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 수 없이 많은 독립운동 지도자들이 있었다. 위 사진은 그중에 극히 일부인 독립운동가들의 사진이다. 이 사진들을 보면서 지금부터 5분 동안 이분들이 누구인지, 어떤 활동을 하신 분인지 한번 맞추어 보자.

스무 명의 독립운동 지도자 중 과연 얼굴만 보고 정확하게 이름을 맞힐 수 있는 인물은 몇이나 될까? 그리고 과연 우리 국민 중의 몇 명이 이 스무 명의 삶을 정확하게 알고 있을까?

우리는 독립운동가의 삶을 잘 모른다

 독립운동 지도자들

독립운동 지도자들 ⓒ 자료 사진


맨 윗줄은 임시정부 주석 백범 김구, 의열단 단장 약산 김원봉, 흥사단의 도산 안창호 선생이고, 두 번째 줄은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안중근 의사, 훙커우 공원에 도시락 폭탄을 던진 윤봉길 의사, 종로 경찰서를 저격한 김상옥 의사 , 일본 왕에게 폭탄 투척을 시도한 이봉창 의사다.

세 번째 줄은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진 나석주 열사, 조선 총독에게 폭탄을 던진 강우규 열사, 신흥무관학교를 세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화신 우당 이회영, 동학 교주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손병희 선생, 네 번째 줄은 대표적 불교 독립운동가인 만해 한용운, 청산리 전투의 영웅 김좌진 장군,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 그리고 광복군사령관을 지낸 지청천 장군이다. 다섯 번째 줄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다는 말로 유명한 단재 신채호 선생, 동학농민운동의 지도자 녹두장군 전봉준, 그리고 헤이그 특사 3인인 이준, 이상설, 이위종 의사다.

우리 솔직히 말하자. 역사학도, 그것도 근현대사, 특히 독립운동사를 전공하지 않은 국민 중에서 이 20분의 이름을 정확하게 맞힐 수 있는 국민은 단언컨대 거의 없다. 가장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고3 수험생, 그것도 국사나 근현대사를 선택한 학생들에게도 어려운 과제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독립운동 지도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었다. 독립운동가라고 이름을 붙이기 민망할 수 있지만 3.1 운동과 6.10 운동 등에 참가한 수많은 백성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분들의 희생 덕에 독립을 할 수 있었고, (비록 '헬조선'이라 불릴망정) 오늘날 이만큼이라도 누리며 독립된 나라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얼마나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얼굴을 알고 있나? 아니, 그분들의 지난한 삶에 대해서 알고 있기는 한가? 여기서 우리는 다른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분들의 얼굴을 누구까지, 어디까지 외워야 하나?

한 번 더 따져보자. 유관순 열사와 더불어 우리가 기억해야 하지만 얼굴조차, 아니 이름조차 잘 모르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있었다. 남자현, 이화림, 윤희순, 안경신, 박차정... 얼굴은커녕 이름도 생소한 이들은 여성 독립운동가들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우리는 그들의 이름도 잘 모른다. 이중삼중의 어려움에도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이들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얼굴은커녕 이름조차 잘 모르는 우리는 설현, 지민을 손가락질 할 수 있는가?

정작 우리가, 우리 아이들이 또 다른 설현은 아닌가?

 채널 AOA 방송 캡처

채널 AOA 방송 캡처 ⓒ 온스타일


나는 설현이 누구인지, 지민이 누구인지 모른다. AOA라는 걸그룹의 20대 초반 멤버들인 모양이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AOA인지 하는 걸그룹이 있는지조차 잘 모른다. 그런데, 이들이 어느 오락프로에서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몰라본 것 때문에 '역적', '매국노' 취급을 당하고 있다.

우리 여기서 또 한 번 솔직해지자. 독립운동가들의 이름과 얼굴, 그리고 그들의 삶을 기억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자신있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정작 우리들과 우리 아이들이 또 다른 설현이고, 또 다른 지민은 아닌가 반성할 일이다.

더 나아가, 그 수많은 설현과 지민을 만든 어른들(즉, 그들에게 독립운동의 역사를 제대로 가르쳐 주지 못한 어른들), 또 사람의 이름을 외우고, 그 사람이 쓴 책의 제목을 외우고, 그리고 어떤 사건이 일어난 연도를 외우도록 하여 그걸 제대로 암기하지 못한 사람들을 손가락질 하는 것을 역사 교육으로 착각해온 기성세대들이 반성해야 할 일은 아닌가?

지금 우리 언론들과 일부 네티즌들이 설현과 지민에게 요구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역사 교육의 산물이다. 우리는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성립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이유를 깨닫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무조건 조선이 건국된 '1392년'만을 외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식으로 교육 받았기 때문이다.

6.25 한국전쟁이 왜 일어났으며, 그것으로부터 무엇을 배울 것인가가 아니라 한국전쟁 발발 연도가 1945년인지, 1950년인지가 중요하다는 식이다. 요즘 세대들이 한국전쟁이 몇 년도에 일어났는지도 모른다고 학생들과 우리 교육 수준을 한탄하는 것과 같은 꼴이다. '암기'만 시키는 것이 올바른 교육 방식이라고 보기 힘들 것이다.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 과연 따라 배워야 할 공인인가?

AOA, 눈물바다만큼 성숙해지는 계기! 걸그룹 AOA의 설현이 16일 오후 서울 광장동의 한 공연장에서 열린 네 번째 미니앨범 <굿 럭> 발매 쇼케이스에서 한 프로그램에서 보여줬던 역사지식에 대해 사과를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걸그룹 AOA의 설현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광장동의 한 공연장에서 열린 네 번째 미니앨범 <굿 럭> 발매 쇼케이스에서 한 프로그램에서 보여줬던 역사지식에 대해 사과를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이정민


AOA, 눈물바다만큼 성숙해지는 계기! 걸그룹 AOA의 지민이 16일 오후 서울 광장동의 한 공연장에서 열린 네 번째 미니앨범 <굿 럭> 발매 쇼케이스에서 한 프로그램에서 보여줬던 역사지식에 대해 사과를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걸그룹 AOA의 지민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광장동의 한 공연장에서 열린 네 번째 미니앨범 <굿 럭> 발매 쇼케이스에서 한 프로그램에서 보여줬던 역사지식에 대해 사과를 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 이정민


안중근 의사의 사진을 구별하지 못했다고 무식한 것을 넘어서 대역 죄인 취급을 받고, 음주 운전을 했다고 일반인보다 몇 배 더 손가락질을 받는 연예인들과 운동선수들이 행동은 물론 지식에서도 타의 모범을 되어야 하는 공인이 맞나?

아니라고 본다. 물론 잘했다고 칭찬을 받을 일은 아닌 것은 명백하다. 요즘 일본의 어느 전범 기업이 거액의 광고 출연을 제안하였는데 이를 거부하여 일명 '역사 개념녀'로 칭송이 자자한 송혜교에게 위의 독립운동 지도자들의 사진을 보여주고 이름을 맞히게 해보자. 과연 설현이나 지민과 많이 다를까? 아마 별로 다르지 않을 것이다.

우리나라 운동선수들과 걸그룹, 연예인들이 어떻게 지금의 그 자리에 올랐나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들은 교실에서, 교과서를 통해, 교사들에게 배워서 그만큼 성장한 것이 아니다.

다른 보통의 친구들이 교실에서 수업을 받을 때 연습실에서 눈물을 쏟았고, 뙤약볕 운동장에서 땀을 흘렸다. 그 고통스러운 과정을 통하여 지금의 그 자리에 올라선 연예인들과 운동선수들에게 보통 사람들과 같은, 아니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을 가지도록 요구하는 것은 정말 '오버'다.

그들은 행동과 지식에서 사람들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공인이 아니라 노래와 춤을 통하여, 그리고 스포츠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엔터테이너이다. 물론, 그들이 타의 모범이 되는 역사의식과 사회의식을 가지면 금상첨화겠지만 모두에게 그것을 요구할 수는 없다.

곧 5.18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이다. 우리가 5.18을 맞아 기억해야 하는 것은 마지막 계엄군 윤상원 열사의 사진과 이름이 아닐 것이다. 5.18이 왜 벌어지게 되었는지, 그리고 5.18 영령들이 계엄군의 총칼 앞에서 죽음으로 지키려고 했던 민주주의의 소중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잊지 않으려고 하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기억해야 하는 가치가 아닐까?

광주의 마지막 시민군 윤상원 열사의 사진과 이름을 외우게 하고, 그것을 몰랐다고 손가락질하는 것이 진정한 5.18 교육이 아닌 것처럼, 독립운동 투사들의 사진을 보여주고 외우게 하는 것이 진정한 역사 교육은 아닐 것이다.

이제 그들은 그냥 연예인으로 돌아가게 해 주자. 그들은 역사학도가 아니라 춤과 노래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엔터테이너다. 그리고 진정한 역사 교육은 위인의 이름과 사진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했던 일의 의미를 잊지 않고 기억하게 하는 것이다.

설현 안중근 국정교과서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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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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