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 우리 사회에서 이 단어는 절대 언어다. 소 팔아 자식 대학에 보내던 그 시절부터 지금까지, 가족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기본 단위가 된 시간 동안 부모는 자식의 삶을 보호해 주는 절대적 존재로 자리매김해 왔다. 하여, 여전히  TV 속 여러 프로그램들은 가족애와 효, 내리 사랑의 지극함을 찬양한다.

그런 가운데 성공을 향해 달려온 변호사 박태석(이성민 분)의 알츠하이머 투병기를 다루고 있는 tvN 금토드라마<기억>은 그와 또 다른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우리 사회 아버지를 복기한다.

박태석, 또 다시 아들 잃을 위기에 처하다

 기억

기억 ⓒ tvn


<기억> 속 박태석은 이미 아버지의 자격을 한번 잃은 아버지다. 전처 나은선(박진희 분)과의 결혼 생활 동안 유치원생이었던 여섯 살 아들 동우를 뺑소니 사고로 잃었다. 그 후로 한참 동안 아들을 죽인 범인을 찾아 헤맸지만 범인의 행방은 오리무중이었고, 그는 마치 그 아들의 죽음을 잊기라도 한 듯, 전처와 이혼 이후 동우 아버지로 살던 그 시절과는 180도 다른 삶을 살아왔다.

그랬던 그가, 태선 로펌 최고 변호사로 승승장구하던 박태석이 알츠하이머란 진단을 받고, 기억 속에 묻었던 동우는 자꾸 그에게 되살아난다. 그리고 재혼해 얻은 지금의 아들 정우에게도 위기가 생긴다. 정우는 편의점에서 술을 훔치는가 하면 친구의 시계를 훔치거나 친구의 머리를 돌로 치는 등 일탈을 한다. 아들을 '우리 정우'라 부르지만 정작 자신의 성공 가도를 달리느라 가족은 뒷전으로 밀쳐둔 채, 아이들의 일을 아내에게 맡겨 두었던 박태석. 그는 도둑 누명을 썼다고 호소하는 아들의 애원에도 '변호사'로서 객관성을 놓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부모 누구에게도 자신의 마음을 내보이지 못했던 아들 정우가 사라지고 만다.

정우를 찾아 헤매던 박태석은 다시 한 번 자신이 큰아들 동우때처럼 또 한 번 아들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뺑소니 사고로 순식간에 놓쳐버린 아이. 은선은 그저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어찌할 수 없었던 사고라는 박태석의 말을 거부했다. 은선은 동우가 죽은 건 아빠인 태석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고, 엄마인 자신이 사법 시험을 준비한답시고 아이를 방치하지 않았더라면 죽지 않았을 거라고 말한다. 과거 은선의 자책 어린 목소리는 지금의 박태석 귓전에 울린다. 그리고 그가 달려간 곳엔, 홀로 빌딩 옥상에 올라선 정우의 외면당한 진실이 있다.

아들을 구하려 아들의 목을 조이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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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 tvn


박태석의 이야기 한편으로 또 다른 아버지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바로 박태석의 아들 동우를 죽인 범인인 이승호(이회현 분)의 아버지 이찬무(전노민 분)다. 아들이 박태석의 아들 동우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버지 이찬무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아들의 범죄를 덮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마다치 않았다. 그의 말대로 "수치를 느낄 사이도 없이". 아직 드러나진 않았지만 동우 아버지인 박태석이 그를 형으로 부르며 태선 로펌에 합류한 것도 동우 사건과 관련이 있음은 분명하다.

이찬무는 15년 전 동우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려 하자 아들 승호를 다그치는 한편, 발 빠르게 현장 CCTV를 삭제하는 등 범죄 숨기기에 급급하다. 그런 이찬무의 모습은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접하는 각종 가족 비리 사건과 그 속에서 보이는 우리 사회 지도층의 추악한 모습 그대로다. 하지만 아버지 이찬무가 아들 승호를 닥달하고 감싸려 들면 들수록 아들 승호는 흐트러진다. 그는 아버지에게 말한다. 처음 자신이 사고를 쳤던 그때 진실을 알렸어야 했다고. 이찬무는 아들에게 "과거에 매여 살지 말고 잊으라" 하지만, 승호는 "자신에게는 오직 그날 그 사건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매듭지어지지 않은 사건, 아버지가 부정으로 덮은 사건은 아들 승호의 미래를 빼앗아 갔다.

박태석이 알츠하이머에 걸리지 않았다면, 그래서 자꾸 떠오르는 동우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복기하지 않았다면, 어쩌면 박태석도 다르지 않았을지 모른다. 이제 막 세상에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그도, 이찬무처럼 아들의 진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 아들의 사건을 덮으려 전전긍긍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병에 걸려 불가피하게 과거를 돌아보게 된 그는 아들의 진심을 헤아려 아들을 구한다.

정말 아들을 위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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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 tvn


6회까지 방송된 <기억>을 통해 그려진 두 아버지의 이야기는 우리 사회 아버지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우리 사회 아버지들은, 아니 어른들은, 드라마 속 이찬무의 행동을 '부모 된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설령 어긋난 방법이라 한들, 자식의 입신양명을 위해 자식이 가는 길에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이 부모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전쟁과 산업화의 속도전 속에서 '생존'해야 했던 우리네의 생존 본능이기도 했다.

<기억>은 알츠하이머라는 병을 통해 최루성 가족사를 쓰는 대신, 회한의 복기를 선택한다. 박태석의 알츠하이머를 통해 그렇게 살아온 아버지들의 발을 잡아채고, 당신들이 본능적으로 살아온 그 부모 노릇이 오늘의 우리 사회를 어떻게 만들었냐고 반문한다. 아들들을 가해자로, 피해자로, 심지어 죽음으로 몰고 가지 않았냐고 묻는 것이다. 두 아버지 박태석과 이찬무의 얼굴을 세세히 들여다보며 함께 이 시대의 아버지, '어른'들의 자리를 생각해 보길 권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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