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위너의 송민호가 21일 오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 SBS 가요대전 포토월 >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룹 위너의 송민호 ⓒ 이정민


한이 예술을 만든다. 구성진 판소리도, 찰진 힙합도 그렇게 만들어졌다. 타국의 뒷거리를 전전하며 가난과 박대를 벗어날 수 없었던 흑인들. 그들은 그 한을 음악으로 승화했다. 흥겨운 리듬에 한 서린 가사를 붙여 삶의 고통을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것이다.

그렇기에 힙합의 욕설은 시원했다. 자신을 버리는 사회를 향해, 세상을 향해, 심지어는 본인을 향해 내쏘는 욕설은 공감할 수 있는 울분 그 자체였기에 사람들은 힙합정신에 공감했다. 그들의 욕설을 들으며 공감했고 스트레스를 해소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힙합정신은 '공감할 수 있는 울분'으로 정의내릴 수 있다.

그런데 본래의 힙합정신은 사라진 채 혐오 발화를 가장하는 수단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산부인과 진료에 대한 오해 부르는 가사

지난 10일 방송된 Mnet 힙합 서바이벌 <쇼미더머니4>에서 남성 5인조 그룹 위너의 랩퍼 송민호가 부른 랩의 "미노 딸내미 저격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라는 가사가 대표적이다. 청소년기까지는 뚱뚱했던 송민호가 살을 빼자 여자들이 그와 자려한다는 의미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쇼미더머니> 측과 송민호에 즉각 반발하는 성명을 냈다. 그의 가사가 산부인과를 비하할 뿐 아니라 여성 전반을 비하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가사가 여성 비하, 즉 혐오발화(hate speech)로 분류되는 이유는 '벌린다'는 말의 의미 때문이다. '벌린다'는 여성이 남성과 성관계하는 모습을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따라서 산부인과 검진을 하는 모습을 가리켜 '벌린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 여성이 자신의 건강을 위해 검진을 받는 것을 속되게, 천박하게 여긴다는 의미가 될 수밖에 없다. 즉, 송민호의 가사는 여성이 산부인과에서 진료 받는 것을 '타인에게 자신의 성기를 천박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봤다고 해석된다.

이러한 의미로 미루어봤을 때 산부인과 측에서 즉각 반발하는 것은 타당하다. 가뜩이나 여성의 성 질환에 대해 쉬쉬하는 한국 사회다. 젊은 여성이 산부인과에 가는 것을 쉬이 '낙태하는 것'으로 넘겨짚고 수군대는 게 한국 사회의 실정이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산부인과의 문턱은 일반 병원보다 높아졌고 결국 여성들은 작은 여성 질환으로 오래도록 고생하는 촌극이 종종 빚어지곤 한다. 그런 와중에 송민호가 저런 랩까지 함으로써 산부인과에 대한 오해를 확대재생산하는 데 기여했으니, 산부인과 측에서는 봐 넘길 수 없는 것이다.

여성 전반이 분노하는 것 역시 당연하다. 여성의 신체적 특성 상 산부인과의 진료를 받으며 성기를 드러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치과 진료를 위해 입을 벌리고, 맹장 수술을 받기 위해 개복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를 가리켜 '타인에게 성기를 드러냈으므로 정숙하지 못하다'는 이미지와 연관 지었으니, 여성의 입장에서는 본인이 가지고 있는 신체적 특성이, 본인의 건강을 위한 행위가 '천박하다'는 욕설을 들을 일로 치부된 것이나 다름없다. 여성들의 수치심, 분노의 이유다.

왜 예술을 가장한 혐오 발화인가

그럼에도 일각에서는 "이게 바로 힙합 정신"이라는 옹호론을 제기한다. 하지만 타인의 신체적 특징을 가리켜, 건강을 위한 진료행위를 가리켜 성적으로 비하하는 가사가 단순한 예술로 받아들여질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영화의 형식을 취하는 모든 포르노가 예술일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힙합 정신은 앞서 말했듯 부조리한 사회에 대한 비판 혹은 세상살이에 대한 울분에 공감하는데 있다. 그러나 송민호의 본 랩에는 부조리한 사회 비판 정신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울분도 없다. 설사 외모 지상주의를 겪으면서 본인이 겪었던 슬픔을 표현한 것이라 치더라도, 그의 가사 때문에 오히려 울분을 겪어야 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런 그의 가사가 사람들의 공감을 살 수는 없다. 작금의 논란이 그 증거다. 그의 랩은 힙합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다.

개그와 힙합, 판소리 모두를 아우르는 풍자의 묘미는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공감'에 있다. 부조리한 세상을 비판하고 욕하며 다 같이 웃는 데에서, 속이 시원해지는 데에서 그 정수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오늘 날 일부 랩은 그런 본래의 취지를 잃어버린 채 그저 욕하는 데에만 집중하고 있는 듯하다. 힙합 정신이 무엇인지를 모르니 비판의 대상을 혼동하고, 결국 자신처럼 어렵게 세상을 사는 애꿎은 타인을 향해 욕설을 내뱉고 마는 것이다. 힙합 정신에 반하는 일이다. 이는 결국 예술을 가장한 혐오 발화에 불과하다. 한을 한으로 풀어서는 안 된다.

힙합 여성비하 송민호 산부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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