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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차선 도로 사이를 두고 지하철 2호선 뚝섬역~성수역 지상 구간이 들어선 모습.
 6차선 도로 사이를 두고 지하철 2호선 뚝섬역~성수역 지상 구간이 들어선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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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건' 이미지와는 거리를 둬온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하화' 카드를 꺼냈다. 그 범주엔 지하철이 들어갔다. 지난 3월 서울시가 지하철 2호선 지상 구간을 지하로 하는 게 타당한지 살펴보겠다고 한 것이다. 서울시는 이번 달 안에 4억 2천만 원을 들여 2호선 지하화에 대한 용역을 발주할 예정이다.

지하화 하는 데는 막대한 재정과 시간이 들어가는 만큼, 그 필요성을 두고 많은 논란이 야기될 수 있다. 실제 서울시가 2호선 지하화 계획을 발표하자 인터넷에선 막대한 돈을 들여 지하화를 할 바에야 차라리 복지나 보육 예산을 늘리는 게 낫지 않겠느냐는 의견부터 특정 지역 주민들만 이득을 보는 사업이 아니냐는 얘기까지 반대 목소리가 쏟아졌다.

그럼에도 그간 2호선 지상 구간은 도시 경관을 저해하고, 소음과 진동을 일으켜 지역 발전의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렇다면 2호선 지하화가 여러 논란을 극복하고 해볼 만한 것인지, 네 구간으로 나뉘는 지상 구간 중 가장 긴 구간을 통해서 살펴보기로 했다.

2호선 지상 구간은 총 연장 18.84km에 달하는데, 살펴볼 한양대역~잠실나루역 구간은 8.02km로 가장 길다. 이 구간은 다른 세 구간과는 달리, 대형 하천인 중랑천과 한강을 모두 지나야 한다. 착공하게 된다면 공사비가 가장 많이 들어갈 것으로 추정되는 구간이다.

2호선 8.02km, 지상으로 지어진 이유

한양대역을 지나 보이는 2호선 지상 철로 구간. 이 철로는 이어 철교를 통해 중랑천을 지나 뚝섬역으로 간다.
 한양대역을 지나 보이는 2호선 지상 철로 구간. 이 철로는 이어 철교를 통해 중랑천을 지나 뚝섬역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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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해당 구간이 지나는 세 자치구 중 지하화에 강한 의욕을 보이는 곳은 광진구다. 성동구(한양대역~성수역)나 송파구(잠실나루역)는 지상 구간이 구 중심과 떨어진 반면, 광진구(건대입구역~강변역)는 건국대 주변 등 상권이 가장 발달한 일대 한 가운데를 지나기 때문이다. 김기동 광진구청장은 선거 공약과 언론 인터뷰에서 구 핵심과제로 '지하철 지하화'를 거론하며 "2호선 지상 구간으로 인해 지역 발전이 저해되고 있다"고 말해왔다.

그렇다면 한양대역~잠실나루역은 왜 지상으로 지어졌을까. 우선 한양대역~뚝섬역 구간은 중랑천을, 강북과 강남을 잇는 강변역~잠실나루역 구간은 한강을 지나야만 한다. 이 구간을 지하로 지나려면 하저 터널을 만들어야 하지만, 2호선이 착공한 때는 1978년이었다. 이보다 후인 1980년에 착공한 4호선도 기술 문제로 중랑천을 지나는 창동역~노원역을 지상으로 지었다. 이런 점으로 비춰볼 때, 당시 기술로는 지하로 하천과 강을 통과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관련 기사: 지상 3층에서 지하 3층으로... 최악의 환승역). 실제 수도권 전철이 지하로 한강을 지난 것은 1990년대 지어진 5호선이 최초였다.

비용도 걸림돌이었다. <서울시 지하철 건설 삼십년사>(31쪽)에 따르면, 착공을 앞둔 1976년과 1977년 일본 국제협력사업단 기술조사단이 2호선 강북 구간의 타당성을 검토한 결과, '건설비를 줄이려면 도심부만 지하철로 하고 교외 구간 11.1km는 고가철도로 건설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2호선 건설 재원 마련을 위해 다른 나라와 차관을 교섭할 정도로 예산이 넉넉지 못했던 때라 서울시는 이 지적을 받아들였다.

고가로 지어도 주변 주거 환경에 별 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있었다. 1977년 10월 7일 <경향신문> '지하철 시대를 연 2호선 건설' 기사에서 서울시는 지상 구간 대부분이 개울 위나 저지대 등을 통과해서 주택에 끼치는 소음 공해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아울러 <서울지하철 2호선 건설지> 65쪽에는 뚝섬역 다음인 성수역 일대가 공장지대임을 감안, 고가로 설계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미래철도DB를 운영하는 한우진 교통평론가는 "공업 지역은 고가로 지어도 주거 환경을 크게 훼손하지 않을 거라 봤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하화 하는 데 산 너머 산

건국대 주변 지하철 2호선 지상 구간. 성수역에 이어 건대입구역을 지나면 지상역인 구의역이 나온다.
 건국대 주변 지하철 2호선 지상 구간. 성수역에 이어 건대입구역을 지나면 지상역인 구의역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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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30년이 지나 지상 구간 일대는 주거지가 여럿 들어서, 주민들에게 소음 공해를 주고 있다. 뚝섬역 인근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 박아무개씨는 "잠이 안 올 땐 소음이 신경 쓰일 정도"라고 토로했다. 성수역에 이어 건대입구역 근처에서 사는 송지용씨도 "(지상 구간이 끼치는) 제일 큰 문제는 아무래도 소음이 아니겠느냐"며 "다행히 높은 층에 살아 며칠이 지나니 소음에 적응했지만, 선로 옆에 사는 분들은 그러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하화를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우선 재원이 관건이다. 광진구가 지난 2011년 9천8백만 원을 들여 서울시 시정개발연구원에 용역을 맡긴 결과, 해당 구간을 지하화하는 데 2조 2천 6백억 원이 들어간다는 결과가 나왔다. 추정 금액인 만큼 실제 공사비는 더 들어갈 수도 있다.

'공사비를 어느 누가 부담할 것이냐'도 논란이 될 소지가 크다. 의욕적으로 사업 추진 의사를 밝힌 광진구는 재원을 투자하기가 어렵다는 입장이었다. 광진구 관계자는 10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지하화 사업은 서울시에서 주관해 예산을 지원해야 할 사업"이라며 "구에선 재원을 투입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지하화 공사로 인한 불편도 관건이다. 지하화에 나설 경우, 2호선 운행을 감축하거나 중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광진구과 서울시는 굳이 해당 구간 운행을 중단하지 않고도 지하화 공사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1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기술적인 부분은 아무런 문제가 안 된다"며 "다만 돈이 얼마큼 들어갈 것이냐가 문제"라고 말했다.

또 지상 구간 지하화가 지역 발전과 연결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건대입구의 경우, 이미 주변에 대학과 주상복합 아파트 등 개발이 완료됐다. 강변역 주변도 테크노마트 등이 들어서, 새롭게 개발할 수 있는 규모는 한정적이다. 한양대역~뚝섬역 상당 구간도 중랑천을 지나가기 위한 구간으로, 상권과는 거리가 멀다.

고가 주변 주민들도 지하화를 놓고 의견 분분

강변역을 지나 그 다음역인 잠실나루역으로 가는 구간. 한강을 철교를 통해 지나간다.
 강변역을 지나 그 다음역인 잠실나루역으로 가는 구간. 한강을 철교를 통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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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한 비용 탓에 사회적 합의가 가능할지도 불명확하다. 고가 주변 주민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건대입구 근처 아파트에서 살았다"면서 익명을 요구한 한 주부는 "소음과 먼지 공해가 있고, 지상구간 주위가 어둑해서 뒷골목 같은 분위기가 난다"며 "지하화에 찬성"이라고 말했다. 반면 강변역 아파트에서 5년째 거주 중인 김미선씨는 "현관문을 열면 지하철이 지나가는 게 바로 보이는 곳에 살지만, 소수 이익을 위해 막대한 세금을 투입하는 것은 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2호선 지하화의 관건은 기술이 아니다. 천문학적인 재원 마련 방법과 지역 발전 효과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일단 광진구가 지난 2011년 서울시 시정연구원으로부터 받은 경제성 분석 용역 결과에선, 2호선 지하화에 따른 편익 비용(B/C)이 1로 나왔다. B/C가 1과 같거나 보다 크게 나오면 경제성이 있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경제성이 설령 있더라도 시민들 여론이 호의적일지 장담할 수는 없다. 또 편익비용은 같은 사업을 두고도 용역 주체에 따라 달라지기도 해 이번 서울시 용역 결과에선 경제성이 없다고 나올 수 있다.

서울시는 이번 지하화 검토가 2호선뿐 아니라 지상 철도 구간 지하화에 대한 정책적인 방향을 수립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라고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30년 넘게 지상 구간을 이용한 상황에서, 나중에 묻기엔 묻어야 되지 않겠느냐"면서 "투자 대비 효과가 불명확한 어려운 사업이긴 하지만, 주변 상권 활성화와 도시 재생 등 편익을 놓고 (용역을 통해) 사업을 들여다보자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다만 용역 평가 결과가 경제성이 없다고 나올 경우 "사업이 진행되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2호선 지하화 타당성 결과는 내년 하반기쯤 나올 것으로 보인다.


태그:#지하철, #2호선, #서울, #박원순, #4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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