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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폭발하는 단톡방. 강남역 여성 살인 사건에 대한 경찰의 수사 발표로 열띤 토론이 이어지는 가운데, 유독 도드라지는 말이 있었다.

"이래서 정신병자가 나돌아다니게 놔두면 안 돼. 너네는 자식들을 그 사람한테 맡길 수 있냐? 아니잖아."

'조현병으로 인한 묻지마 범죄'. 여성혐오냐 아니냐의 논란 속에서도 피의자의 병력은 분명한 원인으로 지목됐다. 피의자는 지난 3월 말 가출한 이후로 약물 복용을 중단했다고 전해진다. 이 때문에 조현병 증상이 악화됐을 것이란 추측이 흘러나왔다. 여기저기에서 '조현증 환자를 강제 입원시켜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2

공용화장실에 대한 우려도 샘솟고 있다. 관리가 부실한 공중화장실부터 애초에 남녀가 함께 화장실을 쓴다는 게 비상식적이라는 지적도 많다. 우범지역이 된 공용화장실을 빨리 없애고 남녀 화장실로 개선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좀 아쉽기는 해. 사실 장소가 진짜 문제였을까? 세상에는 자신을 여자로 인식하는 남자, 남자로 인식하는 여자, 트랜스젠더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에게 공용화장실이 필요하다고 말, 꺼내볼 수나 있으려나."

지인의 한숨은 소리조차 작았다. 어쩌다 양성의 대립이 첨예해진 지금 공간 문제를 해결하자는 의견을 힘을 얻고 있다. 실제로 공용화장실에서 상대편으로 인해 남성이든 여성이든 곤혹스러웠던 적이 많았다. 불편을 호소하는 다수의 말 앞에 소수의 목청은 침묵할 뿐이다.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가난한 사람, 지체장애인, 성소수자가 대표적이다. 그나마 가끔 길을 가다가 폐지를 줍는 이들을 본다. 지하철을 탄 발달장애인을 본다. SNS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공개한 유명인을 본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 일상에 없거나 굉장히 예외적인 존재로 치부된다. 이 나라가 말 그대로 '클린'해서일까. 그들은 숨소리 죽인 채 공간적, 의식적, 사회적 분리함 속에 있다.

반성한다. 위의 두 대화에서 나는 참여자였지만 더불어 방관자였다. 여성을 동등한 인격으로 치부하지 않고 여성성을 격하하는 '여성혐오'. 그 논란에 파묻혀 내가 간과했던 것들이 있다. 누차 잘 싸워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그걸 실천하는 게, 어느 누구도 버리지 않는 싸움을 한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새삼 깨닫는다.

우리나라에서 정신병원 입원자의 자발적 입원은 24.1%(2012)에 불과하다. 입원환자 10명 중 7명이 폐쇄병동에 격리된다. 현재 OECD 회원국 중 한국만 정신병원 병상 수가 큰 폭으로 늘고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인간답게 살 환경, 치료를 제대로 받고 타인과 교류해도 되는 환경이지만 사회는 그들을 기꺼이 곁에 두고 감당할 맘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정신병원 입원자의 자발적 입원은 24.1%(2012)에 불과하다. 입원환자 10명 중 7명이 폐쇄병동에 격리된다. 현재 OECD 회원국 중 한국만 정신병원 병상 수가 큰 폭으로 늘고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인간답게 살 환경, 치료를 제대로 받고 타인과 교류해도 되는 환경이지만 사회는 그들을 기꺼이 곁에 두고 감당할 맘이 없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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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강신명 경찰청장이 경찰관이 정신질환으로 타인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을 발견하면 정신병원을 거쳐 지자체에 신청해 '행정입원' 조치하도록 하겠다"고 말하자 장애인단체가 거세게 반발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정신병원 입원자의 자발적 입원은 24.1%(2012)에 불과하다. 입원환자 10명 중 7명이 폐쇄병동에 격리된다. 현재 OECD 회원국 중 한국만 정신병원 병상 수가 큰 폭으로 늘고 있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인간답게 살 환경, 치료를 제대로 받고 타인과 교류해도 되는 환경이지만 사회는 그들을 기꺼이 곁에 두고 감당할 맘이 없다.

오히려 정신질환 환자는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다는 얕은 짐작으로 그들을 차별하고 있다. 대검찰청의 2011년 범죄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정신질환 장애인의 범죄율은 비장애인 범죄율의 1/10 수준이다. 섬세한 접근 없이 해결책을 내놓는 게 얼마나 차별적이고, 혐오를 조장하며, 폭력적인지 알 수 있다.

강남역 밤길 시위를 하며 여성혐오를 막고 모두에게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는 구호는 그 자체로 건강하다. 설령 5월 17일에 발생한 범죄가 조현병 악화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고 해도 이후 벌어진 일련의 사태들, 희생된 피해자에게 달린 '김치녀'라는 악플이나 추모 자리를 힐난한 사람들은 여성혐오의 민낯을 들췄다. 안타까움은 소중한 것을 위해 다른 소중한 것을 억누르는 듯한 양태에서 기인한다.

양성평등은 중요하며 무엇보다 지금, 이 시점에선 여성 혐오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하지만 그 와중에 누군가는 정신질환 장애인이 위험하다며 사회에서 격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젠더 이분법 앞에 명함도 못 내미는 성소수자들은 논외의 대상이다.

여기에 거론한 사례가 결코 일반적이지 않다고 해도 이런 발언이 나올 수 있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지금 여성의 인권을 위해 부르짖으며 어디선가 장애인의 인권을, 성소수자의 인권을, 피해자의 인권을 간과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지 않은가. 스스로를 그때그때 돌아봐야 할 일이다.

22일은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피해 여성을 애도하기 위해 강남역 10번 출구에 마련한 추모 장소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22일은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 피해 여성을 애도하기 위해 강남역 10번 출구에 마련한 추모 장소를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 김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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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평등에서 성 평등으로, 나아가 평등으로 진일보해야 한다. 인권은 절대 교환 가능한 가치가 아니다. 한 인권을 소중히 하고 이를 지키기 위해선 다른 인권 또한 함께 고려하며 함께 나아가야 한다. 끊이지 않는 설전과 부딪힘 속에서 우리는 하나를 얻고 하나를 잃는 식으로 인권을 '소비'하고 있진 않은가.

그렇다면 그런 소비주의에 익숙해진 우리는 그야말로 혐오사회 속 서발턴(subaltern, 하위주체)이 아닌가. 우리 모두가 '당사자'라면 또한 공감을 받고 싶은 만큼 공감하며, 서로를 거둬들여 함께 싸워야 하지 않을까.

밥그릇은 정해져 있고 누군가 갈라 먹어야 한다는 식으로 인권을 다루지 않았으면 한다. 다수의 목소리를 담는 게 민주주의의 원형이었다면 이제 다양성을 담고, 사회적 약자의 상황도 절대 허투루 넘기지 않는 게 진화한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당장 내가 힘들고 지치고 내 몫이 없다고 느끼는 걸 나와 비슷한 처지의 동료에게서 발견할 것인가. 우리는 밥그릇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다. 사회를 가꿔나가고 의식과 구조에 맞서는 일에 나와 너는 다르면서도 다르지 않다.

개개인을 포착하고 놓치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다르다는 데서 기꺼울 수 있는, 더 가까워질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태그:#여성혐오, #성평등, #평등, #장애인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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