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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채비로 꼭꼭 싸놓은 시정.
▲ 천막으로 둘러 싸인 시정 겨울 채비로 꼭꼭 싸놓은 시정.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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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 다가오건만 마을회관이 떠나간 집처럼 조용하다. 며칠에 한 번씩 들려오는 이장의 마이크 소리와 개 짖는 소리만 없다면 마을 전체가 잠들어 있는 것처럼 조용하다. 사람의 소리가 들리는 것도, 사람의 그림자를 보기도 어렵다. 그만큼 지난겨울이 혹독하게 추웠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남녘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영하 7~8도를 기록하는 한파에 어르신들의 문밖 출입이 조심스럽기 때문이다. 봄의 문턱이 턱 밑인 지난 2월 25일, 기온이 영하 7도다.

며칠 전 마을에 초상이 났다. 엄격히 따지자면, 마을 어르신이 돌아가신 게 맞기는 하다. 하지만 다리가 아파서 치료를 받으러 아들네 집에 가셨다가 백골이 돼 돌아오신 것이다. 아래는 할머니의 자녀에게 들은 얘기다.

다리가 아파서 움직이지를 않으니까 몸은 점점 둔해지고, 몸이 둔해지니 운동은 아예 안했다. 그 결과는 골다공증으로 이어져서 더욱 움직일 수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소 대변을 받아내야 하는 처지에 이르자 맞벌이하는 자식은 할머니를 요양원에 모시게 됐다. 할머니는 요양원에서 끝내 일어나질 못하고 돌아가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2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노인은 어디든 한군데가 나빠지면 걷잡을 수 없이 일이 커지고 만다. 어르신의 별세에 마을이 우울해졌다. 특히 또래의 어르신들은 마치 당신의 일인 양 우울해 하셨다.

세상에 호상이 어디 있겠나

언 땅을 뚫고 올라온 대견한 수선화.
▲ 수선화 언 땅을 뚫고 올라온 대견한 수선화.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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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 주위에서 초상이 다섯 번이나 났다. 모두 일흔이 넘은 어르신들이다. 이는 연로한 어르신들의 겨울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날씨가 추워지면서 우리 동네의 어르신 세 분이 자녀들이 살고 있는 도회지로 겨울을 나러 가셨다. 모두 겨울이 지나고 3월이 되면 다시 시골로 돌아오신단다. 뉴스나 풍문으로 듣기로는, 늙은 부모를 홀대하거나 모르는 척 하는 자식들이 많다는데…. 앞으로 변할지는 모르겠으나 우리 동네에서는 아직은 노부모와 자녀 간에 소통이 잘 되고 있는 것 같아 적이 안심이 된다.

흔히들 연세가 많은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호상이라는 말을 한다. 그런데 사람의 죽음 앞에서 잘 죽은 죽음은 없다. 다만 그 사람의 삶이 어떠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아쉬워할 수도 있고 한숨을 지을 수도 있다. 어쩌면 혀를 끌끌 차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얼마 전 눈이 며칠간 계속 내리던 때, 친구가 모친상을 당했다. 고인은 올해 꼭 100세였다. 돌아가시기 사흘 전의 일이다. 아침 일찍 78세인 큰 딸이 온다는 전화를 받고 딸이 오다가 눈에 미끄러질까봐 집 앞의 눈을 쓸었다. 식구들이 아무리 말려도 기어이 손수 눈을 쓸고 들어오셔서는 춥다고 누우셨다가 그길로 못 일어나시고 사흘 만에 돌아가셨단다.

망자께서 돌아가시게 된 사연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어이가 없다. 별나다'였다. 간혹 고생 안 하시고 잘 돌아가셨다. 호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자식이 뭐라고 100세의 어머니가 78세의 딸을 그토록 염려하는 것일까.

시어머니의 속마음

그 이야기를 듣는데 20년 전에 돌아가신 시어머님 생각이 났다. 나는 어려서 엄마가 돌아가셨기에 엄마의 정을 모르고 살다가 결혼 해서 시어머님이 생긴 것이 정말 좋았다. 시어머니가 정말 그렇게 좋은가 하고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시어머님께서 살아 계실 때 명절이 다가오면 먼저 전화를 하셨다.

"에미야. 먼저 내려올 생각하지 말고, 딱 고 다음날 저녁에 도착하도록 와."

이 말씀은, 어머님이나 아버님 생신, 설, 추석 바로 전날 밤에 도착하도록 내려오라는 말씀이다. 그러면 철없는 며느리는 정말 그렇게 했고, 도착해 보면 동네 아주머니들을 시키거나 어머님께서 직접 하시기도 해서 모든 음식이 마련돼 있었다. 하룻밤을 자고 당일 날이 되면 어머님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에미야, 어여 올라가."
"벌써요? 내일까지는 세배를 오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세배 오면 음식이라도 차려 내놔야 하고요."
"괜찮아, 아무 걱정 말고 가. 있는 음식 챙겨만 주면 돼. 그리고 세배 오는 사람들 설날이라서 실컷 먹고 오는디 뭣이 걱정이다냐."

비단 설이나 추석 등 명절뿐만이 아니다. 아버님이나 어머님 생신날에도 당일로 올라가라고 당부하셨다. 차 트렁크는 어머님께서 보따리 보따리 싸 주시는 먹거리들로 가득했었다.

어머님께서 그토록 빨리 서울로 올라가라는 이유는 간단했다. 익숙하지 않은 시골 살림이 어설프기도 하거니와 시댁이라는 데가 원래 놀아도 피곤하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사랑 모두가 며느리가 예쁜 것도 있겠지만, 속내는 아들이 예뻐서 그런 것이란 걸 알기에, 이제 어머님 돌아가신 때의 나이가 된 남편을 쳐다보면 어머님이 고맙고 남편이 고맙다.

보일러의 훈훈함보다 사람의 훈훈함이 깃들길

영하의 날씨에도 매화가 벙긋 터졌다.
▲ 매화 영하의 날씨에도 매화가 벙긋 터졌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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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가 그토록 어여쁠진대 딸은 오죽하겠는가. 그러니 일흔여덟의 딸이 온다고 백세 노모가 눈을 쓰는 걸 어찌 별나다고만 할 수 있겠는가. 어찌 호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 딸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환장할 노릇 아니겠는가.

거센 바람 불어도 흔들릴 것조차 없는 앙상한 나뭇가지가, 늙어서 뼈가 드러나 보이는 어느 노인의 팔 같아서 영하 7도의 날씨가 더 춥다.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돌아오는 길에 마을회관 문을 열어봤다. 방이 훈훈한 게 훈기가 돈다. 언제 오실지 모르는 어르신들을 위해 누군가가 난방을 틀어놨나 보다.

마을 입구에 매화가 입을 방긋이 열었다. 수선화도 손가락을 뾰족이 내밀고 지상의 온도를 재고 있다. 봄소식이다. 이처럼 마을을 떠난 어르신들도 봄 따라 마을로 얼른 돌아오셨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빈방이 보일러로 훈훈하기보다 사람의 훈기로 따뜻했으면 좋겠다.

마을회관 방이 휑하니 비었다.
▲ 빈방 마을회관 방이 휑하니 비었다.
ⓒ 김경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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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죽음, #삶, #부모님 사랑, #노인,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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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는 시원한 청량제, 겨울에는 따뜻한 화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쓴 책 : 김경내 산문집<덧칠하지 말자> 김경내 동시집<난리 날 만하더라고> 김경내 단편 동화집<별이 된 까치밥> e-mail : ok_0926@daum.net 글을 써야 숨을 쉬는 글쟁이!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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