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듣고 있노라면 꼭 내 얘기 같습니다. 부르면 부를수록 점점 더 내 속사정을 우려낸 사연입니다. 어떤 노래를 듣다, 너무나 내 얘기 같고 너무나 내 사연 같아 깜짝 놀랐던 적이 다들 있을 겁니다.

어떤 노래는 아련했던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어떤 노래는 잊고 있던 이름이나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흥얼흥얼 따라 부르다 보면 부지불식간 신세타령이 되고, 한두 소절 새기다 보면 어느새 팔자타령이 되는 노래도 있습니다. 

노랫말에서 내 얘기 같은 동질감을 느끼고, 노랫가락에서 내 사연 같은 울림을 찾아내는 건 개개인적인 사정일 수도 있고 한 사람만의 취향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노랫말이 써지고 곡이 붙여지는 과정, 방송을 타거나 사람들 입에서 불리던 노래가 어느 날 갑자기 금지곡이 돼 더 이상 부를 수 없는 노래가 되고, 금지가 풀려 다시 불리는 등의 우여곡절이야 말로 그 노랫말이 안고 시대적 이야기이자 노랫가락으로 이어지고 있는 사회적 사연이 될 것입니다.

시대를 관통한 스무 곡 노래에 담긴 사연, <인생, 한 곡>

<인생, 한 곡> (지은이 김동률, 사진 권태균·석재현 / 펴낸곳 (주)알에이치코리아 / 2015년 6월 19일 / 값 1만 4,000원)
 <인생, 한 곡> (지은이 김동률, 사진 권태균·석재현 / 펴낸곳 (주)알에이치코리아 / 2015년 6월 19일 / 값 1만 4,000원)
ⓒ (주)알에이치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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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한 곡>(지은이 김동률·사진 권태균·석재현, 펴낸곳 (주)알에이치코리아)는  탈도 많고 사연도 많은 우리나라, 오래 전부터 지금까지, 얼마 전부터 지금까지라는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가요 스무 곡을 좇은 기행의 글이자 탐사의 글입니다.

오빠를 그리워하는 동정심정도로만 알고 있을 수도 있는 <오빠생각>속의 '오빠'는 일제강점기였던 1925년, '다음에 올 땐 우리 순애 고운 댕기 사줄게'하고 서울로 떠난 후 소식이 끊어진 오빠를 기다리던 아동문학가 최순애(고향의 봄으로 유명한 아동문학가 고 이원수 선생의 부인)선생이 쓴 피눈물 같은 그리움입니다.  

책에서 시대를 관통한 노래 스무 곡, <광화문 연가>, <물레방아 도는데>, <오빠 생각>, <향수>, <서른 즈음에>, <고래사냥>, <아침이슬>, <봄날은 간다>, <낭만에 대하여>, <골목길>, <세노야>, <북한강에서>, <부용산>, <굳세어라 금순아>, <칠갑산>, <사제>, <임을 위한 행진곡>, <세월이 가면>, <한계령>,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좇고 더듬는 여정은 한 소절 노랫말이 만들어지는 태몽풀이 같은 배경 설명이며, 스무 곡 노래가 음률로 담고 있는 시대적 사연입니다.

얼마 전, 광주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확인되었듯 <임을 위한 행진곡>은 완성 된지 오래 된 노래이나 지금까지도 우여곡절 같은 사연, 어처구니없을 만큼 경직되고 권위적인 정치·사회적 흔적을 새겨가고 있는 현재진행 여정입니다.

폭력적 권력이 남기는 역사적 나이테

그러나 <아침이슬>은 얼마 뒤 10월 유신을 맞아 금지곡으로 묶여 제도권에서는 철저히 외면당한다. 다시 들리게 된 것은 이른바 '6·29선언'이후다. <아침이슬>의 방송금지 사태는 참으로 희화적이다.

가사 맨 처음 등장하는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에서 "긴 밤"이 1970년대 당시의 유신정권을 의미한다는 게 나중에 밝혀진 금지 이유였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아침이슬>은 1970년에 이미 발표됐고 유신은 1972년 10월에 선포됐다. 금지시키기 위해 억지로 갖다 붙인 황당한 이유쯤 되겠다. -<인생, 한 곡> 115쪽-

유신이 발표되기도 전에 만들어진 노랫말을 나중에 발표 된 유신을 의미한다는 이유로 금지 시켰다고 하는 설명은 유신이 얼마나 졸렬하고, 근본 없고, 폭력적인 정권 있었는지를 생생히 고발하는 시대적 웅변이자 역사적 나이테입니다.

거나하게 취해 <굳세어라 금순아>를 흥얼거리는 어느 어르신의 삶 속에는 국제시장 장사치를 연상하게 하는 사연이 있고, 조용필을 조용필로 탄생시킨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조용필만 탄생시킨 게 아니라 동백섬을 낳고 오륙도를 키워낸 형체 없는 산모입니다.

노래를 좇고, 노랫말을 더듬고, 되새김질을 하듯 음률을 읊조리다 보면 내 얘기만 같아 미처 새기지 못했던 속 깊은 배경, 내 사연만 같아 아직 되돌아보지 못한 뒷그림자 같은 비화까지도 엿듣게 되니 노래 한 곡에 실린 인생은 천 근 무게로 무거워 지고, 노랫말 한 토막이 담고 있는 사연은 천 근 무게를 감당하고도 남을 만큼 점점 깊어지고 넓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인생, 한 곡> (지은이 김동률, 사진 권태균·석재현 / 펴낸곳 (주)알에이치코리아 / 2015년 6월 19일 / 값 1만 4,000원)



인생, 한 곡 - 김동률 교수의 음악 여행 에세이

김동률 지음, 권태균.석재현 사진, 알에이치코리아(RHK)(2015)


태그:#인생, 한 곡, #김동률, #권태균, #석재현, #(주)알에이치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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