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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사람만 사람이고, 우린 사람도 아니요?" 미국 강제징용 피해자에겐 고개 숙여 사과하고, 한국 강제징용 피해자에겐 아무런 사과도 하지 않는 '일제 전범기업' 미쓰비시의 이중적 태도에 근로정신대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86)는 울분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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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람만 사람이고, 우리는 사람도 아니오?"

근로정신대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86)는 연신 주먹으로 가슴을 내려쳤다. 전범 기업 미쓰비시가 미국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사과하던 날, 같은 강제징용 피해자인 할머니는 "난데없이 가슴을 또 뒤집는 소식에 잠을 못 이루고" 있다.

기무라 히카루 상무 등 미쓰비시 머티리얼(전 미쓰비시 광업) 대표단은 19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사이먼 비젠탈 센터에서 강제노역 피해자 제임스 머피(94)씨에게 "강제 노동하게 한 데 도의적 책임을 통감한다"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대표단은 '왜 한국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유감 표명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엔 "소송이 진행되고 있어 의견을 밝힐 수 없다"며 답을 피했다. 한편 미쓰비시 그룹의 다른 계열사인 미쓰비시 중공업은 이번 사과가 있기 6일 전인 지난 13일,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는 광주고법 항소심 판결에 불복해 대법원에 상고했다.

'미국엔 사과, 한국엔 상고'라는 미쓰비시 이중적 태도에 할머니는 "강제징용 갔을 때보다 더 속이 뒤집어진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우리에게도 사과하고, 그 쪽(미국)에게도 사과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일이 이렇게 됐으니) 나도 사람이라 마음을 진정시키겠나"라며 "나고야(할머니가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곳)에 가 아무나 붙잡고 '억울하다' 큰소리라도 치고 죽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쓰비시, 어서 늙어 죽으란 태도 "

양금덕 할머니(86)가 21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양금덕 할머니(86)가 21일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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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오후, 광주 서구의 다섯 평 남짓한 자택에서 만난 할머니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이번 미쓰비시의 태도가) 어서 늙어 죽으란 식으로밖에 생각되지 않는다"고 운을 뗀 할머니는 "우리를 사람으로 안 보니 그런 행동을 한 것"이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그러면서 "'올해는 (사과를 받을 수 있다는) 좋은 소식이 있을까?'하며 손꼽아 기다린 게 70년 세월이다"며 "광복 70년이 지나도록 한국 정부가 말 한마디 못하니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가 더 우리를 농락하는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1944년 5월, 할머니는 열다섯의 나이에 일본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일본인 교장의 '일본에 가면 돈도 벌고 중학교에도 갈 수 있다'는 말에 속은 할머니는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상상하지 못한 채 바다를 건넜다.

학교 대신 '미쓰비시 중공업 나고야 항공기제작소'로 끌려간 할머니는 임금 한 푼 받지 못하고 강제노역에 시달렸다. 여름엔 하루 12시간, 겨울엔 하루 10시간 동안 일한 할머니는 장시간 페인트와 시너에 노출된 탓에 한쪽 눈이 멀고, 냄새를 맡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페인트칠할 때) 시너를 하도 묻히니까 손이 짝짝 벌어져요. 그때 약이 있소, 뭐가 있소. 저녁 되면 뜨겁고 아파서 아이고, 말도 못해요. '엄마, 엄마, 엄마 아파 죽겠어요'하면서 울고불고했죠."

한창 전쟁 중이었던 터라 할머니를 비롯한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적기(적군의 비행기)가 나타났다"는 말에 수시로 방공호에 드나들기도 했다. 지척에서 터지는 포탄도 수시로 목격했다. 1944년 12월 도난카이 대지진 때에는 함께 고향을 떠난 동료 6명을 하늘로 떠나보내야 했다. 이때 정신을 잃은 할머니는 갈비뼈가 부러진 채 공장 한편에서 발견돼 겨우 목숨을 구했다.

"말 한 마디 못하는 대통령... 너무 분해"

소학교(초등학교의 전신)에 다니던 1944년 일본에 가 강제징용에 시달린 양금덕 할머니(86)는 지난 2008년 자신이 다니던 나주초등학교로부터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21일 할머니가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 도중 졸업장을 내보이고 있다.
 소학교(초등학교의 전신)에 다니던 1944년 일본에 가 강제징용에 시달린 양금덕 할머니(86)는 지난 2008년 자신이 다니던 나주초등학교로부터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21일 할머니가 <오마이뉴스>와 한 인터뷰 도중 졸업장을 내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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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나고야 미쓰비시 조선여자근로정신대 소송을 지원하는 모임',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 등의 도움을 받아 1999년부터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 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벌여왔다. 할머니와 시민모임은 그동안 수많은 소송과 기각 끝에 2013년 11월 광주지법으로부터 첫 승소 판결을 받았고, 지난 6월에 열린 항소심에서도 승소했다(관련 기사 :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피해자들, 항소심도 승소). 지금은 판결에 불복한 미쓰비시 중공업 때문에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최근 일제 강제징용 시설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을 때, 분통을 겨우 억누르며 '(한국 정부가 등재에 동의해줬으니) 이제는 일본 정부와 미쓰비시가 사과라도 하겠구나!' 기대했던 할머니다. 하지만 그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분명히 사과해야죠. 양심에 손을 얹고 잘못했다고 뉘우치기라도 하면 보상을 떠나서 나도 마음을 풀죠. 그런데 미국 사람에게만 고개 숙이고…. 이게 사람이 할 짓이냐고요."

할머니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 한국 정부"를 향해서도 쓴소리를 이어갔다.

"일본 정부는 돈 주기 싫어서 버티고, 거짓말하고 그런다 합시다. 그런데 우리 한국 정부는 뭣을 하느냐 이겁니다. 미국엔 고개 숙여 사과하면서 우리에겐 사과 한마디 없는 일본 정부를 보면서 왜 가만히 있느냐고요. 그것이 너무 분하고, '내가 왜 한국에서 태어났을까?' 그런 마음마저 들어요. 명색이 대통령이란 사람은 왜 말 한마디 못 합니까. 그런 대통령이 무슨 대통령이냐고요."

2009년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에게 후생연금 탈퇴 수당으로 99엔을 지급했던 일본 정부가 올초 추가 소송을 제기한 다른 피해 할머니들에게 199엔을 지급해 문제가 됐다. 피해 할머니들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2월 25일 오전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 정부·전범기업의 사과 및 합당한 배상, 한국 정부의 외교적 노력 등을 요구했다. 2009년 99엔 지급 통보를 받았던 양금덕 할머니(왼쪽)와 이번에 199엔 지급 통보를 받은 김재림 할머니가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 눈물 흘리는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 2009년 근로정신대 피해 할머니들에게 후생연금 탈퇴 수당으로 99엔을 지급했던 일본 정부가 올초 추가 소송을 제기한 다른 피해 할머니들에게 199엔을 지급해 문제가 됐다. 피해 할머니들과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2월 25일 오전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일본 정부·전범기업의 사과 및 합당한 배상, 한국 정부의 외교적 노력 등을 요구했다. 2009년 99엔 지급 통보를 받았던 양금덕 할머니(왼쪽)와 이번에 199엔 지급 통보를 받은 김재림 할머니가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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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ㅣ곽우신 기자



태그:#미쓰비시, #일본, #강제징용, #한국,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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