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가입자는 줄고 기술도 낡은 케이블TV 인수합병이 글로벌 경쟁력과 무슨 상관있나? 덩치 크고 자본 많은 대기업이 시장 지배력을 일시에 늘리려고 가입자 1명당 40만 원씩 주고 산거다."(김경환 상지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2월 23일 '지역시청자 권익과 유료방송 시장경쟁' 토론회)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려고 '케이블TV 1위' CJ헬로비전을 인수했다는 SK텔레콤을 향한 한 언론학자의 쓴 소리다. 이번 인수합병의 본질은 410만 명에 이르는 케이블TV 가입자 사고팔기뿐이라는 것이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이동통신 1위' SK텔레콤(SKT)이 CJ헬로비전 인수합병을 선언한 지 4개월이 지났다. CJ헬로비전도 지난달 26일 주주총회를 열어 SKT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와 합병을 승인했다. 두 회사를 제외한 거의 모든 방송통신업계와 시민사회단체가 반대하고 아직 정부 승인 절차도 남아있는데도, 합병을 기정사실화한 것이다. 두 회사가 이렇게 인수합병에 목매는 이유는 뭔지, 또 방송통신 이용자들에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오마이팩트>가 이용자 눈높이에서 살펴봤다.

김경환 상지대 언론광고학부 교수가 지난달 23일 오후 3시 한국지역언론학회(회장 장호순) 주최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린 '지역시청자 권익과 유료방송 시장경쟁' 토론회에서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간 인수합병 논란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김경환 상지대 언론광고학부 교수가 지난달 23일 오후 3시 한국지역언론학회(회장 장호순) 주최로 국가인권위원회 배움터에서 열린 '지역시청자 권익과 유료방송 시장경쟁' 토론회에서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간 인수합병 논란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 김시연

관련사진보기


IPTV 결합상품 가입하면 30만~40만 원 준다는데

"초고속인터넷-IPTV 가입하면 현금 40만 원 드려요."

SK텔레콤이 410만 가입자를 가진 CJ헬로비전을 인수하는 이유는 비교적 명확하다. '단통법(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 영향으로 휴대폰 보조금 경쟁은 한풀 꺾였다지만 유선 시장 보조금 경쟁은 여전하다. 지금도 '뽐뿌' 같은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들어가 보면 초고속인터넷과 IPTV, 유선전화를 묶은 결합상품에 가입하면 사은품으로 30만~40만 원에 이르는 현금이나 상품권을 준다는 광고를 쉽게 접할 수 있다.

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 이른바 '통신 빅3'가 주도하지만 CJ헬로비전, 티브로드, 씨앤엠 같은 케이블TV업체들도 지난해까지 결합상품 가입자 유치에 적극적이었다. 결국 3년 약정이 지났는데도 한 회사만 고집하는 '충성 고객'은 이 바닥에선 '호갱'인 셈이다.

통신사와 케이블TV업체에서 월 요금 2만~3만 원대에 불과한 유선 결합상품 가입자 모집에 사활을 거는 이유는 간단하다. 무선과 마찬가지로 유선 시장도 이미 포화 상태다. 그래도 휴대폰 교체 주기는 1~2년 정도로 비교적 짧은 반면 유선 서비스는 웬만해선 회사를 안 바꾼다. 주변에서 10년 넘게 한 회사만 쓰는 가입자도 쉽게 볼 수 있다. 새 가입자를 모집하는 데 드는 '전환비용'이 이동전화보다 높다는 얘기다.

대신 약정기간이 보통 3년이기 때문에 통신사들은 최소 100만 원에서 장기적으로는 수백만 원대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 이 때문에 30만~40만 원대 사은품을 줘도 아깝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 휴대폰까지 묶으면 금상첨화다. 그래서 이동전화를 낀 통신사는 승승장구하고 케이블TV업체는 갈수록 가입자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지난 3월 2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SK브로드밴드 결합상품 가입자 모집 광고. SK뿐 아니라 KT, LG유플러스도 인터넷과 IPTV, 유선전화만 결합해도 30만~40만 원에 이르는 현금과 상품권을 사은품으로 준다.
 지난 3월 2일 한 인터넷 커뮤니티 게시판에 올라온 SK브로드밴드 결합상품 가입자 모집 광고. SK뿐 아니라 KT, LG유플러스도 인터넷과 IPTV, 유선전화만 결합해도 30만~40만 원에 이르는 현금과 상품권을 사은품으로 준다.
ⓒ 김시연

관련사진보기


"CJ헬로비전 410만 가입자 1인당 가치는 약 45만 원"

하지만 통신사들도 이렇게 찔끔찔끔 가입자를 데려와서는 현상 유지 수준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 경쟁사도 똑같이 비싼 사은품을 걸어 서로 가입자를 주고받기 때문이다. 통신사들이 수십만에서 수백만 가입자를 확보한 지역 케이블TV업체(SO; 종합유선방송사업자)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다.

복합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인 CJ헬로비전도 작은 지역 SO들을 하나둘 인수합병해 몸집을 410만 명까지 불렸다. 당시 가입자 1명당 가치는 40만~50만 원대였고, 가입자가 230만 명에 이르는 또 다른 MSO인 씨앤엠은 한때 가입자 1인당 100만 원대까지 평가받기도 했다.

하지만 통신사가 MSO를 인수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가입자가 수백만 명에 이르는 SO를 통째로 인수하면 굳이 현금이나 상품권으로 달래가며 가입자를 유치할 필요가 없다. SK텔레콤에서 지난해 11월 CJ헬로비전 기업 가치를 약 1조 9천억 원 정도로 평가하고 1조 원을 들여 인수한 것도 가입자 때문이다. 결국 1인당 45만 원 정도를 주고 케이블TV 가입자를 사온 셈이다.

지난해 말 기준 CJ헬로비전 가입자 약 410만 명에 SK브로드밴드 IPTV(Btv) 가입자 320만 명을 합하면 전체 가입자는 730만 명(점유율 26%)에 이른다. 가입자 830만 명인 KT에 이어 순식간에 국내 유료방송업계 2위로 올라서는 것이다.

유료방송은 가입자 숫자가 많을수록 이득이 늘어나는 이른바 '규모의 경제'가 달성된다. 똑같은 콘텐츠라도 더 많은 시청자에게 팔 수 있고, 덕분에 지상파방송이나 홈쇼핑을 비롯한 각종 콘텐츠 제공자들과 가격 협상할 때도 유리하다. 구매력이 높은 대형마트가 동네 슈퍼보다 더 싸게 물건을 떼 오는 이치다.

김회재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가입자 기반 사업은 가입자당 가치라는 기준으로 사업의 가치를 평가하기도 하는데, 가입자당 가치는 가입자당 매출이 가입자 한 명을 모집하는 데에 소요되는 변동비를 회수한 이후 서비스를 해지하기 전까지 어느 정도 수익에 기여하는가를 나타내는 지표"라고 밝혔다.

CJ헬로비전 케이블TV 가입자 가운데 디지털은 250만 명, 아날로그는 160만 명 정도다. 대신증권은 케이블TV 가입자들이 약정기간 36개월 가운데 23개월만 유지해도 들인 비용을 모두 뽑는다고 봤다. 가입자 유지 기간이 늘어날수록 추가 비용은 거의 없는 반면 이익이 갈수록 늘어난다. 아날로그 케이블TV 가입자들까지 디지털로 전환하면 수익은 더 늘어난다. CJ헬로비전 아날로그 요금은 월 4천 원에서 1만 원을 넘지 않는 반면 디지털TV 요금은 월 2만~3만 원대에 이르고, 1인당 매출(ARPU)도 월 3893원 대 1만787원으로 거의 3배 차이가 난다.

거꾸로 기존 CJ헬로비전 가입자들은 SK브로드밴드나 다른 통신사로 옮겼을 때 받을 수 있는 40만 원 정도를 가만히 앉아서 날린 셈이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기존 가입자들이 앞으로 합병될 회사에 계속 남는다는 가정에 따른 것이고, 다른 통신사로 옮긴다면 손해볼 일은 없다.

다만 두 회사 합병 이후에도 사은품 가격이 현 수준을 계속 유지할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합병 이후 통신사간 경쟁이 더 치열해지면 사은품 가격은 오를 것이고, 경쟁이 줄어든다면 사은품은 더 줄거나 아예 없어질 수도 있다.

SK텔레콤은 합병으로 KT와 양강 체제가 구축돼 경쟁이 더 치열해져 방송통신 요금이 전반적으로 내린다고 주장하는 반면, KT, LG유플러스 등은 경쟁이 줄어 방송통신 요금이 더 오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케이블TV와 방송업계에선 통신사들의 모바일 결합상품 경쟁에 '껴주기'로 전락한 유료방송 요금만 더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모바일 결합상품의 함정, 2년 썼는데도 위약금 50만 원?

지난 2월 24일 서울 양재동 K호텔에서 미래창조과학부 주최로 열린 SK텔레콤-CJ헬로비전 인수합병 공청회. 맨 오른쪽 두 사람이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대표
 지난 2월 24일 서울 양재동 K호텔에서 미래창조과학부 주최로 열린 SK텔레콤-CJ헬로비전 인수합병 공청회. 맨 오른쪽 두 사람이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 대표
ⓒ 김시연

관련사진보기


그렇다면 통신사들의 모바일 결합상품 경쟁으로 유료방송 요금이 더 떨어지면 소비자들에게 이득일까? 통신사에선 유료방송이나 인터넷을 마치 공짜인 양 선전하지만 사실 미끼일 뿐이다.

SK텔레콤은 CJ헬로비전을 인수한 뒤 현재 60% 수준인 디지털 전환 비율을 90% 이상으로 끌어올리겠다는 밝혔다. 기존 160만에 이르는 아날로그 케이블TV 가입자들을 디지털방송이나 IPTV로 유도하는 과정에서 인터넷 등 결합상품으로 묶을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SK텔레콤 이동전화까지 결합하게 하면, IPTV 가입자도 늘리고 이동전화 가입자를 계속 묶어두는 1석 2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지금도 SK텔레콤은 SK브로드밴드 유선 결합상품에 자사 이동전화까지 묶으면 무선 요금을 매달 5천 원씩 할인해준다. 덕분에 지난해 6월 현재 이동전화와 묶은 결합상품 가입자 500만 명 가운데 SKT-SK브로드밴드가 222만 명으로 1위고, 비중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 때문에 KT와 LG유플러스는 무선 시장 절반을 장악한 SKT의 지배력이 유선 시장으로까지 옮겨올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하지만 모바일 결합상품은 할인 혜택이 큰 만큼 이용자들에게 큰 족쇄가 될 수 있다. 물론 이동전화-인터넷-유료방송-유선전화를 모두 한 회사에서 3년 이상 유지하면 크게 손해 볼 일은 없다. 다만 도중에 다른 통신사로 옮기거나 한두 상품만 해지하려고 해도 지금까지 할인받은 돈을 모두 위약금으로 물어내야 한다. 문제는 유선 상품을 무약정으로 가입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보니 요금 거품이 잔뜩 끼었다는 게 문제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A씨는 지난 2014년 3월 SK텔레콤 이동전화와 SK브로드밴드 초고속인터넷, IPTV, 유선전화 4가지를 묶은 모바일 결합상품에 가입했다. 초고속인터넷과 IPTV 월 이용요금(무약정)은 각각 3만3천 원, 2만 원이지만 3년 약정을 맺은 덕분에 각각 월 2만 원, 1만2000원으로 할인받았다. 매달 2만 원 넘게 할인받은 셈이지만 중도 해지하면 모두 돌려줘야 하는 빚인 셈이다.

A씨는 가입한지 만 2년째인 이달 초 중도해지 위약금이 50만 원에 이른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인터넷은 유지하고 IPTV 하나만 중단해도 16만3400원을 물어내야 한다. 사실상 지난 2년 동안 약정 할인받은 요금을 모두 물어내는 셈이라 해지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중도 해지 하면 가장 비싼 무약정 요금을 기준으로 차액을 계산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하면 약정 기간이 보통 2년이고, 일정 기간 이용하면 해지 위약금이 점점 줄어드는 이동전화는 양반인 셈이다.

일반적으로 1위 사업자의 몸집이 커질수록 경쟁은 줄고 장기적으로 요금도 오르기 마련이다. 그동안 SKT가 절반을 차지한 무선 시장과 달리 유선 시장은 KT가 30%를 차지할 뿐 많은 통신-케이블TV 사업자들이 균형을 맞춰왔다. 하지만 케이블TV 1위인 CJ헬로비전이 SKT로 넘어가면서 KT와 SKT 2강이 60% 가까운 점유율을 차지해 균형이 깨지게 된다. 나머지 MSO들도 점차 통신사에 흡수되면, 유료방송을 포함한 유선 시장도 '통신 빅3'가 지배하게 된다.  

통신3사는 모바일 데이터 사용량 증가로 이익은 늘고 가계통신비는 계속 오르는데도 소비자들의 요금 인하 요구에는 귀를 닫고 있다. 지금은 결합 상품과 약정 할인으로 저가 경쟁을 벌이는 듯한 유선 시장도 머지않아 무선 시장처럼 비싼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 <오마이팩트>는 SK텔레콤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이 결과적으로 방송통신 이용자들에게 손해를 끼친다고 판단했다.


태그:#SK텔레콤, #케이블TV, #CJ헬로비전, #결합상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장지혜 기자 입니다.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기보다는 세상으로 바람을 날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