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가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듯이, 누구나 가슴에 한때 사랑했던 존재가 있습니다. 내가 사랑했던 배우, 내가 사랑했던 노래, 내가 사랑했던 감독, 내가 사랑했던 드라마…. 그런가 하면 노래 한 곡, 또는 드라마(영화) 한 편 때문에 인생이 바뀐 분들도 있을 겁니다. 첫사랑만큼이나 우리를 설레게 했던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말]
 기억은 머리 속의 공간이어서, 코브는 꿈 속의 각 층마다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다.

기억은 머리 속의 공간이어서, 코브는 꿈 속의 각 층마다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다. ⓒ 워너브러더스코리아(주)


<인셉션>을 다시 본다. 처음 봤을 땐 영상이 주는 새로움과 이야기의 전개에 주목했지만, 지금은 코브가 가지고 있는 기억에 관심이 쏠린다. 꿈속에서 코브 죽은 아내와 집에 있는 아이들의 꿈을 반복해서 꾼다. 꿈마다 아내가 여전히 살아서 다른 모습으로 변형되어 나오는 장면은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가지고 설명하지 않더라도, 코브의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게 해준다. 아이들이 고개를 돌리기 전에 깨는 꿈 역시 너무나 생생해서 꿈에서 깨어난 코브는 황망한 표정을 짓기 마련이다.

나는 이것이 모두 기억이 가지고 있는 실재성 때문이라 생각한다. 종종 기억이 어떤 물질보다 더욱 또렷하고 선명하게 나타날 때가 있다. 인셉션 속의 꿈이 그렇듯이 말이다. 기억이 강렬하면 강렬할수록 우리는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 하고, 꿈은 이 열망을 실현하기에 최적의 장소가 된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메멘토>부터 끊임없이 기억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이 영화는 기억에 대한 놀란의 대답이자 질문이며, 기억에 대한 치밀한 우화다.

시간여행에 관한 영화에서는, 주인공이 자신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혹은 자신의 잘못된 행동을 바꾸기 위해 시간여행이라는 방법을 선택한다. 주인공의 동기는 무언가를 바꾸고 바로잡기 위한 인간적인 선량함에서 온다. <인셉션>은 시간여행을 하지 않지만, 자신이 그리워하는 대상을 위해 기꺼이 꿈속으로 들어가는 방법을 선택한다. 나는 이편이 더 현실적이라고 믿는다. 되돌릴 수 없기에 기억으로 되돌아가 다시 한 번 후회의 순간을 체험하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유일하게 시간을 되돌릴 방법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코브가 되돌리고 싶어 하는 기억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아내와의 행복했던 시간이다. 누구나, 너무 행복해서 영원히 반복하고 싶은 시간이 있다. 지나쳐버렸다면 다시 돌아가 반복하고 싶은 순간이. 코브에게는 아내와의 시간이 바로 그렇다. 너무 행복해서 꿈속에서라도 다시 보고 싶은 시절은 쉽게 돌아오지 않기 마련이다. 그 순간의 감정과 상황, 그리고 수만 개의 우연히 겹쳐 만들어낸 행복한 순간은 쉽게 되돌아오지 않는다. 어쩌면 기억은 그것을 반복할 가능성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코브는 아내와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꿈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두 번째 기억은 후회의 순간이다. 아이들의 뒷모습이 반복적으로 등장하고, 절대로 고개를 돌리지 않는 녀석들을 바라보는 코브의 기대에 찬 얼굴이 화면에 잡힌다. 행복했던 순간과는 달리 이 기억은 후회를 동반한다. 이 후회는 꿈속으로 돌아가 다시 돌리고 싶은 충동으로 반복되는데, 결코 꿈속에서는 되돌릴 수 없는 걸 코브 자신도 알고 있다. 기억은 힘이 아주 세지만, 바꿀 수 없기에 무력하다. 그런데도 계속 반복해서 꿈속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그때의 기억이 너무나 짙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나는 종종 만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을 한다. 그런 사람들을 떠올리게 되는 건 물건, 상황, 공기, 기분 같이 아주 작은 것들이어서 그러한 순간에 나는 <인셉션>이라는 영화를 생각한다. 정말로 꿈속으로 들어가 볼 수만 있다면 나는 코브처럼 기꺼이 그 안으로 들어가 그리운 사람들을 만났을 것이다. <인셉션>을 다시 볼 때마다 내게 아직 남아있는 기억 할만 한 추억을 생각한다. 어쩌면 되돌릴 수 없으므로 아름다운 것일지도 모르는 기억들 말이다.

덧붙이는 글 내가 사랑한 영화 <인셉션>
인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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