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이승철이 시드니에서 관객들에게 30년 추억여행을 선사했다.

가수 이승철이 시드니에서 관객들에게 30년 추억여행을 선사했다. ⓒ 진앤웍스


그가 "희야~ 날 좀 바라 봐"하고 노래하면 이름의 중간이든 끝이든 '희'자가 들어갔다는 것만으로 많은 소녀가 설레는 가슴을 안았다. '그런 사람 또 없을 테죠'를 부르면 자신이 세상에 다시 없을 '그런 사람'이 된 표정들을 지었다.

손은 앞으로, 머리는 뒤로하는 조금은 코믹한 '박명수 춤'은 이승철의 '오늘도 난' 때문에 어딘가 박력있고 멋있는 댄스로 보이기까지 했다. 그렇게 슬픔은 더할 수 없는 애절함으로, 유쾌한 비트는 함께 춤출 수 있을 것 같은 용기를 만들어내는 '고도의 기술'을 가진 보컬…. 이.승.철.

어느새 데뷔 30년을 맞은 한국 최고의 가수 이승철. 그는 30주년 기념으로 월드투어 '찾아가는 콘서트'를 기획해, 캐나다와 뉴질랜드를 거쳐 지난 5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했다. 공연은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메인 콘서트홀에서 열렸으며 2500석 모두 매진된 상태였다. 오페라하우스는 200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20세기 대표 건축물로 불리며 공연장으로 쓰이고 있다.

시드니의 팬들은 물론 캔버라, 브리즈번, 골드코스트, 멜버른에서 먼 길을 달려온 팬들까지 다양했다. 8시 공연 훨씬 전부터 오페라 하우스로 가는 길목인 서큘라 키(CircularQuey)에는 이례적으로 한인들이 붐볐다. 그만큼 이날 공연에 기대를 건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늦더위가 한창인 시드니의 이날 기온은 30도를 웃돌았지만, 콘서트에 간다는 기분을 한껏 표현한 옷차림의 한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주위를 둘러보거나 시원한 음료를 나눠마시며 '이승철 콘서트'에 대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하버 브리지 아래 바다로 뜨거운 태양이 빠지자 저녁이 찾아왔고, 오페라 하우스 콘서트홀 입구는 한인들의 긴 줄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시작을 알리는 장내 안내방송이 나오자 빈틈없이 꽉 찬 객석의 불이 꺼졌다. 무대의 조명이 켜지기 전 이미 여기저기서 환호가 시작됐고, 그 환호를 뚫고 이승철의 목소리가 오페라 하우스 콘서트홀을 가득 채웠다.

'My Love'와 '안녕이라고 말 하지마' 등 대표 히트곡을 매들리로 편곡한 오프닝 무대에 객석은 금방 달아올랐다. 앞서 3월 1일 뉴질랜드 공연에서 2000명이 넘는 관객들 앞에서 무대를 선보였던 이승철은 계속된 일정에도 피곤한 기색 하나 없이, 특유의 카리스마 넘치는 무대 매너로 관객을 휘어잡았다.

한 편의 드라마처럼 다채로웠던 환상의 콘서트

 객석에 펼쳐진 대형 태극기를 배경으로 부른 '그날들'은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며 하나가 되는 콘서트로 만들었다.

객석에 펼쳐진 대형 태극기를 배경으로 부른 '그날들'은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며 하나가 되는 콘서트로 만들었다. ⓒ 진앤웍스


"안녕하세요. 이승철입니다."

그의 짧은 인사 한마디에도 관객들은 뜨거운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이에 이승철은 "콘서트를 보고 싶어도 오기 힘든 팬들을 위해 '찾아가는 콘서트, 울릉에서 마라까지'를 기획하고 실제로 울릉도를 찾아가 무료 공연을 했다. 또 캐나다와 뉴질랜드 그리고 호주와 중국 등 국내외 공연을 계속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관객은 힘찬 박수로 화답했다.

특히 이승철은 오페라하우스 콘서트홀의 특징 중 하나인 콰이어 스톨 (Choir Stalls : 무대 공연자의 뒷모습이 보이는 자리)까지 꽉 채운 관객들에게 감사를 표현하며 "30년 가수생활에서 각양각색의 수많은 공연을 해봤지만, '뒤태'를 신경 써야 하는 공연은 처음"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이승철은 "30년 만에 드디어 오페라하우스 무대에서 사랑하는 관객들을 만나 가슴 벅차다"고 소감을 밝히며 "30년 전부터 시작해 그 이후의 추억 속으로 관객들을 초대하겠다"고 덧붙였다.

전주가 시작되자 객석 여기저기서 "쉬~잇"하며 숨을 죽이는 모습이 보였다. 관객들을 추억에 푹 잠기게 만든 후에는 자신의 히트 곡 중 유달리 영화나 드라마 주제곡이 많다면서 '불새' 주제곡인 '인연'을 피아노 반주 하나에 의지해 불렀고, <제빵왕 김탁구> 주제곡 '그 사람'이 어떻게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지 에피소드를 재미있게 들려주기도 했다. 그런 다음에는 떼창과 탄성을 유도하며 이승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무대를 이어갔다. 그런가 하면 감미로운 '희야'를 부른 후에는 '무조건', '아파트'를 백댄서들과 함께 춤 추며 신나게 불렀다. 이승철은 관객들이 자리에 앉아 있을 틈이 없을 정도로 분위기를 띄웠다.

이승철이 6년 전부터 공연 수익금을 기부해 짓고 있는 차드의 학교는 어느새 4개가 준공되어 운영되고 있다. 이승철은 "다섯 번째 학교의 준공이 임박했다"라며 "이번 시드니 공연을 비롯해 다른 공연들 역시 마찬가지로 수익금과 음반 판매액 모두를 학교 건립 기금, 그리고 세계의 불우한 어린이들을 돕는 일에 사용할 것"이라고 설명해 큰 박수를 받았다.

감성은 물론 록 밴드 공연 못지않은 스탠딩 점프까지 오르막과 내리막을 적절히 오가며 내내 관객들을 사로잡은 그의 공연은 두 시간여 만에 끝이 났다. 콰이어 스톨에 자리 잡은 관객들이 마음을 합해 올리는 대형 태극기를 배경으로 평화의 노래 '그날들'을 부를 때 무대와 객석은 하나의 마음이 되었다.

오페라 하우스에서 이승철을 인터뷰하다

 이승철의 콘서트가 열린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콘서트홀은 2500석 모두 팬들로 가득 채워졌다.

이승철의 콘서트가 열린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콘서트홀은 2500석 모두 팬들로 가득 채워졌다. ⓒ 진앤원 뮤직웍스


공연에 앞서 만난 이승철과 30년, 절대 짧지 않은 시간의 이야기를 나눴다. 최고의 인기 못지않게 힘든 부침도 많았던 그는 "평탄치 않았죠"라고 입을 뗐다. 그는 "사랑을 받을 때도 있었지만, 이혼에, 재혼 뭐 그런 가정사를 비롯해 여러 가지 사건 사고까지, 정말 그 부침이 만만치 않았어요"라고 인정했다. 이어 "그런 걸 딛고 번번이 다시 일어난 것에 대해 여러 가지 평가가 있지만 결국 노래하기 위해 태어났고 살아가는, 뭐, 그런 운명 같은 거로 받아들이게 된다"고 말했다. 많은 것을 겪고 지나며 스스로 내린 결론이라고 한다. '어쨌든 노래를 하며 살아가야 하는구나'하는 것.

평생 한 곡 내기도 힘든 소위 '히트곡'을 많이 가진 그에게 더 애착이 가는 노래가 혹시 있을까? 아니면 안타까움과 아쉬움으로 기억되는 노래는 없을까?

"다 내 노래인데, 아쉽거나 미운 녀석은 하나도 없죠. 모든 노래를 다 좋아하고 다 애착을 느껴요. 하지만 굳이 인생 터닝포인트의 의미를 담는 노래를 꼽자면 데뷔곡인 '희야', 그리고 소위 인기 가수라는 자리매김을 확실하게 해 준 '안녕이라고 말하지 마' 그리고 15주년을 맞아 부활과 함께 다시 불렀던 '네버 엔딩 스토리', 마지막으로 정말 범국민적 사랑을 받았던 노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를 꼽을 수 있겠죠."

본능으로 노래하는 가수 이승철, 전 세대에 사랑 받고파

이승철은 크게 방송 활동을 하지 않을 때도 무대를 찾아 주는 관객들, 드라마 OST까지 꼭 챙겨 관심을 보여주는 팬들이 가장 큰 힘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30년 동안 정말 꾸준히 히트곡을 만들고 활동하고 있는 그는 세대를 아우르며 함께 오고 싶어 하는 공연을 만들어나가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할아버지가 젊었던 시절에 들었던 내 노래를 손주가 알게 되고, 그 손주가 좋아하는 내 최근 노래를 할아버지에게 이야기해주는 그런 공연이죠. 그게 비로소 30년을 넘기고 있는 의미를 완성 시키는 일이라고 믿어요."

이 말을 그는 시드니 공연을 통해 이미 이루었다. 딱히 어느 연령층이랄 것 없는 관객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같이 아련한 멜로디에 젖어들고, 손뼉 치고 어깨와 발을 들썩이며 점프를 했으니 말이다.

지금까지 대학밴드 동아리의 보컬 가수부터 가수 지망생들에 이르기까지 '닮고 싶은 보컬' 첫손가락에 드는 이승철은 도대체 '어떻게' 노래를 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본능적으로…"라는 짧은 대답을 했다.

"기교 넣고, 호흡을 어떻게 하고…. 에이~ 노래하면서 언제 그런 생각을 다 해요. 그냥 본능적으로 해요. 노래에 푹 빠져 본능이 시키는대로 호흡하고, 거기 맞춰서 노래하는 거죠."

어디든 외국으로 공연을 가면, 한국인이 운영하는 식당을 반드시 이용하고 모든 이동에는 한국 자동차를 이용한다는 이승철. 그래서 점점 더 '멋진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30주년 기념으로 발매한 '시간 참 빠르다' 앨범은 작곡가 신사동 호랭이가 함께 했다. '세대를 아우르는', 그래서 관객들을 추억여행 속으로 데려가면서도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는 가수 이승철.

그에게 "이승철의 가수 30년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이라고 마지막 질문을 내놓았다. 중년이 아닌 '소년' 같은 미소를 지으며 그가 대답했다.

"시간 참 빠르다."

바로 그의 30주년 기념 앨범의 타이틀이다. 두 시간 내내 쉬지 않고 수많은 히트곡을 부른 그의 콘서트가 끝났을 때, 관객들의 입에서도 나왔을 말이다.

"시간 참 빠르다."

그렇게 멋진 콘서트를 선물한 이승철은 잠깐의 휴식을 한 후 8일 화요일 귀국길에 올랐다. 그는 국내 콘서트 일정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이승철 시드니오페라하우스 찾아가는 콘서트 시드니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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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이민 45 년차. 세상에 대한 희망을 끝까지 놓지 않고 그런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기사를 찾아 쓰고 싶은 사람. 2021 세계 한인의 날 대통령 표창 수상.

음악이 주는 기쁨과 쓸쓸함. 그 모든 위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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