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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통해 인생을 배운다.
 시를 통해 인생을 배운다.
ⓒ 김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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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도 시인에게 시를 배운다. 마을 사람들을 대상으로 여행자의 노래 도서관과 영월예술회관이 뜻을 모아 지난 4월부터 시창작교실을 열었다. 유시인은 수업준비를 철저하게 해 오신다. 한 주에 한 명의 시인을 선정해 그의 대표적인 시를 5, 6편 뽑아서 시집 표지와 함께 복사해 나누어 주신다.

회원들은 돌아가면서 시를 낭독하고 느낌이나 생각을 나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나 질문이 있으면 유 시인은 기꺼이 이야기 보따리를 꺼낸다. 해박한 지식과 삶을 바라보는 태도, 은유와 비유를 쓰는 법 등 여러가지를 배우지만 가장 재미있는 것은 작가와 직접 나눈 이야기, 그분들과 얽힌 에피소드, 시인의 성격 등 교과서나 책에는 드러나지 않는 아기자기한 사적인 이야기들을 할 때다.

덕분에 시를 달나라 이야기 쯤으로 여긴 예전과 달리 내가 아는 사람이나 친한 사람이 쓴 글을 읽는 것 같아 훨씬 가깝게 느껴진다. 3개월 반 동안 배운 김소월, 박목월, 백석, 서정주, 한용운, 김수영, 신경림, 정현종, 이시영, 서정춘, 김명인의 시는 그래서 더 특별하다.

시인들의 작품 감상 시간이 끝나면 문장 연습을 한다. 바른 문장으로 글을 쓰는 게 기본이 되어야 제대로 쓸 수 있다는 게 유 시인의 지론. 배상복이 쓴 <문장기술>에 나오는 예문을 바탕으로 한 주에 하나씩 중복, 군더더기, 의미 중복, 겹말 없애기, 주어와 서술어의 호응, 논리적 호응, 수식어는 수식되는 말 가까이에 두는 법을 배운다.

그 다음에는 회원들의 자작시를 합평(같이 모여 평함)한다. 일주일 전에 미리 나누어 주고 읽고 생각해 오게 한 다음 다 같이 모여서 시의 느낌이나 잘못된 부분을 이야기한다. 제일 기대되고 할 말이 많은 시간이다.

내 시가 나올 때는 부끄러워서 고개를 푹 숙이고 필기하는 척 하지만 남의 시가 나오면 신나게 비평한다. 내 것은 잘 안 보이는 데 남의 것은 왜 그렇게 잘 보이는지. 아이들이 해 온 숙제를 검사하듯 볼펜으로 쭉쭉 긋고 느낀 점도 쓴다. 서로에게 아픈 시간이지만 서로에게 도움이 되리라. 더 좋은 글이 되도록 노력하겠지.

시 공부를 하면서 배운 게 많다. 눈썹과 눈 사이의 눈덩이가 위로 봉긋 솟으며 항상 '허허허' '하하하' '흐흐흐' 웃는 유 시인의 여유와 천천히 말하고 듣는 걸 배웠다. 세상을 보는 눈, 자연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교사인 나는 우리 반에 유난히 속상하게 하거나 말썽 피우는 아이가 있으면 밤에 잠도 못 자고 힘들어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아이와 나를 밀착 시키며 내 문제로 괴로워했는데 이제는 눈 한 번 질끈 감았다 뜨고 시 한 편을 읽는다. 그러면 신기하게 속이 시원해진다.

"세상이 어지러울수록 각각의 사람들은 자신을 돌아보며 당당함을 잃지 말아야 한다. 힘이 약해 잡아 먹힐지라도 삶과 목숨을 구걸하지 말아야 한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개개의 존엄함을 스스로 지켜내야 한다. 그 무엇의 노예도 되지 말아야 한다. 돈이 많건 적건, 학벌이 있건 없건, 배웠던 배우지 못했던, 여자건 남자건, 어른이건 아이건, 권력이 작건 크건 대등하며 위아래가 있을 수 없다." - <수염기르기> 유승도 책 머리에서

당당함과 존엄함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서 시 만한 것이 없다. 장롱 맨 위, 끈으로 묶여있던 시집들이 책상 가까이로 나오면서 내 인생도 변했다.  남을 통해 나를 바로 바라보게 되었으니까. 그 많은 시인들이 내 편이 되어 속삭여주고 있으니까. '나도 그랬단다. 힘내라' 하고 고즈넉하게 바라보고 격려해 주니까. 더운 여름, 우리 모두 시를 읽자.

매주 유승도 시인에게 시를 배운다.
 매주 유승도 시인에게 시를 배운다.
ⓒ 김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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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강원도민일보 송고



태그:#영월, #유승도,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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