사와 기요시


환상과 진실 사이

이야기는 세 명의 주요 인물을 중심으로 흐른다. 19세기 사진술인 다게르 타입에 집착하는 작가 스테판과 그의 딸 마리, 그리고 스테판의 새 조수로 일하게 된 장이다. 이들이 사는 큰 저택과 지하 작업실이 사건이 벌어지는 주요 공간이다.

영화 내내 흐르는 정서는 기괴함으로 표현할 수 있다. 죽은 아내의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는 스테판은 마리를 작업 모델로 기용하며 일상을 보낸다. 묵묵히 일하던 스테판이 어느덧 마리와 가까워지면서 모종의 계획을 실행하게 되는데 영화는 이 계기를 친절하게 설명하진 않는다. 사실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 또한 묘하게 생략된다.

시종일관 영화는 화면 내 흐르는 공기와 정서를 움켜쥐고 나아간다. 이 때문에 배우들의 호흡과 감정 연기가 중요했는데 장 역할의 타하 라힘(Tahar Rahim)과 마리 역의 콘스탄스 루소(Constance Rousseau)의 호흡이 돋보인다. 창백한 얼굴에 도무지 감정을 읽을 수 없는 표정의 마리가 실존하는지 가상의 인물인지 혼돈을 주며 영화는 장이 느끼는 감정적 기복을 날 것 그대로 관객에게 제시한다.

바람에 의해 우연히 열리는 창, 거울에 비치지 않지만 등장인물 눈에 보이는 죽은 아내, 간간이 흐르는 기괴한 음악이 곳곳에 배치돼 있다. 마치 일부러 불협화음을 내며 정서를 전환시키는 것 같아 보인다. 영화를 멜로 혹은 미스터리 물 정도로 이해하다가도 순간 몇 번 깜짝 놀라며 호러가 아닐지 착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런 시도는 국내 관객에게 분명 낯설게 다가올 법하다. 완성도와 상관없이 이야기가 군데군데 거세된 이런 정서의 흐름을 끝까지 따라갈 수 없다면 일찌감치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고전 사진과 각종 소품의 제시만으로도 충분한 미적 만족감을 누릴 수 있다. 낯설거나 혹은 기이하거나. 8일 오후 기자회견을 가진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힌트를 들어보자. 감독은 "호러 영화로 보기보다는 젊은 남녀의 러브스토리라고 생각하고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사실!

부산국제영화제 구로사와 기요시 프랑스 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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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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