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선수들이 24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나고 야구장에서 열린 니혼햄와의 연습경기에서 2대 12로 패배하자 덕아웃 앞에 모여 경기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기아 선수들이 24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나고 야구장에서 열린 니혼햄와의 연습경기에서 2대 12로 패배하자 덕아웃 앞에 모여 경기 내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지금 밥이 넘어가?"

23일 기아 타이거즈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연습경기가 열린 오키나와 셀룰러 스타디움. 경기 전 간단한 점심을 먹던 박흥식 타격코치를 발견한 이순철 SBS 스포츠 해설위원은 농담조로 쏘아붙였다. 물론 뼈 있는 농담이었다. 기아 타자들은 지난 13일 주니치전을 시작으로 전날까지 6경기를 치르면서 단 11득점에 그쳤다. 경기 당 평균 득점은 1.83점으로 채 2점이 되지 않았다.

박 코치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받아넘겼지만, 마음은 편치 않아 보였다. 이미 타이거즈 팬들 사이에서는 어떻게 같은 현대·기아차 계열인 전북 현대보다도 점수를 못 내느냐는 원성이 자자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전북 현대는 원래 점수가 많이 나지 않는 축구를 하는 팀이다.

박 코치의 타들어 가는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날 요미우리전에서도 기아 타자들은 단 1점을 뽑는 데 그쳤다. 안타도 김주찬의 2루타와 김주형의 단타 두 개뿐이었다.

뼈아팠던 심동섭의 마무리 실패

 기아 심동섭이 23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셀룰러 스타디움에서 열린 요미우리와의 연습경기에 등원 등판해 역투하고 있다.

기아 심동섭이 23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셀룰러 스타디움에서 열린 요미우리와의 연습경기에 등원 등판해 역투하고 있다. ⓒ 유성호


게다가 1점 차 리드에서 마무리하러 나왔던 심동섭은 요미우리의 베테랑인 아베 신노스케에게 좌중간 2루타를 시작으로, 이후 안타 3개를 더 허용하면서 2실점 했다. 유력한 팀의 마무리 투수 후보가 팀의 승리를 지키지 못한 점도 기아에게는 뼈아팠다. 당시 페이스북 페이지 < 타이거즈_Lab >(바로 가기)을 활용한 문자중계에는 이런 코멘트가 달렸다.

"볼 카운트 3B2S 상황에서 심동섭의 공이 가운데로 몰리면서 큼지막한 2루타를 허용하고 말았네요. 나카이에게도 볼카운트가 3B까지 몰리면서 스트라이크 카운트를 잡으러 들어간 공에 안타를 허용했습니다.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네요."

게다가 이날, 스프링 캠프에서 주목받을 만한 활약을 했던 야수 박진두를 비롯해 투수 박동민, 정용운이 부상으로 이탈하면서 팀에는 부상 경계령까지 내려졌다.

 기아 박동민이 23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셀룰러 스타디움에서 열린 요미우리와의 연습경기 도중 다리 통증 때문에 교체된 뒤 덕아웃 앞에서 몸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기아 박동민이 23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셀룰러 스타디움에서 열린 요미우리와의 연습경기 도중 다리 통증 때문에 교체된 뒤 덕아웃 앞에서 몸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 유성호


 기아 김기태 감독이 22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고자신킨 스타디움에서 열린 히로시마와의 경기에서 김태룡 코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기아 김기태 감독이 22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고자신킨 스타디움에서 열린 히로시마와의 경기에서 김태룡 코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유성호


하지만 김기태 감독은 연습경기 패배를, 시즌 준비를 하면서 반드시 먹어야 할 쓴 약으로 보는 듯했다. 김 감독은 이날 저녁 열린 스프링 캠프 팬 참관단 환영행사에서 팬들에게 밝은 표정으로 자신감을 나타냈다.

"작년에는 선수들이 정말 열심히 했지만, 마지막에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그 점, 감독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쉬웠던 부분을 채우기 위해 지금 훈련하고 있는데, 올 시즌에는 (정규시즌) 144경기 마치고 끝나는 게 아니라 몇 게임이 될지 모르지만 좀 추울 때도 야구를 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150경기, 160경기 그 이상까지도 할 수 있도록 잘 준비하겠습니다."

선수들의 모습을 보러 오키나와까지 날아온 25명의 팬 사이에서는 환호성이 터졌다.

2년 연속 오타니를 만난 기아 타자들

 24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나고 야구장에서 기아와 니혼햄와의 연습경기가 열린 가운데, 야구팬들이 담장 넘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24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나고 야구장에서 기아와 니혼햄와의 연습경기가 열린 가운데, 야구팬들이 담장 넘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 유성호


 기아 고영우가 23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셀룰러 스타디움에서 열린 요미우리와의 연습경기 7회초 1사 2루 상황, 가데토의 3루 도루 저지에 실패하자 아쉬워하고 있다.

기아 고영우가 23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셀룰러 스타디움에서 열린 요미우리와의 연습경기 7회초 1사 2루 상황, 가데토의 3루 도루 저지에 실패하자 아쉬워하고 있다. ⓒ 유성호


24일 니혼햄 파이터스의 전지 훈련장인 나고 시영구장에는 선발로 나설 '강속구 투수' 오타니 쇼헤이를 보러온 일본 팬들의 걸음이 이어졌다. 관중석은 빈자리가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언론들의 관심도 뜨거워 기자실은 일본 기자들이 모두 점령한 상태였다.

"선발(투수)은 또 오타니고, 타자들도 주전급이 다 나왔네."

니혼햄의 라인업을 보고 기아 구단 관계자는 좋다는 건지 싫다는 건지 판단하기 힘든 묘한 표정을 지었다.

강한 투수와 타자들을 상대로 스파링을 치르면서 선수들이 경험을 쌓는다는 점은 환영할 만하지만, 늘어만 가고 있는 연습경기 패배의 숫자가 또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싫은 눈치였다. 오타니는 지난해에도 기아를 상대로 연습경기에 나서 3이닝 동안 삼진 6개를 잡고 안타는 내주지 않는 무결점 투구를 했다.

전날까지 기아가 오키나와에서 치른 경기에서 남긴 성적은 1승 1무 5패였다. 연습경기의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고는 하지만 기분 좋은 기록은 아니었다. 지난해 기아는 오키나와에서 치른 9경기에서 전패했다.  

기아에게도 핑계는 있었다. 공교롭게도 일본 구단들은 기아를 상대하면서 총력전을 펼치려는 듯, 모두 주전 선수들을 선발로 내보냈다. 22일 히로시마도, 23일 요미우리도 그랬다. 일본 구단의 2군이나 1.5군급 선수들을 상대한 국내 다른 구단들은 부러움을 나타냈지만, 기아에게는 써도 너무 쓴 약이었다.

22일 히로시마전과 23일 요미우리전에서 기아는 투수들이 10점을 내주는 동안 타자들은 단 1점밖에 뽑지 못했다.

하지만 김기태 감독은 작년에도 그랬듯 승패는 정규시즌에서나 중요하다는 태도를 이어갔다. 김 감독은 이날 필과 나지완을 제외하고는 주전들을 대부분 빼고 신인급 선수들로 라인업을 채웠다. 선발 양현종도 2이닝만 던질 것이라고 사전에 못 박았다.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던 기아의 점수판

 24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나고 야구장에서 열린 기아와 니혼햄와의 연습경기에서 경기장 관계자가 득점 상황을 알려주기 위해 수동으로 점수판을 고치고 있다.

24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나고 야구장에서 열린 기아와 니혼햄와의 연습경기에서 경기장 관계자가 득점 상황을 알려주기 위해 수동으로 점수판을 고치고 있다. ⓒ 유성호


[기아 전지훈련] 간발의 차로 아웃되는 이인행 기아 이인행이 24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나고 야구장에서 열린 니혼햄와의 연습경기 1회초 무사 1, 2루 때 필의 내야땅볼로 2루에서 포스아웃되고 있다.

▲ [기아 전지훈련] 간발의 차로 아웃되는 이인행 기아 이인행이 24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나고 야구장에서 열린 니혼햄와의 연습경기 1회초 무사 1, 2루 때 필의 내야땅볼로 2루에서 포스아웃되고 있다. ⓒ 유성호


[기아 전지훈련] 오타니 상대로 2루타 날린 김호령 기아 김호령이 24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나고 야구장에서 열린 니혼햄와의 연습경기 1회초 선두타자로 나와 오타니(오른쪽) 상대로 좌전 안타를 친 뒤 2루를 향해 달리고 있다.

▲ [기아 전지훈련] 오타니 상대로 2루타 날린 김호령 기아 김호령이 24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나고 야구장에서 열린 니혼햄와의 연습경기 1회초 선두타자로 나와 오타니(오른쪽) 상대로 좌전 안타를 친 뒤 2루를 향해 달리고 있다. ⓒ 유성호


경기는 예상대로 흘러갔다. 경기가 열린 나고 시영구장의 점수판은 사람이 직접 숫자판을 돌리는 수동방식인데, 담당자의 손은 기아 쪽 점수판을 향할 일이 별로 없었다. 기아는 2점을 냈고 12점을 내줬다.

중간 투수로 나선 홍건희는 홈런 두 방을 맞는 등 여전히 결정적인 장면에서 장타를 허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9회 말 마지막 투수로 나선 한승혁은 안타 1개에 볼넷 4개를 내주며 흔들렸다. 투수에게 연습경기 실점 자체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 다만 성장세를 보여줘야 할 젊은 투수들이 제구력 부족 등 그동안 지적받아온 고질적인 약점을 보완하지 못하고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한 모습은 좋은 징조는 아니다.

경기를 끝낸 김기태 감독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구단 관계자는 "(경기 내용에) 조금 화가 나신 것 같다"라고 말했다. 특히 니혼햄 선수들은 점수에 관계없이 9회 말까지 경기를 치르기로 한 것을 잊었는지 9회 초가 끝난 후 하이파이브를 하는 실례를 범하기도 했다.

기아는 이날 패배로 연습경기 4연패에 빠졌다. 다만 기아의 젊은 타자들은 일본 프로야구 최고 강속구 투수인 오타니의 공을 쳐보는 좋은 공부를 했다. 비록 공략에는 실패했지만, 오타니 같은 수준급 투수의 공을 상대해 보는 것은 흔치 않은 경험이다. 특히 1번으로 나선 김호령은 오타니를 상대로 좌측 펜스를 직접 때리는 큼지막한 2루타를 때렸고, 2번 이인행은 볼넷을 얻어냈다.

경기가 끝난 후 김호령을 만났다. 김호령은 "삼진만 당하지 말자고 생각하고 직구만 노리고 있었다, 잘 맞춘다는 생각으로 쳤는데 타이밍이 좋았다"라고 쑥스러운 미소를 보였다. 그러면서 1루 땅볼로 물러난 두 번째 타석에서 오타니의 공은 훨씬 더 빨라져 있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억울한 나지완 "오타니가 나한테 160km를 던지더라고요"

 기아 나지완이 24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나고 야구장에서 열린 니혼햄와의 연습경기 1회초 2사 3루 때 오타니 투구에 헛스윙하며 아쉬워하고 있다.

기아 나지완이 24일 오후 일본 오키나와 나고 야구장에서 열린 니혼햄와의 연습경기 1회초 2사 3루 때 오타니 투구에 헛스윙하며 아쉬워하고 있다. ⓒ 유성호


인터뷰를 하는 김호령의 모습을 본 나지완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호령이한테 2루타를 맞고 나더니 오타니가 나한테는 160km짜리를 던져 버리더라고요."

실제로 그랬다. 김호령이 친 빠른 볼은 구속이 시속 148km였는데 나지완을 상대할 때는 구속을 끌어올려 최고 160km짜리 직구를 던졌다. 니혼햄 스피드건에는 163km까지 찍혔다고 한다. 김호령에게 뺨을 맞은 오타니가 나지완에게 화풀이한 셈이 됐다. 하지만 나지완도 끈질긴 승부 끝에 볼넷을 얻었다.

오키나와에서 남은 경기는 이제 단 4경기. 26일 SK를 시작으로 한화·LG·넥센 등 모두 국내 팀들과의 경기다. 일본 수준급 선수들과의 대결로 담금질한 효과가 과연 나타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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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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