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SBS <풍문으로 들었소>의 권력구조에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권력 피라미드의 정점에 선 한정호(유준상 분)의 주변이 점차 썰렁해지고 있는 것. 변호사, 비서를 비롯, 그가 믿고 있었을 만한 이들이 차례로 그의 곁을 떠나기 시작했다. 내외의 크고 작은 송사가 아직 첩첩산중인 터, 철옹성 같던 그의 입지가 점점 줄어드는 모양새다.

주변인들의 반란 마주한 한정호, '슈퍼갑'의 대응 방식은

 19일 방영된 SBS <풍문으로 들었소>의 한 장면.

19일 방영된 SBS <풍문으로 들었소>의 한 장면. ⓒ SBS


한정호를 둘러싼 살풍경(?)은 비단 바깥에서의 일만은 아니다. 집안에서의 위상도 결코 예전 같지 않다. 그의 딸 한이지(박소영 분)가 아버지를 경멸의 눈으로 보기 시작한 것은 꽤 오래 전의 일이지만, 그것은 그저 한창 성장기의 반항심 정도로 치부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제 서봄(고아성 분)과 결별의 수순에 들어간 한인상(이준 분)까지도 호락호락한 아들의 역할에서 내려서고 싶어 하는 등, 그야말로 사면초가다.

그런데 웬일인지 상상했던 것만큼 시원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우리는 환산하기 어려울 정도의 재산, 권력을 가진 이들이 일반적으로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 여겨지는 큰 시련에도 결코 무너지지 않는 모습을 충분히 보아 왔기 때문이다.

물질이 곧 권력이며 그것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지 우리는 안다. 바로 얼마 전, 서봄에 대한 사랑이 천리만리로 깊어보였던 한인상조차 그의 엄청난 재산 상속분을 확인한 후 불과 몇 시간 만에 태도가 돌변하지 않았던가. 또 물질과 권력은 범죄로 여겨질 수 있는 행위들에 대한 주변의 판단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한정호와 같은 인물이 마음껏 활개칠 수 있는 이유다.

그래서 한정호는 물적 자원을 투입하여 서봄을 압박하려 한다. 고루한 방식이지만, 아마도 지금까지 그 성공률은 결코 낮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에 대항하는 서봄의 태도는 강경하다. 아주 조그마한 것이라도 대가를 받는 순간, 그것에 대응하여 치러야 할 것들을 예견하고 있기 때문이다. 멋지고 용감한 선택이다.

불합리함에 대항하는 이들의 반란, 이제 새로운 장이 열렸다

 SBS <풍문으로 들었소>의 한 장면.

SBS <풍문으로 들었소>의 한 장면. ⓒ SBS


지금의 사회 속 '계급'은 주로 경제적 차이에서 결정된다. 직업이나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부가 그 차이의 주요 기반이 되는데, 서봄은 그것 중 하나도 제대로 가지지 못했다. 그러한 이유로 그에게는 '철딱서니 없고'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또한 '현실을 전혀 보지 못하는' 엄마라는 낙인도 함께 한다.

그동안 서봄은 이 드라마에서 권력에 대응하는 여러 유형을 보여줬다. 비굴하거나 오만하고, 경솔하거나 단호하게 대응하는 등 그의 태도는 쉬지 않고 변해 왔다. 하지만 이제 며느리, 아내로서의 역할을 내려놓고 나니 권력과는 별 상관없는'엄마'로서의 지위만이 남았다. 언뜻 초라해 보이지만, 무언가와 타협하지 않겠다는 신념만은 더욱 확고해진 모습이다.

절대다수에 의해 추종되는 가치에 불응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서봄을 비롯한 한정호의 주변 인물들의 움직임에 속시원함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된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가 아닐까' 하는 느낌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신념'은 서봄만의 것은 아니다. 이유는 각자 다르지만, 한정호의 비리 소굴에서 빠져나온 많은 이들이 그것을 공유하고 있다. 그것은 그들의 일신의 행복과는 전혀 관계없는, 어쩌면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단초를 제공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합리함에 그대로 순응하지 못하는 이들이 세상을 조금씩이나마 움직여왔다는 것을 우리는 모르는 바 아니다. 막판을 향해가는 <풍문으로 들었소>에는 이제 거대하며 치열한 싸움판만이 남았다. 철옹성의 권력을 향한 반란. 그 마지막 장의 문이 열렸다.

풍문으로 들었소 유호정 고아성 이준 유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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