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우, 고 장진영 주연의 영화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포스터

김승우, 고 장진영 주연의 영화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포스터 ⓒ (주)씨네마서비스


'가벼움'이라는 단어의 선택은 적절했다. 가볍지 않은 것을 가볍다고 표현한 것은 영화 전반의 내용을 더 깊이 있게 전하기에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영화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2006)을 접했던 건 언니의 추천 때문이었다. 포스터만 봤을 땐 가벼운 로맨틱코미디류의 영화로 생각을 해서 그다지 흥미를 갖지 않았다. 그냥 "심심할 때 볼게"하는 정도였다. 그래서 정말 아무 것도 할 만한 게 없었을 때 보게 됐다.

보고 난 후 느낌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극 중 영운(김승우 분)때문이었다. 영운은 절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연아(고 장진영 분)를 향한 그의 마음은 시작은 가벼웠을지 모른다. 그의 가게에 찾아온 젊고 예쁜 술집 여자. 애인이 있는 그가 마음에 든다며 당돌하게 대시해오는 그녀의 발랄한 모습에 어떤 남자가 넘어가지 않을 수 있을까. 영운에게 그녀의 존재는 처음엔 '예쁜 술집 여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가벼운 사람이라고 여긴 사람이었고 그 관계 또한 철저히 가벼웠다.

하지만 영운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연아의 마음은 그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자신이 일하는 술집 실장에게 맞고 있는 것을 알게 된 영운이 눈이 뒤집혀 칼을 들고 난동을 부리는 모습을 보거나, 어머니(선우용여 분)에게 자신의 존재를 들키고 괴로워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도 서운함을 표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요구를 달래듯 들어줬다. 그렇게 연아의 사랑은 꾸밈없이 솔직했고 저울 잴 필요 없이 완전했다.

그래서 영운은 점차 불편해졌을 것이다. 그녀와 함께 있는 순간은 어떤 것에도 제약받지 않고 편하게 웃고 떠들고 즐길 수 있었지만, 현실 세계로 돌아오면 연아의 존재가 부담스러워졌다. 영운은 그녀를 자신의 세상에 들여놓을 수 없었다. 돌아온 현실에는 영운의 엄마가 있었고, 오래된 연인인 수경이 있을 뿐이었다. 연아의 세상에는 영운이 전부였지만 말이다.

영운에게 연아는 때론 족쇄였고, 자신의 무능함을 드러내는 잔소리였다. 그리고 연아의 진실한 사랑은 그가 느낄 수 있는 안식처 같기도 했을 것이다. 연아는 영운에게 슈퍼맨이자 여자였고, 그의 밑바닥이자 그 자체였다. 연아를 통해 자꾸만 자신의 추악함을 보게 되는 영운은 그녀를 온전히 안아 사랑할 수도, 매몰차게 내칠 수도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필요할 땐 찾다가 귀찮아질 땐 그녀를 나 몰라라 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연아는 영운을 진정으로 사랑하지만, 영운의 나약함과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의 벽을 느끼고 떠난다. 그럼에도 영운은 그녀를 찾아 시골까지 내려온다. 그것도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눈물만을 흘리며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그녀를 바라보기만 한다.

 연아(장진영 분)의 세상에는 영운(김승우 분)이 전부였지만, 영운의 현실 세계에는 연아의 자리가 없었다.

연아(장진영 분)의 세상에는 영운(김승우 분)이 전부였지만, 영운의 현실 세계에는 연아의 자리가 없었다. ⓒ 영화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 포스터


둘 사이의 그 미묘한 거리가 이 영화의 '가벼움'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쉽게 다가갈 수도 쉽게 멀어질 수도 없는 그들만의 거리를 '가벼움'이라 말한 감독에게 있어 연애란 가벼운 질소 봉지 안에 들어있는 고체 덩어리의 과자 같은 것이었을까.

몇 가지 불편했던 것은 이 영화에서도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여자의 나약함, 실패한 입장에서의 여자라는 측면이었다. 애매하게 유지되던 둘 사이의 거리에서 모든 걸 감싸 안아야 하는 것은 연아, 여자였다. 결코 영운보다 나약하거나 무책임하지 않은 연아가 모든 상처를 또 안고 가야 했다.

연애란 뭘까. 그 사람의 매력적인 몇 가지 부분에 빠져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되고 사랑하게 되고, 결국엔 그 사람의 말도 안 되는 바닥까지 사랑하게 되는 것? 그건 영운을 향한 연아의 사랑이었을 것이고, 자신의 밑바닥까지 보이면서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갑의 입장에서 떼를 쓰며 만날 수 있는 것이 연아를 향한 영운의 입장이었을 것이다.

어느 것에도 답은 없다. 그냥 연애란 절대로 결코 가벼워질 수도, 쉬울 수도 없다는 것. 연애라는 말 안에 '사랑'이라는 말이 들어있기에. 그래서 이 영화는 내게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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