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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 잘 하든지 아니면 잘 태어나든지."

영화 <내부자들: 디 오리지널>에서 가장 또렷하게 기억나는 대사다. 저 대사에서 '잘 하든지'에 감춰져 있는 함의는 이렇다. '개처럼 꼬리를 흔들며 시키는 대로 하라'는 것이다. 풀어서 말하면 철저히 기득권 계층이 주입하는 사고를 내면화한 기생충이 되든지, 아니면 기득권 계층의 자녀로 환생하라는 뜻이다. 대한민국에서 출세하려면 말이다.

환생은 불가능한 일이니 결국 노예가 되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영화에서 저 대사의 당사자인 우장훈 검사(조승우 분)는 출중한 능력을 가졌음에도 뒷배가 없다는 이유로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해야만 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소위 '높으신 분'들의 뒤를 열심히 닦았지만 그들에게는 일개 소모품에 지나지 않았다.

영화가 보여주고자 했던 것은 아마도 공공연하지만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은 한국 사회의 뒷모습이었을 것이다. 때문에 성접대의 적나라한 묘사 등 충격적인 장면이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능력의 소용없음에 좌절하는 우장훈 검사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영화 속 우장훈 검사가 느꼈던 좌절감을 현실의 내가 온몸으로 느끼고 있어서일 것이다.

능력주의는 신화다

<능력주의는 허구다>, 책표지
 <능력주의는 허구다>, 책표지
ⓒ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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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노력해서 능력을 효과적으로 발휘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를 내면화 하고 있다. 물론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노력만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매력적이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손쉽게 부를 차지한 사람보다 스스로 모든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자수성가한 사람이 더 대단해 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자수성가했다는 인물이 정말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았을까. 최근에 읽은 <능력주의는 허구다>(사이, 2015)란 책은 이러한 의문에서 출발한다. 대중이 매체를 통해 접하는 성공스토리 대부분은 재구성된 것이다. 요컨대 결과를 토대로 능력주의로 볼 수 있는 과정만 취사선택했다는 뜻이다. 하지만 세세히 들여다보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성공에는 상당한 비능력적 요소가 필요하다는 사실 말이다.

능력주의가 팽배한 사회에서는 산재한 여러 비능력적 요인들을 '무시'하거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쉽다. 하지만 능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능력 자체만 가지고는 힘들다. 능력을 계발할 시간과 자본이 필요하고, 누군가가 능력을 발견해줘야 하며, 능력이 사용될 만한 장소가 있어야 한다. 이는 모두 비능력적 요소다. <능력주의는 허구다>는 이러한 비능력적 요소를 사회적 자본, 문화적 자본, 교육, 상속, 외모, 차별, 운 등 여러 이름으로 부른다.

삶을 결정하는 비능력적 요소들

'열심히 노오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동력을 가장 손쉽게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잘해도 내 탓이며 못해도 내 탓이다.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할 수 있기에 도리어 가장 쉬운 방법이 되는 것이다. 이 같은 '노력=성공'의 등식을 설명하기 위해 동원되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어릴 때부터 지겹도록 들어온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 가면 성공한다'는 부모의 잔소리가 이를 증명한다.

<능력주의는 허구다>는 초장부터 이러한 믿음에 균열을 낸다. 저자는 한국 사회가 불평등을 해소할 유일한 창구라고 여겼던 학교와 교육을 "불평등을 대물림하는 잔인한 매개체"라고 명명한다. 부모는 외면하고 있을지 몰라도 당사자인 학생들은 피부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풍족한 집안에서 자란 친구가 공부도 훨씬 더 잘한다는 사실 말이다. 상위 계층의 학생들이 명문대에 진학할 확률이 높다는 것은 이미 여러 연구로 증명된 사실이다.

우여곡절 끝에 가난한 학생이 명문대에 진학했다고 해서 딱히 달라지는 것은 없다. 가난한 학생들은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스스로 마련해야 하며, 이러한 환경은 학업 성취도를 저하시키는 요소로 작동한다. 즉 "대출에 의존할 필요가 없는 부유층 학생들은 좀 더 학업에 매진할 시간이 주어지고 이로 인해 성취의 측면에서도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74쪽) 이러한 비능력적 요소로 인해 가난한 학생들은 취업경쟁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간신히 취업경쟁에 참여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스펙을 갖췄다고 치자. 그래도 변하는 것은 없다. 사회적 자본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자본이란 인맥을 다르게 표현한 말이다. 취업경쟁에 있어 인맥은 취업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강력한 요소다. 소위 '알음알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일자리가 얼마나 많은가. 즉 일자리를 소개시켜줄 수 있는, 또 능력이 있다고 증명해줄 수 있는 누군가를 알지 못한다면, 능력은 휴지조각이나 다름없다.

결국, 누구를 아는가가 중요하다. (사회학자 마크) 그라노베터는 모든 구직자 가운데 개인적인 인맥을 통해 해당 일자리에 대한 정보를 얻은 사람이 56%에 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중략) 연구에 참여한 응답자 중 개인적인 인맥이나 공식 경로를 통하지 않고 직접 지원한 사람은 18퍼센트에 불과했다. 채용 과정이 전혀 알려지지 않는 일자리도 많다.(92쪽)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는, 하늘이 내려준 비능력적 요소도 있다. 단적인 예로 매력적인 외모를 들 수 있다. 매력적인 외모는 타고난 것이며, 이는 완벽한 비능력적인 요소다. 하지만 인간은 본능적으로 매력적인 외모의 소유자를 선호하며, 이는 필연적으로 "불평등한 기회 구조"(270쪽)를 형성한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취업성형'이란 말이 생겨날 정도다. 하지만 성형이 타고난 외모를 이기기란 쉽지 않다.

또 태어난 시기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기성세대는 요즘 세대에게 노력하지 않는다고 비난하지만 기성세대가 노력한 만큼의 성과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그들이 좋은 '타이밍'에 태어났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저성장의 늪에 빠졌을 때 태어난 세대보다 과거 한국이 초고속 성장을 하고 있을 때 태어난 세대에게 더 많은 기회가 있었다는 명백한 사실을 무시한 채, 노력이라는 잣대로만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공정한 출발을 넘어, 공정한 도착으로

인정하든 인정 못하든 간에 삶은 비능력적 요소에 의해 결정될 확률이 크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아직 공정한 출발선이 주어진다는 전제만 있다면 각자의 노력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에 사로잡혀 있다. 가장 진보적 매체라는 <한겨레>조차 2016년 신년기획으로 '청년에게 공정한 출발선을'이라는 제목을 내세운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나 단언컨대 공정한 출발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속담처럼, 부모는 자식의 성공을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수단을 동원할 것이다. 또 매력적인 외모를 가진 사람은 계속해서 태어날 것이다. 이처럼 비능력적 요소는 사라지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 소비에트 연방처럼 공산주의를 도입하자는 것은 아니다. 공정한 출발선은 없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뜻이다.

이제 공정한 출발선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패러다임을 '공정한 도착'으로 전환해야 한다. 누진세, 상속세 등 불평등을 완화할 수 있는 세금을 도입하고, 강력한 복지제도의 구축이나 기부문화의 활성화를 통해 부를 재분배하며, 노동·계층 운동을 통해 불평등을 억제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힘을 기르자는 것이다. 언제까지 '노오력'에 목매고 있을 텐가. 능력주의 신화는 이미 끝났다.

덧붙이는 글 | <능력주의는 허구다>(스티븐J. 맥나미, 로버트 K. 밀러 주니어 씀/ 사이 펴냄/ 2015. 11/ 정가 15,500원)

이 기사는 김무엽 시민기자의 블로그(picturewriter.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능력주의는 허구다 - 21세기에 능력주의는 어떻게 오작동되고 있는가

스티븐 J. 맥나미.로버트 K. 밀러 주니어 지음, 김현정 옮김, 사이(2015)


태그:#노오력, #능력주의, #재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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