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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1년 계획에 없던 중국어 공부를 처음 시작한 후, 이듬해 중국 랴오닝성 진저우시 현지 대학교에 입학한 32살 늦깎이 유학생입니다. 올해 7월 졸업을 앞두고, 이후 중국을 더 가까이 느끼고자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가 경험한 중국의 일상생활과 유학에 얽힌 에피소드를 담담하게 풀어나갈 예정입니다. [편집자말]
얼어붙은 발해만. 건너편 섬으로 걸어서 건너갈 수도 있다.
 얼어붙은 발해만. 건너편 섬으로 걸어서 건너갈 수도 있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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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9월에 학기가 시작하지만, 한국에서 1년을 배우는 도중 입학한 상태였기 때문에 본교로 가는 게 반년 늦어졌다. 그래서 중국에 도착한 건 다음해 2월이었다. 드디어 시작된 외국 생활. 종종 상상하던 일이 늦은 나이에나마 이뤄지다니 꿈만 같았다. 다만 어릴 때 상상 속 장소는 주로 미국이나 유럽이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설레는 마음으로 분주하게 출국 준비를 했다.

현지에 대한 지식이 전무 한 상태에서 짐을 챙겼던 터라 우왕좌왕하며 한 보따리를 이고 떠났었다. 생활하는 곳에 대해 이해가 점차 생기면서 하나둘씩 적응해나갔다. 하지만 이후로도 짐과의 전쟁은 언제나 골머리를 아프게 한다.

커다란 짐과 비행기는 최악의 궁합

학교에서 자주 사먹었던 음식들. 왼쪽 위 쪽부터 반시계방향으로 량피, 김밥, 카오렁멘.
 학교에서 자주 사먹었던 음식들. 왼쪽 위 쪽부터 반시계방향으로 량피, 김밥, 카오렁멘.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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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한국을 오가면서 한 가지 터득한 것이 있다면 짐은 적을수록 좋다는 것이다. 어차피 생활하다 보면 기하급수로 짐이 늘기 때문에 가서 버리고 와도 좋을 것을 우선으로 챙기고 현지에서 구할 수 있으면 무조건 목록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여행도 아니고 생활을 위한 짐이라 줄여도 항상 적은 양은 아니었다. 여러 옷가지와 신발을 택배로 보내도 한 보따리니 짐에 대한 스트레스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20킬로그램에 육박하는 캐리어와 컴퓨터와 각종 전자기기를 넣은 배낭, 여권과 돈이 든 크로스백은 기본 장착 아이템. 여기에 더해졌으면 더해졌지, 가벼워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한때는 설렘이었던 비행기 탑승도 어느덧 고역으로 바뀌었다.

제한된 무게를 넘길까봐 짐을 싸면서 전전긍긍하며 머리를 쥐어뜯었던 기억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늦어도 1시간 반 전에 도착해 검색대에서 가방을 다시 풀어헤치고 검사받는 것도 지치는 일이다. 간혹 통과하지 못하는 물건이 나올 때면 그 자리에서 괴성이라도 지르고 싶다.

컴퓨터나 휴대전화 또는 보조배터리 같은 전자제품의 경우 따로 검사를 한다. 막무가내로 싼 가방 밑바닥에 박혀있기라도 하면 재차 일일이 뒤져야 한다. 짐을 꺼내기 싫어 팔을 깊이 넣어 휘저어 보지만 도통 손에 잡히지 않는다. 결국 다른 짐들을 다 비워야만 빼꼼 모습을 드러낸다. 이제는 꺼내기 쉽게 미리 배치해 놓긴 하지만 힘든 건 여전하다. 꺼내고 집어넣을 때마다 이마와 등줄기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기우가 만든 짐 한 보따리

슬리퍼라고 적힌 욕실 슬리퍼와 '런닝맨' 가방. 모두 시중에서 팔고 있는 것들이다.
 슬리퍼라고 적힌 욕실 슬리퍼와 '런닝맨' 가방. 모두 시중에서 팔고 있는 것들이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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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란 국가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서였을까. 중국제에 대한 무의식적인 불신으로 소소한 것까지 준비했었다. 대도시 경우 한국 마트가 있어 생활에 필요한 것은 모두 장만할 수 있으나, 작은 도시는 물건을 구입할 여건이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한몫했다.

하지만 학교에 도착하고 곧바로 후회했다. 없으면 없는 대로 적응하는 것이 사람이라 하지 않았던가. 굳이 준비하지 않아도 될 물품은 많았다. 어차피 한국에서 사는 대부분의 물품이 '메이드 인 차이나'인데도 쓸데없는 걱정을 한 것이다. '한국보다 물건이 이상하겠지?'라는 불신을 걷어내고 가격이 너무 싼 것만 피하면 제품 자체는 괜찮다.

자주 사용하는 학용품은 까만색 볼펜이나 리포트 제출용 원고지 정도였고, 생활용품이나 옷도 이상한 글귀가 적힌 디자인만 피하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굴림체로 프린트된 '사랑' '우정' '런닝맨' 같은 단어나 어법에 맞지 않는 말도 안 되는 문장이 반갑게 느껴진 적도 많았다. 간혹 한글로 '슬리퍼'라고 적힌 욕실 슬리퍼 등 유치한 물품도 있긴 하지만.

중국에는 노상에서 아침식사를 파는 곳이 많다. 요우티아오(밀가루를 길게 반죽해 튀긴 빵), 만두나 죽, 두유등을 판다.
 중국에는 노상에서 아침식사를 파는 곳이 많다. 요우티아오(밀가루를 길게 반죽해 튀긴 빵), 만두나 죽, 두유등을 판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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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은 파급력이 크다. 마치 모든 행동의 원천인 듯했다. 먹거리에 대한 걱정도 짐을 크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그때 챙겼던 음식만 해도 라면, 즉석밥, 각종 통조림(깻잎·참치·햄), 고추장 같은 장류, 김치, 김 등 엄청났다. 거기에 집에서 직접 만든 강된장까지 가져갔으니 얼마나 미련한 일이었는지.

시간이 지나니 굳이 김치를 먹지 않아도 살만했다. 가끔 시원하고 아삭한 김치를 먹고 싶을 때는 아쉬운 대로 조선족이 하는 한국식당에 가서 입맛을 달랬다. 일반마트에서 파는 고추장과 된장은 비록 중국산이지만, 입이 까다롭지 않은 나로선 모두 먹을 만했다. 채소를 사다가 고추장만 찍어 먹어도 무슨 이유인지 집밥 향기가 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잠시 달래기도 했다. 어떤 한국학생은 그것으론 부족했는지 비교적 만들기 쉬운 깍두기를 담가 먹기도 했다.

사람이 얼마나 적응력이 빠른 동물인지 몸소 느낀다. 중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물갈이로 고생을 했었지만 이제는 좋아하는 중국음식이 많다. 체험이라 생각하고 그 나라의 음식을 즐기는 것도 유학의 묘미일 것이다. 굳이 짐을 늘리지 말고 방학 때 한국으로 돌아가 그리웠던 한국음식을 마음껏 즐기는 방법도 나쁘지 않다.

한국에서 빼놓지 않고 챙겨갔던 것들

차단(茶蛋). 차와 각종 향신료를 우린 물에 익혀낸 계란. 짭짤하니 맛있다. 주로 아침에 많이 먹었다.
 차단(茶蛋). 차와 각종 향신료를 우린 물에 익혀낸 계란. 짭짤하니 맛있다. 주로 아침에 많이 먹었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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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백화점이나 상점을 돌면서 느꼈던 것은 같은 브랜드라도 우리나라보다 가격이 비싸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로드샵은 물을 건넜단 이유만으로 가격이 두세 배로 뻥튀기가 된 채 백화점에 입점했다. 이해 못할 일은 아니지만 큰 가격 차이로 쉽게 구매할 수 없어 아쉬움이 컸다. 상점을 돌면서 화장품을 보고 있노라면 한국에서 세일이나 원플러스원 행사를 할 때 들뜬 마음으로 몇 개 구입하던 때가 그리웠다.

사정이 이러하니 화장품은 항상 한국에서 사 갔다. 한국화장품을 파는 곳은 널렸지만 진짜는 가격이 비싸고 구분하지 못할 가짜도 많다. 중국인들이 한국에 왔을 때 화장품을 싹쓸이해가는 심정이 충분히 이해된다. 그래서 중국으로 돌아갈 때 한국에서 세일하는 시트팩을 두둑이 챙겨가 친구들에게 기념품으로 나눠주기도 했다.

또 하나의 난관은 목욕할 때 찾아왔다. 중국 수건은 얇디얇아 수건의 제 기능을 못하는 것 같았다. 쓸 만한 수건을 찾아도 가격이 싸지 않으니 도저히 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집에 나뒹굴던 출처 모를 기념수건이 최고였다. 새겨진 글씨에 구애받지 않고 몇 개 챙겨가니 귀국할 때 미련 없이 버리고 올 수 있어서 홀가분했다.

음식을 먹을 때는 뿌려먹을 소스가 아쉬운 적이 많았다. 그중 구하기 힘든 소스가 몇 가지 있었다. 머스터드소스와 캡사이신, 돈가스소스 등인데 대형마트에서도 찾기 힘든 제품들이다. 평소 즐겨 먹는 것이어서 눈에 불을 켜고 찾아봤지만 구하기 힘들었다. 특히 캡사이신소스는 인터넷에서도 찾을 수가 없어서 결국 한국에서 공수해 갔다. 물론 입맛 차이다. 어떤 사람은 한국에서 먹던 맛이 안 난다며 후추와 카레가루를 줄기차게 사왔다.

그외 가장 기본적인 물품이라면 비상약과 전기장판·노트북 등이다. 이상하게 중국 감기약의 경우에는 나에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한국약이 독한 건지 중국약이 맞지 않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게다가 중국어가 익숙하지 않을 때 증상을 설명하고 약을 사기 어려울 듯싶어 기본적인 의약품은 챙겨갔다.

과욕은 금물, 유학생활에서 '무소유'를 떠올리다

한인타운에서 먹었던 한국음식들. 중국에 있으면 설렁탕이나 감자탕같은 시원한 국물이 땡긴다.
 한인타운에서 먹었던 한국음식들. 중국에 있으면 설렁탕이나 감자탕같은 시원한 국물이 땡긴다.
ⓒ 김희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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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으로 가기 전, 한동안 중국음식을 못 먹는다는 생각에 진저우의 맛집을 돌며 매일같이 먹어댔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똑같은 일이 또 벌어진다. 살찌는 것은 물론이고 건강도 안 좋아지는 느낌이 든다. 1,2년을 반복하며 먹고 물건을 사들이다 보니 모두 낭비란 생각이 들었다. 욕심 부려 챙겨간 물건은 다 쓰지도 못했고, 꾸역꾸역 먹었던 음식은 살을 찌게 했다. 결국 손해인 행동이었다.

타지에서 살다보면 아쉬운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오며가며 느낀 가장 중요한 원칙은 욕심을 버리는 것이었다. 아쉬운 점을 다 채우기보다 필요한 물건만 최소한으로 챙기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중국 물건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불신으로 보부상이 돼야 했던 후회는 물건의 대한 집착을 많이 없애줬다. 무소유의 참뜻을 희미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 멋도 모르고 준비해 헤매고 후회했던 점이 많았다. 당연한 일이다. 누구나 처음엔 두렵고 어설프다. 이런 경험이 쌓이고 노하우가 생긴다면 자신만의 값진 재산이 될 것이다. 개개인마다 우선하는 것이 다르나, 이 글을 보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 편집ㅣ김지현 기자



태그:#중국, #중국유학, #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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