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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 스틸컷,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라고 외치던 모습이 생생하다.
 영화 <변호인> 스틸컷,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라고 외치던 모습이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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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전두환 정권이 발흥하며 온 나라를 공포로 몰아가고 있을 때, 부산에서는 검정고시 출신의 한 변호사가 개업을 한다. 그는 세무전문 변호사임을 자처하며 법무사들이 하는 부동산 등기부터 세금 자문까지 돈 되는 일은 닥치는 대로 한다. 그의 탁월한 사업수완은 결국 돈 잘 버는 변호사로 그의 이름을 자리매김한다.

그는 평소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학생들의 데모를 '공부하기 싫은 놈들의 배부른 투정' 쯤으로 여기고 대놓고 비난한다. 그러던 그에게 인생의 전환기가 닥쳐온다. 고시공부를 할 때 드나들며 신세를 졌던 국밥집 아들 진우(임시완 분)가 '부림사건'(전두환 정권이 집권 초기에 통치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민주화운동 세력을 탄압한 사건으로, 독서모임을 반국가단체의 이적 표현물 학습과 반국가단체 찬양 및 고무죄로 얽어 불법 감금한 사건- 기자 주)에 연루되었다는 것이다.

주인아줌마 순애(김영애 분)의 부탁으로 그 사건의 변호를 맡게 된다. 그러면서부터 송우석(송강호 분)은 달라진다. 변호인으로 진우를 면회하면서 독재정권의 인권유린을 알게 되고, 그건 아니다 싶어 그들이 읽었다는 사회과학서들을 읽으며 인간적 연민으로 변호를 한다. 영화 <변호인>(2013, 양우석)에서 송강호가 확신에 찬 어조로 재판정에서 외치던 헌법 제1조 2항은 지금도 귀에 쟁쟁하다.

투박하고 정 많은 사람, 노무현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국가란 국민입니다."
"서울대에서 추천하고 있는 서적들입니더. 대한민국 최고 교육 기관이 불온 단체라는 말입니까? 그렇게 보면 판사님 검사님도 불온 단체 출신이시네예?"

투박하고 거칠지만 정이 많았던 사람,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야기다. 당시 영화는 관객 천만 명 이상을 돌파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돈만 알던 속물 변호사가 억울한 이들의 인권 변호사로 변신하여 펼치는 활약은 암울한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영화 <변호인>에서 다 못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야기들이 다른 방법으로 우리 곁으로 왔다. 사람 사는 세상 노무현재단이 낸 첫 구술 기록집으로 책 <노무현의 시작>(생각의길 펴냄)이 그것이다. 이 책에는 1978년부터 1987년까지 노무현 변호사 곁에 있던 지인들의 입을 통해 들려지는 노무현의 생생한 모습이 들어있다.

1978년 5월 부산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개설할 때부터, 1987년 대우조선 노사분규 장례식장 방해혐의로 불구속 기소되고, 부산대에서 열린 '부정선거 규탄 및 공정선거 감시' 집회 때까지, 그러니까 1981년 '부림사건' 변론 전후부터 1987년 6월 항쟁을 관통하기까지 노무현 변호사의 면모와 궤적을 열세 명의 지인들의 구술로 담았다.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왜 삶의 방향을 틀고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길을 걸었는지, 동시대에 살았던 노무현 곁의 사람들을 통하여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첫 구술집이라고 한 것을 볼 때, 그 이후의 기록은 다시 책이 되어 나올 것 같다.

그는 부산 사투리가 걸맞은 투박함에 의분의 사나이였고, 곁의 사람들을 챙기는 정 많은 사람이었다. 노무현과 변호사 사무실에서 같이 일했던 장원덕은 재판을 마치고 돌아와 의분하는 노무현의 모습을 이렇게 말한다.

"재판이 끝나고 사무실에 들어와서도 '에이, 정말'이라면서 분을 못 참으시고, 그래도 판결을 좀 낮게 받으려면 판사라도 만날 필요가 있을 것인데, 노 변호사님은 시국사건 재판 전후에도 공안부 검사는 물론이고 담당 판사도 거의 안 만났거든. 밤낮 재판정에서 싸우다 돌아오고, 그때는, 여기 이마에 주름 세 개가 아니고 하나일 때는 그나마 나은 거라."- <노무현의 시작> 30쪽

부림사건의 당사자 고호석은 "대다수의 변호사는 도와주고 지원해주는 사람"이었지만, "노무현 변호사님은 우리와 한편이었다"고 증언한다. 영화 <변호인>에서처럼 돈만 알았던 변호사가 아니라 변호를 맡아 알게 된 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했음을 알 수 있다.

자신의 주례를 맡았을 때 노무현 변호사가 "달달 떨고 있더라고요"라고 말하는 장상훈의 증언에서 노무현의 성격이 잘 드러난다. 그는 투박하지만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첫 결혼 주례를 달달 떨며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주례자가 신랑신부와 함께 회식하고 춤추는 모습은 그가 얼마나 정이 많은 사람인지 보여준다.

인권운동가로 변신한 노무현

책 <노무현의 시작> 표지
 책 <노무현의 시작> 표지
ⓒ 생각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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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변호인>에서처럼 돈 되는 일이라면 가리지 않았던 노무현, 내성적이며 시국에 관심이 없었던 노무현, 그는 왜 인권변호사가 되었을까. 부림사건을 맡으면서 인권 사각지대를 보았기 때문이다. 전태일 분신사건(봉제노동자로 일하면서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노력하다가 1970년 11월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함- 기자 주)을 보며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 노무현을 만난 문성현은 민주화운동가로 변신한 노무현을 이렇게 증언해 준다.

"전두환 독재에 대한 민주화투쟁이 가열돼 가던 시기니까, 86년 이때는, 그래서 그때 본인이 '평범한 변호사로 살진 않겠다' 이런 말씀을 저한테 했죠."- <노무현의 시작> 183쪽

평범한 변호사가 그 평범함을 포기한 순간부터 가시밭길을 자초했다. 친히 노동법률 상담소를 만들어 노동자들을 상대로 상담은 물론 그들의 법률적 자문을 자처하고 나섰다. 거리로 나가 데모하는 것은 다반사가 되었다. 부림사건의 변호인으로 노무현을 처음 만났던 이호철은 이렇게 증언한다.

"우리를 변론하면서 굉장히 큰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요. 이 젊은 사람들이 자기 직장이나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반독재 민주화투쟁에 헌신한다는 것에 대해서 놀랐던 것 같기도 하고, 본인이 가진 정의감이 살아난 것 같기도 하고요. 한편으로 우리가 읽었던 책을 읽으면서 생각이 바뀌었던 부분도 있을 테고."- <노무현의 시작> 108쪽

엄혹했던 박정희 시대 이후로 노동운동이나 노동조합이 아직 제 역할을 못할 때 노무현의 활약은 새로운 노동운동의 전기가 되었다. 퇴직금조차 못 받고 쫓겨나던 노동자들을 후원하고 지원했다. 1984년은 노무현을 민주화운동의 중심인물로 부상시킨 해였다.

1985년 5월 부산민주시민협의회가 결성되고, 그 이후 노무현은 민주화 운동의 최전방에서 구호를 외치고, 길바닥에 드러눕고, 전단지를 만들어 뿌리고, 최루탄을 온몸으로 맞는 민주투사로 완전히 변했다. 부림사건의 당사자 중 한 사람인 고호석은 "진정성, 소탈함, 배움에 있어서 또는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격의 없음, 용기" 등이 노무현의 타고난 성품이라고 증언한다.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노무현만으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은 삶을 진실하게 살았음을 책은 보여준다. 다소 투박하다. 다소 다듬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더 인간적이다. 지인들을 뜨거운 마음으로 대했고, 진정으로 친구로 여겼다.

그의 따듯함이 책을 읽는 내내 내 가슴으로 전해져 온다. 그가 떠난 지 6주기(지난달 23일로)가 되는 이 시점에 당신도 한 번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인간됨과 따듯함에 젖어보라 제안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노무현의 시작>(노무현재단 지음 / 생각의길 펴냄 / 2015. 5 / 260쪽 / 1만5000 원)

※뒤안길은 뒤쪽으로 나 있는 오롯한 오솔길입니다. 책을 읽으며 떠오르는 생각의 오솔길을 걷고 싶습니다. 그냥 지나치면 안 되는 길일 것 같아 그 길을 걸으려고요. 함께 걸어 보지 않으시겠어요.



노무현의 시작 - 노무현에 관한 첫 구술기록집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엮음, 생각의길(2015)


태그:#노무현의 시작, #노무현재단, #서평, #노무현 대통령, #민주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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