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 디템포 래퍼 디템포가 지난 25일, 테러방지법을 풍자하는 필리버스터 랩 '갈림길에서'를 발표했다.

▲ 래퍼 디템포 래퍼 디템포가 지난 25일, 테러방지법을 풍자하는 필리버스터 랩 '갈림길에서'를 발표했다. ⓒ 디템포


때로는 짧은 음악 한 곡이 현실을 더 신랄하게 꼬집을 때가 있다. 지난 25일 힙합 뮤지션 디템포가 자신의 SNS에 공개한 '갈림길에서'가 그렇다. 이 곡은 지난 23일 정의화 국회의장(새누리당)이 직권상정한 '테러방지법'을 소재로 다뤘다.

'테러방지법'은 '테러위험인물'의 통신이용·금융거래 등에 관한 정보 수집·조사 권한을 국가정보원에 주는 법이다. 이 법은 '테러위험인물'의 뜻이 모호하면서 국정원이 가져가는 권한은 크기 때문에, 시민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관련 기사: 필리버스터 부른 테러방지법이 '악법'인 까닭). 야당 의원들은 지금 이 시각까지도 국회 의석수 과반을 차지하는 새누리당이 이 법안을 통과시키지 못하도록 저지하고 있다.

이른바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방식의 합리적 의사진행 지연)를 신청해 23일부터 27일 오후 3시 현재까지 릴레이를 이어가는 중이다. 필리버스터는 다수당의 독주를 막기 위해 소수당이 합법적으로 동원하는 최후 수단 중 하나다. 많은 시민이 관심을 가지고 있고, 디템포도 자기 생각을 필리버스터랩 '갈림길에서'에서 쏟아냈다. 직접 들어보자. (☞바로가기)



"갈림길에 서 있어 / 내 행동과 말, 생각과 느낌 / 누군가에게 모두 엿보여지는 길 그냥 담아두기엔 / 이건 당신들에게도, 내게도 심각한 위기 / ... / 남일인 것 같지 이 비슷한 방식으로 / 누군가는 간첩이 됐고 평생 억울함이 남지 / ... / 원래 점진적으로 X되어 가는건 알아채기 힘들어 / 또 알아챘다 하더라도 그걸 말하기가 더 힘들어 / 다만 이 주머니 속 송곳은 당신 혼자가 아냐 / 외로운 싸움을 계속할 사람들이 아직 많아" - '갈림길에서' 가사 중에서

디템포는 이 곡이 '디스곡'이 아니라고 못 박는다. 상대를(테러방지법 추진의 배후로 추정되는 '어떤 누나' 즉 '권력자'를) 디스하는 건, 상대가 비판을 듣고 편할 가능성이 있을 때나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여당의 독주를 야당이 필리버스터로 간신히 지연시키는 상황 자체가, 여당이 야당을 '합리적 토론'의 파트너로 존중하지 않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디템포는 '실질적'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아닌, 히틀러의 나치 독일 같은(순전히 다수결 원칙만 따르는) '형식적'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틀 안에서 독재가 탄생한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많은 시민이 2012년 대선 여론조작 댓글과, 유우성씨 간첩사건 조작 등을 벌인 국가정보원에 큰 권한을 주는 걸 걱정스러워 한다. 그래서 테러방지법을 '국가걱정원법'이라며 비판하기도 한다. 결국, 시민들의 관점에서, 이 상황은 여당이 독주하느냐(A) 야당이 이를 막아내느냐(Not A) 두 가지 경우밖에 없다.

디템포의 음악 제목도 이 현실을 잘 반영한 '갈림길에서'이다. 그는 "나는 양비론자들('A도, Not A도 똑같이 나쁘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사람들)을 감시하는 안티바이러스(Anti Virus)"라는 일침도 덧붙였다. 얼핏 국민의 당 안철수 대표가 "테러방지법 강행 여당, 막는 야당 똑같다"고 말한 것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제는 귀해진 '할 말은 하는' 뮤지션

디템포는 꾸준히 사회적 이슈들을 음악적으로 다룬 뮤지션이다. 서민 증세, 국정원 대선 여론조작 댓글, 종북 몰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자영업 현실 등. 폭넓은 소재로 '새타령', '내가 역사를 쓴다면', '치킨' 등을 발표해 꾸준히 팬들의 호응을 얻어왔다.

사회정치적 문제들에 입을 여는 일이 드문 국내 힙합 신의 현실을 생각해보면, 디템포의 존재는 귀하다. 한국 힙합 1세대 가리온 역시 "할 말은 많은데, 입을 닫은 래퍼"들에 대한 디스곡을 발표해, 사회적 이슈는 방치하고 상업주의에 매몰된 힙합 신을 꼬집은 바 있다. 디템포는 드물게도 이슈와 자신의 삶 모두에서 '할 말은 하는 뮤지션'이 아닐까.

기본에 충실한 그의 활동 폭과 음악 소재는 넓고 다양하다. 랩은 물론이고 프로듀싱·작사·디자이너 역할까지 커버하고, 3년째 지역 라디오 채널 '성남 FM'(90.7Mhz) DJ로 활동 중이다. 2013년 데뷔 이후 현재까지 12건의 싱글·미니 앨범을 다양한 소재들로 발표했고, 가장 최근인 2015년 12월에 발표된 앨범(Detemplane Vol. 2)에서는 세월호 참사를 다룬 '선명하게'를 담아냈다. (☞바로가기)


[미니 인터뷰] 부모님이 '네가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고 있구나' 하시더라
25일 '갈림길에서'를 공개한 래퍼 디템포와 지난 26일, 전화를 통해 짤막한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 정의화 국회의장이 23일에 테러방지법을 직권 상정했는데, '갈림길에서'가 25일에 발표됐다. 곡을 상당히 시의적절하게 발표했는데?
"필리버스터 시작 단계부터 뉴스들을 접하고 지금 국회에서 벌어지는 일이 '시간 싸움'인 걸 직감했다. 그래서 과거에 스케치해놓은 곡에 가사를 맞춰 쓰고 녹음 끝내고 믹스 마스터링까지 3시간 반 만에 끝냈다. 영상까지 업로드하니까, 25일 새벽 2시 반이더라. 굳이 사람들이 많이 영상을 조회하는 시간대를 전략적으로 노리지 않았다. 평소에 앨범 낼 때는 장인의 마음으로 작업하는데, 이번에는 그냥 느끼는 바를 날 것 그대로 쏟아냈다."

- 이슈에 대한 생각을 표현하다 보면, 집에서 세대 갈등 같은 건 안 생기나?
"부모님께 감사하게도 그런 건 없다. 제가 지금 대학 졸업한 지 1년이 됐다. 자유롭게 음악하고 하고픈 말도 하며 살고 싶어서 취업 준비는 전혀 안 했다. 그런데 부모님께서는 (음악 하는 걸 반대하지 않으시고) 제 음악을 듣고 평도 가끔 남겨주신다. 이번 '갈림길에서'의 경우에는 음악을 보내드리니, '네가 점점 본질적인 문제에 접근하고 있구나!' 해주시더라."

- '선명하게'란 곡도 사회적 이슈인 세월호 참사를 다뤘는데?
"세월호 참사 600일쯤에 이 이야기를 한 번쯤 하고 싶다고 느꼈다. '17살의 버킷리스트' 공연 당시 유가족분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가졌다. 그 자리는 뭐라 말로 하기 표현하기 힘든 밝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슬픈 느낌을 주었다. 이 느낌을 잘 살려서 전해보려고, 여러 곡을 스케치한 끝에 탄생한 곡이다. 가족분들의 아픔을 되살릴 수도 있는 사건에 대한 직접적 표현보다는, '두루뭉술'한 느낌을 유지하며 위로 드리는 마음으로 작업했다."

- '성남 FM' DJ로 활동 중이다. 이 방송에서 디템포 이야기를 꾸준히 들을 수 있나?
"매주 수요일 8시에 생방송을 한다. 헌데 지역 채널이다 보니 성남 지역에서만 주파수가 잡힌다. 스마트폰 앱 중 '튠 인 라디오'라는 게 있는데, 그걸 깔고 '성남'을 검색하면 '약쟁이 스튜디오'라는 생방송이 뜬다. 그럼 제한 없이 내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인터넷 팟캐스트 팟빵에도 올린다. 음악 방송이긴 한데, 요즘은 거의 시사 방송처럼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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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방지법 디템포 필리버스터 갈림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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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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