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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화 군사주의 젠더 <군사주의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을까>
▲ 책표지 지구화 군사주의 젠더 <군사주의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을까>
ⓒ 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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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때 배운다.

1960년대 우리의 주력 수출 품목은 신발과 섬유다. 본격적인 중화학공업 시기 이전에 경공업을 육성했다. 이유는 '저렴한 인건비'라 했다. 외워서 시험을 쳤다. 그렇게 교과서에 나왔으니까,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그런가 보다 했다. 

미국 클라크 대학교의 신시아 인로 교수가 쓴 <군사주의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을까>는 이 관성적인 지식에 능동성을 부여하는 주장을 제기한다. 단지 '저렴한 인건비'뿐이었을까. 우리가 지금도 흔히 무심코 대하는 '값싼 노동'의 개념은 그 자체로 타당한가.

저자는 책을 쓰기 2년 전, 도쿄에서의 강연 경험을 풀었다. 강연을 하던 중, 청중들에게 신발을 벗고 그 신발이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보라고 말했다. 브라질, 중국, 태국, 브라질, 인도네시아, 베트남. 다양한 나라가 쏟아졌다.

그리고 뒤이어 덧붙였다. 이런 호기심은 매우 중요하다면서.

"이 나라 중에서 여성들이 자주적인 노동조합을 결성할 권리를 거의 가지지 못한 채 신발을 바느질하게 하는 곳은 어느 나라인가? 경영진과 정부 관료들이 여성 노동조합 조직책을 위협하기 위해 군대를 이용하는 것이 기업과 국가의 생산성에 필요하다고 보는 나라는 이 중 어느 나라인가?

여성들은 결혼하면 임금노동을 그만두고 무임금 전업주부가 될 것이므로 승진할 자격이 없다고 여성들을 이해시키는 나라는 이 중 어느 나라인가? 이 나라 중에서 좋은 딸이 해야 할 주요 의무는 가난한 시골 부모님에게 돈을 계속 보내주는 것이어서 초과 근무 덜 강요받기 같은 더 나은 노동 조건을 요구하는 것은 두렵다고 생각하는 여성 고용인이 있는 나라는 어디인가?" - <군사주의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을까>에서

한국 군사정권의 구애를 받았던 '글로벌' 운동화 회사들

불행히도 저 나라들 이전에 한국이 있었다. 우리가 배웠거나 겪었던 시절의 이야기다. 책에 따르면, 1960년대 한국의 군사정부는 운동화 회사들에게 먼저 구애를 펼치기 시작했다. 박정희 정권은 시민이 생각하는 '모범적인 한국의 젊은 여성'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바꾸는 데 성공한다. 물론 '안보'나 '민족'이란 적당한 양념도 버무려서 말이다.

군사정부는 '국가안보' '민족 자존심' '근대화' '산업 성장'이라는 개념들을 융합하면서, 딸들의 부모들을 설득하여 '품위 있는' (곧 '좋은 신붓감'인) 남한의 젊은 여성에게 '자연스러움'이란 부모 집 밖에서 일하는 것이라고 그 정의를 급진적으로 바꾸었다. - <군사주의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을까>에서

궁극적인 목적은 한국의 젊은 여성들이 하는 '딸로서의' 노동을 외국 기업이 이용할 수 있을 만큼 싸게 만드는 데 있었다. 둘의 이해관계는 멋지게 맞아떨어졌다. 그래, 바로 이거야.

특히 나이키는 운동화를 생산하는 데 하청업체들에게 의존한 최초의 회사였다. 나이키와 박정희 정권은 한국의 젊은 여성들을 운동화 공장에서 '애국'적이고 '순종'적인 딸로 일하도록 동원했다. 아,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나이키에 직접 고용되거나 해고되지는 않았다. 이런 일들은 하청업자들이 맡았다.

곧이어 리복과 아디다스도 한국의 이 '편리한' 시스템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책에 따르면 이 회사들은 한국의 하청업자들이 남한의 군사화된 정치 엘리트들과 가까운 정치적 관계를 누린다는 점에 큰 매력을 느꼈다고 한다.

오리건에 본사가 있는 나이키의 남성 경영진이 보기에 남한에 공장을 두는 것은 훌륭한 전략적 결정이었다. 워싱턴과 서울에 있는 남성 정책 결정자들이 맺은 긴밀한 동맹이 그 연유였다. 그 관계는 불평등하지만 친밀했다. 반공산주의를 기반으로 하여, 냉전 시대를 유지하는 일에 함께 전념하고, 대규모 국제 군사 동맹에 함께 참여함으로써 이루어진 관계였다. - <군사주의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을까>에서

그렇게 부산은 1970년대까지 '세계의 신발 중심지'가 됐다. 우리가 배우는 60년대 '한국의 주요 수출 품목'에 올라있는 '신발'에 얽힌 어두운 이면이다.

어디에나 있는 군사주의, 경계해야 하는 이유

학생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이순신동상 앞에서 사설 해병대 캠프 참사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협동심과 공동체 의식 향상을 명목으로 극기훈련, 정신교육 등 반인권적이고 폭력적으로 진행되는 체험 수련활동에 대해 즉각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 "반인권적 극기훈련 즉각 중단하라" 학생들이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이순신동상 앞에서 사설 해병대 캠프 참사에 대한 기자회견을 열고 협동심과 공동체 의식 향상을 명목으로 극기훈련, 정신교육 등 반인권적이고 폭력적으로 진행되는 체험 수련활동에 대해 즉각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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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나이키 운동화'에서 시작된 군사주의가 일상의 농담에까지 녹아있음을 알려준다. 마치 우리가 매일 몸에 걸치는 '패션'처럼 말이다. 군사주의가 지속되면 진정한 민주적 삶은 요원할 것이라 주장한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의문'을 가져야 한다.

남한이 군사화를 어느 정도라도(한국의 여러 반군사주의 분석가가 재빠르게 지적한 것처럼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줄이려 했을 때, 운동화 회사들은 군사화된 정치학이 여전히 뿌리 깊은 다른 나라로 옮기려 했다. 인도네시아가 매력적으로 보였다. - <군사주의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을까>에서

지금의 '순종적인 딸' 작업장은, 한국에 이어 인도네시아가 낙찰됐다. 여러 면에서 닮아있었다. 한국에서 재미를 본 기업들이 최대한 비슷한 환경을 찾은 것. 당시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수하르토 장군으로, '신질서' 군사정부의 수장이었다. 20년 전 남한의 박정희 장군처럼, 수하르토 장군은 해외 투자를 통해 추진되는 급속한 산업화를 추구했다.

책은 꼭 제복을 입거나 국방부나 안보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나고 있다 지적한다. 특히 분단을 겪고 군부 독재를 겪었던 한국은 정도가 심하다.

군사주의가 득세한 세상에선 다양한 생각과 시각을 허용하려 하지 않는다. 안정된 사회 기강을 잡기 위해선 '군기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도돌이표처럼 재생된다. 심심하면 등장하는 공안정국도 일종의 '군기 잡기'다.

하지만 끊임없는 호기심과 질문으로 우리는 이를 타개할 수 있다. 우리의 정신과 정책을 군사주의에서 벗어나 민주화하는 길이다. 먼저 한 가지 시작해볼까. 아니, 그러니까 왜 해맑은 웃음만 지어도 아까운 아이들에게 '군기를 잡아야 하는지, 해병대캠프를 보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거다.

○ 편집ㅣ손병관 기자

덧붙이는 글 | <군사주의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을까> (신시아 인로 지음 / 김엘리·오미영 옮김 / 바다출판사 펴냄 / 2015.06 / 1만 5000원)



군사주의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을까 - 지구화, 군사주의, 젠더

신시아 인로 지음, 김엘리.오미영 옮김, 바다출판사(2015)


태그:#군사주의는 어떻게 패션이 되었을까, #지구화, #군사주의, #젠더, #신시아 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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