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부산행> 포스터. <부산행>은 그냥 그렇고 그런 좀비 영화가 아니었다.

영화 <부산행> 포스터. ⓒ NEW


1978년생 39살짜리 신예감독 연상호가 크게 사고를 쳤다. '부산 국제 영화제'에서 <돼지의 왕>(2011)으로 이름값을 하더니, <사이비>(2013)로 '자그레브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 대상을 수상했다. 두 작품 모두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로 사회성이 강력하게 부각된 독특한 영화다. <마당을 나온 암탉> 같은 유약하고 우울한 애니메이션과는 차원이 다르다.

중학교 1학년 교실에서 벌어지는 학교폭력이 어떻게 발생하여 전개되고, 종당에 어떤 결과를 야기하는지 보여주는 수작이 <돼지의 왕>이다. 초등시절에 고만고만했던 아이들이 육체적으로 대차가 나면서 가정환경이나 성적, 담임과 맺는 관계로 인해 크고 작은 폭력이 발생하는 중1 교실. 그 적나라한 폭력성 때문에 19금 영화로 개봉된 <돼지의 왕>.

<돼지의 왕> 이후 2년 만에 연상호가 내놓은 장편 애니메이션이 <사이비>다. 인간의 영원한 구원과 정신적 안정이 아닌, 현세의 기복과 탐욕을 날카롭게 그려낸 <사이비>는 섬뜩하다. 마치 먹이사슬 구조마냥 얽히고설킨 인간관계와 욕망의 타래가 끝도 없이 작동하는 한국사회의 단면! 연상호는 그런 지점에 장기를 가진 사회 비판적인 감독이다.

이번에 그는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사영화 <부산행>으로 객석을 찾아왔다. 한국영화 사상 14번째 천만관객 신화를 만들어낸 겁없는 신예감독 연상호. 그의 날카로운 사회성과 비판의식은 <부산행>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다.

생명존중의 부재 혹은 결여: 구제역과 살처분

2010년 11월 28일 경북 안동에서 발생하여 전국으로 확산한 구제역. 구제역은 2011년 5월 21일까지 서울과 전남북,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에서 창궐하여 살처분 비용만 3조원에 달하는 피해를 가져왔다. 구제역 청정국가 유지를 명목으로 방역당국이 늑장 대응함으로써 확산한 구제역으로 2011년 초 1조 2000억 원의 예산이 구제역 방역에 소진되었다.

구제역을 바라보는 연상호의 문제의식은 다른 데 있다. 살아있는 생명체를 산 채로 땅에 묻는다는 일이 어떤 감정을 일으킬까? <부산행>에서 감독은 그것을 묻는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살처분된 소와 돼지가 350만 마리를 넘었기 때문이다. 예방백신을 맞지 않은 소와 돼지를 비닐에 싸서 땅에 생매장해야 하는 축산 농부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한국인들의 돈을 향한 욕망 때문에 생매장돼야 했던 생명들의 처절한 절규가 지금도 환청처럼 들려오는 듯하다. 이런 현상과 나란히 한국사회에 사계절 가리지 않고, 밤낮 없이 일어나는 사고가 로드 킬이다. 자연 생태계를 마구잡이로 파괴한 결과를 즐기는 인간들의 행악질로 언제든 목숨을 버려야 하는 크고 작은 생명들!

<부산행>의 문제제기는 여기서 비롯한다. 얼마나 많은 생명을 죽여야 우리는 비로소 만족할 것인가? 하는 역설을 담은 문제제기. 더 많은 돈을 위해, 더 많은 향락과 욕망을 위해서라면 뭍 생명은 죽어도 그만이라는 극악한 야만성. 그런 욕망의 꿈틀거림과 비틀림 그리고 엇갈림이 <부산행>의 사건진행 단초로 작용한다.

영화 <부산행>의 한 장면 부성애가 강조된 좀비 영화 <부산행>. 일단 흥행에 성공해보자는 식의 영화 만들기는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없다.

▲ 영화 <부산행>의 한 장면 ⓒ NEW


욕망의 도가니와 인간군상 (1): 석우와 가족

언제부턴가 한국영화와 드라마에도 가족이 중요한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3대가 공존하는 대가족이 해체되어 이제는 핵가족이란 말도 무색하게 된 시대상의 반영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낯설었던 이혼이란 말은 '혼밥'이나 '혼술'로 치환되었다. 밥 먹듯 이혼하고 물 먹듯 이혼하는 풍토에서 가정은 더 이상 최후의 보루나 안식처가 아니다.

석우(공유 분) 가족도 예외가 아니다. 이혼한 아내는 부산에 살고, 석우는 나이 든 모친에게 어린 딸 수안(김수안 분)의 양육을 맡긴다. 그는 언제나 분주한 펀드 매니저다. 팀장으로 살아가는 그에게 개인적인 시간은 깨알만큼 작다. 그래서 그는 수안의 학예회에도 가지 못한다. 아빠가 왜 언제나 그토록 분망한지 알 수 없는 수안은 부산의 엄마를 그리워한다.

엄마의 품을 그리는 딸과 가족의 물질적 안녕을 보장해야 하는 가장 석우의 욕망이 양립불가를 선언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세련되고 우아해 보이는 석우의 삶은 이미 피폐하다. 회사와 고객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는 증권사의 긴장을 체화하고 살아가는 석우. 이윤 극대화를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던져야 하는 악랄한 '개미핥기'.

욕망의 도가니와 인간군상 (2): 증권사와 개미핥기

김 대리(김창환 분)는 석우의 직속부하다. 상명하복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그들 관계는 수직적 위계질서의 정화다. 무리한 결정이라 하더라도 상부에서 내려온 지시라면 반드시 따라야 한다. 이런 점에서는 석우도 예외가 아니다. 한편으로는 고객의 수익을 올려야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중권사의 이익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 그래야 생존을 위한 돈이 나온다.

좀비들이 득시글거리는 열차 안에서 석우가 대면한 근육질 인간 상화(마동석 분)가 내뱉는 말이 인상적이다. "개미핥기구먼!" 주식시장에서 푼돈을 가지고 성공을 꿈꾸는 인총을 일컬어 부르는 용어가 개미 아닌가. 그런 개미를 길고 끈끈한 혀로 단숨에 핥아버리는 괴물이 개미핥기다. 펀드 매니저 석우를 규정하는 최적의 용어가 아닐 수 없다.

흥미로운 점은 어린 수안이 그 말을 이내 수용하고 수긍한다는 사실이다. 삼척동자도 훤히 꿰뚫고 있는 본질이 드러난다. 개미들은 반드시 잃게 되어 있다는 자명한 사실. 그것을 알고도 무작정 덤벼드는 개미들의 행렬은 오늘도 멈추지 않는다. 욕망은 근원을 알 수도 없지만, 설령 안다 하더라도 그 뿌리를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부산행>이 사회 비판적이란 점은 영화 첫머리에서도 마지막에서도 확연히 드러난다. 관객은 어째서 수많은 좀비들이 탄생했는지를 끝에 가서야 확인한다. 그것은 음험한 늪처럼 끈적거리는 욕망의 극대화에서 시작된다. 증권사의 작전으로 성장하여 성공신화를 꿈꾸는 바이오 회사의 끝 모를 욕망의 끝이 탄생시킨 괴물 바이러스.

 영화 <부산행> 스틸컷.

영화 <부산행> 스틸컷. ⓒ 레드피터


욕망의 도가니와 인간군상 (3): 용석과 초로의 자매

<부산행>이 흥미로운 것은 예기치 못한 인물들의 돌출행동이 객석의 기대치를 수직 상승시키기 때문이다. 매우 불량하고 더러우며 불길해 보이는 노숙자나, 희화적으로 그려지는 초로의 자매가 보여주는 행태는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잉태한다. 그것은 예정된 시각과 장소를 지키지 못하고 떠도는 열차의 갈지자 행보와 궤를 같이 한다.

극단적이고 이기적인 인물로 그려지는 용석(김의성 분)은 범용한 인간들의 내면에 똬리를 틀고 있는 사악함의 전형을 보여준다. 살고자 하는 그의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성싶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는 유일한 피난처이자 출구인 부산에 도달하고 싶어 한다. 삶을 향해 몸부림치는 그의 욕망에 누가 돌팔매질을 할 것인가!

문제는 용석의 선동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군중의 나약함이다. 좀비들의 무리를 뚫고 건너온 투사들의 통로를 필사적으로 막는 장면은 압권이다. 우리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어떤 무도한 선택도 용납될 수 있다는 자세. '사드'를 둘러싼 냄비돌리기가 성행하는 이 나라의 현실이 데자뷔처럼 다가오는 서늘한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영화 <부산행> 촬영 도중 이미지. 영화 <부산행>이 지난 7일,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영화 <부산행> 촬영 도중 이미지. ⓒ NEW


희망을 찾아서: 형제애는 살아있다?!

그럼에도 <부산행>은 희망적이다. 수안이 부르다만 노래 <알로하오에>가 종국에 맑게 울려 퍼지는 장면은 그럴 듯하다. (물론 우리는 왜 그들이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을 뒤로 하고 깊고 어둔 터널로 들어가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작별해야 하는 아픔을 서정적으로 드러낸 하와이의 노래 <알로하오에>.

그 상실과 고통의 이면에 자리하는 반대급부가 손에 잡힐 듯 그려진다. <부산행>에서 연상호는 부정적이고 탐욕스러우며 이기적인 인간들만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야구부 고등학생들의 천진난만함과 따사로운 우정과 사랑은 그들 나이처럼 상큼하다. 만삭의 몸으로도 형제애를 구현하는 성경(정유미 분) 역시 아름답기 그지없다.

잃어야 얻고, 주먹을 펴야 무엇인가 붙잡을 수 있다. 욕망하는 것을 버릴 때, 진정 사랑하는 것을 던질 때 우리는 전진할 수 있다. 혼란의 극에 치달아 지옥 같은 거기서 다른 희망의 빛과 대면 가능하다는 점이 <부산행>의 전갈이자 대중동원의 원동력일 것이다.

텔레비전 뉴스로 생중계되는 폭도들의 봉기와 군경의 진압장면은 1980년 서울의 봄과 얼마나 닮았는지, 가슴 시렸다. 그 인고의 세월을 지나 우리는 여기까지 왔다. 불의에 항거한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 대량 학살한 자들의 권력! 그것에 기댄 패거리 정치의 부패와 무능과 타락으로 점철된 기득권 집단의 몰염치가 '폭동진압'이란 명분으로 화면을 가득 채울 때 눈시울 뜨거웠다. 그 모든 것을 단번에 날려버릴 희망과 연대의 깃발을 꿈꾼다.

부산행 연상호 돼지의 왕 사이비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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