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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7일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예정된 가운데,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특별위원회 여당 간사인 이한성 새누리당 의원이 박 후보자를 적극 감싸고 나섰다.

이 의원은 3일 오전 평화방송 라디오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윤재선입니다'에 출연해 "당시 수사 구조상 상부의 지시를 이겨내지 못한 흠은 있지만 수사검사로서는 최선을 다했다"라며 "임관 3년차인 신임검사로서 선배들에게 정의감 넘치게 건의하는 데 앞장섰다"라고 평가했다.

이 의원은 "상부에서 그렇게 제지하니까 더 나아가지 못한 점은 아쉽지만 열심히 하려고 했고, 그런 기개를 가지고 있었다고 보여진다"라고 거듭 박 후보자를 감쌌다.

이 의원은 "박 후보자는 그 뒤에도 수많은 사건을 수사하면서 약자 편에 서서 정의를 세우는 수사를 많이 해왔다"라며 "외부에 청탁하러 다니는 분도 아니고 오로지 실력과 능력으로 훈장도 받고 검사장에 승진했다, (이렇게) 검증된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의원은 박 후보자의 당시 역할과 관련해 "임관된 지 3년차 되는 신임검사로서 지엽적인 사건 수사와 여러 가지 행정처리, 정보보고를 맡았다"라고 말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박 후보자는 박종철 고문치사-조작·은폐 사건(아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1차 수사(1987년 1월 20일-23일)와 2차 수사(1987년 5월 20일-28일)에 참여해 물고문에 가담한 강진규 경사와 황정웅 경위, 반금곤·이정호 경장 등을 조사했다. 이렇게 주요 피의자를 직접 신문했기 때문에 "지엽적인 사건 수사"라는 이 의원의 주장은 사실과 거리가 멀다. 

또한 이 의원은 "수사검사로서 당시에 고문에 관계했던 사람이 더 있다는 얘기를 한 달 반 뒤에 듣고 진상을 밝혀내기 위해 무진하게 노력했다"라고 말했지만, 이것도 사실과 다르다.

박 후보자는 대법관에 임명제청된 직후 "안상수 검사로부터 3월 초에 들었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강진규 경사의 1987년 5월 20일자 피의자 신문("전에 검사님이 다른 직원들이 가담되었는지 여부를 집요하게 물어보았다")과 항소심 공판조서"(박 검사가 '반금곤이 주범인데 왜 강진규가 주범자로 되어 있느냐?'고 추궁했다")를 보면 1차 수사 때부터 추가 고문경찰관 존재를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설사 박 후보자의 해명을 그대로 받아들여 "3월 초"에 처음 알았다고 하더라도 이 의원의 주장처럼 "진상을 밝혀내기 위해 무진하게 노력"한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추가 고문경찰관의 존재를 인지한 직후 수사기간 연장이나 재수사를 요청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는 지난 1987년 3월 12일 여주지청으로 발령난 사실을 들며 "이후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모른다"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야당에서는 많은 의혹을 제기하고 국민들도 상당한 의혹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라며 "새누리당은 박상옥 후보자의 자질 논란과 의혹이 사실이 아님을 밝히는 방향으로 청문회에 임하도록 하겠다"라고 '박상옥 방어 청문회'를 예고했다.  

한편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수사를 초기에 지휘했던 최환 당시 서울지검 공안부장은 최근CBS 노컷뉴스와 한 인터뷰에서 "사건을 은폐하고 축소하는 데 저항을 못했다, 용기가 없었다"라고 박 후보자를 평가했다.


태그:#이한성, #박상옥,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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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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