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고 외치니, 시청자들이 응답하는 것일까?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는 모두 큰 인기를 끌었다. 그 때문에 이번 <응답하라 1988>(아래 <응팔>)에 대해서 기대만큼이나 부정적인 예측도 있었다. <응답하라 1997>(아래 <응칠>)의 인기로 <응답하라 1994>(아래 <응사>)의 캐스팅부터 관심이 쏠렸던 것처럼, 이번 <응팔>도 대중으로부터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응칠>의 정은지와 <응사>의 고아라를 잇는 여자주인공으로 누가 캐스팅될지 관심이 모인 가운데, MBC 예능 <진짜사나이>에서 애교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걸스데이' 혜리의 캐스팅 소식이 들렸다. '아이돌' 캐스팅은 또 한 번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1회 방송으로 이 모든 우려를 날려 버렸다.

[하나] 스타마케팅이 없다

덕선을 지켜주는 정환 등교실 만원 버스에서 팔뚝에 힘줄을 세우며 덕선 모르게 지켜주고 있는 정환의 모습.

▲ 덕선을 지켜주는 정환 등교실 만원 버스에서 팔뚝에 힘줄을 세우며 덕선 모르게 지켜주고 있는 정환의 모습. ⓒ tvN


아이돌을 내려놓고 쌍문여고 '성덕선'을 열연한 혜리는 연일 연기돌로 이름을 올리며 호평을 받고 있다. 걸스데이 혜리뿐만 아니라, 쌍문동 소꿉친구들인 류준열, 이동휘 등도 흡입력 있는 연기로 많은 관심을 받으며 이름을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류준열은 김정환 역을 완벽하게 소화하며 많은 여자 시청자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다. 이름을 몰랐던 배우들의 열연으로 열 스타 안 부러운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둘] 조연이 없다, 심지어 단역마저 신스틸러들이다

배우들의 열연은 단역들에서도 감탄을 자아낼 정도이다. 5화 초반부, 종로 종각 시위대에서 벗어나, 퇴근하는 성동일의 도움으로 경찰서에 잡혀가는 위기를 모면한 한 남학생을 연기한 단역부터 남달랐다. 선우의 어머니로 김선영의 시어머니로 분한 연기자도, 친정어머니를 연기한 분도, 심지어 구멍가게 아주머니조차도 드라마를 보는 것이 아니라 타임머신을 탄 듯 착각을 하게 한다.

쌍문동 골목길에 앉아 그분들을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감동적인 연기는 시청자들을 덩달아 울렸다가, 웃겼다가, 설레게 한다.

[셋] 내가 보고 있는 이 드라마의 장르를 모르겠다

<응답하라1988>의 정봉 해맑게 웃고 있는 정환의 형 정봉(안재홍 분)

▲ <응답하라1988>의 정봉 해맑게 웃고 있는 정환의 형 정봉(안재홍 분) ⓒ tvN


금지옥엽 키워 서울대 수학교육과에 다니는 딸의 시위대 가담 소식을 들은 성동일(성동일 분)의 호통을 보면, 내가 시대극을 보고 있구나 싶다. 그러다가 정환(류준열 분)네를 보고 있으면, 정봉(안재홍 분)의 활약으로 시트콤을 보고 있는 듯하다. 특히 '음메헤헤' 염소울음소리 효과음을 들으면 내가 '웃기는 이야기'를 보고 있다는 게 더욱 분명해진다.

울고 웃다가 조금 허전해질 때쯤, 독서실에서 새벽 2시가 넘도록 돌아오지 않은 '덕선'(혜리 분)을 걱정하다,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에 결국 우산을 챙겨 기다리던 정환(류준열 분)의 모습이 그려진다. 덕선에게 우산을 넘겨주며 툭 던지는 '일찍 다녀'라는 정환의 한마디에 '심쿵' 한다.

[넷] 그 때 그 시절의 향수, 잊고 있던 정의 의미

다른 시리즈에서는 1세대 아이돌이나 농구 등 그 시대의 한 부분을 대변하는 아이템을 채택하고 그것에 대한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응팔>은 한 발자국 더 나갔다. 시청자에게, 그 시대의 사람들과 그 시대의 정서를 그리워하게 한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산업화로 인해, 많은 이가 전국 각지에서 부푼 꿈을 안고 상경했다. 시골에서 늘 함께했던 이웃 사촌들의 부재는, 현지의 이웃을 사촌처럼 의지하게 됐다. '이웃 사촌'이라는 말이 만들어질 만큼 우리는 이웃과 많은 것을 공유했다.

1화의 에피소드는 엄마의 심부름으로 그릇을 들고 골목을 왔다 갔다 하던, 잊고 있던 나의 추억을 건드렸다. 빈 그릇으로 돌려주면 안 된다며 뭐라도 채워서 돌려주던 그때의 문화는 "이럴 거면 같이 먹어"라며 볼멘소리가 나올법하다. 골목집의 반찬들이 홀로 택이를 키우고 있는 금은방 '봉황당' 최무성(최무성 분)네의 식탁을 가득 채웠을 때의 감동.

그 감동은 잊힌 '정'문화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한집 한집의 반찬들이 골목의 모든 밥상에 공유되며, 누구 집 반찬에 대한 칭찬과 평가가 오갔다. 요즘 어느 반찬가게, 어느 쇼핑몰 반조리식품의 평가를 인터넷에서 공유하는 것만큼이나, 그때는 그게 당연한 일이었다.

골목길 옆집의 수저 개수까지 알고 있던 것이, 이제는 SNS로 실시간으로 나의 생활이 공유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끼리 인터넷상에서 댓글과 공감 '좋아요'로 공유되는 정보와 생각들. 이러한 소통이 당시에는 옆집 사람들과 공유됐다. 5화에서 "시어머니가 오신대"라는 선우 엄마 김선영(김선영 분)의 말 한마디로, 자기 일처럼 대신 성을 내주는 '라미란(라미란 분)'. 그녀의 모습에서, 우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이들이 많은 이야기를 공유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골목길 사람들은 마치 한 가족처럼 움직인다. 그때는 사람들이 지금 우리보다 일명 '정'이 많아서 그랬던 것일까?

[다섯] 가진 게 없고 불편했던 환경, 당연했던 이웃관계

<응답하라1988>의 포스터 모두가 주인공인 드라마. 이런 드라마가 있어서 고맙다.

▲ <응답하라1988>의 포스터 모두가 주인공인 드라마. 이런 드라마가 있어서 고맙다. ⓒ tvN


지금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 단돈 현금 몇만 원이 없을 때, 우리는 신용카드를 이용하면 된다. 집에 밥이 똑 떨어졌을 때, 당장 요 앞 슈퍼에 가서 즉석 밥을 사면 된다. 웬만한 것은 서비스센터를 불러 고치면 된다. 그러나 돈이 있더라도 모든 것이 부족하던 그 시절, 당장 급하면 이웃의 도움이 필요했다. 그래서 우리는 이삿날 이웃에게 떡을 돌리며 인사를 하며, 언제 어떤 도움 요청을 할지 모를 것을 대비해 이웃과 친하게 지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들이 필요 없게 됐다. 이웃 관계가 굳이 불필요한 관계가 됐다. 오히려 실제 주변 사람이 관심을 두면 부담스러워 하게 됐다. 남의 일에 쓸데없이 참견한다며 '오지라퍼'('오지랖'을 떠는 사람을 일컫는 신조어)라며, 오지랖이 넓은 사람을 빗대어 비아냥거리기 바쁘다.

그렇다고 우리가 과거보다 더 독립적인 사람일까. 그렇게 말할 수도 없다. 우리는 지금도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며, 필요한 정보를 얻고 공유하고 자기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보며 반가워하고, SNS 자신의 글에 다른 사람의 공감 표시인 '좋아요', '하트'에 기뻐한다.

지금보다 모든 것이 부족해 보이기만 하는 그때가, 내 식성이 고려되지 않은 반찬을 나누던 그 시대가, 엄마의 해진 양말을 보며 구질구질 속상했던 그때가 아름답게 추억될 수 있어서 기쁘다. 지금의 20대가 살아보지 않아 잘 알지 못하는 1988년. 함께 공감하고, 같이 울고 웃을 수 있게 해주는 이 드라마가 고맙다.

○ 편집ㅣ곽우신 기자


응답하다1988 응팔 성덕선 김정환 류준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