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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단원고를 졸업한 안산고교연합밴드 보컬 황유진 양 노래가 흘러 나올때 안산시민들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올해 단원고를 졸업한 안산고교연합밴드 보컬 황유진 양 노래가 흘러 나올때 안산시민들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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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주기 안산시민 추모 문화제가 열린 안산문화공원을 찾은 이유는 꼭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였다.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안산 시민들의 '진짜' 여론을 알고 싶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이하여 세월호 참사 최대 피해 지역인 안산의 분위기를 알아보기 위한 취재를 진행하면서 한 가지 이해하기 힘든 점이 있었다. 안산지역 정치인들 처신이다. 제종길 시장은 물론 국회의원, 시·도의원들까지 세월호 참사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아예 존재감조차 없었다.

이유를 물으니 참으로 실망스러운 대답이 돌아왔다. 유가족들과 안산 시민들이 갈라져 있어 나서기도 힘들고 같이 싸워주기는 더더욱 어렵다는 것이다.

제종길 안산 시장은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유가족과 안산시민들 사이에서 어떤 스탠스를 유지할 것인가 고민을 많이 했다"며 "마음과 달리 이중적인 행동이나 입장을 취할 수밖에 없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또 "만약에 내가 그렇게 했다면(유가족들과 함께 싸웠다면) 첨예한 갈등이 벌어졌을 것"이라며 "(앞으로도) 눈에 띄는 일을 할 계획은 없다"라고 선을 그었다.

한 시의원도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1년이니, 장사하시는 분들도 참을 만큼 참은 것이다, 장사가 너무 안돼 힘들어 한다, 이제 (유가족들이) 그만 했으면 좋겠다는 여론이 높다"며 "(그래서) 나서기가 힘들고 이럴 때는 정치인이 중심을 잡는 게 중요하지 함부로 나서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 문제로 안산에 사는 지인 몇 명과 말싸움에 가까운 논쟁을 벌인 적도 있다. '지역경제도 어려우니, 인제 그만 할 때도 됐지'라는 말이나 '(유가족들이 싸우는 게) 결국은 돈 문제 때문이 아닌가'라는 등의 말에 발끈한 나 때문에 벌어진 논쟁이었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안산시민 2천여명이 추모문화제에 참석했다.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안산시민 2천여명이 추모문화제에 참석했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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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몇 차례 논쟁을 한 뒤  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 때문에 장사가 안 되느냐'고 물었다. 식당에서 커피숍에서 슈퍼마켓에서. 가지각색의 답이 나왔는데 요약하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아무래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 그보다는 경기가 나빠서 그런 것 같다' 정도다.

'그렇다'라고, 세월호 참사 때문에 장사가 안 된다고 딱 잘라서 말한 사람은 없었고, 지역경제 운운하며 유가족을 원망한 사람도 없었다. 도대체 그들은 누구한테 어떤 말을 듣고 유가족과 안산시민들이 갈라져 있다고 판단한 것일까.

1주기 추모 문화제, 안산 시민들 울었다

지난 16일 늦은 7시. 주머니에서 손을 빼기 싫을 정도로 쌀쌀한 날씨였지만 사람들 발길은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문화제 막을 올릴 때쯤에는 그 넓은 안산문화공원 절반 이상이 촛불로 뒤덮였다. 어림잡아도 2천 명 이상은 돼 보였다.

시민들 손에는 촛불과 함께 '정부 시행령 폐기' '온전한 선체인양'이라고 적힌 피켓이 들려 있었다. 시민들은 한목소리로 사회자의 선창에 따라 '잊지 않을게'라고 외쳤다. 올해 단원고를 졸업한 안산고교연합밴드 보컬 황유진 양이 후배와 선생님께 보내는 편지를 울음 섞인 목소리로 낭독할 때는 시민들도 함께 울었다. '유가족과 안산시민들이 갈라져 있다'는 말을 무색하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만약 살아있다면 그 아이들도 지금 이 아이들처럼 기타를 치고 있을지도'라는 생각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황유진 양이 부른 '나보다 조금 높은 곳에 네가 있을 뿐'이라는 노래 가사 한 구절 한 구절이 귀가 아닌 가슴에 날아와서 박혔다. 안경을 들고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내 맘과 다르지 않았으리라…….

노래가 끝난 뒤 사회자는 즉석 인터뷰를 시도했다. 두세 명은 울음을 그치지 못해 말을 못했고 단 한 명만이 울먹이며 "아이들이 없는데…. 벚꽃이 피는 것을 봐도 예전 같지 않았어요"라는 말을 하고는 다시 울었다.

세월호 1주기 추모문화제
 세월호 1주기 추모문화제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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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문화제를 통해 확인한 안산시민들 여론은 유가족들 목소리와 같았다. 물론 문화제에 참석한 시민들 여론이 안산시민 전체 여론일 수는 없다. 그러나 여론의 향배를 알려주는 단면일 수는 있다.  

정치인, 시민이 왜 자신을 선택했는지 되돌아봐야

정치인은 선출직이다. 그러다 보니 여론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는 없다. 문제는 간혹 잘못 판단한다는 점이다. 일부의 목소리를 대다수 여론으로 오판하기도 하고 반대로 대다수 여론을 일부의 목소리로 오판하기도 한다.

안산의 경우는 전자다. 일부 시민이 '장사가 안되니 유가족들이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말한 것을 대다수 시민 여론으로 오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오판이 존재감 없는 시장을 비롯한 지역 정치인들을 만들어냈을 것으로 예상한다.

더 큰 문제는 여론 눈치를 보느라 할 일을 못 한다는 점이다. 정치인들은 왜 시민들이 자신을 뽑아 주었는지 가끔 되돌아봐야 한다. 시민을 대표하고 대변하며 보호해 줄 것이라는 기대와 바람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사실 이 문제는 여론 눈치를 살필 일도 아니다. 그냥 가슴이 시키는 대로만 해도 될 일이다. 수학여행 간 아이들이 바다 한가운데서 배와 함께 가라앉았다. 선장과 선원 대부분은 아이들을 구조하기는커녕 오히려 '선실에서 기다리라'는 방송을 해서 탈출도 못 하게 만들었다. 그러고는 자기들만 빠져나왔다. 국가도 아이들을 단 한 명도 구하지 못했는데, 왜 못 구했는지 이유도 모른다. 

가수 한영애 씨가 문화제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가수 한영애 씨가 문화제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 이민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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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 아이가 이런 일을 당했다면 어찌할 것인가. 왜 그랬는지 이유도 모른 채 살아갈 수 있을까? 난 그럴 수 없을 것 같다. 해서, 난 '인제 그만 했으면 좋겠다'는 말 따위는 절대 하지 않는다. 

아직 늦지 않았다. 1년 동안 아무것도 해결된 게 없으니 안산지역 정치인들이 자신의 존재감을 보여 줄 기회는 충분하다. 특히 제종길 안산시장은 당선 직후 "유가족이 싸우기 이전에 내가 먼저 싸워서 유가족들이 싸우는 일 없도록 하겠다"라고 한 말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만약 안산시민 중에 일부라도 지역경제 문제를 거론한다면 제 시장을 비롯한 정치인들은 그  문제까지 정부에 강력하게 항의해야 한다. '유가족들 시위가 계속되고 있고, 그 때문에 안산 지역경제가 어려우니 하루빨리 진상 규명해서 시위를 멈추게 해 달라'고. 

경찰은 '세월호 참사 1년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유가족과 시민들을 향해 물대포를 쏘았다.  강제 연행도 했는데, 그 과정에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이제 유가족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안산지역 정치인들이 존재감을 보여줘야 할 차례다.

[관련기사]
"제종길 시장, 유가족이 싸울 일 없게 한다더니..."
"세월호 관련해 미미한 존재... 잘한 처세라고 생각"
"너희들이 못다 이룬 꿈, 우리가 이룰게... 사랑해"

○ 편집ㅣ장지혜 기자



태그:#세월호 참사 1주기, #안산, #제종길 안산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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