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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도어 수리작업 도중 사망한 19세 청년 비정규직노동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사고현장에 국화꽃을 놓거나, 추모쪽지를 붙이며 고인을 추모하고 근본적인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스크린도어 수리작업 도중 사망한 19세 청년 비정규직노동자를 추모하는 시민들이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구의역 사고현장에 국화꽃을 놓거나, 추모쪽지를 붙이며 고인을 추모하고 근본적인 대책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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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청년이 안타깝게도 스크린도어 수리 중 열차에 치여 사망..."

가슴 아픈 일이 또 일어났습니다. 이번엔 구의역 9-4번 승강장이었습니다. 월급 140만 원을 받아 100만 원의 적금을 붓던 사회초년생 열정페이 청년의 가방 속엔 일에 쫓겨 먹지 못한 컵라면 하나가 들어 있었다는 슬픈 이야기였습니다.

'컵라면 하나'. 문득 통신 비정규직노동자로 발을 처음 들여 놓았던 10여 년 전이 생각났습니다. 저 역시 그러했습니다. 휴식이라고 해야 이동 중에 좁디 좁은 차에서 잠시 한숨 고르는 정도. 점심도 라면 하나 먹을 시간이 없어 굶어야 했던 그때, 그런데 지금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은 구의역 청년노동자의 경우처럼 변함없이 힘든 현실이 눈물겹습니다.

구의역 청년노동자의 꿈은 무엇이었을까요. 누가 내게 왜 노동조합에 가입했냐고 물어보면 저는 "저녁에 야구 보고 싶어서요"라고 말합니다. 하루에 10시간 넘는 장시간 노동, 토요일 일요일조차도 일을 해야 하는 휴식 없는 삶, 언제부턴가 TV에서 '과로사'라는 말이 나오면 제 미래인 듯 두려워 채널을 돌려 버리는 삶. 그런 현실로부터 벗어나 최소한의 '저녁이 있는 삶', '인간다운 삶'을 얻어봐야겠다는 절실함이 노조로 향하게 했습니다.

인간의 삶을 포기해야 했던 순간들

지난해 1월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SK 서린빌딩에서 단체교섭과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점거농성을 벌인 희망연대노조 소속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노동조합 조합원들이 SK사측과 노조 지도부와의 면담이 시작되자 농성을 풀고 밖으로 나오며 경찰에 전원 연행되는 모습.
▲ 경찰에 연행되는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 조합원 지난해 1월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SK 서린빌딩에서 단체교섭과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점거농성을 벌인 희망연대노조 소속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노동조합 조합원들이 SK사측과 노조 지도부와의 면담이 시작되자 농성을 풀고 밖으로 나오며 경찰에 전원 연행되는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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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시작한 싸움 끝에 해고도 당해 보았습니다. 2014년 한겨울에는 파업에 나서보기도 했습니다. 을지로 티타워, 종로 서린 빌딩 앞 노상 등 한겨울에 차디찬 바닥에서 눈비를 맞으며 노숙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3박 4일 동안 오체투지로 땅을 기어 서울 시내를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교섭을 요구하며 들어간 본사 건물에서 조합원 221명이 한꺼번에 연행되고 일부는 구속당하기도 했습니다. 이럴 순 없다고 마지막으로 고공농성을 선택하고 서울 명동 중앙우체국 앞 광고탑 위로 자원해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인간의 삶을 포기해야 했던 그 숱한 투쟁의 시간들이 지금 생각해도 눈물겹습니다.

지난해 2월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연대팀장 인천계양지회 장연의(왼쪽)씨가  LG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 조직부장 서광주지회 강세웅 조합원과 고공농성을 하던 모습.
▲ 시민들 격려에 답례인사하는 고공농성자 지난해 2월 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연대팀장 인천계양지회 장연의(왼쪽)씨가 LG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 조직부장 서광주지회 강세웅 조합원과 고공농성을 하던 모습.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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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공농성 당시 첫날부터 찾아온 매서운 추위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나는 광고탑 안 조그만 틈으로 다람쥐처럼 숨어 들어가 바람이라도 피할 수 있었지만 저를 지키기 위해 그 추운 겨울을 차가운 길바닥에서 맨몸으로 버텨야 했던 수많은 동료들. 또 우리를 함께 지키기 위해 찾아 주신 수많은 시민들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고공농성 중에 했던 인터뷰 하나가 생각납니다. 내려가면 뭘 제일 하고 싶냐는 기자의 물음이었습니다. 생각할 것도 없이 '내려가면 제일 먼저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따뜻한 방에서 한숨 자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마 이 바람은 저뿐만 아니라 거리에서, 고공에서 장기간 투쟁을 하는 이 땅의 수많은 노동자들의 꿈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 마음으로 비정규노동자의 집 '꿀잠'을 만드는 데 함께 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런 뜻깊은 일을 같이 할 자격과 능력이 되나 망설이기도 했지만, 이 집이 저처럼 다시 싸워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민중들에게 소중한 공간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이 집을 통해 비슷한 처지에 있는 비정규노동자들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교류하며, 연대의 기운을 높여나갈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짧은 경험이지만 저와 제 동료들이 통신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싸우며 얻게 된 소중한 경험도 함께 나누는 집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보급창이나 후방기지처럼 불의에 맞서는 각종 투쟁의 현장에서 지친 이들이 잠시 잠깐의 휴식과 '꿀잠'을 통해 기운을 회복할 수 있는 집. 다른 세상에 대한 꿈을 함께 꾸고 나누는 집. 그런 아름다운 '비정규노동자의 집'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좀 더 많은 이들의 힘과 연대가 필요합니다. 이 집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또 다른 아름다운 연대 운동의 현장이 되기를 꿈꿔봅니다. 큰 주춧돌이 되어주셔도 좋고, 작은 벽돌 한 장이 되어주셔도 좋습니다. 부엌의 밥 공기 하나가 되주셔도 좋고, 마당의 꽃 한 송이가 되어주셔도 좋습니다. 부디 이 집이 우리 사회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꿈의 집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그 첫걸음을 떼는 창립대회를 6월 11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경향신문사 9층 강당에서 갖게 됩니다. 함께 지켜봐주시고, 걸음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비정규노동자의 집으로 초대합니다.
 비정규노동자의 집으로 초대합니다.
ⓒ 희망연대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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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꿀잠, #비정규 노동자, #고공농성, #구의역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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