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회학자 정수복님이 쓴 산문책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 서울을 생각한다>(문학동네,2015)를 읽습니다. 정수복님은 사회학자로서 도시와 서울을 바라보려고 합니다. 정수복님이 퍽 오래 지내기도 했다는 파리와 서울을 나란히 놓고서, 서울이라는 터전은 사람들한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 만한 삶 자리인가를 돌아보고자 합니다.

아무래도 정수복 님은 사회학자이니, 사회학자다운 눈길로 도시와 서울을 바라보리라 느낍니다. 물리학자가 서울을 거닐었으면 이녁은 물리학자다운 눈길로 서울을 바라보았을 테고, 시인이 서울을 거닐었으면 이녁은 시인다운 눈길로 서울을 바라보았을 테지요. 어린이가 서울을 거닌다면 이녁은 어린이다운 눈길로 서울을 바라볼 테고, 아이 어머니가 서울을 거닌다면 이녁은 아이 어머니다운 눈길로 서울을 바라보겠지요.

어느 눈길로 서울을 보아야 더 서울을 잘 봤다고 할 만하지 않습니다. 저마다 다르게 서울을 봅니다. 저마다 다른 빠르기와 몸짓으로 서울을 걷고, 저마다 다른 생각을 가슴에 품으면서 골목과 큰길을 천천히 걷습니다.

사회학자가 본 도시... 우리는 어떻게 도시를 걸을까

논문이라는 형식은 글쓴이의 사사로운 주장이 아니라 학문적 연구의 결과이므로, 읽는 이는 이에 대해 객관적으로 반론을 펼 수 없는 이상 이 글의 결론에 따라야 한다는 주장을 암묵적으로 담고 있다.

논문이라는 학문적 글쓰기 형식은 논문의 알맹이를 보호하는 갑옷의 역할을 한다. 이런 글쓰기는 사회학자가 아닌 일반 독자들에게 겁을 주면서 글에 접근하는 것 자체를 차단한다... 이방의 언어는 아무리 잘하려고 노력해도 영원히 외국어로 남아 있다. 똑같은 어휘를 사용해도 언어에 담긴 미세한 뉘앙스와 정서적 함축을 토박이들처럼 느끼지 못하고... (21, 33쪽)

겉그림
 겉그림
ⓒ 문학동네

관련사진보기

나는 내가 걷는 길을 돌아봅니다. 나는 한국말사전을 엮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나는 길을 거닐면서 이곳저곳에서 눈에 뜨이는 '말'을 으레 읽습니다. 뜬금없이 쓴 말을 읽고, 엉뚱하게 쓰거나 엉터리로 쓴 말을 읽습니다.

나는 두 아이 아버지입니다. 그러니, 나는 길을 거닐면서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뛰놀 수 있기를 바라면서 길을 바라보고, 아이들이 자동차한테 치이지 않기를 바라면서 길을 헤아립니다. 나는 시골에서 사는 아저씨입니다. 그러니, 나는 시골 사람다운 눈길로 길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아저씨다운 눈길로 길을 마주합니다.

여러 달에 한 차례쯤 아이들을 이끌고 도시나 서울로 마실을 다닐 때, 나는 '한국말사전 편집자'인 눈길과 '두 아이 아버지'인 눈길과 '시골 아저씨'인 눈길이 됩니다. 때로는 '사진 찍는 사람'으로 둘레를 살피고, 어느 때에는 '시를 쓰는 사람'으로 둘레를 헤아립니다. 어느 때에는 '자전거 타는 사람'으로 마을을 둘러보며, 어느 곳에서는 '자가용 없이 사는 사람'으로 나라를 돌아봅니다.

이 같은 여러 눈길로 서울을 바라보면 어떤 모습이 보일까요? 먼저,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큰길을 걷자면 눈이 아픕니다. 아이들은 다리쉼을 할 곳이 없습니다. 아이들은 신나게 뛰거나, 달리거나, 소리치거나, 노래할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둘레를 살펴야 하고, 아버지 손을 꽉 잡은 채 어른 걸음에 맞추어야 합니다. 서울에서는 나무 그늘을 찾기가 어려우니 땡볕이나 찬바람에 그대로 드러난 채 걸어야 합니다.

파리에서는 길을 걷거나 공원 벤치에 앉아 있거나 지하철을 탔을 때 문득문득 다가오는 시적 영감과 정신의 고양이 있었다. 그에 비해 서울 생활은 편안하고 편리하지만 특별한 감흥이나 정취가 없다... 길거리뿐만 아니라 아파트 실내에도 스피커를 통해 관리사무소에서 알리는 소리가 많다... 서울에 와서 자주 마주치는 말 가운데 '관리'라는 단어가 있다. 성적 관리, 피부 관리, 시간 관리, 재산 관리... 어느 날 저녁 산길을 걷는데 두 그루의 나무 사이에 커다란 흰색 현수막이 걸렸다. 고요한 산길의 분위기를 깨는 그 플래카드는 어느 결혼 중매 회사의 광고였다. (45, 58, 63, 92쪽)

우리가 걷는 길은 어떤 곳일까 하고 돌아봅니다. 아이들하고 느긋하게 걸을 만한 길은 얼마나 될까 하고 생각에 잠깁니다. 우리 집 아이들과 도시로 나들이를 나온 어느 날입니다.
 우리가 걷는 길은 어떤 곳일까 하고 돌아봅니다. 아이들하고 느긋하게 걸을 만한 길은 얼마나 될까 하고 생각에 잠깁니다. 우리 집 아이들과 도시로 나들이를 나온 어느 날입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서울 사람이 시골로 나들이를 온다면, 서울 사람은 시골에서 무엇을 볼 수 있을까요? 봄마다 시골에서는 벚꽃 잔치나 유채꽃 잔치를 으레 벌이는데, 이런 봄꽃 잔치에 시골로 한 번쯤 나들이를 오는 서울 사람은 어떤 숨결이나 바람을 시골에서 맞이할 만할까요?

봄꽃은 벚꽃이나 유채꽃만 있지 않습니다. 곰곰이 돌아보자면, 한국에서 봄철에 즐기던 꽃은 벚꽃이나 유채꽃이 아닙니다. 한국에서는 새봄에 할미꽃과 진달래꽃부터 즐겼습니다. 매화꽃과 동백꽃을 즐겼고, 딸기꽃과 냉이꽃과 꽃다지꽃과 꽃마리꽃과 제비꽃 같은 조그마하면서 어여쁜 꽃을 즐겼습니다.

시골에서 늘 지내는 사람이라면 철마다 새롭게 피는 꽃뿐 아니라 다달이 새롭게 피는 꽃을 바라봅니다. 모든 꽃은 한철이라, 제철을 놓치면 이듬해까지 더 기다려야 합니다. 딸기꽃을 보려면 삼월 끝자락부터 사월 끝자락 사이요, 앵두꽃도 이 무렵이며, 오월로 넘어설 무렵에는 꽃마리꽃이 앙증맞게 벌어지는데, 꽃마리꽃이 필 무렵에는 제비꽃이 모두 지고 사라집니다.

꽃마리꽃과 함께 붓꽃과 창포꽃이 올라오고, 이 꽃하고 나란히 찔레꽃이 흐드러집니다. 찔레꽃이 피기 앞서 등꽃(등나무꽃)이 피고, 등꽃이 져서 사라질 즈음 뽕꽃(뽕나무꽃)이 풀빛으로 피는데, 이에 앞서 느티꽃(느티나무꽃)이 어마어마하게 드날리면서 춤을 춥니다.

모든 자동차들이 길가에 정지해 있고 보행객들은 다시 지하철 안으로 들어가 대피하라는 안내방송이 나온다. 방송은 북한의 가상 폭격기가 서울 하늘 상공을 날아가는 장면을 상상하게 한다... 파리에는 세월이 거꾸로 흐르는지 사라졌던 전차가 다시 설치되고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인간다운 도시를 만들기 위한 파리 시 교통정책의 일환이다... 이방인은 붙박이와 달리 체면과 의례를 가볍게 여길 수 있다. 그래서 지탄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98, 116, 135쪽)

요즈음 시골에서는 깊은 두멧자락조차 산을 깎고 나무를 밀어서 찻길을 늘립니다. 관광도로라는 이름을 붙이는데, 정작 걸어서 다닐 만한 길은 사라집니다.
 요즈음 시골에서는 깊은 두멧자락조차 산을 깎고 나무를 밀어서 찻길을 늘립니다. 관광도로라는 이름을 붙이는데, 정작 걸어서 다닐 만한 길은 사라집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정수복님은 사회학자로서 서울 골목과 큰길과 삶터를 바라봅니다.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라는 책 끝자락에서는 제주섬을 살리는 길을 놓고 쓴 짧은 논문을 싣기도 합니다. 제주에서 행정과 문화로 '돌담'과 '나무'를 부디 지킬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글로 들려줍니다.

그러고 보면, 돌담과 나무는 제주뿐 아니라 다른 고장에서도 지킬 삶자락 가운데 하나입니다. 돌담은 시멘트담이 아닙니다. 돌담은 드센 바람을 가리는 담이요, 무너지면 다시 쌓을 수 있는 담입니다. 나무는 그늘을 드리우는 고마운 삶벗인데, 꽃내음도 베풀고, 잎바람 노랫소리도 베풀며, 가을에는 멋진 열매까지 베풀어요.

나무가 자라는 곳이라야 바람이 싱그럽습니다. 나무가 자라는 곳이어야 흙이 싱그럽습니다. 사람은 나무를 바라보면서 눈을 쉽니다. 사람은 나무가 있어야 집을 짓고 여러 가지 살림살이를 얻습니다. 시골뿐 아니라 도시에도 나무가 우거져야 하고, 따로 공원이 아니어도 집집마다 마당을 두어 '우리 집 나무'를 누릴 때에 삶이 즐겁습니다.

나무가 잘 자란 골목을 거닐 적하고, 나무 한 그루 없는 아스팔트 길바닥인 골목을 거닐 적에는 느낌이 사뭇 달라요. 나무가 잘 자란 큰길을 걸을 적하고, 나무 한 그루 없이 자동차만 빽빽한 큰길을 걸을 적도 느낌이 사뭇 다릅니다.

사회학자라면 일단 통계 수치나 책상 위의 지도를 뒤로 하고 거리로 뛰쳐나가 두 발로 걸으면서 온몸으로 느껴야 한다... 돌담과 더불어 또 하나 중요한 자연적 요소는 제주 특유의 나무들이다. 현대 군데군데 남아 있는 오래된 녹나무, 팽나무 등을 지정하여 보존해야 한다. 오래된 돌담과 나무들은 이곳에 축적된 세월의 켜를 그 안에 지니고 있어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 안정감을 부여한다... 인간의 존엄성 회복을 위한 도시 재생의 방향은 걸을 수 있고 걷고 싶은 도시를 만드는 길이다.  (172, 195, 203쪽)

나무가 우거져서 숲이 이루어지는 길이 될 때에 비로소 걸을 만한 길이 되지 싶습니다. 시골과 도시 어디에서나 숲길과 나무그늘길이 드리울 수 있기를 빕니다.
 나무가 우거져서 숲이 이루어지는 길이 될 때에 비로소 걸을 만한 길이 되지 싶습니다. 시골과 도시 어디에서나 숲길과 나무그늘길이 드리울 수 있기를 빕니다.
ⓒ 최종규

관련사진보기


사회학자뿐 아니라 국회의원과 대통령도 골목과 큰길을 찬찬히 걸을 수 있기를 빕니다. 책상맡에서 서류만 들여다볼 적하고, 몸소 한두 시간 남짓, 때로는 서너 시간 남짓 골목이나 큰길을 걸을 때에는 느낌과 생각이 크게 달라지겠지요.

과학자와 법관이나 의사도 골목과 큰길을 가만가만 걸을 수 있기를 빕니다. 회사를 이끄는 대표도 공장 일꾼도, 운동 선수와 연예인도, 그러니까 누구나 골목과 큰길을 즐겁게 걸을 수 있기를 빌어요.

스스로 걸으면서 스스로 생각을 짓습니다. 스스로 걸음을 옮기면서 스스로 너른 마음이 됩니다. '우리 마을'이 걸을 만한 곳일 때에 '우리 마을'은 사랑스러운 터전이 되고 아름다운 삶 자리가 됩니다. 우리 마을도 이웃 마을도 누구나 즐겁게 걸어서 오가면서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울 만한 멋진 이야기숲이 될 수 있기를 빕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글쓴이 누리사랑방(http://blog.naver.com/hbooklove)에도 함께 올립니다.

<도시를 걷는 사회학자, 서울을 생각한다> 정수복 글, 문학동네 펴냄, 2015.4.28



태그:#도시를 걷는 사회학자, #정수복, #서울 이야기, #서울여행, #인문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