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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아. 우리가 에어컨을 안 쓰면 지구도 좀 덜 더울 거야. 그래서, 엄마도 이모도 에어컨을 쓰지 않는 거란다. ... (한숨) ... 그런데, 가끔은 왜 우리만 이렇게 더워야 하는가 싶다.'

세 살짜리 조카를 무릎에 앉혀 놓고 푸념을 내뱉는다. 공교롭게도 주말에 찾아간 동생의 집에도, 포항의 내 집에도 에어컨이 없다. 그동안은 지낼 만했는데, 요 며칠은 선풍기 타이머가 멈출 때마다 잠이 깬다. 낮에는 38도, 밤에도 26도를 훨씬 넘는 통에 숙면은 불가능하고, 아침에 깨면 잠옷이 땀으로 축축하다.

<만화로 보는 기후변화의 거의 모든 것>
 <만화로 보는 기후변화의 거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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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과 아프리카를 결합한 신조어인 '포프리카'에서 '에어컨 없이' 여름을 견뎌내는 것은 쉽지 않다. 환경단체 회원이기도 하니, 얇은 얼음판 위를 위태하게 걷고 있는 북극곰을 생각하면서 이대로 참아내야 하는데, 문득문득 왜 나만 더워야 하는 것인지 억울하기도 하다. 아, 너무 덥다.

지구가 더워지는 것은 확실하다. 우리나라 기후도 분명 변했다. 여전히 '정치적인 선동'이라는 논쟁이 있긴 하지만, 너무도 더운 여름의 이유를 찾기 위해서 <만화로 보는 기후변화의 거의 모든 것>을 꺼내들었다.

책 표지에 써 있는 대로, '우리가 얼마나 더 '뜨거운' 세계에 살게 될'지 궁금하여 골라든 책인데, '만화'라서 더 좋다. 많은 프랑스의 만화책이 그렇듯, 정보 전달의 목적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내용이 빡빡하긴 하지만, '만화'라는 형식은 무더위의 한가운데에서 읽어내려가기엔 분명히 매력적이다.

이야기는 지은이 필리프 스콰르조니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된다. 저자가 '지구 온난화'와 '기후변화'에 대한 다양한 전문가의 의견을 들으며 자신이 실천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고민하는 방식이다. 저자의 자리에 나를 대입하며 읽고 있자니 기후변화의 문제가 거대 담론에만 머무르지 않는 것도 좋다. 어쩐지 기후변화 이슈는 세계 주요국 지도자들의 정상회담에나 어울리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말이다.

'지구의 기온상승은 인간 때문이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미 일부분은 막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얼마나 오를까?' - p.119

저자는 기후변화를 크게 다섯 개의 꼭지로 구분하여 정리한다. 이들은 각각 '이상 기후의 폭격', '기후변화 예측 시나리오', '지구온난화-막을 수 있을까?'의 문제제기를 거쳐, '기후변화가 몰고 올 재앙들'을 통해서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경고하고, '대안에너지'를 채용함으로써 최악의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제안하고 있다. 인상적인 장면들을 옮겨 본다. 다만, 만화의 형식이기 때문에 책으로 직접 읽는 것이 더욱 더 즐거울 것이다.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은 대략 다섯 가지다. 첫 번째는 에너지 생산. 두 번째는 산업. 교통수단이 세 번째 자리를 차지한다. 다음으로 건물의 냉난방. 마지막으로 농업, 산림파괴, 산불, 폐기물 등이 있다. 마지막을 늦추려고 발버둥 쳐봤자 현실을 직시해야 할 순간은 찾아오고야 만다.' - p. 176~177

저자가 지목한 지구 온난화의 주범은 모두 다섯인데, 이들 모두 '인간'의 무분별한 이기심이 근본 원인이다. '편리'를 추구하는 인간의 모든 활동은 지구 생태계의 자정작용을 넘어서는 '오염'을 쏟아내고 있다.

<애프터 어스>(2013)라는 영화에서 지구 생태계가 인간을 향해 쏟아내던 '무차별적인 적대감'이 이해가 된다. 인간의 이기심, 기술에 대한 맹신을 이대로 둔다면 지구는 더 이상 인간에게 안전한 공간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지구의 생태계는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기후변화'의 문제가 '개인'을 넘어 '정치'의 영역인 것을 인정하고 있다. 2015년 11월에 있었던 제 21차 기후변화 회의에서 세계 각국의 지도자들은 '온실가스 감축'의 정량적인 목표치를 제시하며, 2100년까지 지구의 평균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제한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우리나라도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의 확대를 통한 전략적인 목표를 제시한 바 있지만, 구호만으로는 목표가 '실제적'으로 힘을 가지기에 갈 길이 멀다. 그런 면에서 원자력발전 중심인 우리나라의 전기에너지 정책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이 절실하지만, 연구개발의 현장에서 마주치는 신재생에너지의 확대를 위한 정책은 실체가 없이 표류하는 느낌이라 아쉽다.

'나는 사륜구동차를 볼 때마다 화가 난다. 이 차를 사는 사람들은 이륜구동차보다 이산화탄소를 4배나 더 많이 배출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굳이 이런 차를 사는 이유는 뭘까? "차 한 대 더 늘어난다고 크게 바뀌는 건 없어." "나 하나쯤이야." "내가 좋다는데." "누가 뭐라 그래." 그렇지만, 나는 또 얼마나 떳떳한가? 언제나 내 소신대로 살 수 있을까? 개인이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우리는 물론 '책임감 있는' 소비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그래서 결국 문제의 핵심을 은근슬쩍 피하게 된다.' - p. 198~199

'하지만 자발적인 포기는 사람들의 동참이 없거나, 별로 효과가 없을 때에는 지속하기 힘들다. 우리는 깊이 연결돼 있는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쉽게 끊을 수 없다. 사회는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혼자서만 다르게 살아가기는 힘들다. 혼자 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 p.275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노력이 각국 정부의 협력에 의한 전 지구적인 이슈라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한 바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정부의 책임으로 미뤄두었다고 개인의 고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저자의 사륜구동에 대한 불만이 나에게는 에어컨으로 옮겨진 것 뿐이다. 나의 첫 직장은 에어컨을 만드는 회사였다.

디자인의 미려함이나 인간의 감성을 고려한 '바람'의 설계도 중요했지만, 무엇보다 큰 고민은 '에너지 효율' 개선이었다(요즘 큰 화두인 전기요금 누진제 이슈와도 연결되는 문제이다). 하지만, 아무리 효율을 개선한다고 하더라도, 내가 시원해지기 위해서 반드시 어딘가에 '열기'를 내뱉어야만 하는 '열교환'의 메커니즘을 없앨 수는 없다. 나는 누군가를 '덥게'하면서 시원함의 편리를 누리는 것이다. 

그것때문인지, 언제부터인가 '시원한 편리함'에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 그래서, 돈으로 '편리함을 사겠다'는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저자도 언급한 것처럼 '개인의 죄책감'만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더군다나, 기후변화는 너무도 거대한 문제아닌가?

좀 더 많은 동지가 필요하다. 하지만, 편리함에 길들어진 인류를 불편한 곳으로 옮기는 것에는 엄청난 저항이 함께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책적인 힘을 동원하더라도 참여하는 개인에게 동기부여와 응원을 전하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나는 동지를 기다리다 지쳐 개인의 참여마저 포기하고 싶으니 이를 어쩐다.

'지구 온난화와 관련된 또 다른 문제는 위생이다.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기온 상승으로 심장질환과 혈관질환, 신장결석이 증가했다. 2003년 폭염 당시 프랑스의 사망자 수는 평소보다 60% 증가했다. 사망자의 3분의 1은 폭염으로 인한 고열이 사인이었다. 유엔 보고서는 또한 지구 온난화로 인한 또 다른 문제로 공기오염을 지적했다. 기온 상승에 비례해 오염물질의 화학반응은 증가한다. 대도시의 공기오염 수치는 호흡이 힘들 정도로 높게 측정된다. 기온이 상승하면 병원균의 이동도 늘어나 전염병이 발생하는 지역이 확대된다. 몇몇 병원균은 아직 면역력이 없는 거주지로 이동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전 세계 2억2,000만~2억4,000만 명의 인구가 말라리아에 걸릴 수 있다. 그리고 황열, 뎅게열, 라임병이 중위도 지방에서 빈번하게 발생할 것이다. 그런데 이 위생문제는 개발도상국에서 크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빈곤층에게 말이다. 여기서 지구 온난화는 불편등을 야기한다.' - p.268~269

이 부분은 더욱 더 충격적이었다. 지구는 이미 극심한 '경제적인 불평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경제적인 불평등만으로도 사회의 안정이 위협받고 있는데, 빈곤층의 위생관리 문제나 건강에 대한 취약점은 이보다 훨씬 더 위협적이다. 이미 우리나라도 비무장지대 부근에서는 말라리아 모기의 관리 문제로 군복무자에 대한 말라리아 위험성은 일상적이며, 작년에는 일본에서도 뎅게열이 유행하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모기에게는 여권이 필요 없으니 어디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을테고, 우리는 언제든지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원체의 공격에 노출될 수 있다는 얘기다. 게다가, 재작년 에볼라 대유행은 무분별한 자연 개발이 인류 이동의 수월함과 연계되어 증폭된 재앙이다.

자. 기후변화는 더 이상 '날씨'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연의 황폐화에 대한 문제이며, 우리의 후대가 살아가야 할 지구에 대한 문제이고, 결국, '인간의 삶'을 위협하는 우리 모두의 '공평한 문제'이다. 우리는 정말, 이대로 살아도 되는가?

며칠 전 SNS에서 인상적인 기사를 읽었다. 대한민국 사람처럼 지구의 자원을 마구잡이로 사용한다면, 우리에게 두 개 이상의 지구가 더 필요하다는 짧은 인포그래픽이었다. 지구가 하나 뿐이니, 우리는 지구 환경에 부담을 주는 행위를 지금의 1/3이상으로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해결의 방향은 너무도 명확하다, 어떻게 줄여야 하는가에 대해 막막할 뿐.

'그러면 이 책을 어떻게 끝내야 할까? 비록 시원스럽게 대답은 못하더라도, 질문을 한다는 그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질문을 위한 고민이 앞날을 생각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가 알겠는가. 내가 틀렸는지.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까.' p.478~479

매년 봄, 연례적으로 '에어컨 구매 적기'에 대해 정보를 수집하곤 한다. 더 더워지기 전에 여름을 준비해야 하는데, 환경단체의 캠페인에 등장하는 북극곰은 날이 갈수록 불쌍한 사진으로 만나게 되니, 결정을 주춤거리다보면 에어컨을 사지 못한 채 여름을 맞이한다. 결국, 몇년째 '포프리카'의 더위를 '맨몸'으로 견뎌내고 있는데, 솔직하게 말해서 이젠 자신이 없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전 본 <사피엔스>의 한 구절이 떠올라 더 무서워졌다. 생물학에 기반하여 인류의 거시 역사를 기술한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인간이 신을 발명할 때 역사는 시작되었고, 인간이 신이 될 때 역사는 끝날 것'이라고 했는데, 우리는, 기후변화로 인한 생태계의 변화와 공격을 견뎌내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늦은 걸까? 지구는 이미 너무 덥고, 여름은 아직 한참 남았다. 게다가, 우리는 이 지구를 우리의 후대에게 그대로 남겨줘야 할 '의무'가 있다. 우리가 다 써버리면, 당신의 아이들은 어디에서 살아가게 될까? 우리, 같이 고민하고 함께 행동하자.

책정보: <만화로 보는 기후변화의 거의 모든 것> 필리프 스콰르조니 지음/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다른)


만화로 보는 기후변화의 거의 모든 것

필리프 스콰르조니 지음, 해바라기 프로젝트 옮김, 안병옥 감수, 다른(2015)


태그:#오늘날의 책읽기, #기후변화, #너무더운 여름, #온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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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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