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즌과 달리 '가족'과 '이웃'에 초점을 맞춘 <응답하라 1988>

지난 시즌과 달리 '가족'과 '이웃'에 초점을 맞춘 <응답하라 1988> ⓒ tvN


우리나라에 아파트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58년으로 기록되고 있다. 5층짜리 17평형 규모에 총 152가구가 입주할 수 있었다고 하니, 지금에 비교해 본다면 꽤 아담(?)한 모습이었을 테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뒤, 우리나라는 '아파트 공화국'이 되었다. 아파트는 더 넓어졌고, 또 높아졌다. 국민 주거비율 가운데 아파트가 59.6%를 차지할 만큼, 아파트는 보편화·대중화되었다.

달라진 주거문화는 많은 것을 변화시켰다. 우리는 더 개인화·파편화되었고, 높아진 층수만큼 반비례로 '정'이라는 마음의 층수는 더 낮아졌다. 사람들은 평수에 따라, 가격에 따라, 서로 다른 단지와 동을 구성해 모여 살기 시작했고, 급기야 임대와 분양에 따라서도 서로를 구분 짓기 시작했다. 임대 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의 놀이터 출입을 금지하는가 하면, 택배 차량 진입을 막고 '걸어서 배송하라'는 통보를 내리기도 한다. 경비원들을 향한 '갑질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현대사회를 상징하는 '단지 문화'의 다른 이름은 바로 '단절 문화'다.

높아진 아파트 층수만큼, 높아진 이웃간의 벽

 한 골목에 사는 이웃끼리 정을 나누는 이야기는 어딘지 낯설면서 낯익다.

한 골목에 사는 이웃끼리 정을 나누는 이야기는 어딘지 낯설면서 낯익다. ⓒ tvN


<응답하라 1988>은 아파트 단지 문화와는 정반대로 살아가는 평범한 다섯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는 드라마다. 평상에 걸터앉아 소소한 잡담을 나누며 함께 저녁 반찬을 준비하는 동네 아줌마들, 그리고 저녁마다 친구네 집에 모여 비디오와 만화책을 보는 아이들. 서로 밥을 빌려주는 건 예사 풍경이고, 이웃집에 축하할 만한 일이 생기면 같이 웃고, 또 위로해줘야 일이 있으면 모두가 한마음으로 걱정해주는 모습은 어딘지 낯설면서 동시에 낯익다.

사실, <응답하라> 제작진이 세 번째 시리즈의 배경으로 1988년도를 선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만 하더라도, 우려의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시계추를 너무 과거로 돌려, 자칫 공감 포인트가 약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다. 1990년대 문화에 '응답'했던 시청자가 1980년대를 어떻게 바라볼지도 미지수에 가까웠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제작진의 선택은 옳았고, 시청자는 이번에도 제대로 '응답'하고 있다.

시청률은 벌써 12.2%(닐슨코리아/유료플랫폼 가구/전국 기준)를 돌파, 전작의 기록을 뛰어넘었고, 올해 방영된 모든 드라마 가운데 최고라는 찬사도 끊이지 않는다. <응답하라 1988>이 그려내고 있는 '골목 문화'를 경험했던 세대는 물론이고, 경험하지 않았던 세대마저 TV 앞으로 모여 울고 웃는 것이다. 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이 드라마가 건네주는 '따뜻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따지고 보면 <응답하라 1988>이 그리고 있는 이야기는 그리 먼 과거의 일이 아니다. 우리 부모님의 이야기인 동시에 형과 누나의 학창 시절, 그리고 우리의 유년 시절이 복합적으로 담겨 있다. 비록 시간이 흘러 골목은 사라지고, 아파트 단지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그 시절 행복했던 추억과 시간은 우리 몸과 마음 깊숙한 곳에 내재해 있다. <응답하라 1988>은 단지, 그것을 건드리고 있을 뿐이다.

그때 우리는 '함께'였다

물론, 마냥 행복했던 시절만은 아닐 것이다. 1980년대 후반은 서로 친한 이웃지간에도 결국 주인집과 셋방살이로 나뉘듯 '양극화'라는 괴물이 싹트던 시기였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 한마디가 사람들을 울릴 만큼 사회 부조리와 권력비리가 점철되던 시대였다. 또한,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대통령 직선제는 쟁취했지만, 그다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민주화 과정에서 많은 동력을 낭비한 시절이기도 했다.

다만, 이 드라마를 통해 우리가 느낄 수 있는 한 가지는 바로, 어쨌든 그 시절에는 모두 함께 살아왔다는 것이다. 함께 산다는 건 특별한 게 아니다.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면 충분하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내가 웃기 위해서는 남을 울려야 하고, 내가 타고 올라간 사다리는 다른 사람이 올라오기 전에 걷어차 버리는 게 현실이다. 말 그대로, '나 혼자 사는' 시대다.

골목에서 살던 시절에 비해 우리는 더 많은 돈을 벌고 있고, 더 많은 것을 이뤘다. 삶은 더 깨끗해지고, 또 편리해졌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때보다 더 외롭고 더 각박하다고 느끼는 것일까. <응답하라 1988>이 뭐 대단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왜 드라마는 우리를 따뜻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함께 산다'라는 네 글자 속에 답이 있을 거 같다. 제발 좀 같이 살자고, 그리고 함께 살자고, 처절한 외침과 절규가 메아리치는 현실에서 <응답하라 1988>은 꽤 괜찮은 '나침반'이 될 수 있을 거 같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박창우 시민기자의 개인블로그(saintpcw.tistory.com)와 <미디어스>, <문화저널>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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