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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저는 32살 늦깎이 중국 유학생입니다. 지난 2011년 계획에 없던 중국어 공부를 처음 시작한 후, 올해 7월 중국 랴오닝성 진저우시 현지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이후 중국을 더 가까이 느끼고자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중국의 일상생활과 유학에 얽힌 에피소드를 담담하게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나 또한 수능을 본 지 1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어느덧 흐릿해져가는 시절이지만, 당시의 압박감과 긴장감만은 아직까지도 선명하다. 새벽에 집에서 나와 0교시부터 자율학습까지 숨 가쁘게 이어지던 수업들. 그것도 모자라 독서실까지 들르고 새벽 한 시나 되어 집에 돌아가던 발걸음이 생생하다.

뭉게구름 같은 입김이 연신 쏟아져 나오던 수능 당일의 추위도 어제일 같다. 마중 나온 후배들이 건넨 초콜릿과 엿을 품에 안고 무거운 마음으로 들어서던 시험장. 나 역시 그 길을 지나왔기에 이 시기가 얼마나 초조할지 알 수 있다.

중국의 한 고등학교 체육대회의 낮과 밤.
 중국의 한 고등학교 체육대회의 낮과 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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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나 중국이나 치열한 입시전쟁

원하는 대학을 가기위해 많은 학생이 고된 수험생활을 한다. 인구가 어마무시한 중국은 어쩌면 우리나라보다 더 치열한 경쟁이 필요할 지 모른다. 중국교육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5년 우리나라의 수능에 해당하는 까오카오에 응시한 인원은 942만 명, 이 중 75.3%의 인원인 약 700만 명이 대학에 합격했다고 한다.

까오카오는 매년 6월 7일에서 9일까지, 이삼일에 걸쳐 치러진다. 3월이 새 학기인 우리나라와 달리 중국의 신학기는 9월에 시작한다. 시험도 여름에 배정되어 있다. 특이한 점은 성(省)마다 시험을 보는 기간이 다르다는 것. 성에 따라 이틀이 될 수도 있고, 삼일이 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랴오닝(辽宁省)성은 이틀인 반면 헤룽쟝성(黑龙江省)은 삼일이다.

이틀까지 전국일정은 같다. 언어영역, 수리영역, 사회·과학탐구영역, 외국어영역 순이다. 그 후 삼일 째에 어떤 성은 제 2외국어를 시험보기 때문에 하루가 늘어난다. 성에 따라 시험문제 또한 다르다. 낙후된 곳일수록 시험난이도가 낮아 일부러 이사를 가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중국에서 까오카오 기간에는 시험 보는 학생이 우선이다. 시험장 근처에서 경적과 같은 큰소리를 금지하고 위급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구급차도 대기시켜 놓는다. 시험 보는 시간대 또한 과학적으로 뇌가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때라고 한다. 수험자를 위한 세세한 배려가 엿보인다. 근처 식당에서는 학생들을 배려해 건강식을 준비한다.

공부를 안 해도 시험성적은 잘 받고파

점집이 빼곡히 들어선 중국의 한 골목.
 점집이 빼곡히 들어선 중국의 한 골목.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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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을 보는 자녀를 위해 절에 찾아가 합격을 기원하며 108배나 백일기도를 드리는 부모에 대한 소식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좋은 대학을 가길 바라는 정성은 국경너머도 다르지 않다. 중국학부모들도 절에서 향을 피우고 부처님께 간절히 기도한다. 때로는 점을 보기도 한다. 한 친구의 부모님이 점쟁이를 찾아갔을 때, 원하는 대학교에 붙는다며 호언장담했다고 한다. 하지만 점괘는 빗나갔다. 친구는 괜한 돈만 날렸었다며 한숨을 쉰다.

까오카오에 관련된 재미있는 미신이 몇 가지 있다. 옛날 방식으로 국수를 만들 때, 말리는 공정이 필요하다. 이때 나무 장대에 국수를 너는데, 이 거는 행위를 '꽈(挂)'라고 한다. 그래서 중국어로 국수는 '꽈미엔(挂面)'이다.

걸어 말린 면이란 뜻이다. 한편 낙제를 뜻하는 중국어는 '꽈커(挂课)'다. 낙제와 국수에 같은 글자가 들어간다. 때문에 까오카오를 보기 전에 '꽈미엔' 먹는 것을 금기시한다. 떨어질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표면이 미끄러운 미역을 먹으면 시험에서 미끄러질 것이라고 믿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위) '나이키' (아래) '터부'의 브랜드 로고
 (위) '나이키' (아래) '터부'의 브랜드 로고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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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답이 맞으면 동그라미(O)를 치고 틀리면 대각선(/)으로 선을 긋는다. 하지만 중국은 정답이면 체크표시(✔)를 하고 아니면 엑스표시(X)를 한다. 이 모양 때문에 까오카오 시험장에서 입는 브랜드가 달라진다. 체크표시는 '나이키'의 로고와 닮았다. 정답을 맞히라는 의미로 많은 수험생이 '나이키' 옷을 착용하고 시험을 본다. 반면 엑스표시가 로고인 중국브랜드가 있다. 당연히 이 시기에는 불길한 마음에 터부시될 수밖에 없다. '더 재미있는 것은 브랜드명 자체가 '터부'다.

기술(?)에 의지하는 이도 있다. 까오카오 시험장에서 실제 일어난 정말 수고스러운 커닝방법에 대해 친구가 알려줬다. 손목시계나 필기구에 자그마한 카메라를 부착해 문제지를 촬영한 다음 옷 속에 연결된 구리 안테나로 밖에 있는 조력자에게 전송해 풀게 한다. 다시 몰래 반입한 핸드폰과 이어폰으로 답안을 수신해 작성한다. 대단한 정성이다. 결국 공안에 잡혀 시험장에서 쫓겨났다고 한다.

막다른 고민에 극단적인 선택까지

부처에게 빌고 있는 사람들.
 부처에게 빌고 있는 사람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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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받는 스트레스도 심하지만 때론 주위에서 주는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때문에 삶을 놓아버리는 안타까운 생명이 적지 않다. 2014년 9월 린리현(临澧县)에서는 두 명의 남학생이 건물에서 뛰어내려 동반자살을 했다. 어떤 심정으로 난간에 섰을지 가늠조차 못할 뿐이다.

중국친구의 수험시절 이야기를 들었다. 매일 집에서 새벽 다섯 시에 나와 밤 열두 시에 귀가했지만 상위권에 들던 성적은 자꾸 떨어지기만 했다. 학교에서 촉망받던 입장에서 담임선생님조차 무시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결국 학부모회의가 열렸을 때 부모를 볼 낯이 없어 끊임없이 눈물이 흘렀다고 한다. 시골출신인 친구는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더욱 가슴이 아팠다고 하다. 결국 친구는 재수를 하고 우리학교에 입학했다.

얼마 전 또 다른 친구는 대학에 온 것을 후회한다고 털어놨다. 돈만 날리는 것 같단다. 대학을 보낸 부모님에겐 감사하지만, 없는 살림인지라 등록금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방과 후나 방학 때 성실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쓰던 친구라 더욱 안타까웠다. 친구에게 대학졸업이 너에게 어떤 기회를 줄지 길게 찬찬히 보라며 다독일 수밖에 없었다. 학력이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어쩔 수 없는 현실에 씁쓸함을 느꼈다.

한국이나 중국이나 학력에 의한 차별은 존재한다. 이런 현실을 아는 기성세대들은 자녀에게 좋은 대학에 대해 압력을 넣을 수밖에 없다. 자식을 위한 참견이 때때로 슬픈 결말을 낳기도 하지만 말이다. 중국은 사소한 것에 차이를 느낄 때도 있지만,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동질감을 느낄 때가 많다. 같은 문화권인 탓인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민도 대체로 비슷하다. 

향에 불을 붙이고 있다. 향은 절에서 판매하는 물품이지만 경우에 따라서 무료로 나눠주기도 한다.
 향에 불을 붙이고 있다. 향은 절에서 판매하는 물품이지만 경우에 따라서 무료로 나눠주기도 한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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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시험지옥 - 과거'라는 책을 보면 이런 걱정들은 과거제도가 시작된 6,7세기 무렵부터 이어지는 걸 알 수 있다. 관리가 되는 것 말고는 부자가 될 수 있는 길 자체가 극히 제한됐던 것. 때문에 천 년 전에도 치맛바람은 물론 기묘한 커닝 수법이 속출한다. 쓴웃음이 날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도 수험생 시절, 공부 잘하는 학생의 방석을 깔고 앉으면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 수능이 다가올수록 상위권 학생들은 불안함에 떨었다. 실제로 방석을 도둑맞는 학생이 꽤 됐기 때문이다. 미신인 걸 알면서도 무언가에 기대 심리적 안정을 찾으려 한 것이다. 원하는 대학에 척 붙으라며 엿을 선물하는 것도 실은 이런 맥락이 아닐까.

수능은 대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에게는 성인으로서 첫 고개를 넘는 것이다. 부담스럽고 불안하겠지만 모쪼록 잘 넘기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곧 맞이할 해방감을 기대하며 고된 수험생활의 끝을 달리는 수험생들에게 격려를 보낸다.

○ 편집ㅣ장지혜 기자



태그:#중국, #중국유학, #까오카오, #수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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