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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폭피해자 문제는 여러 사회 문제 중 가장 마이너인데, 그들보다 더 마이너는 그들의 2세, 3세 자녀들이다. 모두들 핵과 방사능의 피해가 직간접적으로 대물림된다는 사실을 알지만 오히려 그 알고 있음으로 인해 존재를 부정당하는 집단이 원폭피해자의 자녀들이다. 김형률은 이 억압과 차별을 깨뜨렸다. 폐가 30% 밖에 기능하지 못하여 늘 죽음과 싸우면서도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피폭 2세의 존재를 알렸다. 골방에서 죽어가는 피폭 2세를 찾아내 한국원폭2세환우회를 조직했다. 그는 세상에 나와서 불꽃같은 삶 3년을 살다가 떠났다. 우리는 김형률을 기억해야 한다." (강주성 전 원폭문제공동대책위 공동대표)

2002년 <한국원폭2세환우회>를 설립하고 국내 원폭2세환우의 실태조사 및 인권 보장을 위한 각종 활동을 펼치다 세상을 떠난 고 김형률씨의 10주기를 맞이하여, 지난 23일 부산민주공원에서 추모제가 열렸다. 이날 민주공원에는 반핵 인권 평화운동을 하며 원폭피해자들의 생명과 인권을 지키기 위해 온몸을 던져 활동했던 그의 숭고한 삶과 업적을 기리는 기념나무 식수 및 기념비 제막식도 함께 거행되었다.

 23일 원폭2세피해자 고 김형률의 10주기를 맞이하여, 부산민주공원에 기념 식수를 하고 있는 유족과 추모위원들.
 23일 원폭2세피해자 고 김형률의 10주기를 맞이하여, 부산민주공원에 기념 식수를 하고 있는 유족과 추모위원들.
ⓒ 오카다 다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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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저녁에는 전야행사로 '김형률 세계를 말하다'를 주제로 한 토크콘서트와 함께 다큐멘터리 '아들의 이름으로'(박일헌 감독) 상영 및 북콘서트, 가수 이지상씨의 추모공연 등 김형률을 기억하는 10주기의 다채로운 기념행사가 펼쳐졌다. 또 10주기에 맞추어 고인이 생전에 발표한 강연록, 기고문, 국회와 정부 등에 보낸 청원서와 요망서를 비롯하여 평소 지인들에게 보냈던 서신과 메모, 일기 등 고인의 유고를 모은 유고집 <나는 반핵인권에 목숨을 걸었다>(김형률 저  아오야기 준이치 엮음, 행복한책읽기, 2015)도 출간되었다. 앞서 3주기였던 2008년에는 평소 김형률씨와 가까이 지내며 그 활동을 지원했던 부산교대 전진성 교수가 쓴 <원폭2세환우 김형률 평전-삶은 계속되어야 한다>(휴머니스트)가 출간된 바 있다.

이날 추모행사에 참석한 히로시마 피폭2세 고바야시 하츠에 씨(일본전국피폭자동맹 청년대책 국제부장)는 "원폭2세의 유전적 영향을 호소하고 식민지 지배와 전쟁을 고발한 김형률씨를 떠나보낸 10년의 세월동안 그 상실감의 치유보다는 남겨진 자로서의 책무를 더 강하게 자각했다"면서 "3.11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보면서 우리 원폭피해2세와 같은 고통을 짊어진 사람들을 또 다시 만들어 버렸다는 생각에 오열했다. 김형률 동지가 살아있었다면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또 후쿠시마에서 잇달아 아이들의 갑상선 암이 발병하고 히로시마 나가사키의 피폭2세 가운데서도 부모와 같은 병에 걸리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는 것에 대하여 동지와 더불어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절절한 추도사를 읊었다. 그는 히로시마에서 매년 5월 김형률 추모제 때마다 빠지지 않고 참석해왔다.

 부산민주공원에서 심어진 김형률 기념나무 식수와 기념비 제막식. 오른쪽으로 왼쪽이 고바야시 하츠에 씨.
 부산민주공원에서 심어진 김형률 기념나무 식수와 기념비 제막식. 오른쪽으로 왼쪽이 고바야시 하츠에 씨.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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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형률추모제에서 유족대표 인사를 하는 고인의 부친 김봉대 씨.
 김형률추모제에서 유족대표 인사를 하는 고인의 부친 김봉대 씨.
ⓒ 오카다 다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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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도사를 낭독하는 한정순 한국원폭2세환우회 명예회장.
 추도사를 낭독하는 한정순 한국원폭2세환우회 명예회장.
ⓒ 오카다 다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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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3일 부산민주공원에서 열린 원폭2세피해자 고 김형률 10주기 추모제에서 헌화를 하는 참석자들.
 지난 23일 부산민주공원에서 열린 원폭2세피해자 고 김형률 10주기 추모제에서 헌화를 하는 참석자들.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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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률추모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는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도 163cm, 37kg의 가냘픈 몸을 이끌고 피를 토하며 세상을 향해 호소하던 김형률을 잊지 못하며 생전의 고인의 모습과 광복 70년, 원폭투하 70년을 맞이하는 이 시점에서 김형률의 삶이 주는 교훈에 대해 이야기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원폭의 기억은 점점 사라져가고 아픔은 대를 이어 더해갑니다. 한국인 원폭피해자와 원폭2세환우는 한국에도 핵의 피해자가 있다는 것을 존재로써 증명합니다. 이들의 청산되지 않은 과거는 핵발전소 인근의 주민 피폭문제 등으로 현재가 됩니다. 이들은 핵무기든 핵발전이든 안전하고 평화로운 핵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줍니다. 그래서 원폭피해자와 원폭2세 환우 문제의 해결은 더욱 특별합니다. 우리는 한국인 피폭자들의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하며, 그 해결을 뒷받침할 특별법 제정에 힘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다시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핵으로 인한 피해자가 발생해서는 안 됩니다."

 본 추모제에 이은 문화행사.
 본 추모제에 이은 문화행사.
ⓒ 전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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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부터 시작된 본 추모제가 끝난 뒤에는 부산민주항쟁기념관 앞 마당에서 문화공연이 펼쳐졌고, 오후에는 고인이 잠들어 있는 영락공원으로 이동해 추모의 발길을 이어갔다. 이날 추모제에는 유족을 포함해 한국과 일본 각지에서 원폭피해자 1세와 2세, 언론인과 문화예술인, 활동가와 지역시민들이 함께 참여해 저마다 김형률을 뜨겁게 기억하고 그리워하며 그의 삶과 정신을 기렸다.

 김형률 10주기를 맞아 부산민주공원에 심어진 기념나무와 함께 그 앞에 제막된 기념비. 고인이 생전에 늘 외치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문구와 함께 한국원폭2세환우회 설립자로서의 고인의 삶을 기리는 첫 기념비석이 공개되었다.
 김형률 10주기를 맞아 부산민주공원에 심어진 기념나무와 함께 그 앞에 제막된 기념비. 고인이 생전에 늘 외치던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는 문구와 함께 한국원폭2세환우회 설립자로서의 고인의 삶을 기리는 첫 기념비석이 공개되었다.
ⓒ 강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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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률 한국원폭2세환우회 초대회장은 2002년 3월 22일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이 원폭2세로서 병으로 고통받고 있음을 공개선언하고, 국내 원폭2세의 실태조사 및 의료지원 등 국가적 대책을 촉구하였다. 이후 한국원폭2세환우회를 설립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원폭2세 환우를 찾아 모으고, 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하여 공대위를 꾸렸다.

국가인권위에 진정하여 국내 최초로 원폭2세 건강실태조사를 이끌어냈으며 국회와 정부를 대상으로 한국인 원폭피해자 및 원폭2세환우의 진상규명과 인권과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직접 법안을 청원했다. 일본과 한국 각지를 오가며 원폭피해자와 2세환우의 실태를 알리고 사회적 해결과 관심을 촉구하는 데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던졌던 그는 2005년 5월 29일 이른 아침, 끝내 자택에서 피를 토하며 숨을 거두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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