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문으로 들었소' 서봄은 그림에도 조예가 깊다.

▲ '풍문으로 들었소' 서봄은 그림에도 조예가 깊다. ⓒ SBS


이 드라마를 처음부터 본 사람들이라면, 한정호(유준상 분)의 집안 내 인물들의 권력관계가 초반과는 많이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위상은 여전히 대단하지만, 중반에 접어들면서 그 힘의 축이 어린 며느리 서봄(고아성 분)의 쪽으로도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만삭의 몸을 이끌고 어느 날 밤 권문세가에 느없이 들이닥친 서봄의 초라한 모습은 향후 그의 집안 내의 위상이 그리 커지지는 못할 것이라는 것을, 그리하여 갑의 횡포에 제대로 대항할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처절하게 시달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예상케 했다.

그런 살벌한 상황에서도 한인상(이준 분)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지는 서봄에게 가장 큰 버팀목이 되어 주었으며, 그 따뜻함은 시청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이되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그들의 관계가 왠지 예전 같지 않다. 어찌 보면 그저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동료로만 보이기도 한다. 

그 변화는 서봄이 집안 내에서 힘을 드러내면서 본격화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최연희의 비서 이선숙(서정연 분)을 비롯한 집안사람들에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어느 날 그는 자신의 친정의 부족함을 비웃는 이선숙을 발견하고, 그를 향해 "아직도 날 임신한 배를 부여잡고 들어온 그날의 초라한 사람으로밖에 보고 있지 않은 거죠?"라고 따지듯 말한다. 이선숙은 그 말에 조용히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학교까지 중퇴하고 아이 아빠의 동의조차 받지 못한 채 홀로 뱃속의 아기를 키워야 했던 서봄. 그의 몇 달 만의 엄청난 변화. 그것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소위 상류층 인사들 사이에서도 전혀 기죽지 않는 데다, 그들을 거침없이 농락하여 급기야 시부모로부터 '자랑거리'라는 말까지 듣게 된 그를 보면서 우리는 어쩌면 강한 카타르시스와 대리만족의 즐거움을 느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서봄의 행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보다는 왠지 모를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그의 서늘함에서 보이는 개운치 못한 느낌의 원인은 도대체 무엇일까?

등장인물의 불타는 로맨스...권력 관계에 영향줄까
 풍문으로 들었소

풍문으로 들었소 ⓒ sbs


그것은 우선 서봄이 마치 슈퍼우먼처럼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 하나의 이유가 될 것이다. 예상했듯 '치이고 당하는' 것이 아니라 사법고시 최연소합격자 자리를 노리는 뛰어난 인재인 데다, 예술에 대한 조예 또한 뛰어나고 주변인들까지 쥐락펴락하는, 때로 한정호에 필적할 만한 강력한 외양의 그가 왠지 낯설게만 느껴진다는 것.

서봄에게서는 무언가에 대한 초조함과 안간힘조차 별반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바라보는 주변인들의 질시에 대응하려는 무언의 저항이 느껴진다. 이런 느낌은 물론 서봄이 모든 일들에 거의 천재적으로 적응하는 사람이라 이해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한 장면, 한 장면이 지극히 현실의 반사판처럼 그려지고 있는 이 드라마에서 그의 갑작스러운 '갑질' 적응기는 매우 이질적으로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늘 을의 입장일 수밖에 없었던 여러 조건들, 그로 인한 열등감 등등이 제대로 표현되었다면 어땠을까. 그 변화가 좀 더 섬세하게 묘사되었더라면 마음속 수많은 감정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을 서봄의 안간힘이 제대로 드러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서봄이 낯설게 느껴지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이건 서봄 자신이 아니라 드라마를 시청하는 이들의 마음 속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혹시 우리는 마치 이선숙에 빙의하듯 그의 시각에서 서봄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갑을 인정하며 그 앞에선 무릎 꿇을지언정 뒤돌아서서는 여전히 경멸을 거두지 않는 바로 그 시선 말이다. 을 사이의 묘한 신경전이다. 서봄의 갑질이 왠지 안쓰러운 순간이다.

어찌 되었든 이제 이 드라마 내 최대 권력자의 위상에도 서서히 금이 갈 모양이다. 한정호의 지영라(백지연 분)에 대한 나이를 잊은 대시가 시작된 것. 그 요상한 기류를 눈치 못 챌 리 없는 최연희다. 마음 약한 그가 당차기 그지없는 서봄의 힘을 빌리지 않을 수 있을까?

자신의 무덤을 스스로 파고 있는 한정호, 늘 그의 부속품일수밖에 없었던 최연희의 반격, 그리고 그것을 빌어 나날이 그 힘을 더해 갈 서봄의 행보. 그 앞길을 누가 막을 수 있을 것인가. <풍문으로 들었소>의 권력 놀음, 그 귀추가 주목되는 바이다.


풍문으로들었소 유준상 고아성 이준 백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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