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의성이 6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 참석해 'Independent Film Festival Busan'이라고 적은 종이를 들어보이며 영화제의 독립성을 요구하고 있다.

배우 김의성이 6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에서 열린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개막식에 참석해 'Independent Film Festival Busan'이라고 적은 종이를 들어보이며 영화제의 독립성을 요구하고 있다. ⓒ 부산영화제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3일차를 맞았다. 태풍과 표현의 자유 침해에 반대한 영화인들 보이콧, 검찰의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 고발조치 등 안팎으로 풍파를 겪은 이후지만 행사 초반을 무리 없이 넘기고 있다.

개막식이 열렸던 6일 이후부터 행사장 곳곳을 살폈다. 예년에 비할 때 그 열기가 다소 떨어진 건 사실이다. 감독 및 배우들 그리고 해마다 참여하던 영화인들 다수가 보이콧에 동참하며 참가자 수가 많이 줄었다. 저녁 이른 시간부터 사람들로 채워지던 해운대 해변과 인근 술집 역시 빈 공간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정도였다. 태풍 차바로 주요 야외시설물이 파손된 까닭도 있고, 8일 오후 현재 비가 내리고 있는 날씨 또한 톡톡히 이런 현상에 한 몫을 한 걸로 보인다.

묵직한 목소리

69개국 299편이라는 예년과 비슷한 작품 수에 아시아필름마켓, 아시아프로젝트마켓 및 포럼 등의 주요 행사도 잘 준비됐다. 다만 참가자들 다수는 그간 영화제가 겪어온 어려움을 잘 이해하며 관계당국의 정치적 압박에 보이콧을 선언한 다른 영화인들의 선택을 존중하는 분위기였다.

시작은 개막식이었다. 사회를 맡은 배우 설경구가 "어렵게 시작된만큼 여러분이 많이 응원해주시고 격려해주시면 감사하겠다,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서 롱런할 수 있도록 많은 관심 가져달라"고 운을 뗐고, 올해의 배우 심사위원으로 선정된 김의성은 레드카펫 행사에서 'Independent film festival for BUSAN'이라는 글귀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입장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정지영 감독 등은 'I Support BIFF' 스티커를 옷에 붙인 채 레드카펫을 걸었다.

개막작 <춘몽>에 배우로 참여한 양익준 감독 역시 "'크레이지 코리아'라는 글귀를 끄적거리고 있었다"며 "마음 같아서는 부산시청 앞에서 팬티만 입고 시위하고 싶다"는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다. 전야제 및 개막식에 불참한 서병수 부산시장이 그간 부산영화제에 사실상 압력을 행사했음을 시사하는 발언이었다.

제21회 BIFF, <분노>의 이상일 감독 "사람의 신뢰 이야기 하고 싶었다" 7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동서대학교 센텀캠퍼스 컨벤션홀에서 열린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초청작 <분노> 기자회견에서 감독 이상일(가운데)과 배우 와타나베 켄,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날 이 감독은 영화 연출한 취지에 대해 "일본 사회에 놓여 있는 상황을 배경으로 그리면서 언제까지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그리려 했다"고 설명했다.

▲ 제21회 BIFF, <분노>의 이상일 감독 "사람의 신뢰 이야기 하고 싶었다" 7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영화의전당 동서대학교 센텀캠퍼스 컨벤션홀에서 열린 제21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초청작 <분노> 기자회견에서 감독 이상일(가운데)과 배우 와타나베 켄,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취재진을 향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날 이 감독은 영화 연출한 취지에 대해 "일본 사회에 놓여 있는 상황을 배경으로 그리면서 언제까지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가의 문제를 그리려 했다"고 설명했다. ⓒ 유성호


갈라프레젠테이션 부문에 초청된 영화 <분노>의 이상일 감독은 "내 영화 제목 때문에 초청받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4회 때부터 부산영화제와 인연을 맺어온 이상일 감독은 "일본에 살면서 부산영화제 사건을 띄엄띄엄이나마 접했다"며 "큰 힘을 가진 사람이 그 힘을 누리려고 하는 게 죽기보다 싫기에 부산영화제에 대한 깊은 동정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분노>에 출연한 배우 와타나베 켄 역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려움에 맞서며 영화제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듣고 감회가 새로웠다"고 덧붙였다.

부일영화제 남자주연상 및 마리끌레르 아시아스타어워즈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받은 이병헌은 오픈토크 등 주요 행사에서 "올해 유난히 우여곡절이 많았던 부산영화제가 열릴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취지의 발언으로 힘을 실어주었다.

영화제를 대하는 성숙한 자세

 #ISUPPORTBIFF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부산 해운대 영화의 전당 1층 모습.

#ISUPPORTBIFF 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부산 해운대 영화의 전당 1층 모습. ⓒ 부산국제영화제


영화제 직전까지 영화인들 사이에서 가장 첨예한 사안은 영화제 참여 여부였다. 총 8개 영화직능 단체 중 4개만이 보이콧을 철회했고, 나머지 단체에서는 유지 혹은 개인 판단에 맡긴다고 공표한 바 참여자와 불참자 사이 갈등의 조짐마저 보였기 때문이다.

수면 위로 드러난 갈등은 없었다. 8일 현재 해운대 및 영화의 전당 주변에선 시민들과 영화인들이 자발적으로 'I Support BIFF' 스티커를 나눠주고 부착하는 모습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영화제를 찾은 한 영화감독은 "영화제를 참여하든 하지 않든 양쪽이 서로를 비난하지 않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며 "상대를 누르기 위해 비난하고 공격하기 마련인데 이는 영화인들이 성숙하게 이번 사태를 잘 이겨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 감독은 "내년과 내후년이 중요하다"며 "이전까지 영화제는 사실 독립영화와 상업영화 그 사이에 있는 영화들을 잘 아우르지 못했던 게 사실인데 이 사태를 잘 이겨내 이후 발전을 위한 토론의 자리가 열리길 바란다"고 전했다.

부산영화제에선 6일부터 영화의 전당 비프힐 1층에 '#ISUPPORTBIFF' 전시회를 열고 있다. 해당 전시회는 영화제 지지자들의 사진들로 구성된 구조물을 비롯해 지지 영상이 상영되는 모니터 등이 설치돼 있다.

방문객이 줄었을지언정 영화인들과 시민들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하나가 돼 있었다.

부산국제영화제 설경구 김의성 부산시 서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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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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